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시련의 탑 18층 18층의 배경은 마법에 대한 주목도가 매우 높은 어느 왕국의 마탑이다. 마탑은 특정한 계열의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연구에 힘쓰는 곳으로, 현대 대한민국에 비교하자면 대학 연구실쯤 된다. 적색 마탑에서는 화염 속성 위주의 연구를, 청색 마탑에서는 물 속성 위주의 연구를 하는 식. 그리고 전이문을 통과한 도전자는, 그런 여러 마탑 중 무작위 한 곳에 전이되게 된다. 배경설정 상으로는 소환 실험을 진행하던 중, 무언가 사고가 발생해 애먼 사람이 소환된 상황이라고. 아무튼 그렇게 소환된 도전자는 나름 사고를 당한 셈이다 보니, 마법사들에게 나름의 대접을 받게 된다. 당연히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법을 접하고, 자질에 따라 직접 마법을 배워볼 수도 있는 구조. 덕분에 여기서 많은 도전자가 각 마탑의 속성을 따라 해당하는 계열의 마법사로 클래스를 바꾸기도 한다. 마법과 안 맞는 도전자들은 그냥 평범하게 퀘스트 라인을 따라가면 그만이고. 그리고 그 퀘스트 라인은 엘프 진영 퀘스트처럼, 설정을 공유하고 있는 다음 층까지도 일부 이어진다. 엘프 퀘스트 만큼 거대한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명한 중대규모 진영 퀘스트인 셈. 차이가 있다면 진영을 도전자가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는 것 정도일까? 퀘스트 라인은 소환된 마탑의 색에 따라 결정되고, 도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협조와 비협조 둘 중 하나뿐. 이런 특성 탓에, 당연히 커뮤니티에서도 마탑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꽤 많이 돌아다닌다. 왜냐, 마법사라는 족속은 기본적으로 다 괴팍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작성자 : 강찬성#1551] [제목 : 불쟁이년들 진짜 마법사 맞냐 시발?] (사진) 이새끼들 연구하다가 뭐 삑났는지 극대노하더니 갑자기 파이어볼 터트리는데? 마탑주는 그거보더니 마침 자기도 뭐하나 불태우고 싶었다 ㅇㅈㄹ하고 갑자기 단체 캠프파이어하더니 불 잘못번져서 탑에 갇힘 시발 ㅋㅋ 이새끼들 마법사가아니라 그냥 미친 방화범새끼들인데 화염 마법을 다루는 적색 마탑은 시도때도없이 불마법을 마구 휘두르다가 화재를 내기 일쑤라던가. 물 마법을 다루는 청색 마탑은 근처를 지나다기만 해도 물벼락을 맞기 일쑤라던가. 빛 마법을 다루는 백색 마탑은 온종일 24시간 눈이 멀 것 같은 조명이 켜져 있다던가 하는 특징들. - 사진 ㅅㅂ 지옥에서찍었냐? ㅋㅋㅋㅋㅋ - 화재는 불평 ㅋㅋㅋㅋㅋ - 불길뭐냐 ㅋㅋㅋ 너 살아나올수있냐? - ㄴ 몰라시발 이거어케햐냐 - ㄴ 저기 세이브포인트있네 저기까지만 가라 - ㄴ 세이브포인트 ㅇㅈㄹㅋㅋㅋㅋㅋ - 이건 ㄹㅇ 불평인데 ㅋㅋ - 불평인척 가면쓴 얼평 ㅋㅋㅋ - ㄴ 얼붕이들이 저걸 어케찍는데 ㅋㅋ 그리고 도전자들은 그런 마탑들간의 차이를 유희거리로 삼아, 커뮤니티 내에서 흔히 말하는 ‘갈드컵’을 벌이기도 했다. 상반되는 속성의 마법사들끼리는 성격도 상극이라, 퀘스트를 진행하는 도전자들 사이에서도 충돌이 꽤 있는 편이거든. 특히 마탑에 입적해 클래스를 변경한 이들은, 아예 서로를 깎아내리며 커뮤에서건 현실에서건 으르렁거리기도 한다나? 목구멍을 다 태워버리겠다느니, 면상에 얼음송곳 박아주겠다느니 하는 말도 꽤나 오갔던 걸로 안다. 반쯤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나머지 반은 장난이 아니라는 거고. 뭐, 내가 있는 2661탑은 다른 도전자가 없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마탑들 간 퀘스트 보상 차이가 좀 있다 보니, 어느 마탑에 소환되느냐는 꽤 중요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번개 속성을 다루는 황색 마탑이나, 그림자 마법을 연구하는 흑색 마탑에 소환되었으면 좋겠다. 전자는 내가 지금도 잘 다루고 있는 속성이고, 후자는 다크엘프와 연관이 깊은 속성이니까. 환각 마법을 다룬다지만 기껏해야 눈속임밖에 못 하는 자색 마탑 같은 곳은 정말 최악인데. “황색, 황색, 황색……흑색, 흑색, 흑색.” 나는 그렇게 주문처럼 중얼거린 뒤, 약간의 긴장과 함께 전이문을 활성화했다. ** 전이문 특유의 울렁거리는 감각이 지나가며, 나는 곧 나를 둘러싼 마법진을 볼 수 있었다. 커뮤니티의 정보에 따르면, 소환된 순간 마법진의 형태를 살피는 것으로 어느 마탑에 소환됐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마법진이 발하고 있는 마력광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마법진에 사용된 재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마법진에 새겨진 각 문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통해, 소환자가 누구인지도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다나. 소환자의 마탑에서의 입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퀘스트도 편해진다고 하니, 이것도 꽤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곧바로 마법진을 살폈다. 우선 마법진의 색깔은 뭐라 형언하기 힘든 거무튀튀한 색. 뭐지, 흑색 마탑도 이런 색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소환 순간을 찍은 스크린샷이 많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그러면 마법진의 재료를 살펴봐야 하는데……여기저기 퍼져 있는 재료 역시 뭔가 이상했다. 주먹만한 크기의 고깃덩어리, 피처럼 붉은 액체가 담긴 잔, 그리고 저 허연 건. 뭐야, 저거 설마 뼈인가? 소환에 쓰이는 재료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지만, 이런 재료로 소환을 진행한다는 말은 아예 못 들어봤는데. 나는 마지막으로 마법진에 박힌 문장을 살폈다. 문장 역시 소환에 임한 마법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소속된 마탑의 상징물은 꼭 문장에 박혀 있다고 들었다. 적색 마탑은 화염 도마뱀인 샐러맨더의 상징을, 청색 마탑은 물의 정령인 운디네의 상징을 넣는 식으로. 나를 소환한 마법사의 문장은 뿔이 돋아난 두개골을 한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는 형태였다. 내가 알기로 이런 상징물을 사용하는 마탑은 어디에도 없다. -파앗! 잠시 후, 소환이 완료되며 시야가 단번에 확 트였다. 그리고 나를 반겨준 것은 묘하게 익숙한 악취와,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 “흐하하하! 성공한 것인가! 마침내!” 기쁜 듯 웃어젖히는 남자의 손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단검, 그 발밑에 널브러진 것은 사람의 시체 여럿. 내 소환에 사용된 재료는 각각 인간의 심장, 인간의 피, 인간의 생 갈비뼈였다. “이런 씨발.” 아무래도 나, 마탑에 소환된 게 아닌 것 같은데? **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재빠르게 사방에 마력을 퍼트렸다. 단시간에 주변 환경의 정보를 얻기에는 마력감지만 한 것이 없다. 오감을 모두 압도하는 성능의 육감이니까. 가장 먼저 탐지된 것은 인간, 이건 이미 눈으로도 확인했다. 내 소환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이 대충 오십 정도. 그 절반 정도가 마력을 갈무리하고 있는 마법사다. 하지만 뭔가 조금 다른걸. 내가 마법사를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이들이 품고 있는 마력은 뭔가 무겁고 불길했다. 마치, 마족의 마력처럼. 널브러져 있는 시체는 대부분 인간 여성 혹은 아이의 것,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시체에 마력이 남아있지 않다. 목숨이 끊어져도 그 육체에 깃들어 있던 소량의 마력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 마력을 모두 빨렸거나, 시체로부터 마력을 추출 당한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 이 재료들을 보면 명확하다. “뭔 씨발, 악마 소환이라도 하려고 한 거야?” 나를 소환한 마법진은 인신공양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정규 마탑에서 이런 일이 자행될 리는 없겠지. 왜 이딴 곳에 소환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엄청나게 나쁜걸. “보라, 동지들이여! 이 길버트 가잘이 마침내 모독의 짐승을 불러냈노라!” 나를 불러낸 소환자는 미친 듯이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동지들에게도 느껴지겠지, 저것이 가진 막대한 힘! 넘쳐흐르는 마력이!” 아무래도 마력감지를 위해 흩뿌린 내 마력을 느낀 모양인데, 뭐가 좋다고 저렇게 까부는지 모르겠다. 내 힘이 얼마나 대단하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소환자는 이어서 선언했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취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라고. 그러더니 오른손의 단검을 역수로 쥐고, 바닥에 널브러진 어린아이의 시체를 질질 끌어당겼다. 아니, 마력을 전개해 살펴보니 시체가 아니었다. 죽기 직전이지만, 미묘하게 생기가 남아있다. “뭐 하려는……” -파직! 마법진 밖으로 나가려 움직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모종의 마법적인 방해인가. 단순한 구속은 아닌 것 같고, 뭔가 결계 같은 걸 펼친 모양인데. 소환자는 어린아이를 붙들고, 단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 더럽혀진 피를 제물로, 모독의 짐승은 나의 충실한 종이 될 것이다!” 서슬퍼런 칼날이 아이의 심장을 향해 떨어진다. 결계에 갇힌 나는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을 리가 있나. 이건 뭐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딴 종잇장 같은 결계로 누굴 붙들어 놓겠다는 건지. -와장창! 결계를 힘으로 깨부수고 아이를 노리던 단검을 손으로 붙잡아 막았다. 으적, 피가 묻은 칼날을 부러트려 버리자 소환자는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딱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것 같다. “누굴 종으로 삼겠다고?” 일단 이 새끼는 죽이고 시작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