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자애는 뭐지?”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모르는 여자애가 화를 내고 있었다... 몹시 라노벨스러운 제목인 걸? 그런데 현실이었다. 우선 나는 여자애의 생김새를 살펴봤다. “뭔가 독특한 생김새네.” 찢어지고 먼지가 묻은 건, 흔히 볼 수 있는 고아의 차림이었다. 하지만 외모는 반대로 깔끔했다. 잘 관리된 듯한 긴 적발. 여자애가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 낼 때마다 붉어지는 적안까지. “와! 적발 적안!”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느꼈다. 애초에 갤러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ip 사용자입니다.] 4.444.404. 언제는 페니가, 언제는 질투가 또 언제는 나태가 사용했던. 칠죄종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ip. 저 여자애 또한 칠죄종임이 분명했다. “추워, 배고파,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여자애는 짜증을 부리면서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바닥 카펫을 이불로 썼다. 그 모습 어디에서도 칠죄종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딴 게... 칠죄종?” 마치 잔뜩 화난 다람쥐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만난 칠죄종들이 하나같이 저랬으니, 오히려 평범한 건가? 주딱*: 거기서 뭐함? 우선 채팅을 하나 보내봤다. 게다가 최근 레벨업을 통해 갤러리 능력이 강화되었으니. 덕분에 채팅하는 상대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집 내부에 CCTV가 작동하기도 했고. “...!” 그러자 짜증을 부리던 여자애가 화들짝 놀랐다. “주딱...?” 주딱*: (주딱 등장! 콘) 주딱*: ㅇㅇ 거기서 뭐하냐니까 “나는...!” 여자애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여기서 나와 마주칠 줄 몰랐던 걸까.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여자애는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무단침범한 칠죄종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나는 모른 척 할까 고민하다 말았다. 괜히 빙 둘러봐야 나아갈 게 없을 것 같으니. 주딱*: 너 분노지? “!” 여자애의 표정이. 아니, 칠죄종 분노의 눈이 깜짝 놀란 토끼처럼 벙쪘다. 그러다 곧 당황한 분위기로 내가 있는 갤러리를 표독하게 노려봤다. “...그것까지 다 알고 있었다니.” 주딱*: ? 아니; “역시 주딱이란 건가? 대단하군.” 감탄하는 분노를 보며 할 말이 없어졌다. 같은 ip를 분탕 7명에서 돌려쓰는데 어떻게 모르겠냐고. 분노는 잔뜩 움츠린 채 나를 경계했다. “괜히 갤러리 주인이 아니란 거냐?” 주딱*: 주인은 아니고 완장이요 “완장...? 아무튼, 벌써 너랑 만날 계획은 아니었는데. 뭐 좋아.” 분노는 잔뜩 위협적으로 눈을 뜨며 카펫 밖으로 기어나왔다. 그래봐야 위압감은 전혀 없긴 한데. 그때 분노가 선언하듯 외쳤다. “감히 날 마주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주딱*: 헉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고통스럽게 죽여주겠다!” 주딱*: 헉 헉 “그리고... 그리고 또!” -풀썩. 분노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말하다 말고 풀썩 쓰러졌다. 맥없이 쓰러진 분노는 흐리멍텅해진 표정으로 허전하게 중얼거렸다. “배고파... 추워...” 추위에 떠는 칠죄종이라니. 근데 이젠 놀랍지도 않다. “뭐라도 줘볼까.” 현대에서 칠죄종은 이름을 차마 입에 담는 것조차 힘든 공포스런 존재들이었다. 루시퍼, 마몬, 바알제붑 등등. 인간의 뇌로서는 이해 못할 악의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들. 하지만 여긴 안 그런 모양이었다. “뭔가, 고양이 같네.” 뭐랄지, 성격 이미지 확실한 길고양이들 보는 기분이다. 참치캔이라도 줘볼까 생각하던 그때였다. -부스럭부스럭 파들파들 떨며 부엌으로 걸어간 분노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당근...?” 분노는 당근을 흔들다가 곧 다른 걸 발견했다. [전투식량] “어, 갤러리군한테 줄까 고민하던 건데.” 긴 보존 기간. 편리하고 간편한 장점까지. 창고로 쓰고 있던 집에 대충 박아둔 것이었다. “먹을 거...” 분노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하필 집어든 전식의 이름이... 젊음전투싸움 주딱*: 아 맛없기로 유명한 전식이었으니.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안 미안하다. 존나 맛없다. “내가 진짜 평점 1점짜리 배달도 누렁이처럼 잘 먹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살면서 가리는 거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 훈련 나가고 깨달았다. 세상엔 못 먹을 게 존재한다. 특히 저 것. 이틀을 굶고 받았는데 편리하지도, 간편하지도, 그렇다고 맛이 있지도 않았다. “난 누렁이가 아니었던 거지...” 아니, 누렁이도 기겁할 식량. 윗선에서 어떻게 군비를 빼돌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던 걸, 분노는 잘못 오해한 걸까. “왜, 아깝나보지? 강제로 빼앗아 먹을 거다. 너한테 허락 따윈 안 받을 거다!” 분노가 당돌하게 말했다. 심지어 먹을 법도 모르는 걸까. 대뜸 봉지부터 뜯더니, 뜨거운 물도 안 붇고 먹으려고 했다. 주딱*: 멈춰!!!!! “히익.” 나는 반사적으로 필살기를 외쳤다.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 분노에게, 상점에서 다른 걸 건넸다. [전투식량 ‘즉각취식형’] - 30p → 5p 할인중! “진짜 웬만한 식품보다 비싸네.” 그나마 다행인 건 값싸게 할인중이란 것. 어차피 갤러리군 전식으로 보낼 생각이었는데. “차라리 잘 됐네.” 미리 테스트 겸 분노에게 보냈다. 주딱*: 그거 말고 이거 드셈 뜨거운 물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줄을 당기고 넣기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 초코볼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초코볼이 들어 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했다. “초코볼 덕분에 100점 드립니다.” 전투식량 중에서도 의외로 정말 맛있고 알찬 메뉴 구성을 지녔다. “나... 준다고?” 얼떨결에 전식을 건네받은 분노가 눈을 멍하니 깜빡였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주딱*: ㅇㅇ 방금 건 먹을 게 못 됨 주딱*: 뒤에 설명서 있으니까 시키는대로 잘 준비해서 먹어 “왜...?” 분노는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전투식량은 품에 꼭 안은 채로,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다. “우린 적이다. 이걸 먹고 내가 회복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분노에게 이런 적은 처음일까. 호의를 굉장히 낯간지러워하는 눈치였다. “내가 무섭지도 않나?” 나는 그 말에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주딱*: 솔직히 ㅇㅇ “뭐...” 주딱*: 너네 그냥 하악질하는 길고양이 같음 “뭐야!” 분노는 눈을 부릅 뜨다 말고 후다닥 전투 식량 봉투를 뜯었다. 화는 나지만 배는 고프고 춥고. 분노는 열심히 설명서를 읽고 시키는대로 조리를 마쳤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거실로 돌아가 다시 카펫을 몸에 두르려고 하길래. [극세사 담요를 배송했습니다!] “헙...” 내친김에 담요도 보냈다. 웬만한 중세 이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데, 1p밖에 안 하거든. 주딱*: 카펫은 좀 더러움. 옵션이라 집 살때부터 딸려 있던거임 ㅇㅇ; 분노는 난생 처음 느끼는 부드러움에 입을 꾹 다물다 담요에 볼을 비볐다. 그리고 전투식량을 빤히 내려다보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표정에 참 생각이 많아 보였다. “기분이 이상해.” 분노는 천천히 스푼을 집어다 전투식량을 한 입 크게 입에 넣었다. “허업...” 분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어서 소세지에, 내가 따로 보내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어... 맛있다. 세상은 내 생각과 많이 다르구나.” 분노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는 허겁지겁 싹싹 비워 먹었다. 마무리로 전식에 동봉된 파운드 케이크에, 초코볼까지. “난...” 분노는 복잡해진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더니, 대뜸 눈물을 흘렸다. “아니, 그 정도라고.” 좋아할 줄은 알았지만, 울 줄은 몰랐는데. 말이 없어진 분노를 두고, 나는 갤러리군에게도 전식을 풀어봤다. 매번 참치캔만 뜯는 병사들. 아무리 맛있다지만, 최전방에서 같은 것만 계속 먹으려니 질릴 수 있다. “맛있는 걸 먹어야 싸울 맛도 나지.” 나름 색다른 것도 먹어보라는 취지에서 보내봤는데. [제목: 상스럽지만 이거 색스네요 ㅇㅇ;] (모닥불 앞에 모여 전식 먹는 짤) (초코볼을 손바닥 위에 얹은 짤) 1차 원정 마지막 수복전 앞두고 휴식 중인데 오늘 저녁은 다른 거 주더라 대황꿀맛전설인생참치캔 냅두고 다른 거? 솔직히 말하자면 첨엔 좀 실망했는데 (눈이 휘둥그레진 개구리 콘) 씨발 이거 뭐냐? 존나 맛있다 아니 존나개씹맛있다 진짜 존나 자극적인 맛임 극상의 맛이다 그 새빨간 밥 한 입 먹는순간 ㄹㅇ; 구라안치고 뇌가 번쩍 일어나 춤추는 느낌이었다 주딱님이 격려차 지원해주신거라고 감사하고 먹으라고 배급원이 그러던데 이건 진짜 나한테 꼬리치는 거 아니냐? 주딱이 먼저 유혹한 거 아니냐 이 정도면? [추천5932] [비추천24] - 아니 뭐임? 존나 맛있어보이네 - 주딱 왜 장터엔 안 올려!!!!! - 아오 ㅅㅂ 나도 진작 좀 드갈 걸 - 와 이건 진짜 꼬리친 거 맞네 ㅇㅇ; ㄴ 이건 주딱도 인정해야 한다 ㄴ 작성자) 진짜 존나 괘씸함 진짜 무자각 선행 혼내주고 싶다 ㄴ 주딱*) ㄴㄴㄴㄴㄴ; ㄴ (귀엽고 말랑한 거 발견! 엘프 콘) “마음에 든 모양이네.” 다행히 마음에 드는 모양. 애초에 자극적인 현대 디저트를 장터 아니면 접할 수가 없었다. 즉슨, 당이 부족하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자극적 = 최고의 식사로 취급되는 모양이었다. 주딱*: 어땠음? 마침 평가도 좋겠다, 다시 시선을 돌려 분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분노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이...” 주딱*: ? “이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아?” 주딱*: 뭣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없어. 다른 애들을 속인 것처럼 나도 끌어들이려는 거지?” 분노의 루비색 눈동자가 피처럼 짙어졌다. 아까 전까지는 모두 장난이라는 것처럼, 분노의 주변으로 붉은 아우라가 퍼졌다. 집 내부가 거칠게 진동하고 식기가 바닥에 떨어졌으니. “날 도와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분노는 곧 제 손으로 심장 부근을 움켜잡았다. 뭔가, 뭔가다. 확실한 건 이대로 두면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이다. 주딱*: 이것만은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 좋아. 본심을 내보이는구나!” 불길하게 웃는 분노를 두고, 나는 무언가를 구매했다. [물품을 배송했습니다.] 곧 분노의 앞으로 내가 구매한 상점 물품이 도착했으니. “제대로 한 번 싸워보자!” 분노가 거칠게 소리치던 그때였다. “우웁?!” 활짝 열린 분노의 입 안으로 무언가 거칠게 박혀 들어갔으니. [상점/사탕] [무지개 롤리팝] - 1p 아이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어린 애들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사탕이자. 우는 애도 잠재운다는 정통 디저트류. 롤리팝이 분노의 입속에 쏙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