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하늘의 신관 얼타고 있는 앤젤라를 두고, 하늘지기의 쉼터에서 나와 천족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기다리던 대로, 날개가 두 쌍이 달린 천족- 신관이라 불리는 이들이 둘이나 서 있었다. 천족 부부는 형사에게 취조당하는 일반인처럼, 두 명의 신관에게 쩔쩔매며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나머지는 본인에게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것도 신관들이 나를 발견하며 끝나게 되었다. 날개를 펼친 신관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이동했다. 속도가 빠르네, 역시 신관은 다른 천족들이랑 기본 스펙 차이가 꽤 나는군. “일주일 전, 천계로 올라온 지상인이 당신 맞습니까.” “어.” “저는 천신님의 뜻을 대행하는 신관, 아드리엘이라 합니다.” 아드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 옆의 다른 신관, ‘로피엘’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로피엘은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훤칠한 남자, 아드리엘은 긴 금발을 가진 여자 천족이었다. 소지하고 있는 무기는 각각 창과 활, 감지되는 마력의 양은 마족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다. “현재 당신께는 두 가지 혐의가 걸려 있습니다. 하나는 7구역 신수 폭행, 다른 하나는 하늘지기 약취 혐의입니다.” “약취?” “하늘지기 앤젤라에게 지상의 지식을 전수했지요. 이는 정순한 천족의 심신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약취에 해당합니다.” 역시 앤젤라와 있었던 일은 파악하고 있었군. 그런데 그게 약취에 해당한다니, 천계의 법은 참 골때리는구나. “서로 간의 동의가 있는 행위였어, 그게 어떻게 약취가 되는데?” 나는 순수한 의문을 내뱉었다. 그러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천족 부부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다가왔다. “전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이가 그런 일에 스스로……그럴 리가 없어요!” “맞습니다, 앤젤라는 선하고 순수하며 고결한 천족입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천족의 본질이 완전무결하다고 믿는 이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겠지만. 사실인 걸 어쩌나. 당신들 딸 쩔더라. 아무튼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거짓말 같은 거 안 했다고. “전후 상황은 조사를 진행하며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은 안심하고 들어가 계시길.” 신관은 처참한 표정을 한 천족 부부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신수 폭행은 부정한 지상인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정상이 참작되겠습니다만…하늘지기 약취 혐의는 천벌감입니다.” “신관들에 의해 집행되는 5급 천벌이 당신께 내려질 예정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3급 천벌까지 상향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항하지 않고 중추로 따라오신다면, 6급 천벌 이하까지 정상을 참작해 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오시겠습니까?” 내 목적은 원래부터 중추에 가는 거였다. 그러니 굳이 여기서 저항할 이유는 없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부정을 씻지 못한 인간족의 힘으로는 우리 신관에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안 싸울 이유도 딱히 없다. 중추에 가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따라가기는 할 건데.” -스릉. “그 전에 실력 좀 보자.” 이만큼 큰 제약이 걸린 상태에서 싸워 볼 기회는 좀처럼 없거든. ** 검을 뽑고 마력을 전개하자마자, 두 명의 신관은 거의 발작하듯 빠르게 반응했다. “어리석은 짓을, 당장 그만두십시오!” 아드리엘이 재빠르게 활에 세 발의 화살을 메겼다. 하지만 그게 재빨라 봤자 근접 전사만 할까. 나는 칼등으로 활을 든 손을 후려쳤다. 탁, 소리와 함께 시위에 메겨졌던 화살 중 하나만이 초근거리에서 쏘아졌다. 궤도를 읽고, 고개를 가볍게 젖혀 피해낸다. 화살의 속도 자체는 빠르지만, 이런 짧은 거리에서는 사선이 뻔하기에, 속도와 상관없이 가볍게 피할 수 있다. -콰광! 빗나간 화살이 저만치 떨어진 구름에 박히며 폭발했다. 뭐야 저게, 위력이 엄청 세네. 화살이 아니라 박격포가 따로 없군. 지금 상태로 그냥 맞으면 큰일 나겠다. 근거리에서 활로 상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판단을 마쳤는지, 아드리엘은 거리를 벌리며 빛나는 마력을 흩뿌렸다. 마력은 주변의 구름을 흡수해 형태를 이루었다. 그렇게, 여러 종류의 동물 형태를 한 소환수가 생겨났다. 아드리엘이 신관으로서 가진 은총 중 하나일 거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골렘 같은 거겠지. 저걸로 시간을 끌고 확실하게 거리를 벌릴 생각인가 본데, 내가 여태까지 깨부순 골렘이 몇 개인 줄 아냐? -촤악! 소환수는 내 검격 한 번에 핵을 파괴당해 소멸했다. 다만 직후, 다른 소환수들이 내게 들러붙어 움직임을 방해했다. -쐐액! 그 때를 노려 쏘아지는 화살 한 발, 빈틈을 노렸다고 생각했겠지만 어림없다. “어딜.” -휙! 이번에도 고개를 가볍게 까딱여 피해냈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원거리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 근접 전사에게 원거리 사격은 가장 큰 약점, 그렇기에 나는 그 부분을 더 철저히 보완했다. [마력 감지], [초감각], [감각 강화]등의 스킬을 모조리 엮어서 완성한 감지능력은 이미 레이더나 다름없다. 스탯이 토막 난 상태에선 그것도 약해지긴 하지만, 그동안 감지능력을 복구를 위주로 단련했으니. 그렇게 화살을 피해낸 직후, 머리 위에서 감지되는 쏜살같은 움직임. “흐아앗!” 어느새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신관 로피엘이, 불꽃이 휘감긴 창을 들고 수직으로 낙하했다. 소환수를 떨쳐내며 뒤로 크게 뛰었다. 콰광, 구름 지면에 박히는 불타는 창. “부정한 것을 불태우는 신염을 맛보아라!” 지면에 박아넣은 창을 뽑아 휘두르며, 요란하게 소리치는 로피엘. 신염이라 불리는 불꽃이 넘실거린다. 무슨 성스러운 불꽃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저건 그냥 불이다. 내 [화염 내성]에 막히는. 몰아치는 화염을 무시하고 뛰어들어, 검을 휘둘러 창과 맞부딪혔다. -카앙! “으윽?” 창을 든 로피엘이 살짝 주춤한다. 근력은 내가 더 우위에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밀어붙이려는 찰나, 놈의 창에 붙어있는 불꽃이 일렁거리며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불타는 창이었던 무기가, 한순간에 불타는 도끼로 변했다. -후웅, 쾅! 갑작스러운 변화에 한 발짝 뒤로 뛰었더니, 그 자리를 강타하는 불타는 도끼. 그리고 도끼는 다시 창의 형태로 변했다. 창과 도끼 형태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변형도 있으려나. 어쨌든 이걸 내가 상대하는 날이 올 줄이야. 마음에 든다. “그 창, 좋아 보인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무기라, 나도 꼭 하나 갖고 싶은걸. ** 인벤토리를 이용해 여러 종류의 무기를 바꿔가며 싸우는 내 고유의 전법. 그걸 조금 다른 형태로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다. 직접 상대해보니 확실히 까다로운 전법이네. -카강! 카앙! 캉! 창과 도끼에 이어 미늘창이며 검이며 봉의 형태로도 변하는 무기와, 내 검이 반복해서 맞부딪힌다. 무기술 자체가 그렇게 뛰어난 건 아니지만, 화염 공격까지 병행해 수비적으로 싸우니 이거 참 난공불락이다. 물론 스킬 몇 개를 사용하면 쉽게 뚫을 수 있겠지만, 단순히 검술만으로 공략하기는 꽤 힘든걸. -피잉! 그 때, 내 검이 뻗어 나가는 타이밍에 쏘아진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귀를 스쳐 지나간다. 빈틈이 없지는 않은데, 그 빈틈은 저 멀리 떨어진 아드리엘의 화살이 절묘하게 메꿔진다. 스펙은 그럭저럭, 무기술도 그럭저럭, 하지만 은총이라는 특수한 능력과 척척 잘 맞는 호흡이 상승효과를 보이고 있다. 파티 플레이의 장점이라는 게 역시 이런 거겠지. 나 같은 솔플러는 평생 못 해볼 싸움 방식이다. “아, 그것도 아닌가.” 신관의 실력은 잘 봤다. 그럼 이제 이놈들의 팀워크를 파훼해 보도록 할까. -후웅! 나는 로피엘의 창을 피해내며,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을 아드리엘을 향해 힘차게 집어 던졌다. “헉!” -콱! 검은 아드리엘의 머리 옆에 아슬아슬하게 박혔다. 맞았으면 좋았겠지만, 맞추려고 던진 것도 아니다. 내가 던진 검은 그냥 그런 [강철 직검]이 아니라, 칼레온이었으니까. [검령 각성] 하급 마법석을 끼운 채로 던진 칼레온을 각성시켜, 검령을 불러냈다. “이놈……보나 마나 전투 중에 나를 불렀겠지, 이번에는 어디냐! 이번에야말로 내 실력을 제대로!” 원래 마검이었기 때문인지, 검령은 흉흉한 마력을 풍긴다. 그 모습을 본 로피엘과 아드리엘은 격하게 반응했다. “이 무슨 사악한 기운! 피해라, 아드리엘!” 검을 들어 올린 검령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직감했는지, 로피엘은 내게서 떨어져 아드리엘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놈의 창끝에 막대한 불꽃이 실린다. 아껴두고 있던 필살기인지, 그 기세가 실로 대단하다. “흐아압!” -콰앙! 로피엘의 일격은 어마어마한 범위에 불꽃을 토해내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제약이 걸린 칼레온은 거대 뿔토끼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스탯의 소유자, 당연히 그 폭발을 피할 힘은 없었다. 검령 칼레온, 사망. 하지만 애초에 싸움을 맡기려고 소환한 칼레온이 아니다. 미끼 역할은 충분히 해 줬다. 칼레온에 대처하느라 빈틈이 훤히 드러났다. 궁수가 커버해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빈틈. [신속] 민첩 스탯을 증폭시켜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그대로 빈틈을 향해 일격. “크헉!” 내 검에 적중 당한 로피엘이 쓰러지고, 남은 것은 혼자서는 싸우기 어려운 궁수 아드리엘 뿐. 이 정도면 딱 15층에 어울리는 수준이네, 제약이 아니었으면 상대도 안 됐겠어. 자, 내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