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현 그놈이 이런 일에는 확실히 재능이 있어.” 기련문주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남궁진천을 바라보았다. 현재 무림맹이 기련문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 그런 때에 문주가 자리를 비운 것으로 모자라 문파의 초절정들 역시 대부분 이곳에 있다. 자신의 주술로 이곳의 모든 이들이 은밀하게 이동하긴 했으나, 언제 들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문파야 다시 만들면 그만.’ 이번 일이 끝나면 남궁진천의 시체는 자신의 차지다. 기련문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후우….” 그가 숨을 내쉬며 수인을 맺었다. 철컹-! 쿠웅-! 공간이 뒤틀리며 진법 내부에 거대한 압박이 가해진다. 허나 그 압박은 사흑련의 무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롯이 남궁진천과 남궁연만이 그 무게를 감당했다. 충분한 제물을 사용해 기련문주가 직접 설치한 진법이다. 웬만한 무인이라면 서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진(振).” 동시에 묘한 기운이 차오르며 아군의 힘을 북돋는다. 파라락-! 기련문주의 품에서 수천 장의 부적이 퍼져나왔다. 부적들은 진법이 형성한 격리벽에 붙어 진법을 보조했다. 진법 내부는 일종의 아공간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외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남궁진천이 부수려면 부술 수야 있겠지만, 그걸 자신들이 넋놓고 보고 있겠는가? 안 그래도 인적이 드문 사막. 싸움의 여파는 바깥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심지어는 사흑련의 영역이기까지 하다. 괜한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따로 경비병은 두지 않았으나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외부 요소가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기련문주가 입꼬리를 찢어올렸다. “요천도지(橈天倒地).” 동시에 영역을 펼쳤다.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뀐다. “파천(破天).” 제천혁이 영역을 펼쳤다. 순백색의 공간이 일대를 점한다. “십만검역(十萬劍域).” 검율이 영역을 펼쳤다. 십만 자루의 검이 공간을 수놓는다. “능천휘월(凌天輝月).” 능평호가 영역을 펼쳤다. 거대한 달이 사방을 환하게 밝힌다. 네 무인이 펼친 영역이 각각 공간을 점하여 중앙에 선 남궁진천을 압박했다.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저곳에 서있는 것만으로 존재 자체가 으스러진다. 허나 남궁진천의 표정에는 한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남궁연 역시 멀쩡했다. 남궁진천이 그녀에게 향하는 모든 기운을 흩어냈다. 능평호가 이죽였다. “여기서 아무리 싸운들 바깥으로 기운이 퍼져나가는 일은 없다. 이곳이 네 무덤이라는 뜻이다, 남궁진천.” 남궁진천은 남궁연의 곁에 선 채 네 조각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살며 이런 광경을 눈에 담은 이가 얼마나 될까. “이것 참 호화로운 무덤이로군….” 남궁진천이 옅게 웃었다. “결(結).” 기련문주가 주술을 펼쳤다. 공간 자체가 이지러지며 남궁진천을 옭아맸다. “미안하오.” 검율이 한 자루 검을 쥔 채 달려들었다. 그의 낯이 수치심에 붉게 물들었다. “헛소리 말고 제대로 해라, 검율!” 능평호는 힘껏 당긴 창을 쏘아냈다. 짙은 달빛이 거대한 창이 되어 나아간다. 남궁진천은 움직이지 않는 제천혁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가볍게 허공을 두드렸다. “불개화지천(不開花之天).” 우웅-, 허공에서 퍼져나간 파문이 땅 위를 하늘로 물들인다. 텅 비어 그저 짙푸른 하늘. 쩌엉-! 기련문주의 주술이 단번에 부서졌다. 가볍게 내저은 손짓에 검율의 검이 튕겨나가고, 능평호와 눈이 마주쳤다. 오싹-! 섬뜩한 전율에 등골이 저려온다. 이 자리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능평호의 눈이 부릅 뜨였다. “무슨…!” 서억──────────── 검광이 번뜩였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검이 남궁진천의 곁을 맴돈다. “큭…!” 투욱, 능평호의 왼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의 눈이 경악에 가득 차 흔들렸다. 꼿꼿이 선 남궁진천에게서는 어떠한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를 상대하는 이들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압박에 눈을 부릅 떴다. ‘제왕검형…! 이 정도였다고…?’ 떨리는 능평호의 눈이 남궁진천을 담았다. 고통보다도 경악이 컸다. 정파의 가장 큰 별. 그 무게를 너무 얕봤다. 이 정도 전력에 이 정도 준비면 충분하다? 오산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곳의 모두가 살아서 돌아가지는 못한다. ‘놈을 과소평가 했나…!’ 이 자리의 모두가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여겼다. 사흑련의 힘이 강하다지만, 화경의 무인이 얽매일 정도는 아니다. 그들을 강제로 싸움에 나서게 할 수는 없다. 모두가 승산을 보고, 그에 따른 이득이 있기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이러면 말이 달라지는데….’ 능평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 분위기가 바뀌었다. 승리를 확신하던 사흑련의 무인들에게 긴장이 깃들었다. 남궁연은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중원에서 땅에 머무는 신[半神]들을 제외하고서는 최정상에 선 이들이 서로의 목숨을 노린다. 넷과 하나의 불합리한 싸움. 허나 오라비인 남궁진천은 크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남궁연 자신만 없었더라면, 어쩌면, 정말로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겠지. ‘나 때문에….’ 하지만 이곳에는 남궁연이라는 거대한 짐덩어리가 있었다. 오라버니는 이런 곳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자신이다. 남궁세가가 배출한 희대의 천재를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 ‘하다못해 자결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러나 점혈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남궁연이 외쳤다. “이 멍청아…! 그냥 나는 버리고…!” “연아….” “그래! 일단 점혈부터…!” “잠시 자고 있으려무나….” 그것을 끝으로 남궁연의 의식이 끊겼다. 남궁연의 수혈을 점한 남궁진천은 평온한 눈으로 제천혁을 바라보았다. ‘과연 세간의 평이 아깝지 않은 실력이군….’ 저 자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크게 제한된다. 자신과 단 한 수 차이. 만약 저 사내가 아닌, 다른 화경의 무인이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 남궁진천은 승리를 확신했을 것이다. 허나 저 사내가 저곳에 있음으로써 그의 승산이 희박해졌다. “흐아아아…!!” 능평호가 창을 내찌른다. 그의 영역, 능천휘월의 달빛은 그의 창과 같다. 달빛이 닿는 모든 곳에 그의 창이 닿는다. 허나 능평호는 지독한 무력감을 맛보고 있었다. 몸이 무겁다. 손가락 하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제왕검형. 저 불합리한 무공은 남궁진천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짓누른다. 기련문주가 준비한 진법도, 바깥의 초절정들이 유지하는 주술도, 무엇 하나 남궁진천에게 제대로 된 압박을 가하지 못하지만, 제왕검형의 압력만은 이곳의 모두를 짓누른다. 능평호는 이를 악문 채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 남은 팔로 창을 내찔렀다. 월광창(月光槍). 수천 번의 찌르기가 달빛과 같이 내린다. 쏟아지는 빛의 향연. 남궁진천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휘릭-! 허공을 격한 검이 스스로 움직여 능평호의 창을 걷어낸다. 화아아아악────────!! 텅 빈 하늘이 능평호의 달빛마저 지워낸다. 창의 해일이 허무하게 스러졌다. 즉시 검율이 나섰다. 그는 십만 자루의 검과 함께 남궁진천에게 달려들었다. “흡…!” 그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흐음….” 남궁진천은 왼손의 검결지로 허공을 그었다. 화악-! 창궁무애검법이 펼쳐졌다. 검율이 휘두르던 검이 베였다. “큿…!” 검율은 부러진 검을 버리고 십만 자루의 검들 중 하나와 위치를 뒤바꿨다. 나타난 곳은 남궁진천의 우측. 허공의 검 한 자루를 잡아 내찔렀으나, 남궁진천은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동시에 검율이 본능적으로 다른 검과 위치를 뒤바꿨다. 쿠우우우웅────────!! 보이지 않는 검이 검율이 있던 자리를 찍어눌렀다. 검율은 숨을 헐떡이며 제가 있던 곳을 보았다. ‘터무니없군….’ 위치를 뒤바꾼 검이 산산조각 나 부서졌다. 방어했다면 검과 함께 몸이 으스러졌을 터. “폭(爆)…!” 기회를 엿보던 기련문주가 즉시 주술을 발휘했다. 남궁진천 주변의 공간이 휘어지며 폭발한다. 그것은 공간 자체의 폭발. 어지간한 강기는 공간의 휘어짐에 휘말려 으스러진다. 허나 남궁진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투욱, 그저 땅을 가볍게 밟아 스스로의 영역을 견고히 했다. 그것만으로 기련문주의 주술이 무위로 돌아간다. 기련문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제천혁…! 어서 도와라!” 허나 제천혁은 여전히 남궁진천과 눈을 맞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기련문주도 알았다. 지금 공방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제천혁 덕분이다. 그가 남궁진천을 압박하여 움직임을 제한시킨 덕분에 아직 목이 붙어있는 것이다. ‘고작 인간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악물며 주술을 발휘했다. 공간이 살점처럼 뜯겨나오며 쏘아진다. 동시에 검율이 검을 휘두르고, 능평호가 창을 내찔렀다. ‘빈틈.’ 그리고 마침내 제천혁이 움직였다. 투웅-! 그의 주먹이 허공을 두드렸다. 퍼어억────────!! 남궁진천의 옆구리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겼다. 붉은 피가 쏟아져나온다. 남궁진천은 표정조차 찌푸리지 않은 채 왼손을 천천히 내리그었다. 쩌억-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검율이 급히 몸을 피했다. 푸화아아악────────!! 짙푸른 하늘이 땅에 떨어지며 십만 자루의 검 중 절반을 쳐부쉈다. “큽…!” 영역이 흔들린 검율이 입에서 피를 쏟았다. 그리고, 능평호는 남궁진천과 눈을 마주했다. “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일순 제왕검형의 모든 압력이 능평호를 향했다. 깨달은 순간 능평호는 서늘함을 느꼈다. 죽는다. 까드득-! 짓씹은 잇사이로 피가 새어나온다. “이대로는 못 죽는다…!” 능평호는 선천지기를 불태웠다. 거대한 힘이 터져나오며 제왕검형의 압박을 이겨냈다. 움찔-! 손이 움직이는 즉시, 능평호가 창을 휘둘렀다. 월광휘계(月光輝界). 내리는 달빛이 주위를 에워싼다. 그 달빛 한 줄기 한 줄기가 전부 창의 휘두름과 같다. 산을 가르고자 한다면 능히 수십의 산을 가를 것이요, 바다를 가르고자 한다면 능히 바다를 수십으로 나눌 일격. 허나 닿지 못했다. “빌, 어먹을….” 쩌억-, 능평호의 몸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허공을 노니는 검 한 자루가 달빛과 함께 능평호의 몸을 베어냈다. ‘천하제일…. 이 정도 격차가 있었다고….’ 하늘에 뜬 거대한 달이 부서져 떨어진다. 떨어진 달의 잔해들은 빛의 조각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웅-, 능평호의 몸을 갈라낸 검이 검명을 흘리며 남궁진천의 주위를 맴돌았다. 여전히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검이 제천혁을 겨누었다. “우선 하나….” 남궁진천의 담담한 시선 역시 그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