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 마법학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마법을 조금 한다고 자부하는 마법사들은 전부 이 학회에 참가해 자신의 성과를 세상에 알렸는데, 그들이 그토록 논문발표를 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활동하기 수월해졌으니까. 이건 비유하면 취업 전선에서 사람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발악하는 것과 비슷했다. 일단 마법사로 남긴 무언가가 있어야, 제국에서 고용하든 왕국에서 고용하든 귀족 가문에서 고용하든 할 것 아닌가. 용병으로 막 구른다면야 상관없지만, 몸 편히 연구나 하며 살고 싶다면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건 거의 필수 과정이었다. 개인의 입장을 넘어 단체의 입장에서도 논문을 내는 건 중요했다. 마탑이나 학파도 소속 마법사가 발표한 논문이 쌓여야 마법사들을 끌어모으는 게 쉬워졌다. 근데 이 굴레에 마법학교는 포함이 안 됐다. 마법학교? 얘네는 수저가 달랐다. 무려 초대 황제가 세운 전통과 역사가 깃든 곳이다. 이런저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마법학교의 교수를 하고 싶다는 사람은 넘쳤고, 마법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사람도 넘쳤다. 그래서 마법학교의 교수들은 딱히 논문에 목을 안 맸으나, 체면이라는 게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논문은 아니어도 실력이 출중하다는 걸 증명할 논문은 매년 꾸준히 썼다. 허나 그렇다고 모든 교수진이 논문을 발표하는 건 아니고, 돌아가며 시간이 남는 사람이 2년마다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기회가 이번에 딱 내게 돌아왔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적영에게 말했다. “저 말고 크리스 님을 따라다니세요.” [알겠어.] 대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크리스에게 적영을 맡기고, 나는 준비한 논문을 살폈다. 보통 논문이란 자신의 주 전공을 기반으로 설정된다. 세상엔 천재가 너무 많다. 연구자도 너무 많다. 수많은 사람이 이미 다양한 방향으로 성과를 냈을 가능성이 컸다. 자신의 전공을 이해하기만 해도 평생이 걸렸고, 때문에 학문의 세계에서 성과를 낸다는 건 보통 이런 의미로 사용됐다. 거대한 학문의 세계에, 매우 작은 티끌을 더한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냐. 인류를 도약시킬 위대한 성과는 픽션에 가까우니,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간단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을 모든 마법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건 굳이 따지자면 소망에 가까웠고, 학문적 성과로 들어가면 좀 달라졌다. 뭐가 달라지냐고? 소망은 자기 상황을 고려 안 하고 품는 거지만, 학문은 현실성까지 고려해 정해야 됐으니까. 연구라는 게 원한다고 뭐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입자 가속기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것과 연결된 문제였다. 연구가 없는 논문은 의미가 없었다. 하다못해 장난삼아 내는 논문조차 연구를 거쳤다. 즉 논문 주제를 정한다면, 현재 내가 연구가 가능한 주제로 정해야 됐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그 부분에선 안심이었다. 워낙 폭이 넓었으니까. , , , . 장담한다. 세상 어디에도 고유 마법을 이만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여동생을 너무 사랑하는 오빠가 죽어버렸으니, 안 그래도 적었던 인원이 더 줄어들고 말았다. 이것들로 어떤 논문을 써야 자랑스럽게 마법학교에 돌아갈까. 사실, 그 고민은 이미 끝나긴 했다. 나는 수많은 종이 뭉치 중 가장 밑에 놓인 종이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공용 공방을 빌려서 연구를 시작해야겠다. * “루이나 님. 이 옷은 어때?” “크리스 님 혹시 의류 판매도 시작했나요?” “크&루 상회에서 자신 있게 시작한 새로운 사업이야. 어때?” 크리스의 말에 나는 적영에게 입힌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흐으음. “괜찮긴 하네요. 근데 화려함이 부족하지 않나요?” “루이나 님. 어차피 이런 건 귀족들에게 퍼지면 끝이야. 요즘 제국 귀족들 유행이 깔끔한 고급스러움이라 잘 통할 걸?” 확실히 크리스의 얘기대로 무난한 디자인 속에서 은은한 고급스러움이 어렴풋 느껴지는 옷이었다. 전생에도 부자들은 오히려 이런 걸 좋아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루이나 님.” “말하세요.” “상회 이름이 왜 저 모양이냐고 지적 안 해?” “어차피 지적해도 안 달라지잖아요.” “역시 루이나 님이 최고야.” 나는 새로 받은 옷이 어색한지 이리저리 흔드는 적영을 구경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천공의 섬은 상인의 섬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왜 이렇게 됐냐에 대해서는 모두 의견이 똑같았다. ‘하늘섬에 관광하러 오는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관광객 벗겨 먹으려는 상인이 자리 잡았지.’ 나도 동의했다. 그 증거는 내 옆에 있다. 사람을 돈 나오는 샘물쯤으로 인식하는 서큐버스는 언젠가 한 번 크게 돈을 잃고야 말 것이다. 아니다. 돈을 잃으면 제국을 팔아먹을 인간이다. 차라리 지금 사업이 잘되길 기원하자. “거기 아가씨들! 좋은 물건 있어! 와서 구경해!” 거리를 걸을 때마다 호객 행위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무시하고 학회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이동하다가, 일행 두 명이 스르륵 사라져서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리자 적영과 크리스가 노점상 앞에 있는 게 보였다. 적영이 자판 위의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고, 그 옆에서 크리스가 팔짱을 끼고 구경한다. 적영이야 그렇다 치고 크리스는 갑자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관광지의 물건은 행복 프리미엄이 붙어서 비싸다고 난리 칠 인간 아니었나. “오. 거기 금발 아가씨. 구름 머리핀이 마음에 드나 봐? 천공의 섬에만 존재하는 특별 장신구라네.” [엄마. 나 이거 사줘.] “왜 이럴 때만 엄마인가요. 평소에는 주인님이잖아요. 이런 적당한 스토리를 붙여 비싸게 파는 장신구를 사주는 건 상인들 배만 채워주는 거예요. 참으세요.” [엄마님.] “차라리 제가 하나 만들어드릴게요. 구조 자체는 간단해요. 바람 원소와 물 원소를 3.7:6.3으로 섞은 후, 그걸 ‘고정’하면―.” [나 이거 사줘.] “하나 주세요.” 나는 노점상에게 은화를 지불하고 구름 머리핀을 구매했다. 그걸 적영에게 건네자, 적영은 구름 머리핀을 빙글빙글 돌리며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정확히는, 내 머리카락에.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적영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그리고 적영이 머리카락에 머리핀을 꽂았다. 머리핀 2개를, 자신의 머리카락에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깨달았어요.” “루이나 님. 나도 깨달았어. 쓸데없이 가격을 잔뜩 올려놓으면, 한 명은 걸리게 돼 있어.” “마법은 마법사의 자식이 맞아요.” “말만 들으면 감동적인데, 루이나 님은 뭔가 이상한 의미로 쓴 거 같은데?” “착각이에요.” 나랑 세트 머리핀을 하고 싶은 줄 알았더니, 그냥 자기 머리카락에 머리핀을 2개 꽂을 줄이야. 이래서 마법 마음은 알기 어렵다는 거구나. 오늘도 하나 배웠다. [주인님. 이거 사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나는 기어코 머리핀을 하나 더 사 3개의 머리핀을 머리카락에 꽂는 적영을 뒤로한 채. [이것도.] 나는 기어코 머리핀을 하나 더 사 4개의 머리핀을 머리카락에 꽂는 적영을 뒤로한 채. [주인님.] “그만.” [네.] 하여간 적영과 크리스를 데리고 행사장으로 갔다. 출신,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마법사라면 누구든 참가 가능한 구조 탓일까. 마법학회가 열리는 행사장은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했다. “프라우드. 저번 논문은 잘 읽었네.” “감사합니다. 엘단 남작님도 이번에 연구 성과를 내셨다고―.”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3가지. 학연, 지연, 혈연이 열심히 일하는 광경이 군데군데 포착됐다.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떠든다. 논문을 잘 봤느니, 저번 모임에서 바빠서 얘기를 많이 못 나눠서 아쉬웠느니, 여동생은 잘 지내느니, 대화 내용도 다양했다. 나? 나는 행사장 한가운데 우뚝 서 모든 대화를 듣기만 했다. “루이나 님. 아무도 말을 안 거니까 쓸쓸해 보여.” “원래 마법의 길은 고독한 법이에요.” “그런 거 치고 다른 사람들은 재밌게 떠드는데?” “저 사람들은 마법사가 아닌가 보죠.” 나는 행사장을 가로질렀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는 거, 빠르게 자리를 찾아가려던 거였는데. “오랜만이네.” 그런 내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범인은 하얀색 로브를 입은 금발 금안의 여자였다. 행사장에 마련된 칵테일을 홀짝이던 금발 금안의 여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입꼬리를 올렸다. “몇 달 만인데도 경지는 딱히 안 오른 거 같네. 아 그건가? 마법 말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그런가? 영웅 놀이를 하느라 내가 5위계에 오를 동안 너는 고작 4위계잖아. 천칭으로 고유 마법을 아무리 수집해도, 정작 본인이 4위계면 어디 가서 당당히 마법사라고 말하기 부끄럽지 않을까?” 단번에 말을 쏟아낸 여자는 내 반응을 기다리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 모습에 나는 원하는 대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