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ip를 영구밴했습니다.] “우잉.” 착죽흡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일 초, 이 초. 그렇게 대략 10초 즘 지났을 즘일까. 왈칵! 착죽흡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달리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영구밴을 당한 게 그렇게나 억울했을까. 쭈글쭈글 거리며 내게 안기려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착죽흡을 들었다. “안 돼.” “잉...” “집 나간 첫째 잡으러 가야지.” 참치여왕의 상태를 고치고 곧죽흡을 다시 파딱으로 돌려놓는 법. 그건 다시 두 명이 서로 합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럼 우선 같은 장소에 있어야 했다. 나죽흡을 이 벙커에 데려올 순 없었다. “그럼 반대로 찾아가야겠지?” [해당 ip가 불안정합니다.] [‘곧죽어도흡혈’의 위치를 탐색합니다.] 다행히 내 예상은 맞았다. ip가 불안정할지언정, 이전처럼 열람도 안되는 고장 상태는 아니었으니. 나는 쉽게 나죽흡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엥?” 다만 의외의 장소에 있었다. “저긴 어디지?” 켈리어튼도, 아드리안도 아니다. 나죽흡은 켈리어튼령을 아예 벗어난 남쪽 아래, 외진 숲에 있었으니. 나죽흡은 폐허가 되어 터만 남은 이름 모를 왕국 내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뜨겁다. 몸에 옮겨붙은 불은, 곧 전신에 퍼져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최악이라는 화형. 흐르던 눈물마저 타버릴 정도로 뜨겁고 비참했지만, 생각만큼은 멀쩡했다. ‘억울해.’ 자신은 잘못한 게 없었다. 이렇게 군중 앞에 타죽으며 조롱당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마녀라니, 마법도 못 쓰는데. “...나는 마녀가 아니야.” 타 죽는 것보다 한과 분노로 가득 찬 정신이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내려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찢어버리고 싶다. 흐르던 눈물은 곧 피가 되어 바닥에 떨어질 즘이었다. -스르륵 그녀에게 무언가 닿았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그녀의 몸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으니.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최초의 불사이자 흡혈귀가 되어 있었다. . . “아.” 에르제베트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눈앞에 있는 건, 폐허로 변한 지 오래인 낡은 도시의 풍경이었다. 한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성당 앞 광장은 그 흔적만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역시 다 타버렸구나.” 에르제베트는 작게 중얼거렸다. 기억이 없다. 마치 중간이 삭제된 것처럼, 정신을 차렸을 땐 세상은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눈앞에 갤러리라는 것이 간섭하고 있었으니. “주딱이라고 불렀어.” 그 갤러리의 주인을 모두가 입을 모아 주딱이라 칭했다. 그리고. “역겨운 인간.” 인간이기도 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모든 생명을 간섭하는 갤러리란 것의 주인이, 고작 인간이었다. 그리고 에르제베트는. “역겨운 인간인데...” 주딱이 싫지 않았다.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채팅을 보는 순간 그랬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저항감이 사라지고, 호감과 반가움부터 일었으니. 역겨운 인간 왕국을 앞에 두고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에르제베트는 제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은 온몸이 묶인 채 불에 타던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을 받아들여 왕국을 통째로 멸망시킨 것. 이 두 가지뿐이었는데. “으으... 대체...”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할 즘이었다. “우잉.” 낯설고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제베트는 그 맥빠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폐허가 되어 풀이 무성하게 자란 광장 단상 위에 여자가 있었다. 흑발에 검은 눈. 마치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고고한 외모에... “우응.” 진짜 맥빠지는 소리를 하는 여자가, 에르제베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묘하게 단호한 눈빛이 기분 나쁘다. “너...” 흑발의 여자. 그녀는 에르제베트였다. 정확히는 인간 시절, 에르제베트. 아직 모함 당해 사람들 손에 불타죽기 전, 순수한 에르제베트였으니. “저리 가.” 그녀는 흑발의 에르제베트를 밀어냈다. 자신은 인간들을 더 죽여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봤던 그 기사 왕국도, 어딘가에 느껴지는 더러운 신성 제국도. 모든 것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야 했다. [인간을, 주딱을 죽여라] 그리고 머릿속에서도 속삭임이 들려왔다. 자신을 이루는 힘의 원천에서도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목소리에 휘둘릴만큼 약하지 않았다. “알아, 그럴거야.” 다만 스스로 그 속삭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뿐. 그런만큼 이 둘에게선 떨어져야 했다. 주딱과 또다른 자신. 특히나 주딱을 마주하면 타오르던 증오심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니까.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그때였다. 주딱*: 어이어이 “거기까지다.” “!” 눈앞에 주딱이 나타났다. 어쩌면 당연했다. 어디로 가든, 주딱이 볼 수 있었다. 주딱의 시야에서 숨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야.’ 아니, 실은 그렇지 않았다. 갤러리 탈퇴. 저 버튼만 누르면 나갈 수 있다. 그런 뒤 작정하고 숨으면 자신을 찾는 게 지금처럼 쉽지는 않겠지. 그런데. “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금세 다가온 착죽흡이 그녀를 붙잡았다. “뭐... 뭐하는 거야.” 아무리 다른 몸이라지만 생각은 같았다. 사실상 하나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를 버리고 주딱의 편을 들다니. “놔!” 에르제베트는 힘을 줬다. 물론 그녀는 불사였다. 하지만, 주딱만큼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꿈에도 생각 못한 방법으로 자신을 무력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상 못한 상황에 에르제베트가 당황하던 그때였다. 주딱*: 님아 “...?” 눈을 질끈 감은 에르제베트 앞에 나타난 건, 마법도 무기도 아니었다. 주딱*: 파딱 해볼 생각 있음? 주딱*: 왠지 님 파딱하면 잘할 것 같은데 “...윽?” 그때였다. 머리에 강한 충격이 닿았다. 고작 평범한 말뿐인데, 기억을 헤집는듯한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너... 하지마.” 에르제베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기억을 헤집고 있었다. 잊고 있던 기억을 강제로 끌어올려 떠올리게 하려고 했다. 물론 에르제베트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난 분열된 거겠지.’ 모종의 이유로 어떤 시점을 기점으로 둘로 나뉘었다. 또한 저 주딱이란 존재와 몹시 가까운 사이였다. 두근거리는 걸 보면, 어쩌면... “연인.”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리던 에르제베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지금 가정이 가장 그럴싸하다는 것도 알았다. 기억을 되찾는 것이 결과적으론 이득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싫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주딱이 특별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 죽도록 싫었다. 왜 먼 미래에 자신이 인간과 연애 놀음을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복수해야 해.” 복수해야만 했다. 이 땅 위에서 저 종족을 보는 일이 없어야만 했다. [인간을, 주딱을 죽여라] 머릿속에서도 끊임없이 외쳤다. 물론 이젠 알았다. 주딱을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의 몸이 격렬히 거부했다. “그렇다면 인간만이라도.” 주딱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죽여야만 성이 찰 것 같았다. 하지만 주딱은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주딱*: “선지해장국” “으으윽!” 하늘로 날아가려던 에르제베트가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선지해장국이 뭔지는 몰라도, 기분 좋은 감정이 드는 걸로 보아 무언가 있었다. 그리고 주딱은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주딱*: 콜라, 커피 주딱*: 당돌한 ai 냉장고 “그만해!” 자신은 부정적이어야 했다. 항상 분노로 가득차야 했다. 그래야 복수하는데 머뭇거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주딱이 말하는 저 단어 하나하나가 에르제베트의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주딱*’님이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사진...?” 그 끝으로 도착한 무언가. 보면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의욕을 잃어버린 에르제베트는 천천히 그 화면을 클릭하고 말았고. “!” 그만 다 보고야 말았다. (같이 누워 있는 다정한 짤) (피로해 보이는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는 짤) (행복하게 웃으며 남자에게 매달리는 곧죽흡 짤) 다정하게. 그리고 세상 맑고 행복한, 인간 시절 때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어, 어떻게 이런 게...” 에르제베트는 손을 덜덜 떨었다. 그녀를 짤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창백해 보이지만, 묘하게 존재가 짙고 선명한 남자를 응시했다. “이렇게까지 다정하게...” 정확히는 곧죽흡이 주딱을 죽부인으로 썼을 뿐인 짤들이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더는 인간들을 향한 적개심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행복하다면, 그런 이유가 있는 거겠지.” 주딱*: 오, 이제 마음 돌린 거임? “그래, 솔직히 궁금해졌어.” 앞으로 행복할 일 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딱이 뭐길래,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맑게 웃는 걸까. 에르제베트는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우잉.” 그러자 어딘가 멍청하고 귀여운 또 다른 자신이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주딱*: 그럼 참치여왕은? “그 여자는 인간으로 되돌려 놓을게. 걱정하지 마.” [인간을, 주딱을 죽여라]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속삭임이 들렸지만, 에르제베트는 무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함께 눈을 감았다. 둘의 몸이 발부터 서서히 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곧 하나의 피웅덩이로 합쳐졌다. 그만 돌아갈 시간이었다. “...” 머지않아 웅덩이 솟에서 하나의 에르제베트가 천천히 솟아났으니. 진짜 곧죽흡이었다. 진짜긴 한데.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바닥만 응시했다. 주딱*: 님아? 시간이 지나도 대꾸가 없었다. 혹시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주딱이 재차 그녀를 부를 그때였다. “알았어.” 작은 중얼거림 혹은 속삭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에르제베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으니. 주딱*: ? “주딱, 어디 사는지 알아냈어.” 드디어 알아냈다. 몸이 합쳐지며 기억도 합쳐졌다. 주딱*: 아니 님아 “금방 갈게.” 곧죽흡은 짙은 눈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