성은(星銀). 그것은 별의 광석 중 하나였다. 별의 광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에서만 채취 가능했는데, 성금(星金), 성은(星銀), 성철(星鐵), 성옥(星玉), 성석(星石) 등등으로 종류도 많았다. 이 별의 광석은 희귀했다. 구하는 게 문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일반적인 금, 은과는 다른 별빛을 닮은 외관을 가졌다. 허나 별의 광석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엔 고작 그런 것만 있진 않았다. 보다 심도 깊은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별의 광석을 찾는 이유. 그건 바로 별의 광석에 깃드는 신비한 힘 때문이었다. 다 제쳐놓고 성은의 경우 지니고 다니면 무병장수하고 건강해졌다. 뭐, 솔직히 실제 성능은 약간 더 병에 강해지고 약간 더 건강해지는 수준에 불과하긴 했다. 성은이 좋긴 좋아도 보유한다고 모든 병마가 사라지는 건 아닌 거다. 하지만. “이런 크기의 성은은 처음 보네요. 근데 제가 아는 것과 모습이 다른데요?” “당연히 위장한 거지. 사람들이 다 쓰는 공용 온천에 이만한 크기의 성은을 떡하니 놓을 수는 없지 않나?” 나는 플로라가 누워 있는 성은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무리 성은의 효과가 생각보다 별로라지만, 그것도 손가락 크기 성은 얘기였다. 이 정도로 큰 성은과 붙어 지내면 정말 무병장수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떻게 구하셨나요.” “많은 일이 있었지.” “황제도 이 크기는 못 구했을 거 같은데요?” “그러니 내가 몰래 쓰는 거 아니냐. 달라고 할까 봐.” 자신의 말이 썩 유쾌했는지 플로라는 힘차게 웃고는 곰방대를 뻐끔댔다. 나는 그런 플로라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플로라 님.” “뭐냐.” “그래서 마법 안 파시나요.” “내가 너 그 소리 할 줄 알았다.” 후우. 길게 연기를 뱉은 플로라는 멍하니 복숭아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안 판다.” “그런가요.” “너는 그렇게 악착같이 마법을 모아서 뭘 하려는 거지?” “사람이 숨을 쉬는 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마법을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건가?” “모아서 쓰는 게 목적이죠. 창고에 넣어두면 마법이 불쌍하잖아요.” 마법은 어디까지나 쓰이기 위해 존재했다. 사용되지 않는 마법만큼 공허하고 불쌍한 일도 없었다. 내 단호한 대답에 플로라는 유심히 나를 응시했다. 그다음 차분히 말을 꺼냈다. “너, 나이가 몇 살이지?” “올해로 17살이에요.” “3위계?” “용케 맞췄네요.” “2위계라기엔 너무 능숙하고, 4위계라기엔 옷을 두껍게 입고 다니니까.” “저는 지금 벗고 있는데요?” “그 입을 좀 가만히 둘 수는 없느냐? 17살에 3위계라….” 플로라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른다. 내 재능의 크기를 가늠하는 모양인데, 나는 친절하게 알려줬다. “범재예요. 1위계까지 한 달이 걸렸고, 2위계는 3년이 걸렸어요.” “그건 범재가 아니라 둔재라고 하는 거다.” “그래도 17살에 3위계죠?” “3위계는 빠르긴 하군. 불 속에 뛰어든 대가인가?” “네.” 내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플로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목표는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익히는 거에, 그러기 위해선 불 속에 뛰어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라.” “이제는 안 해요. 스승님과 약속했거든요.” “둘 중 하나군. 벽에 막혀 미쳐서 죽거나, 미친 채로 끝까지 벽을 뚫어버리거나.” “제 스승님이랑 의견이 똑같네요? 근데 안 죽어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도 약속이거든요.” “지켜야 되는 약속도 많구나. 듣기만 해도 네가 어지간히 스승 속을 썩인 걸 알겠다.” 탁. 곰방대를 털어 끈 플로라는 이내 말을 이었다. “네 욕망의 크기가 엄청난 게 느껴지는구나. 용케 참고 스승의 말을 따르는 게 신기할 정도야.” “그런 거래였으니까요.” “거래라기엔 굉장히 사적이고 애정이 넘치는데 말이지. 좋은 사제 관계였구나.” “플로라 님.” “말해라.” “그래서 그런 건 왜 물으시나요?” 갑자기 내 가능성을 확인하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지만, 플로라는 대답 대신 곰방대에 집중했다. 말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싫으면 말고. 나는 성은 위에 올라가 볼을 비비다가, 천천히 몸을 빙글 돌렸다. 물기가 묻은 몸이 성은 위에서 돌아간다. 팽이처럼 휙휙. “정신 사납다. 뭐 하는 거냐.” “성은의 상태를 체크 중이에요. 싱싱하네요?” “말했지만 지금 성은의 표면은 평범한 대리석이다. 즉 네가 체크한 건 대리석이지.” “플로라 님.” “자꾸 왜 부르느냐.” “혹시 불치병에 걸리셨나요?” “…….” 플로라가 입을 다문다. 예상 밖의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플로라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마법의 거래 조건이 영생이고, 성배가 찾기 쉬웠다면 자신이 이미 찾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으며, 심지어 커다란 성은에 착 달라붙어 살잖아요. 고유 마법도 복숭아나무를 한겨울에 키워내는 생명력 넘치는 종류고요. 모든 단서가 불치병을 가리키고 있어요.” 너무 대놓고 단서를 남겨서 맞춰달라고 시위하는 수준이었다. 내 추리가 정확했던 걸까. 플로라는 다 꺼진 곰방대를 만지작거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딱딱한 겨울 땅을 뚫고 나무줄기가 튀어나와 받침대가 되었다. 받침대 위에 곰방대를 올려놓은 플로라는 온천에 발끝부터 몸을 담갔다. 위치가 역전됐다. 이제는 내가 성은의 위에 올라갔고, 플로라가 온천 안에 들어갔다. 플로라는 온천물을 양손으로 떠올렸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너는 마법의 재능이 없었지.” “범재예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수명의 재능이 없었다.” 플로라는 담담히 고백했다. “내 스승은 유명한 예지 마법사였다. 종종 먼 미래를 봤는데, 그중엔 내 수명도 있었지.” “저런.” “사인은 병사. 예지를 막 전해 들은 어렸을 때는 믿지 않았지만, 금방 깨달았다. 내가 몸이 썩 건강한 편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정확한 사망 날짜가 예지 된 건가요?” “그래.” “그게 언제인가요?” “29살 봄. 그러니까 앞으로 반년 후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운명을 비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성배 탐색도 그 일환 중 하나였지.” “제 선배님이었군요?” “성배 탐사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 성은을 발견했으니 아예 실패한 여정은 아니었지. 성은을 발견한 다음부터는 계속 이곳에 머물렀다.” 이 해피 중세랜드답지 않은 온천과 합쳐진 여관은 그런 사연으로 만들어진 거였구나. 고위 마법사가 여관을 세워서 운영한다면 영주 입장에서도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까. 순순히 허락해 줬을 거 같긴 했다. “운명을 바꾸고 싶었다. 무슨 수를 쓰든, 이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그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략은 어떤가요? 그래도 정해진 운명은 벗어나잖아요.” “너는 화상 치료를 하지 마라.” “왜요?” “화상이 없으면 미친 인간처럼 안 보여서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럴 수가.” 길게 한숨을 내쉰 플로라는 온천 벽에 어깨를 기대며 손가락을 튕겼다. 바닥에서 나무줄기가 튀어나와 플로라의 어깨를 주무른다. 나는 눈이 튀어나왔다. “혼자서 안마가 되다니. 이런 터무니없는 마법이…!” “그렇게 간절한 목소리로 말해도 안 준다.” “저도 해줄 수 있나요?” “들어와라.” 시키는 대로 온천에 들어가자 곧 나무줄기가 튀어나와 내 어깨를 주물렀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말도 안 되게 시원했다. “이 섬세한 안마는 뭔가요.” “전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배운 덕이지.” “정말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군요?” 새삼 플로라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 느껴졌다. 저런 집착을 가졌으니 젊은 나이에 고위 마법사가 된 것이리라. 나는 몸을 이완시키고 플로라의 안마를 즐겼다. 기분 좋다. “루이나 님?” 그러다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요리 주머니가 보였다. “크리스 님. 이제는 아예 공용 온천에도 오는군요.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오세요.” “쟤는 누구냐?” “돈의 악마와 거래한 미래의 대상인이에요.” “저게 대상인이라고? 서큐버스가 아니라?” “돈에서 정기를 흡수하는 타입이에요.” “그런 거라면 납득되는군.” 우리의 대화에 크리스는 얌전히 옆에 앉은 후 속삭였다. “루이나 님. 나는 서큐버스가 아닌데?” “몸매는 서큐버스잖아요. 얼굴도요.”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한 말이네.” “칭찬이에요.” 플로라는 크리스에게도 나무줄기 안마를 해줬다. 요리 주머니도 말끔하게 풀어줬는데, 그 솜씨가 거의 황제 전용 안마사 수준이었다. “실제로 전 황실 안마사가 전수한 거다.” “진짜 건강에 대한 집착이 어마어마하군요?” “그래야 운명을 바꿀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온천욕을 열심히 즐기고 밖으로 나가 우유를 들이켰다. 역시 온천욕을 한 다음엔 우유가 최고다. “맞다. 루이나 님. 최종보고 들어야지.” “최종보고요?” “상행 준비가 끝났는데, 확인 안 할 거야?” “해야죠.” 슬슬 내 돈이 잘 쓰였는지 검사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