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린은 지방, 그것도 시골에서 올라온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녀. 대학에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외면한 채, 홀로 서울에 상경한 촌뜨기. 물론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서울로 온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그녀가 평범한 직장을 가지길 원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서울에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프로듀스 스타 200…….」 조하린은 그리 중얼거리며, 긴장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돌 지망생 2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만 수천 명. 한국만이 아닌, 해외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조하린은 그 수천 명이 지원한 예선을 당당히 뚫고, 정규방송에 참석할 자격을 손에 넣었다. 「응, 무조건 할 수 있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멍청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순방하고 똘망똘망한 눈매에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 조하린은 조금 낡은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데.」 사진을 바라보던 조하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현실에서 도피하던 것도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여긴 어디지?」 시골 소녀인 그녀에게 서울은 너무나 복잡한 것이었다. 그것이, 「프로듀스 스타 200」이 촬영까지 2시간이 남은 시간. 강남대로의 한복판에서 중얼거린 조하린의 혼잣말이었다. - 애가 좀 멍청하네 - 딱봐도 발암담당 - 분장 누가시킨거임?? 저게 맞냐?? - 시골소녀니까 촌스럽게 분장시킨 거겠지 조하린의 등장에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선 캐릭터의 조형은 무난했다. 시골에서 아이돌을 동경하여 올라온 소녀.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이었으나, 그게 또 의외로 잘 먹히는 것이다. 현재 조하린, 커다란 뿔테 안경. 머리도 한 갈래로 심플하게 묶은 모습이었다. 옷도 펑퍼짐한 탓에, 어벙한 모습이 부각됐다. 이미 서연의 외모를 아는 시청자들로선 그런 꾸민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떡해!」 잠깐 장면이 전환되며,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던 드라마가 다시 조하린의 파트로 돌아온다. 의 1화는 대체로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중 조하린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분.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 드라마가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길어야 5분 정도. 그래도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있으니,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 아 언제적 캐릭터임 - ㄹㅇㅋㅋㅋ 딱 10년 전에 보던 발암캐 조하린은 그녀의 캐릭터 설정상 안티도 많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우선 통통 튀는 캐릭터 자체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으며, 시골에서 올라온 그녀는 여러모로 답답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거기다 촌스러운 분장으로 인상까지 안 좋은 탓에, 실시간으로 채팅은 안 좋은 글이 올라왔다. 「괜찮아요?」 촬영장의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해, 뛰어다니던 조하린을 부르는 이가 있었다. 김시환. 그는 다급해 보이는 조하린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네?」 조하린은 당황한 얼굴로 김시환을 올려보았다. 시골에서 살던 그녀가 보기엔 놀랄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었기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 그그그. 여기로, 가려고 하는데요.」 그래도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받는 친절. 떨리는 목소리로 그 장소를 알려주자, 김시환은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아, 마침 저도 여기로 가야 하거든요.」 「네?」 「우리, 같이 갈까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조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려다 이내 천천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하다 싶었으니까. 「그건, 너무 죄송해서.」 「아뇨, 같이 가죠.」 「?」 싱긋 웃으며 친절히 답했던 김시환은 의외로 막무가내의 성격이었다. 그대로 오토바이 헬멧을 조하린에게 던져주었다. 「뒤에 타요.」 「아니, 그 잠깐.」 「갑시다!」 「…….」 그 막무가내의 행동에 조하린은 강제로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장까지 달렸다. 말 그대로 순식간. 처음 타는 오토바이에 조하린은 눈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이제 오디션장에서는 라이벌이네요.」 촬영장에 도착한 김시환은 그리 말했다. 그리고, 훌쩍 떠나려 했다. 마치 볼일은 끝났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조하린과 김시환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으니까. 평소의 조하린이었다면, 그런 김시환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심코, 조하린은 등을 돌린 그에게 다가가 그의 옷깃을 당겼다. 「저.」 「네?」 「오늘, 왜 저를 도와주신 건가요?」 진심으로 조하린은 궁금했다. 그에게는 가벼운 친절에 불과했으나, 조하린은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받은 친절이었다. 낯선 세계에 뚝 떨어진 것 같았던 그녀에게 가장 처음으로 손을 내민 사람이었다. 그런 조하린의 말에 김시환은 픽 웃었다. 「그럼, 운이 좋아질 것 같았거든요.」 「네?」 「그냥, 그런 기분이었어요.」 그는 그저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우스운 대답이었지만, 조하린은 그리 말하며 돌아가는 김시환의 등을 보았다. 안경 아래로 비치는 조하린의 눈동자는, 맑게 빛났다. 가볍게 벌어진 입술. 상기된 볼, 떨리는 눈매가 눈에 띄었다. 「그렇, 군요.」 「네, 그런 거죠.」 태연히 답하는 김시환의 말에, 조하린은 웃었다. 김시환은 태연한 척 답했지만 조하린은 알았다. 그가 그저 변명하고 있음을. 자신을 도운 것에는 어떤 이유도 없음을. 김시환은 그저 자신이 곤란해 보였기에 도왔을 뿐이다.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겠는가. 순수한 친절. 그러니, 그 어리숙한 변명에 웃음이 나왔다. 그 말간 웃음에. - 어 - 와 시청자들이 순간 채팅을 치는 것도 잊고, 그런 조하린을 보았다. 다른 대사도 없었다. 하지만, 마치 조하린의 감정이 화면을 뚫고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혹은, 호감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는 순간을 대사 한 줄 없이 느끼게 만들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조하린과 김시환의 관계는 조금 어설플 수 있는 만남에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조하린의 짝사랑은, 자신을 도와준 김시환에게 한눈에 반하며 만들어진 구도니까. 그러니. 그 장면이 우스워 보이거나, 시청자에게 와닿지 않는다면 단순한 ‘황당함’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평가도 수직으로 하락하겠지. 김필석 감독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개연성이 좀 부족하지 않나?” “사람이 원래 한눈에 반하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김필석의 말에 카메라 감독이 그리 답했지만, 김필석은 고개를 저었다. “창작물이니까.” 그러니 더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분명 세상에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이 일어나지만, 창작물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다. 개연성. 허구의 이야기에 필요한 법칙. “서연 씨. 이거 내가 잘 연출은 해볼 텐데, 연기가 중요해요.” “네.” “조하린과 김시환의 대화는 기껏해야 대본 몇 줄,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은 2분 미만.” 그 시간 동안 시청자에게 조하린의 마음을, 김시환에게 반하는 개연성을 보여줘야 한다. 각본이 아닌 그 마음의 변화를 눈에 보일 정도로 나타내야 한다. “할 수 있어요? 아님, 내가 임 작가에게 말을 좀 해보겠습니다.” 그런 김필석 감독의 말에,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해볼게요.” “흐음.” 솔직히 임진하의 각본은 유치했다. 하지만 이게 또, 맛이 없는 각본은 아니었다. 히트작 하나. 별것 아니지만, 이유 없이 그런 커리어가 있는 건 아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배우가 할 수 있다면 믿어주는 게 김필석 감독의 성격이다. 그리고 이 어린 여배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함도 있었다. 그렇게. 서연은 몇 번의 NG를 내며, 영상을 찍는 것에 성공했다. 아마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NG를 낸 촬영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번 연기는 서연에게 낯선 것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감정을 모사하는 것이었다. 애정. 사랑. 타인에게 그런 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냐. 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그야 우정이나 호감도 그런 영역에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이나 영화나 그와 관련된 영상 매체를 보면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사랑이란 매우 뜨거운 감정이었고. 그것에 빠지는 순간은 더욱 특별한 순간이었다. 알지 못하기에. 아직, 준비가 되지 못했기에. 서연은 그것에 이입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가끔은, 상상하는 것이 더 멋질 때가 있는 법입니다.” 정은선 배우는 말했다. “서연 양이 말한 사랑을 향한 막연한 동경. 자신이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형태를 꾸며내는 것 만으로도 오히려 진짜보다 나을 때도 있죠.” 가끔 있다고 한다. 본래 로맨스를 주력으로 쓰던 작가나, 배우가 어느 순간부터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사랑의 쓴맛을 본 이후로, 도리어 그런 것을 연기나 글로도 표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겁니다.” 정은선 배우는 어린 서연을 보며 웃었다. “언젠가 서연 양도, 멋진 사랑을 할지 모르나. 그 감정은 그때를 위해 아껴두세요.”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연에겐 무척 와닿는 말이었다. ‘감정의 모사(模寫).’ 서연에게는 무척 익숙해진 행위였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이가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미소를 짓는 지도 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은 자신이 있었다. 「아, 그러니까 178번, 조하린 양 맞죠?」 심사위원 다섯을 마주한 조하린이 무대 위에 선다. 의 예선 오디션. 김시환의 도움으로 늦지 않게 설 수 있었던 무대.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들었는데, 힘든 결정이었겠어요.」 「네.」 조하린은 심사위원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조금요.」 「그렇습니까.」 심사위원 역을 맡은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말했다. 「그럼, 한 번 보겠습니다.」 심사위원의 얼굴은 다들 웃고 있었지만, 태도에서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아이돌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지나갔으며. 그중, 이미 사전에 등장했던 송소하, 박민율 등 주연 4인의 모습이 비쳤다. 마지막으로 김시환이 조하린을 바라보며. 조하린이 마이크를 잡았다. 춤을 추기에 앞서, 우선 노래를 심사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 아, 잠깐 - 서연아 노래는 참아다오 이미 예능을 통해 서연의 노래를 들었던, 시청자들의 채팅이 빨라졌다. 못하지는 않는다. 그런 평을 들었지만, 이런 드라마에 나오면 오히려 어설프게 잘하는 것이 더 듣기 힘든 법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건 서연이 아니다. 조하린. 방금 사랑에 빠진 소녀. ‘나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지만.’ 많은 매체를 접하며 느꼈다. 가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감정은 대체로 무척 아름다우며. 언젠가, 꼭 느껴보고 싶은 동경을 품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서연의 노래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거라고 모두가 말했다. 특히, 지연의 소개로 만났던 마법사, 한다영은. “감정을 담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서연은 너무 그에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야, 서연 양은 로봇이 아니잖아요? 사람은, 말할 때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담겨요. 노래도 마찬가지죠.” 말에 담기는 감정을 의식한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노래’라는 형태가 되었기에. “노래는 결국 말의 연장이에요. 감정을 의식적으로 담으면, 놓치는 것이 무척 많을 거예요.” 마치 지금 서연의 노래처럼. 한다영은 그것을 서연에게 최대한 알려주었다.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방법을. ‘조하린이 느낀 감정.’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 대체하지 않았다. 단지 서연은 막연히 그 형태를 그려냈다. 메소드가 아닌, 감정 모사에 가까운.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려내고, 거기에 서연이 상상을. 그리고 동경을 더 한다. - 어? 채팅창에서 당혹감이 담긴 반응이 나왔다. 가녀린 목소리가, 무대를 퍼졌다. 조금 심드렁했던 심사위원들이 눈을 크게 뜨며 조하린을 주목한다. 그것은,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동일했다. 사랑 노래였다. 조하린이 지금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편안한 발라드였다. 가는 미성. 분명 기교는 부족했으나, 우선 목소리가 좋았다. 부드럽게 눈을 휘며, 말간 웃음을 지은 조하린이 있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 그것을 마치 나타낸 것처럼, 가볍게 리듬을 타며 부르는 조하린의 모습은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화면의 너머로 번져나갔다. 그것을 바라보는 심사위원의 얼굴, 마지막으로 김시환과 송소하의 얼굴이 비친다. 여주인공의 입장인 송소하의 입장에선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을 암시하는 장면. 동시에 본래 각본에선 이 정도로 강조되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본래 각본은, 이보다 조하린이 어설프게 노래를 부르고 춤으로 겨우 합격하는 장면이 나왔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김필석은 조금 각색했다. 물론 작가와 대면 후. 그것이 바로 지금의 장면. 1화가 3분의 2 쯤 진행되었을 때 나오는, 조하린의 하이라이트. 그리고. 그런 그의 선택은. [단순한 개그 드라마가 아니야 시청률 15퍼센트로 준수한 스타트!!] [어설픈 노래는 연기? 주서연의 반전 매력] [순간 시청률 21퍼센트! 대박의 조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