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라 에투알은 신규 의류 브랜드를 론칭한다. 그 이름은 아르젠테 카멜리아. 보다 고급화 전력과 여성성을 강조한 의류 브랜드. 전생의 자신이 이것을 기억하는 건,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슈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도 이런 부분에선 또렷하게 떠오르기에,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어도 기억했겠지만. '아마 분명.' 몇 가지 이슈가 있었지. 그 대표적인 게 바로 내구성 이슈였다. 단순히 재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옷의 구조상 거친 행동을 하면 허리 부분이 쉽게 파손되는 것이다. 더불어 여기엔 광고로 내세운 배우에 관한 이슈도 겹쳤는데. 하필 이 옷을 입고 시상식에 출연한 여배우의 드레스의 치마 부분이 찢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사실상 이 아르젠테 카멜리아의 이미지를 박살낸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둘째는 디자인.' 아무래도 여성성을 강조했다면 그만큼 디자인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성을 안고 간다는 건, 여성들에게 일부 불편함을 감수할 메리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아르젠테 카멜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디자이너가 너무 독창적인 센스를 발휘한 탓에 참 기묘한 느낌이 된 것이다. 정확히는 디자인 자체는 꽤 예쁘지만, 다른 옷과 함께 코디하기엔 난해한 디자인. 그렇다고 이 아르젠테 카멜리아만 입기엔. '에클라 에투알의 브랜드 가치가 명품까지는 되지 못하니까.' 딱 그 옷만 자랑하기에는 애매한 느낌이 강하다. 프랑스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말이 있지만, 엄연히 국내 브랜드. 어찌어찌 준 명품까지는 취급해 줄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코디를 완성하기엔 부족한. 딱 그런 느낌의 브랜드. '마지막으로 가격.' 위에 말했듯, 에클라 에투알은 엄연히 준명품 언저리에 있는 브랜드였고. 당연히 새롭게 론칭한 아르젠테 카멜리아도 같았다. 그러니 가격이…… 평범한 옷에 비하면 상당히 비쌌다. 이렇다보니 커뮤니티에서 웃음벨이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단순히 여초 커뮤니티를 넘어 남초 커뮤니티에도 퍼져나갔고. 가성비 떨어지는 의류 브랜드의 대명사라는 이미지가 잡히며 망했다. 에클라 에투알 자체가 크게 휘청일 정도의 타격을 준 사건. 아니, 이후 이 브랜드 자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악에는……. "어때 서연아?" 그런 생각을 하던 서연은 박은하 매니저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우선은, 하고 싶어요." "그래? 확실히 좋은 기회지." "하지만……." 에클라 에투알은 최근 서연이 쓰는 엄청난 양의 용돈의 기반이 되는 소중한 브랜드였다. 이중 상당량이 라미엘의 슈퍼챗에 쓰이고 있었으니, 이렇게 망하면 곤란했다. 배우로 번 돈은 수아가 직접 관리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나마 광고로 번 돈의 경우엔 제법 관대하게 쓰게 해주는 편. "나중에 한 번 에클라 에투알과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응? 알겠어. 그럼, 일정을 조율해 볼게." 서연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둘 중 하나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서연이었으니까. '에클라 에투알에 뭔가 있나?' 당연히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박은하는 서연의 선구안을 굉장히 신뢰했으니까. 그야, 여태 출연한 작품이나 예능. 그리고 광고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신뢰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편. '조금 따로 알아봐야겠네.' 서연이 망설이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 우선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 오늘 드디어 A조냐?????? - 하 길었다... - 그래도 C조는 괜찮았잖아 - 4개 조 중에 절반이 쓰레기인데 5화. 2화에서 4화까지 시청률이 점점 떨어진 탓에 이전보다 커뮤니티의 언급도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A조가 너무 자극적인 내용이었던 탓에 B조부터 D조의 오디션이 상당히 밋밋하게 느껴진 탓. 심지어 이쪽은 A조를 보고 오히려 신중히 준비를 해온 탓에 더 그런 부분이 있었다. - 초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느낌은 있는데... 흠 -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좀 잘라라 - 근데 애초에 초능력 쓰는 영화 오디션이면 나와야 하는 부분 아님? - 주서연은 재밌었는데 그냥 연기를 못해서 그런 거 아냐??? 초능력 연기가 그다지 와닿지 않는 부분이 컸기에 오히려 평가는 더 떨어진 편. 흔히 말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초능력을 어떻게 보일지는 준비는 했어도. 그것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배우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빛나기를 바랄 테니까. 상대의 연기를 잘 받아주는 건, 결국 상대를 빛나게 하는 것. 이게 오디션인 걸 알고 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10명이 된 A조의 미션은. "깃발 뺏기입니다." 차민규 배우가 A조의 배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로의 등에 깃발을 달고, 그것을 뺏고 뺏는 추격전. "거기에 파쿠르를 활용해서요." 파쿠르는 말 그대로,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액션을 펼치라는 뜻. 실제로 이번 촬영장에는 다양한 지형지물들이 많이 있었고. - 아 - 이거 느낌이 온다. - 주서연 신났는데??? 방송의 화면에는 벌써 기분이 좋아진, 서연이 잡혔다. 하필 바로 옆에 우울한 얼굴의 민도하가 있어서 더욱 눈에 띄었다. - 민도하 왜 저렇게 표정이 어두움?? - 니 울음소리가 인터넷에 슈퍼카랑 합성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 오히려 유명해지는 게 이득 아님? - ㄹㅇㅋㅋㅋ 유명해지셨잖아 - 민도하 그래도 좀 인지도 있는 배우였는데 아무튼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민도하는 현재 매우 처참한 심정이었다. '하필 이면 또 깃발 뺏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정말로. 그리고 그런 민도하의 예상처럼. "아니 왜 나만 쫓아오는 거야!! 다른 사람 많잖아!!" 민도하는 정말 열심히 도망갔다. 말 그대로 정말 필사적으로. 그냥 깃발을 내어주자니, 이게 또 자존심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하필, 하필 초능력을 사격 능력으로 정해서……!' 저항 할 수도 없었다. 나도 염동력으로 할 걸!! 그럼 저 계집애를 그래도 한 번 날려버릴 수는 있었을 텐데. "안녕하세요." "꺄아아아아악!!!" 열심히 달리는 민도하의 옆에서 장애물을 뛰어넘어 오는 서연의 모습에, 민도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런 민도하를 보며 서연은 잠시 두리번두리번하다, 근처에서 눈에 띈 배우 몇 명의 깃발을 빼앗았다. 마치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휙, 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서연의 등을 깃발을 빼앗긴 배우들이 허무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 스타어부에서 배운 낚시 실력;; - 주서연 민도하 좋아하나 계속 살려주네 - ㅋㅋㅋㅋ 저렇게 도망치면 살려줄 만하지 - 나도 저렇게 네발로 도망치면 살려준다 - 저거 다 연기지? 민도하 연기 개잘하네 - 연기? 아 연기임? 근데 무슨 연기인데??? - 그건 나도 모르지 - 보니까 주인공에게서 도망치는 초능력자? 그런 컨셉 아님? 능력도 사격능력이잖아 - 그런가? 아무튼 그런 커뮤니티의 화력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쿠르에서 서연은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처음에는 어떤 이유인지 조금 슬슬 돌아다니던 느낌이었는데, 자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민도하가 그런 서연의 뭔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아, 또 민도하 배우가 주서연 배우를 뿌리치고 도망가네요.」 - 민도하에게 무슨 원한 있음??? - 민도하 : 죽...여...줘... - 나 슬슬 민도하에게 공감되는데 이상한 거 아니지??? - 저 미친 악질년... 도하가 불쌍하지도 않냐!!! 그리고 막 그 예능을 실황으로 중계하던 라미엘은 무심코 헛웃음을 내뱉으려던 걸 참았다. 방송에 잡힌 서연을 보니, 문득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쌍하네.' 라미엘은 진심으로 민도하를 동정했다. 아마 서연은 진심으로 민도하가 자신의 연기를 잘 '접수'해준다고 생각하여 쫓아가는 게 분명했다. 살려두는 것도 그런 이유. 저렇게나 찰지게 반응해 주는데 어찌 바로 아웃 시킬 수 있겠는가. 거기다 서연에게 저 정도 장애물은 장애물도 아니었다. 파쿠르 할 것도 없이 그냥 점프하면 죄다 넘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나름 연기를 펼쳐야 하기에 분위기상 구르고 있을 뿐. '분명 나한테 이미지 관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라미엘은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하던 서연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서연은 그녀에게. "나 당분간은 조금 차분하게 지낼 거야." "?" "내 본래 이미지를 되찾아야지. 나 여배우인데 너무 이미지가 이상해." 그걸 자각은 하고 있었구나. 그리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무튼 지금이라도 이미지를 챙긴다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 지금 조서희 날아가는데? - 조서희 죽은 거 아님? - ㄴㄴ 촬영장 바닥이랑 장애물 푹신한 거라 ㄱㅊ - 저번에 배신하셨잖아 대가를 치르셔야지 - 주서연이 힘이 센 거냐 아니면 조서희가 가벼운 거냐 - 근데 주서연 재생 능력 아니었음??? - 지치지 않는 것도 재생능력이긴 하지... 「……어음.」 이미지 관리하고 싶은 게 맞는 거지? 뭔가 어렸을 적 묻어두었던 트라우마가 재발하는 느낌. 그때 라미엘은 서연에게 술래잡기 한번 하자고 했다가,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눈은 왜 빨갛게 빛내며 달려오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꿈에 나올 정도. 지금 조서희처럼 던져지고, 굴려지고. 지금 서연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건. "?" "아, 미안." 조서희가 서연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끝나기 직전이었다. 한번 높이 던졌던 게 미안했는지, 서연은 조서희를 특별히 살려주었고. 조서희가 또 그 틈에 엉금엉금 기어다니다 서연이 민도하의 깃발을 빼앗으려던 순간, 장애물 위에서 슬쩍 서연의 깃발을 뺏은 것이다. 워낙 존재감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파쿠르 미션에서 조서희가 한 일은 부족한 달리기 실력과. 부족한 신체 능력으로 쭈뼛쭈뼛 돌아다니던 중, 주서연에게 잡혀서 던져진 게 전부였으니까. - 아니 - 2연 배신 ㄷㄷ - 정녕 뒷일이 두렵지 않은 거냐 아무튼. 그렇게 끝난 깃발 뺏기는 또다시 서연이 1위를 기록하며 끝났으나. - 민도하랑 조서희 또 살았네 - 민도하는 거기서 깃발 뺏기면 떨어졌는데 조서희가 살려줌 ㅋㅋㅋㅋㅋ - 서희 주서연에게 한 대 맞는 거 아님??? - 아니 우리 서연이는 그런 성격 아니라고 - 그래도 주서연 예능 할 때 신나서 뛰어다니는 거 보면 호감이긴 함 - ㅋㅋㅋㅋ 여배우 같은 이미지는 아님 예능에선 아무튼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주서연 수호단이 나서서 이미지를 지켜주긴 했다. 약간 '우리 서연이 안 물어요' 같은 뉘앙스였지만 아무튼. "A조는 그래도 적당히 밸런스가 맞는 느낌이네요." "서연 씨가 그래도 마지막에 적당히 아웃되어주는 느낌이라." "이번에 한소유 배우의 연기도 좋았어요. 확실히 초능력 연기는 한소유 배우와 주서연 배우가 합을 맞출 때가 제일 좋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서희 씨는 캐릭터가 좋네요. 나름 캐릭터를 잘 살리는 느낌. 연기력을 백분 활용하는 기분이에요." 스태프들와 PD들은 이번 의 연기 점수를 채점하며 웃었다. 실제로 떨어졌던 방송 시청률도 7퍼센트로 올라왔다. 다만 A조에만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이것도 못 건지는 것보다는 낫지.' 이기태 PD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A조를 후편성해야 했다. D조와 A조의 순서를 바꿨으면 지금보다 시청률 방어에 용이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한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예건 감독은 진지하게 방금 찍은 촬영분을 돌려보고 있었다. 단순히 웃음만 터져 나오는 장면들을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보았다. 한예건 감독. 그것만으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젊은 천재라고 하던가.' 특히 액션 장면을 연출하는 것에는 거장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GH 그룹에서 한예건을 쓴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지. 영상미와 액션. 그것을 극한 추구하여 만들고자 하는 것. 마치, 최근 서양에서 인기인 히어로 영화와 같이. '솔직히 도박이야.' 아무래도 최근 관객이 바라는 액션이나 CG의 수준은 서양 히어로물을 기준을 맞춰져 있었다. 그보다 못하다면, 저평가를 받거나 그저 조롱당할 뿐. 그러니 한국에선 이런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되도록 기피했다. 찍기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드는데 그저 관객의 조롱을 살 뿐이라면 누가 만들겠는가. "제가." 그때 한예건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는 그 모습에, 이기태는 조금 긴장했다. 한예건은 배우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감독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오늘은 연기보다 예능적인 면모가 강한 서연에게 비판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태 많은 배우를 봤습니다만." 그는 주서연이 민도하를 쫓아가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췄다. 주변 반응은 그저 웃기고, 재밌었을 뿐이었겠지만, 그는 좀 달랐다. "이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배우는 처음입니다." "확실히 주서연 배우가 존재감이 강하죠." "아니, 단순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단순히 화면을 사로잡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기대감'이죠." "기대감?" 한예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배우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기대감. 무엇을 보여줄지에 대한 막연한 상상. 이 배우는 그것이 굉장히 강해요. 그러니 시청자들이 계속 이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기다리는 거죠." 뭔가를 보여줄 것 같으니까. "그 기대감은, 단순히 연기를 넘어 영화 흥행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도움이 될 테죠." 이 배우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이 장면에서 무엇을 해줄까. 주서연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한예건은 조서희에게 깃발을 뺏기는 서연을 보며 웃었다. 정말, 마지막까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모습. "잘도 이런 괴물을 구해왔네요." 그런 한예건의 말에, 이기태는 재차 서연을 달리 보았다. 저 오만한 천재의 입에서도 저런 말이 나올 정도라면. 주서연이라는 배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배우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괴물 같은 배우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면. "뭐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서연을, 조서희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야지. 상류층이 어떤지 알고 싶다며." "……." 호텔에서 열리는 화려한 파티에 와있었다. 내심 조금 후회하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