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복잡한 생각 중인 전하영 PD와 달리, 서연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냥 관찰 예능에 출연하면 막연히 괜찮겠거니, 할 뿐. '본래 관찰 예능이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많이 변화시키니까.' 아무래도 관찰 예능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다소 거리감이 있는 연예인들이 관찰 예능에 등장하면, 다소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도 마찬가지. 다소 거리감이 있는 어린 연예인들이 다수 등장하기도 했으며, 연예인도 결국 누군가의 자식이다. 그런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 선호하는 연예인도 많았다. '물론 출연하고 이미지가 안 좋아진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부모에게 하는 짓이 워낙 막장이라 이미지가 안 좋아진 연예인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니 서연은 되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연 씨, 혹시 저희 방송 보셨어요?" "네." "그래요? 어머, 감사해요. 저도 와 모두 재밌게 봤어요. 최근 나오는 예능들도 다 챙겨보고 있고요." 최근 나오는 예능이라 함은 를 말하는 걸까. '그거 엄연히 오디션인데.' 어째 오디션이라기보단 단순한 예능이라 생각하는 부류가 많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오디션 느낌이 적어서일까. 물론 GH 그룹에선 그런 방향을 유도한 것 같지만.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의례적인 대화가 오간 후, 전하영은 작게 헛기침했다. "황금 오리새끼는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는 예능은 아니지만, 시청률은 그에 준하는 예능 방송입니다." 제법 자신 있는 어조였다. 의 시청률은 무려 5퍼센트! 전체적으로 시청률이 하향된 현시점에선 가히 엄청난 수준의 시청률이었다. 재방송과 인터넷으로 재차 올려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눈에 보이는 시청률보다 노출도가 더욱 많았다. "분명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실 거예요." "네." 무덤덤히 답하는 서연의 모습에, 전하영은 순간 움찔했다. '……괜찮겠지?' 아무래도 실제로 만나는 서연의 모습이 생각보다 감정표현이 드물고 말이 없어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또, 서연이 출연한 예능들은 죄다 대박. 당장 최근 화제가 된 나 만이 아니라. 게임 방송인 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온 것이다. 근데, 막상 만나면 TV에서 봤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러고 보면 교류하는 연예인도 많지 않고, 소문만 들으면 굉장히 조용한 성격 같은데.' 예능에서 나온 모습은 전부 꾸민 건가? 만약 그렇다면 굉장한 프로 의식이라 할 수 있었지만, 관찰 예능 PD의 입장에선 걱정되는 게 사실. 다른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과, 관찰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이 괴리감이 심한 연예인은 많다. 그게 긍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모도 분명 있었고. 서연의 이 무덤덤한 모습이 만약 본 모습이라면 예능적인 부분에선 다소 감점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외견처럼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우등생에, 조용한 성격이면……. "아, 그렇지. 서연 씨 가족들도 함께 출연하게 될 텐데, 동의는……." "모두 괜찮다고 하셨어요. 여동생은 좋아했고요." "아, 여동생도 있으신가 보네요?" "네. 곧 초등학교 들어가요." 여동생이 있다. 이건 꽤 긍정적인 말이었다. 아무래도 스타의 여동생이 귀여우면 그것만으로 화제가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요?" "어머니가 조금 힘들어하셨는데 허락해 주셨어요." 다행히 서연은 출연 의사가 확실해 보여 다행이었다. '서연 씨 부모님이라.' 전하영이 생각하는 서연의 부모님은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중년의 부부였다. 서연이 또래의 학생을 슬하에 둔 부모라고 하면, 대략 마흔이 넘었을 테고. 저 외모에 적당히 주름이 잡힌, 곱게 나이가 든 중년의 부부가 아닐까. 그런 막연한 상상. 여태 등장한 연예인의 부모님들도 대체로 그랬기에, 전하영은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그럼 다음에는 부모님과 함께 미팅하는 건 어떨까요?" "아, 혹시 두 분 다 오셔야 하나요?" "아뇨, 아뇨! 한 분만 있으셔도 괜찮아요. 특히 패널에 출연하실 어머님이면 좋겠네요." 그런 전하영의 말에 서연은 조금 걱정됐다. 비교적 사람과 자주 어울리고, 말도 잘하는 자신과 달리 수아는 상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있는 것이다. "네, 그렇게 할게요." 서연의 대답에 막힘은 없었다. 그러니 전하영은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서연과 친분을 쌓고, 나아가 MDC 드라마국에도 한 번 출연해 주면 그게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그때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예능이야, 우선 평타만 쳐도 괜찮지. 하고. 그런데. "아, 안녕하세요. 수, 수연이의 엄마인 민수아라고 합니다." "엄마 전 서연이에요." "서, 서연이 엄마인……."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수아의 동작과 함께 커다란 뭔가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당연히 그 궤적에 따라 전하영의 머리와 눈동자도 함께 위아래로 들썩. 와, 진짜 개 커. 아니,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이게 진짜, 와. "와." 전하영은 멍하니 마음 속의 감탄사를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내뱉다가, 바로 입을 막았다. 고등학생을 슬하에 둔 아줌마? 저게 아줌마가 맞나? 빛나는 외모, 최근 젊은 배우 중 대세라 불러 마땅한 주서연. 그 서연의 어머니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 외모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시, 실례지만 나, 나이가……." "서, 서른아홉 아줌마예요." 서른아홉. 아줌마. 이 단어가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 애초에 저 나이에 저 가슴이면 쳐지는 게 보통 아닌가? 전하영도 이제 서른 중반. 굉장히 젊은 나이에 메인 PD가 되어 꽤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온, 커리어우먼이었다. 최근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있었지만, 나름 인생의 상처라며 마음을 다독이며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주름 하나 보이지 않는 건 사기 아닌가? 이게 말이 되나? 그런 불합리함을 느끼며. '이, 이건 꽤. 아니 아주 좋을 지도.' 전하영은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대중에게도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을 터. 이건 된다! "그, 저희 조금,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봐도 괜찮을까요? 진짜, 너무 예쁘세요." "감, 감사합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PD의 모습에. '뭐지? 내가 출연자 아닌가?' 서연은 뭔가 찬밥이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 에 출연을 확정 지은 후. 출연 날짜도 금방 정해졌다. 대략 한 달 후. 의 결승이 마무리 지어진 직후. 아무래도, MDC 입장에선 최대한 빠르게 서연을 출연시키고 싶은 모양. 그렇다고 한창 오디션이 진행 중인 서연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때로 잡은 것 같았다. '어째 느낌이 좀 이상하지만.' 최근 있었던 일들을 말하자면, 서연은 묘하게 편안했다. 그냥 '아 예능에 출연하는구나.' 다들 그런 정도의 반응. 그게 라는 걸 일러주면. "적당히 해." 이지연은 그렇게 말했고. "사람이 가끔은 꾸민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아." 노바 엔터, 강찬율 대표에 이르러선 그런 말을 했을 정도였다. 묘하게 사고만 치지 말아다오. 그런 반응에 서연의 입이 불퉁해졌다. 다만 거기서 수아가 출연한다고 말하면. "아줌마가? 진짜?" 이지연은 경악했고. "수아 씨가? 정말로? 후후, 이거 미리미리 준비 좀 해둬야겠는걸?" 강찬율 대표는 호들갑을 떨며 사라졌다. 아니, 뭔가 소속 연예인에겐 너무 한 거 아닌가? "서연아, 언니는 이번 예능이 정말 기대돼!" "……네, 감사해요." 유일하게 박은하 매니저만이 으쌰으쌰 하며, 서연을 응원해 준 것이었다. 서럽다. 왜 다들 엄마에게만. '뭐, 이유는 알겠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수아의 외모는 대단한 수준이었으니까. 나이를 도무지 먹지 않으니, 주변에서도 슬슬 계속 비법을 물어오는 상태였다. 대표적인 게, 지연이의 어머니. 듣자 하니 박정우의 어머니도 비슷한 모양. 아무튼 수아의 예능 출연이 다들 반기니,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면서도 좋은 것도 있었다. 이래저래 서연은 수아가 꾸미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고 자주 생각했으니까. 오랜만에 이것저것 준비하고, 메이크업도 하니 확실히 재미있는 게 많았다. '그러고 보니 아빠한테는 아직 말 안 했는데.' 딱히 의도하고 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어쩌다 그렇게 됐을 뿐. 하지만 이제 와서 말하자니, 뭔가 마음에 걸렸다. '괜히 말하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거 아냐?'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 쓰는 건 서연과 꼭 닮았다. 아마 방송이라고 한다면 세상 스윗한 아버지가 방송에 나오겠지.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흐음.' 또 평소처럼 깐죽거리면, 괜히 자신만 속 터질 것 같고. 촬영 중이라 반항도 할 수 없이 고스란히 그것들을 다 들어줘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이야기하긴 해야겠다. 방송은 조금 재미없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속은 편할 테니까. 서연은 그렇게 마음먹었고. 정확히 이틀 후, 까먹었다. *** 16강부터는 실시간 투표가 함께 진행되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 나와, 펼치는 액션 연기에서. 이제는 제대로 된 역할극을 펼치는 상황까지 온 것이었다. 단순한 '액션'이 아닌 '연기'가 중요해진 시점. 그렇게 되자, 16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너무나 손쉽게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설마 조서희가 4강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네요." 지난 2주. 연달아 방영된 에서 조서희의 매력이 크게 부각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연기력만 따지면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 조서희와 비견될 만한 이는 서연뿐. "주서연 배우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쪽은 그야말로 액션 배우를 위해 태어난 존재에 가까웠다. 소화하지 못하는 액션 씬이 없었고, 연기력도 뛰어나니. 솔직히 말해 GH 그룹이 굳이 오디션 예능을 준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확정이라 생각한 거죠." "그래서인지, 초반 총격전 이후론, 다소 임팩트가 적습니다만." "그건 그렇죠." 아무래도 액션으로 서연을 이길 수 없으니, 마치 무적 NPC처럼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연기나 액션이나 상대와 합을 맞춰야 하는 것. 그런데 서연을 건드리는 인물은 그다지 없으니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적다. "조서희가 있어서 다행이죠." "크, 크흠. 배우에겐 조금 안 좋은 이미지가 잡힌 것 같습니다만." 다소 사나운 인상이었던 조서희였으나. 이번 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니. '배신의 아이콘.' 아무래도 세 번쯤 배신하면 그런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예선에서 두 번. 8강에서 잠깐 단체 미션이 섞였을 때. 또 배신. 3번쯤 되자, 서연의 눈도 새치름해져서 조서희를 마구 찌그러뜨렸다. 용케 별다른 부상 없이 잘 살아있는 것을 보면, 생긴 것과 달리 조서희는 꽤 튼튼한 듯싶다. "거기에 민도하." "어음, 어떻게 올라갔죠? 그리고 전부 A조네요?" "적당히 잘하긴 했죠." "예선에서 보여준 게 많았고." 결국 4강까지 가게 된 민도하. 이후 남은 건 준결승과 결승. 2번의 방송만 남은 상황까지 남은 것이다. "거기에……." 남은 하나. "D조에서 나온 다크호스죠." "아, 그 배우라면…… 외국인이었죠?" "네, 국적이 일본일 겁니다. 한국에 연기 배우러 왔다는 친구." "한소유를 이기고 올라온 배우예요." 정말 드문 케이스였다. 아이돌이 넘어오는 경우는 이제 굉장히 흔했으나, 배우라. 솔직히 선입견이 강했다. 아무래도 일본과 한국이 연기에서 요구하는 감성이 달랐기에. 일본 특유의 과장된 연기 색깔을 유치하다,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나루미 소라, 였죠?" "네, 나이도 아마, 이제 열아홉. 어린데 무척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뭣보다, 눈이 굉장히 좋아요." 눈이 좋다. 아마 그녀의 연기를 본 적이 없는 이들은,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액션 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다. 본인이 가진 색깔을 강조하는 법도 알았고. "무기를 쓰는 액션이 아주 좋아서. 주서연 배우와 붙으면 좀 기대되긴 합니다." "본래 좀 배웠다고 했죠?" "인터뷰에서는요." "그 한소유를 이기고 올라왔으니 기대가 됩니다." 모두가 한소유의 승리를 점쳤지만, 승자는 나루미 소라였다. 아마 사람들이 그녀를 주목한 것도 그쯤. "아주 재밌겠어요." 곧 있을 4강 촬영에, PD들은 저마다 기대가 된다는 듯 말했다. 사실상 지금 4명은 GH의 마음에 따라 주연만이 아니라, 추가로 더 출연하는 배우가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단순히 오디션이 아닌, 영화에서 CG를 입힌 제대로 된 연기. 이곳에 있는 모두는, 그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 올라온 네 명의 배우는 하나 같이 쟁쟁했으니까. 물론. '왜, 대체, 어쩌다.' 촬영장에서 넋을 잃은 배우가 하나. 민도하는 그런 마음으로 서 있었다. 아니, 이쯤 되면 좋긴 하다. 그야 4강이 아닌가? 운 좋게 올라온 걸 떠나서, 슬슬 자신감도 붙는 시기였다. '주서연만 피하면 해볼 만해. 아니 조서희도 피해야 하지만.' 가장 만만한 건, 이름도 잘 모르는 일본인 배우였다. 어딜 한국에서. 그렇게 민도하가 미묘하게 자신감을 되찾고 있을 무렵. "……." "……." 4강 촬영을 앞둔, 촬영장. 검은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여배우. 나루미 소라는, 힐끗거리며 옆을 보았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외모의 여성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왜 교복.' 컨셉에 꽤 진심인 나루미 소라조차 당혹스런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걸리는 점은, 촬영장에 온 시점부터 서연이 계속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혹시 한국의 텃세인가 하는 건가? 아니면 천재 배우라고 하더니, 자신을 견제라도 하는 걸까? 차라리 그러면 기분이라도 좋을 텐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그런 서연의 시선에, 소라와 서연을 번갈아 보던 조서희는 눈을 찡그렸다. 촬영장에 온 이후, 서연의 관심이 계속 소라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또 배신해서 많이 삐졌나?' 그런 생각이 들어 차마 먼저 걸지도 못하고 그저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는 상태. 둘이 그렇게 서연의 반응을 주목하는 가운데. '흠.' 정작 서연의 생각은 아주 평화로웠다. '……일본인이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을까? 버튜버도 볼 것 같은데.' 다만 그게 조금 편협한 사고방식인지, 인종차별인지 모를 생각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