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은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인생이 달라졌다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요즘 아주 조금, 간접적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조금 다른 의미로. “어, 어서 오세…… 헉!!” 수요일에 들르는 편의점에 들어가자, 아르바이트생이 숨을 들이켰다. 숨이야 늘 들이켰지만, 오늘 들이키는 건 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아르바이트생은 마침 박스를 뜯고 있었는지 계산대 위에 놓인 공업용 커터 칼로 시선이 향했다. “하, 하. 날, 날씨 좋죠?” 그리고 슬금슬금, 조심스레 커터 칼을 치우는 알바생. “…….” 내가 살며시 찌푸리며 바라보자, 아르바이트생이 조금 민망했는지. 혹은 조금 겁을 먹은 얼굴로 크흠, 하고 헛기침했다. “……제가 어제 를 봐서.” “네.” “거기…… 차서아로 나오신 거…… 맞죠?” 말을 끌면서 묻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내 대답에 뭐라 설명하기 표현하기 어려운 얼굴이 되었다. 당장 말을 걸고 싶다는 고양감, 하지만 묘하게 위축된 기세. “그, 연기, 너무 좋았어요. 가,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게 있는 거 처음 알았어요. 꼬, 꼭 진짜 같더라고요?” “그래요?” “……네, 꼭 진짜……. …….” 차분히 그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연기 맞죠?”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생긋 웃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눈가를 매만지며. “그럼요.” “……!!” 옆에 놓인 거울에 내 눈동자가 잠깐 붉어진 게 보였다. 그것을 본 아르바이트생의 몸이 사사삭 뒤로 멀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나는 작게 웃었다. “장난이에요.” “아, 그, 그래요?” “그럼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결제한 비타민 음료를 챙겼다. “그럼 고생하세요. 아무한테나 창고 열어주지 마시고.” 그렇게 말하며 편의점을 나오자, 내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이 있었다. 당혹감이 담긴 시선. 혹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경계하는 눈빛.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는 자주 받게 된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그랬지만. ‘이제는 좀 재밌는데.’ 내일은 다른 편의점 가야지. 그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됐다. *** 신인배우 정현우.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바른생활 배우였다. 아침에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오후에는 일을 찾아다닌다. ……요즘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극을 해야 하나.’ 케이블 드라마 조연을 맡은 이후,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다른 케이블 드라마에 처참히 박살 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망가지며 다른 드라마에게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다. “에휴.” 그런 한숨을 내쉬며, 막 데드리프트를 하려던 그는 막 헬스장에 들어오는 여성을 보았다. 이제는 모를 수가 없는 소녀였다. 처음에는 라는 연극에서 이슈를 모았다는 말은 들었고. 이어 과 에서 연달아 출연하며 이슈를 모은 배우. 주서연. 이쯤 되자 정현우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서 본 것 같더니…….’ 어린 연화공주. 하지만 이제 그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그보다 강렬한 이미지가 이 소녀를 뒤덮었으니까. “왜 그렇게 보세요?” “!!!” 서연이 말을 걸자, 정현우는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도 그럴 게 서연이 먼저 말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니, 마치 듣고 싶은 게 있는 얼굴이었다. 설마. “영화…… 재밌게 봤어요. 차서아 연기……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아, 감사합니다.” 그 말에 그제야 서연의 얼굴이 기분이 풀어졌다. 역시 이걸 듣고 싶었던 거구나. 최근 헬스장에 올 때마다 아저씨들에게 뭔가를 묻더니, 저걸 물으러 다녔던 건가. ‘천만 배우.’ 자랑하고 싶을 만하지. 사실상 오늘, 아니면 내일. 는 천만을 돌파할 게 분명했다. 그럼 서연은 첫 영화 출연으로 천만 배우가 되는 것이다. ‘질투심도 안 드네.’ 이게 어느 정도 현실감이 있어야 질투심이 생기는 법이다. 엄두도 안 나면 그저 놀랍고 경외심이 생길 뿐. 거기다. 철컹!! “와, 우리 서연이, 요즘 컨디션 좋은데?” “요즘 좋은 일이 많아서.” “암, 그래야지. 아저씨도 영화 봤거든. 요 봐라. 어제 차서아를 봤더니 지금 서연이를 보고 근육이 떨리는구나.” 핫핫핫, 하고 웃는 헬스장 트레이너의 말에 정현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정현우는 엄두도 못 낼 무게를 치는 여성을 상대로 무슨 질투를 하겠는가. 반으로 접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차서아 때문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 안 돼요?” 잠깐 쉬고 있던 서연에게, 정현우는 그렇게 물었다. 이번 차서아 역은 분명 큰 임팩트를 불러왔다. 그만큼 배우의 이미지에 영향이 갈 것이다. 특히 여배우라면 더더욱. “조금, 안 좋은 부분도 있지만.” 서연은 정현우의 말에 여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여러모로 걱정하는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당장은 괜찮다. 뭣보다. ‘광고, 해지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켰다, 내 4억. 서연은 그걸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우선 1차 목표가 그것이었던 만큼 잘 넘어간 건 정말 기뻐할 일이었다. 의 영향도 분명 있었던 모양. 조하린이 크게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남긴 1화가 있었기에, 차서아의 연기가 조금 상쇄되었다. 그리고 차서아가 예상과 달리 관객들에게 동정표를 산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다른 연기로 하면 금방 변할 테니까.” “그렇, 습니까?” 정현우는 그런 서연의 답에 조금 놀랐다. 역시 잘된 배우는 마인드부터 다르구나 하고. ‘차서아의 이미지는 강해 보이니까.’ 물론 서연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4억이 날아가지만 않으면, 차서아의 이미지는 딱히 싫어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액션 연기도 해봐야지.’ 실제로 차서아와 서광일, 그리고 임승철 형사와의 박투씬은 큰 호평을 받았다. 대역을 쓰지 않은 탓에 보다 자연스러운 액션을 연출할 수 있었던 덕이다. ……물론 액션을 찍은 이후, 두 배우는 한동안 병원에서 푹 쉬어야 했지만. 아무튼 그런 열연이 있었기에 는 크게 흥행했다. “배우시죠? 이야기 들었어요.” “네? 아, 가, 감사합니다. 아직 케이블 드라마 하나 출연한 게 전부지만요.” “들었어요. 제 친구도 비슷한 시간대에 다른 케이블 드라마에 출연했거든요. 그러니 한번 대화하고 싶었어요. 함께 힘내자고.”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기울였다. 그에 따라 긴 검은 머리칼이 옆으로 흘러내리며 땀에 젖은 하얀 목이 드러났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지, 진짜요?” “그럼요, 운동이라면 얼마든지 알려드릴게요.” “……?” “보니까 아직 무게 치는 걸 잘 못하셔서.” 보통 여기선 연기를 알려준다고 하지 않나? 힘내자는 게, 물리적인 거였어?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아, 혹시 돌려 말하는 건가?’ 정현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걸 얼마 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가 개봉하고 막 500만을 돌파했을 시점. 가 딱 6화까지 방영되었을 때였다. “누구야, 이 기사.” 임진하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선 기사를 올린 인터넷 신문사가 어디인지 보았다. ‘선양 미디어, 기자의 이름은 한선아.’ 알고 있다. 최근 주서연에 대해 좋은 기사를 쏟아내던 기자.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어떻게. [ 갑질 의혹?] 짧지만 굵은 기사 제목이었다. 그리고 내용을 보면 어떤 스태프의 증언이 담겨있는 기사. 드라마의 작가가 특정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비중을 크게 줄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이걸 어떻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줄인 거였다. 그런데, 어떻게 냄새를 맡고 취재를 나왔나. “아는 사이야? 하, 어이가 없어서.” 임진하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이 떨렸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백 PD도 그녀의 편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윗선에서 말이 나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본 수정이라니. ‘이제 와서?’ 비중을 줄이며 가뜩이나 흠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런데 윗선의 요구를 들어보면, 단순히 분량을 복구하는 것을 넘어 분량을 늘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임 작가. 알잖아. 지금 누가 가장 이슈가 되는 배우인지.” 그리고 다음날 임진하는 드라마 방송국에 불려가 백 PD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국장님이 영화를 보셨어.” “……예?” “그러니, 늘려도 좋다고 하더라. 알지? 이거 늘리라는 말이야.” 백 PD는 그리 말하며 임진하를 다그쳤다. “이게 마지막 커리어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저는…….” “아, 히트작 있지. 알아. 나름 유망하고. 근데,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 백 PD도 를 보았다. 그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이건 밀어야 한다.’ PD라면,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차서아의 이미지? 그건 충분히 조하린 역으로 덮을 수 있었다. 다른 배우라면 몰라도 주서연에겐 그 정도의 포텐셜이 분명히 있었다. 십 대에 천만 배우. 이런 커리어를 가진 배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박정우, 그리고 조서희? “뭘 착각하는 것 같은데, 임 작가. 당신은 신인 작가야.” “…….” “나 없었으면, 지금 이미 예전에 갈렸어.” 그 말에 임진하는 손이 떨렸다. 설마 백 PD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으니까. “자 봐.” 백 PD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화면 켜, 임진하에게 보였다. “비중 줄인 거, 이미 언론이 물었어. 보여? 올라오는 기사 숫자?” “저, 저는 이렇게까지 줄인 건……!”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지. 줄인 건 맞잖아? 실제로 조하린, 1화 이후로, 최소한으로만 등장하고 있고.” “그건, 그렇지만.” 처음 불씨를 누가 지폈는지는 모른다. 그 한선아라는 기자인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결국 누구 한 명은 물었을 것이다. 가 흥행하며, 당연히 주서연이 찍고 있는 드라마에 관심을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거 원래 분량 복구 정도로 안 돼. 내버려뒀어도 8화에서 비중이 사라질 역이었잖아.” “…….” “그걸 건드려서 이 사달이 난 거야. 내 진짜 마지막 정으로 말해주는 거니…….” 백 PD는 임진하의 어깨에 탁, 하고 손을 올리며 말했다. “처신, 잘하는 게 좋아. 내가 김필석 감독에게는 말해둘게.” “……네.” 고개를 숙인 임진하는 완전히 자신감이 꺾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게, 고작 한 명의 배우가 불러온 파급력이라는 게. 하지만, 이쪽 업계를 아는 이라면 알 것이다. 배우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들 한 명이 제대로 터졌을 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돈의 액수가, 기업으로 향해가는 기점. ‘지금 주서연은, 그 기점에 서 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손을 뻗으려 할 게 아닌가. 누가 봐도 뜰 배우. 그 배우가 가장 값싼 시기. 그때가 언제인가? [ 천만 돌파! 경이로운 쾌속 진격!] 바로 지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