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서연이는 어쩌고 왜 혼자 있나?” 노바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찬율은 요즘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도 그럴 게, 최근 서연이 아주 대활약을 해주며 노바 엔터의 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황민화 이후로 이렇다 할 배우가 없던 터라, 황민화가 나간 시점에서 ‘이제 노바 엔터는 끝이다’라는 말도 나돌았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 “주서연은 노래 배운다고 갔어요.” “노래? 아, 이번에 들어온 OST 작업 때문인가?” 강찬율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지연의 말이 어감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거, 우리 회사의 보컬 트레이너랑 하는 거 맞니?” “아뇨.” 처음에는 마법사, 말하자면 이지연의 버튜버 동료인 한다영에게 부탁했었지만, 서연은 뭔가가 생각났는지 홀라당 사라졌다. 듣기로는 아마……. “친구, 한테 배운다네요.” “……친구?” 지연이 말고 친구가 있었어? 강찬율은 무심코 그런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로 서연의 인간관계란 지극히 협소했다. “아니, 우리 회사 보컬 트레이너는 어쩌고?” 강찬율이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노바 엔터가 무슨 구멍가게 회사도 아니고 보컬 트레이너도 당연히 있었다. 애초에 노바 엔터가 배우를 주력하는 기획사도 아니고, 엄연히 아이돌도 함께 운영했다. 당연히 실력 좋은 보컬 트레이너도 많은데…….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런 지연의 말에 강찬율은 서연의 행동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지연아.” “네.” “너 심통 났구나?” “…….” 새치름하게 노려보는 이지연을 보며 강찬율은 껄껄 웃었다. 옆에서 오랫동안 보아온 만큼, 이지연의 생각은 훤히 보였다. ‘가끔 보면 둘이 똑같다니까.’ 서연은 지연이 친구가 많은 점에 가끔 눈을 찌푸리지만, 정작 평소 세상 쿨한 척 다하는 이지연도 그건 비슷한 것이다. “……그래도 돌아오면 우리 회사에도 보컬 트레이너 있다고 꼭 말해주고.” “네.” 그와 별개로 또 어디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이 들었다. 아무튼 서연은 평소 생각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었으니까. *** 노바 엔터테인먼트에서 그런 대화가 있을 무렵. 여름 소녀의 소속사인 호연 스튜디오에는 기묘한 적막이 오가고 있었다. ‘주서연?’ 라빈은 눈앞의 소녀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야 차나희가 출연한 에 함께 나온 배우가 아닌가. ‘더 체이서에서 나온 걔.’ 심지어 최근 천만을 찍은 영화 에서 살인마 역으로 나온 배우였다. 그 탓에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최근 대세 경쟁에 합류한 이 중에 하나. ‘얘가 왜 차나희와?’ 분명 차나희는 여름소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소녀가장인 건 맞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차나희는 그냥 재미없는 녀석에 불과했다. 애초에 노래 좀 잘하고, 얼굴이 예쁜 것 외에는 딱히 장점도 없는데 왜 그렇게 대중이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 녀석. 그런 차나희가 손님이랍시고 데려온 게 무려 주서연이다. ‘아니, 아니지. 뭘 쫄아. 주서연도 신인이잖아.’ 과거 아역 시절이 있다지만 공백이 10년이나 된다. 사실상 신인. 오히려 연예계에서 활동해 온 기간만 보자면 여름소녀가 더 길다. 그런 이에게 쫄아서 무엇하겠는가. “…….” 서연이 그들을 빤히 바라보자, 라빈은 마른침을 삼켰다. 계집애, 무섭게도 생겼네.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마치 인형 같아서 비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게 있었다. ‘하, 하지만.’ 이대로 기선제압을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 어머. 귀엽다.” “고등학생이야?” “힘들 텐데 대견하네~.” 여름 소녀의 멤버들은 라빈이 물꼬를 트자 그런 말을 떠들었다. 여기서 ‘귀엽다’는 말은 나름 상대방과의 상하관계를 나누는 한 방. 말하자면 나는 너를 귀엽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강렬한 어필이었다. “…….” 서연은 그 말에 가만히 그들을 응시했다. 그 고요한 시선에 호들갑을 떨던 여름 소녀 멤버들이 굳었다. 마치 뱀 앞에 쥐가 된 심정이었다. ‘기, 기가 보통 센 게 아닌데요, 언니.’ ‘그럼, 네가 뭐라 해보든지.’ 서로 그런 생각을 담은 시선이 교차했다. 반면 그들과 달리 서연은. ‘……역시 낯선 사람한테 듣는 칭찬은 좀 부끄럽네.’ 그냥 좀 부끄러웠을 뿐이다. 아무래도 아이돌에게 귀엽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으니까. 교복 말고 다른 걸 입고 올 걸 그랬나. 하지만 다른 옷을 꺼내기는 귀찮아서. ‘그나저나.’ 서연은 어색하게 굳어버린 여름 소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희 언니가 대화가 좀 어려울 수 있다고 하더니.’ 어쩌면 이쪽도 자신처럼 낯가림이 심한 부류인 모양이다. 서연은 그리 생각하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소 활동적인 자신이 먼저 상황을 이끌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희 언니에게 노래를 배우기 위해 왔어요.” 노래를 배운다. 그 말에 여름 소녀 멤버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배우가 노래를? “그, 그러니. 연습실은 좀 빌릴게. 대표님께 허락은 이미 맡아뒀어.” 나희는 그런 멤버들의 반응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서연과 함께 드라마 촬영을 하며 알게 된 건, 사실 서연이 굉장히 순둥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이 가혹한 연예계에서 대체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 될 정도로 순했다. 견종으로 따지면 포메라니안이나 리트리버가 생각나는 인상. 그렇다 보니 가뜩이나 기가 세고 사나운 멤버들 틈에 끼게 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벌써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인상이 강하니, 쉽사리 건드리지는 않겠지.’ 애초에 서연은 감정 기복을 그다지 나타내지 않는 편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면 대체로 움찔하거나,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 배우 특유의 아우라도 있지 않은가? ‘거기다 매니저 언니도.’ 소속사에 데려온 이후에도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았다. 우선. “서연 씨. 우리 쪽에 오면 잘 해줄게요. 노바 엔터랑 계약한 지 얼마 안 됐지? 차라리 지금이라면 옮길 수 있다니까?” 그런 말을 하는 배우팀 팀장이 다가와 은근히 말을 걸지를 않나. 매니저도 노바 엔터보다 호연 스튜디오가 좋다는 말은 은연중에 흘렸을 정도다. ‘……대체 왜 그러는 거람.’ 요즘 호연이 많이 힘든 건 알고 있었으나, 저건 굉장히 무례한 짓 아닌가? 괜히 차나희가 얼굴이 홧홧하며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럼.” 차나희는 서연을 이끌며 연습실로 향했다. 호연은 아이돌 전문 소속사이기에, 시설 자체는 확실히 노바보다 좋았다. 음향기기도 훨씬 많았고, 설비도 제대로 갖추어진 편. 물론 평범한 보컬 트레이닝에는 딱히 쓸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하여, 멤버들이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시작된 트레이닝. 의외로 차나희는 트레이닝에 들어가면 엄한 부류였다. “……확실히 기교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네.” 차나희는 아이돌 중에서도 특히 노래를 잘 부르는 편. 그렇다 보니, 막상 반주가 없는 상태에서 부른 서연의 노래에 눈을 찌푸렸다. “가사에 감정을 담는 건 잘하는 것 같은데…… 배우라 그런가?” 그런 차나희의 말에 서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 노래에 감정을 담지 못해서 문제가 됐는데.’ 사실 서연의 노래 실력은 평범하게 괜찮은 편이다. 물론 그게 노래방 기준이라 그렇지. 거기에 노래에 감정이 실리지 않아서 뭐라 형용하기 힘든 노래가 되었었지만. ‘이제는 반대네.’ 세삼, 에서 서연의 노래에 얼마나 보정을 빡세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니 ‘조하린’이 떨어지고 ‘송소하’가 올라간 전개에 시청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객관적으로 봐도 송소하가 아이돌의 실력 면에선 조하린을 압도했으니까. “우선, 서연이는 목소리가 좋거든. 그러니 그걸 최대한 살리는 게 좋은데…….” 그리하여 시작된 차나희의 노래 강의. ‘두성? 흉성?’ 여러 단어가 서연의 귀에 휙휙 날아와 꽂혔다. 생각해 보면 이미 성우학원에서 한다영한테 배울 때도 들었던 말 같았다. 물론 그쪽은 서연이 대체로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았는지, 어린이 레벨로 순화해서 표현해 주었으나. “……그러니 한 번 해보자.” “네.” 차나희는 그런 것도 없었다. 어찌 보면 가혹할 정도로 서연에게 연습을 시켰다. 물론 서연은 아무래도 좋았다. 막강한 체력을 지닌 서연이니 아무리 노래해도 지칠 일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서연을 보며, 차나희는 내심 감탄했다. ‘목소리도 좋고, 체력도 좋아.’ 그러니 연습할수록 힘이 붙는 게 느껴졌다. 처음 가르친 사람이 잘 가르친 모양인지, 기초는 확실히 다져져 있었다. 그걸 머리로 이해 못 하고 몸으로 박아둬서 필요할 때 꺼내지 못할 뿐. ‘연기할 때는 이거보다 잘했던 것 같은데.’ 14화 장면을 촬영할 때 서연은 순간 차나희를 압도될 만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니 차나희도 그런 서연에게 아이돌로서의 프라이드가 긁힌 것이고. ‘재능 덩어리.’ 말 그대로 그것을 인간으로 구현한 존재가 서연이었다. “노래도 일종의 연기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차나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서연에게 설명했다. “가사에 몰입하고, 이해할수록 더 좋은 노래가 되니까. 마치, 서연이가 연기할 때 가사에 몰입하는 것처럼.” 그걸 평소에도 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은 노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연이에게 OST를 부르겠냐고 말한 사람도, 딱히 큰 기대는 안 했을 거야.’ 애초에 배우가 아닌가? 적당히 삑사리 없이 제대로 부르는 정도만 해도 칭찬을 해주겠지. 아마 곡의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은 걸로 선정했을 거다. 하지만, 차나희는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야, 그녀는 14화에서 서연의 재능을 보았으니까.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잠깐 쉬고 있어. 잠깐 일이 있어서.”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차나희는 오늘 아이돌 기획팀장이 불렀던 것을 떠올렸다. 듣자 하니, 아마 앞으로 여름소녀 활동에 관한 것 같았다. 아마 로 차나희의 인기가 크게 올랐기에 뭔가 추가로 할 일이 있는 거겠지. “하아.” 조금 피곤했지만, 그래도 인기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연습실 밖으로 나가는 차나희를 보며. ‘생각보다 호연의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야.’ 본래 호연이 어떻게 되었더라. 운영 자체는 꽤 오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래저래 사건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우선 돈이 안 되면 가차 없이 해체하는 편이기도 했고, 지나친 편애 논란도 있었다. 아마 그 편애의 대상이 분명……. “어? 혼자 있네?” 우르르, 서연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이 보였다. 바로 아까 전 물러났던 여름 소녀의 멤버들. 다들 날씬하고, 외모도 제법 뛰어났지만 아이돌 중에선 딱히 특출난 편은 아니다. 특출난 건 차나희와 같은 경우겠지. “나희는?” “잠깐 일이 있으셔서 나갔어요.” “그래?” 라빈은 그런 서연의 말에 픽 웃었다. “하여간, 혼자 잘나셨지.” 그런 혼잣말에 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여름 소녀의 해체와 관련 썰이 떠올랐으니까. “아까 걔 때문에 제대로 대화도 못 했어. 뭘 그리 싸고도는 거람?” “보나 마나 혼자 독점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서연이라고 했지? 혹시 좋아하는 게 뭐야?” 여름 소녀 멤버들이 옆에서 조잘거리며 물었다. 그중에선 무례한 질문도 있었다. 특기나, 잘하는 게 뭔지 묻는 그런 말. 그 말에 서연은 살며시 웃었다. “저 마술 잘해요.” “……마술?” “혹시 동전 있으세요?” 그런 서연의 말에 멤버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동전? 동전이야 있었다. 마술을 잘한다는 게 의외이긴 했지만, 연예인 중에는 간혹 그런 취미를 가진 부류도 있으니……. “여기.” 라빈이 냉큼 500원을 내밀자, 서연은 그것을 받아들고 말했다. “지금부터 이걸 250원으로 만들어볼게요.” “250원?” 500원을 어떻게 250원으로 만든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자. 서연이 500원을 오른손으로 든 서연이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꾹 눌렀다. 그러자 500원이 반으로 접혔다. “?” 여름 소녀들의 눈이 멍청히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삐걱삐걱 고개를 돌리자. 생긋 웃은 서연이 있었다. 붉은 눈동자.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신기하죠?” 그러니 반으로 접히고 싶지 않으면 처신 잘해라. 대충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서연은 지금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 분노. 이 또한 서연에게는 무척 낯선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