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하고 피내음이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차서아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서광일을 보았다. 거칠어진 호흡을 내쉬며, 허리의 통증을 느꼈다. 「…….」 차서아는 깨어진 창문을 보았다. 서광일이 차서아의 망치를 빼앗아 창문을 깬 흔적이었다. 그리고, 가는 숨을 내쉬는 서광일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은 없었다. 서광일이 막는 사이, 한예화가 깨어진 유리창을 통해 도망쳤기 때문이다. 「하.」 차서아는 기절한 서광일이 깨어나기 전에 남은 청 테이프로 그를 묶었다. 「부족해.」 한예화를 결박할 때 너무 많은 양의 청 테이프를 사용한 탓이었다. 이어 화면이 반전되며, 도망친 한예화가 가까운 편의점으로 숨어든다. 유리에 찔려 더 도망치기가 어려웠기 때문.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안에 들어가서 빨리 상처부터 어떻게 해봐요. 구급차는 내게 부를게.」 편의점 아줌마가 그런 한예화를 놀란 눈으로 보며, 창고 안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창고로 들어간 한예화가 숨을 돌리며, 경찰에 신고하는 사이. 「어머어머, 서아야. 왜 그렇게 다쳤어!」 새로운 손님이 편의점에 찾아온다. 바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차서아. 서광일 형사를 살해하기 위한 공구, 그리고 청 테이프를 구하러 온 그녀. 그 순간, 편의점 아줌마의 시선이 차서아에게 향한다. 관객들은 순간 설마,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편의점 아줌마가 걱정이 담긴 얼굴로 차서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 이게 무슨 일이니. 벌써 두 번째네.」 그 말에, 차서아의 손이 우뚝 멈췄다.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탄식이 들렸다. 관객이 가득 찬 영화관이라는 것도 잊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후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였다. 차서아는 공구를 받자마자 편의점 아줌마를 살해한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건 이후 차서아의 반응이었다. 처음으로, 차서아의 얼굴에 ‘읽을 수 있는’ 감정이 나타났다. 고통. 후회. 차서아 본인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한 감정이, 스크린에 선명히 나타났다. 답답했다.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차서아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와.’ 이번엔 다른 의미로 탄식을 내뱉을 뻔했다. 웃고 있으면서 우는 얼굴.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해, 몇 번이고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차서아. 그런 차서아에게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처절함. 처음으로, 사람들은 그런 차서아에게서 느껴지는 고통에 공감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죽은 편의점 아줌마의 얼굴과, 부모의 얼굴이 환영처럼 덧씌워졌다. 그것을 더 볼 수 없었는지 차서아는 몸을 돌렸다. 한예화가 있다는 창고. 그곳의 문을 천천히 연 순간, 소주병을 들고 있던 한예화가 차서아의 머리를 내리쳤다. *** 임승철 형사는 달렸다. 먼저 현장에 돌입했다는 서광일 형사를 쫓았고, 기절한 서광일을 발견했다. 임승철의 기척을 느낀 서광일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오직 하나의 말만 내뱉는다. 「도망, 도망쳤어요. 쫓, 쫓으러 갔고.」 도망치고 쫓으러 갔다. 처음에는 차서아가 도망쳤다는 말인 줄 알았지만, 뒤늦게 한예화가 보이지 않는 걸 눈치챘다. 서광일 형사는 필사적으로 한예화를 구해낸 것이다. 그리고, 차서아는 그런 한예화를 쫓으러 간 것이고. 혹은, 서광일을 살해할 도구를 가지러 갔거나. 어느 쪽이나 상관없었다. 임승철은 달렸다.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계속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근처에 가까운 장소를 뒤지며, 최종적으로 편의점에 도달했다. 평일 오후. 안쪽이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를 친 편의점. 자주 들리던 편의점이었기에 임승철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계신 아주머니가 아무 말 없이 편의점을 쉴 리 없다는 것을. 「야이, 시발 새끼야!!」 문을 발로 차 부수며 안으로 들어가자, 한예화의 목을 조르는 차서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한예화. 그리고,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차서아. 그것을 본 임승철은 달려가 그대로 차서아를 걷어찼다. 쾅! 하고 편의점 가판대가 쓰러졌다. 차서아는 그 와중에 쓰러지며, 바닥에 떨어진 망치를 손에 쥐었다. 「오냐, 그래~. 해보자는 거지.」 「…….」 곁눈질로 한예화의 상태를 살피며, 임승철은 천천히 그사이를 막듯 선다. 손에 쥔 테이저건으로 차서아를 겨눈다. 그런 임승철을 향해, 차서아의 입매가 비틀렸다. 마치, 웃는 것처럼. 인간의 웃음처럼 보이지 않는 불쾌한 웃음. 그것이 돌처럼 굳는 동시에. 차서아가 임승철를 향해 덤벼들었다. 「큭!!」 테이저건을 쏘았으나, 그것을 기울어진 가판대에 몸을 숨겨 피한다. 그리고 그대로 임승철을 향해 뛰어들며 망치를 휘두르는 차서아. 그것을 피하며,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내던지며 저항하는 임승철.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차서아의 얼굴을 후려쳤지만. 차서아의 망치가 임승철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커흑!」 임승철이 몸이 꺾이며 영화관에 비명이 들린다. 이미 만신창이임에도 짐승같이 덤벼드는 차서아는 마치, 고통을 모르는 것 같았다. 마무리하기 위해, 차서아가 망치를 치켜드는 순간. 「!!」 차서아의 무릎이 푹 꺾였다. CCTV를 통해 차서아가 온 것을 확인한 한예화가 소주병으로 차서아의 머리를 내리친 탓에 생긴 충격. 서광일, 그리고 한예화로 받은 타격이 그녀의 무릎을 꺾었다. 당혹감. 그 순간 선명히 보이는 차서아의 감정을 응시하며, 임승철의 주먹이 차서아의 얼굴을 강타했다. 기절한 차서아와, 갑작스런 소란에 편의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들려오는 경찰차의 소리. 점차 화면이 암전되며 사람들은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 “ 보셨어요?” “아휴, 봤죠. 저 진짜 편의점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욕할 뻔했다니까.” “와, 저도요. 진짜 그 장면 대박이긴 했죠.” 작은 물결은 파도처럼 입소문이 되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광고. 그리고 예능에서 있었던 화제가 합쳐지며, 사람들은 저마다 영화관을 찾기 시작했다. “와, 나 손에 땀난거 봐.” “주서연?? 맞나? 와 연기 진짜 장난 아니다.” “차서아가 그거 울면서 웃는 연기? 나 그거 보고 진짜 쌀뻔했잖아.” “아오, 새끼. 그보다 걔 우리 또래래.” “누구? 차서아? 진짜?” 최근 볼 영화가 없던 탓이었을까. 스릴러 영화임에도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았다. 영화표는 이미 죄다 동난 통에 관을 늘리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오프라인에서 그런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슬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들썩이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 [게시글 : 와ㄷㄷㄷ 더체이서 천만 가겠는데????] 주서연 이번이 영화는 첫작아님? 처음부터 천만배우야??? 답글 - 아오 ㄴ아카 - 근들갑은 제발 본진가서 떨어라 - 절대 천만 못감ㅋㅋㅋㅋㅋ - 스릴러로 천만가기가 쉬운줄아나 == 영화 개봉 첫날. 관객 수가 뜨자 그런 글들이 올라왔다. 커뮤니티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그냥 최근 볼 영화가 없어 스릴러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 거다. 대략 그런 뉘앙스. 하지만. 개봉 3일 차 120만. - 흠.... 이거 천만 가겠는데??? - 유토피아도 평 좋아서 곧 안 오름 - ㅋㅋㅋ 저 속도로는 천만 못감 - 내가 저거 천만가면 강남에서 알몸으로 춤춘다ㅇㅇ - 진짜??? - 하지만 확실히 저것만으로 대단하네 그런 반응이 나오고. 주말이 지난, 개봉 7일 차. 500만. - 잠깐만 - 아니 이건 진짜 천만 가겠는데? 500만???? - 내가 봤는데 연기 진짜 지린다 배우들이 연기 다 잘하드라 - ㄹㅇ 긴장감 개쩜 ㅋㅋ 편의점 보면 이제 욕만 나온다 ㅋㅋㅋㅋ - 그런데 주서연 개 예쁘더라 진짜 ㅋㅋㅋ 나 그거 때문에 지금 드림퓨처 보기 시작함 ㅋㅋㅋ - 드림퓨처?? 그걸 볼 정도야? - 드림퓨처 의외로 볼만하다 - 근데 주서연 비중 좆도 없잖아 - 이제 인기 많아질 예정 ㅅㄱ 흥행의 파도는 이제 해일이 되기 시작했다. 의 고무적인 성과에 기사들도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배진환 감독 ‘300만 감사합니다!!’] [ 배우진 사방에서 러브콜] [흥행 일등공신은 누구? ‘차서아’] 그렇게 연달아 올라오는 기사들에 내심 긴장했던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 서연에게 화장품 광고를 맡겼던 회사. “저기, 이사님.” “또 왜.” “그게 매출이…….” “왜, 올랐어?” “그건 아니라 유지는 되긴 하는데요.” 그래도 유지되고 있다는 말에 백민찬 이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설마 살인마 역으로 영화에 출연했을 줄이야. 출연을 막는 조항을 넣지는 않았지만, 설마 영화에서 그런 역을 맡았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연기 기깔 나더만. 안 봤으면 정 팀장도 꼭 봐.” “아, 물론 봤습니다. 야,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곤 생각이 안 되더라고요.” “드림 퓨처도 꼭 보고.” “아, 그건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정태수 팀장은 백민찬 이사의 말에 헛기침한 후, 말을 이었다. “이게, 근데 유지 되는 게 이상합니다. 그야 안 좋은 이미지잖아요? 보통은 떨어져야 하는데.” “하는데? 안 떨어졌어?” “아니, 떨어지긴 했습니다.” “그럼 뭐, 예상대로 아닌가?” “아뇨, 근데 이게 진짜 조금 떨어졌어요. 이 정돈 오차라고 생각할 만큼.” “아, 그래? 진짜? 어째서?” “그게, 아마 제가 추측하기론.” 서연이 보여준 이미지를 생각하면 광고에 영향을 충분히 줄 만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그 낙폭이 적었다. 왜 될까. 고민했으나, 이유는 간단했다. “예뻐서 그런 게 아닐까요?” “……슬슬 팀장 자리를 바꿀 때가 되긴 했지.” “아니, 진짜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여성층에서 차서아가 동정을 얻은 것도 이유일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영화에서 나온 차서아는 그 서늘한 이미지가 아주 잘 어울렸다. 거기다 살인마임에도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우습게도 에클라 에투알의 광고와 잘 맞물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태수 팀장의 말처럼. 가 개봉하고 보름. 에클라 에투알의 매출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 의 흥행질주. 보름 만에 800만. 사실상 천만이 확정되어 가는 가운데. 모두가 웃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게, 맞아요?” “아니…….” “성공할 거라고 했잖아요. 투자받았다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와 함께 개봉했던 영화가 또 하나 있었다. . GH 그룹에서 투자받은 와 같은 날 개봉한 영화. 그 주연인 황민화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자신과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에게 쏘아붙였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된 ‘호라이즌 컴퍼니’의 배우. 황민화는 그녀를 통해, 이번 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 망하지는 않았잖아.” “200만이에요.” “…….” “네, 잘하면 400만 갈 수도 있죠. 성장세도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도 를 언급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온통 에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굴욕적이었다. 특히, 자신이 걷어차고 나온 노바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에게 처참히 패배했다는 게 짜증났다. ‘주서연.’ 잠깐 마주쳤던 어린 배우를 떠올렸다. 황민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아우라가 있었다. 눈부신 재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애송이라 생각했는데. 뿌득. 황민화는 이빨을 갈았다. 이번 일에 대한 건 절대 잊지 않으리라. 그렇게 황민화가 다짐하고 있을 때. “배진환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뭘요.” “이제 천만 감독이시잖아요.” “아직 아닙니다. 아직!!” 배진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이제 곧 천만이었다. 오늘? 아니면 내일. ‘드디어 천만 감독이 되는구나.’ 그 영광스런 명예를 얻게 되는 거다. 감독 중에선 젊은 나이에. “정말 노력해 준 배우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회식에 서연 양이 못 온 게 아쉽네요.” “고등학생이잖아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 정도면…… 와, 진짜 헐리우드 가는 거 아니에요?” “암, 가능하죠. 저 배진환이 보장합니다!” 챙! 술잔을 부딪치며, 웃던 배진환을 향해 이번 임승철 형사 역을 맡았던 김대헌 배우가 말했다. “감독님, 전화 오신 것 같은데요?” “전화요?” 그러고 보면 식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리는 게 보였다. “에이, 대체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화면을 확인한 배진환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를 받았다. “아, 예. 배진환 감독입니다. 아이고, 잘 지내시죠, 이사님?” GH 그룹의 문화사업부 이사. 이번 의 촬영에 아낌없이 지원해 준 인물. 아무리 천만 감독이어도 함부로 뻗댈 수 없는 이의 전화에 배진환은 술김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네? 서연 양을요?” 이건 또 예상외의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