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연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반에 한숨을 내쉬었다. 묘하게 술렁이는 반. 그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아침부터 괜히 쭈뼛거리며 자신의 반을 맴도는 존재 하나 때문이었다. ‘점심시간까지 좀 기다리지.’ 다른 반이기도 했고, 학교 축제가 끝나면 곧바로 시험 기간이다. 아무리 연화 고등학교가 학업을 소홀히 하는 구석이 있다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하는 것이다. “지연아, 네 친구…….” “계속 저렇게 둬도 괜찮아? 아, 이쪽 본다.” 지연이 다른 학생들이랑 놀고 있을 때면, 또 비 맞은 개와 같은 얼굴로 이쪽을 보는 것이다. 영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원래 저래.” “그래?” 주서연은 원래 저렇다. 사실 저것도 다 연기다. 먼저 말을 걸어 달라는 시위일 것이다. 가끔 진짜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연기. 오랫동안 서연을 봐온 지연은 그것을 아주 잘 알았다. “너무해.” 결국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대화하게 된 서연은 그리 말했다. “나 말고 친구를 만들면 되잖아.” “만들었어.” 아, 반장? 이름도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름 반장과 대화하는 기색은 있었다. ‘흠.’ 친구, 라기엔 잘 모르겠지만 말은 터놓은 건 확실하다. 서연이 조금 이상한 성격이긴 해도, 나쁜 녀석은 아니니 금방 친해지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지연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서연은 조금 고민했다. ‘어제 방송에 대해 말해야 하나?’ 라미엘에 대한 것을 떠나,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했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그대로 재현해 준 것이었으니까. 생일 축하한다는 말 이후로 혼절해 버려서 라이브로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나머지를 찾아보았다. 나머지는 평범한 데뷔 방송. 예전 라미엘의 첫 데뷔 방송은 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본방을 사수할 수 있었다. ‘첫 방송, 그것도 개인세치곤 언급이 많았지.’ 우선 돈이 가득 들어간 탓에 관심이 끌린 모양이다. 거기다 연기력, 그리고 목소리도 제대로 배운 티가 딱 나다 보니, 어느 기업에서 기술력 홍보용으로 내놓은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 물을지 말지 고민하던 서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연도 그런 서연을 보며 픽 웃었다. 버튜버의 생리에 대해선, 최근 어느 정도 들었고. 이상한 곳에서 완고한 서연의 성격상, 절대 본인이 그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라미엘과 이지연을 구분하는 경계. 그래도 저런 모습을 보면 어제 확실히 선물을 받았던 모양이다. 지연으로선 나름 꽤 긴 시간을 준비한 것이었다. ‘10년이나 봤는데.’ 서연이 하고 싶은 말. 그리고 라미엘에 관한 것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PV 뜬다며?” “아, 응.”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 10시에 의 PV가 뜬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홍보에 들어가며 빠르면 석 달. 늦어도 넉 달 안에 개봉하게 될 예정. 정확한 날짜도 이번 달 내에 뜬다고 하니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노력해야겠네.” 그런 지연의 말에 서연은 잠시 시선을 돌렸다. 현재 케이블에서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는 없는 편이다. ‘이지연이 출연할 만한 드라마, 혹은 영화.’ 서연은 지연은 곁눈질로 살폈다. 객관적으로 지연의 연기는 괜찮은 편이다. 다만, 나이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고 진짜 성인 연기자들과 비교하면 분명 아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충분히 성장 가능성도 있으니. ‘계기만 있다면…….’ 하지만 이렇다 할 작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현재 지연의 커리어로는 들어가기 어려운 게 대부분. 그리고, 개인적으론 지연과 함께 한 작품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탁.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으니, 지연이 손바닥으로 서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돌리자. “……뭔가, 소란스러운데?” 그런가? 서연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빠른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는 것이, 마치 연예인이라도 온 모양새였다. ……연예인? 지연과 서연의 시선이 교차했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 “늦어.” “…….” 날카롭게 이야기하는 여성의 말에, 서연은 순간 뭐라 답해야 하나 싶었다. ‘요즘은 다들 갑자기 등장하는 거에 맛 들였나?’ 갈색으로 탈색된 머리칼을 옆으로 넘겨 묶은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 그야말로 도도한 공주님이나 여왕님 같은 그런 외모. 입고 있는 것이 브라운 색상의 교복이 아니었다면, 성인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주서연, 저. 아니 네 친구야?” “……그게.” 분명 지연은 방금 ‘저거’라고 말하려 했던 느낌이다. 다만 같은 업계인이었기에 말을 조심한 거겠지. 하지만 충분히 ‘저거’라고 부를 만한 등장이었다. “조서희?” “진짜 조서희지? 와, 진짜 예쁘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교문에 선 우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학생 주임 선생님도 그 앞에서 감탄하며 보고 있었다. 보통은 말려야 되지 않나? 싶었지만. ‘왜 조서희가…….’ 자신과 조서희를 번갈아 보는 학생들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에요?” “편하게 말해도 되는데.” 조서희는 그렇게 말했다. 이전에 ‘저희 딱히 친한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한 서연의 말을 신경 쓴 느낌이다. 나이는 동갑. 말은 분명 편하게 해도 괜찮으나, 조서희는 묘하게 연상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데뷔 연도조차 서연보다 빠른 터라 대하기 쉽지 않았다. “……흥. 좋아.” 조서희는 이내 포기했는지 뒤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조서희의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뭔가 하니, 뭔가 박스가 가득 든 종이 가방. “생일 선물.” “?” “내 거랑, 박 선배님 거.” 그녀가 박 선배님이라 할 만한 사람은 하나뿐이다. 박정우. “본인이 찾아오면 보나 마나 문제 생긴다고, 나를 부려 먹은 거야.” 쯧, 하고 서희는 혀를 찼다. “아, 물론 개인적으로 나도 조공이지.” “조공?” “그래. 확실히 네 말대로…… 우리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잖니.” 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래서 조금 꼬셔보려고.” “…….” 그런 조서희의 말에 서연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조서희는 픽 웃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야. 농담도 참.” “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서연으로선 천상 악역 영애 같은 조서희는 참 부담스러운 것이다. 별개로 또래의 동성 배우와 친해지는 건 나쁘지 않은 느낌이긴 했지만. ‘묘하네…….’ 대체 박정우와는 언제부터 선물까지 부탁받을 만큼 친해진 걸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 건네받은 종이 가방을 살폈다. 딱 봐도 비싼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조금 우스운 건, 조서희 본인이 광고하는 제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무슨 엄청난 자존감. 이것만큼은 서연도 본받고 싶었다. “내년.” 그때, 조서희가 말했다. “네? “올해는 바쁜 것 같아서 내년에 약속 하나 잡아두고 싶은데 괜찮아?” 아뇨.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선 이야기나 들어보자 싶어 고개를 끄덕이자. “백민 감독님이라고 알아?” “네. ‘비상 공조’의 감독이시잖아요.” “맞아. 그 영화, 나도 나왔거든.” 뭐지, 자랑인가. 그런 생각으로 서연이 바라보자. “그때, 나와 친분이 생겨서 우연히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내년에 영화를 하나 찍게 되셨다고.” 백민 감독은 작품성 있는 작품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적은 자본으로 큰 성과를 거두며, 대중에게도 영향력이 큰 작품을 찍는 감독. ‘아, 설마.’ 거기까지 생각하자, 선명히 하나의 작품이 서연의 기억 속에서 부상했다. “무슨 작품인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그때 여배우들을 대거 뽑는다고 해.” “아, 그렇겠죠.” “……그렇겠죠?” “아, 아니에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민 감독의 영화. 분명 정말 우수한 성적을 거둔 영화였다. 관객 수는 400만 언저리. 엄청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게 또 장르를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다. 거기다, 그 영화는 확실히 대중에 큰 충격을 주었고. 뭣보다 해외에서 굉장히 호평을 받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언급됐고. 해외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로 인지도를 올리려면 아주 좋은 기회였다. “백민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면 배울 게 많아.” 대충, 서연과 함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그런 의미일 것이다. 작품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건, 그만큼 연기력을 승부하기 좋은 무대니까. 실제로 이번 백민 감독의 영화는 연기력을 크게 요구하는 영화였다. “……생각해 볼게요.” “흐음.” 조서희는 그런 서연의 대답에 마뜩잖았던 모양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귀찮게 했나?” “아니, 딱히 함께 출연하기 싫어서는 아니에요.” “그래? 흐음, 알겠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서희는 상당히. 아니 엄청 시무룩해진 느낌이었다. 백민 감독의 영화를 말할 때는 꽤나 의기양양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출연하고 싶어지면 말해. 오디션에 네 이름 말해둘 테니까.” 조서희는 그렇게 말한 후, 잠시 내 곁에 있는 이지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원한다면 네 친구도 말해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벤을 타고 쌩하고 사라졌다. 아마 이쪽도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조서희가 지연을 언급한 건, 사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친구를 공략하면 넘어오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수를 생각한 것뿐이었지만. 서연은 서연대로 이게 난감한 것이다. ‘정말 무슨 영화인지 모르나 보네…….’ 만약 그랬다면 정말 저렇게 당당히 서연에게 ‘함께 출연하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백민 감독의 다음 영화의 제목은 ‘경성 아가씨’ 여성 간의 사랑을 그린, 동성애 영화였으니까. *** 의 PV의 첫 공개. 영상미의 마술사라 불리는 배진환 감독의 작품. 대중에게도 큰 기대감을 준 작품이었으나, 스릴러 장르라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최근 개봉한 한국 스릴러 영화들이 연패한 탓에, 대중이 스릴러 영화에 큰 피로감을 느낀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나왔으니까. “앞으로 5분.” 차진환 프로듀서는 PV의 홍보팀과 시선을 교환하며, PV가 공개되는 10시를 기다렸다. 피가 말리는 기분. 차라리 두 번째, 세 번째 PV였다면 별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PV는 가장 처음 대중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지표인 것이다. 아무리 PV가 거품이다 거품이다 하지만, 거기서조차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망한 영화가 될 확률이 크게 올라갔다. 왜 역주행하는 영화들이 화제가 되는가. 정말,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당연히 그런 일은 차진환 프로듀서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떴습니다!!” 그리고, 온갖 커뮤니티에 올라가기 시작한 의 PV. ‘제발.’ 그리고 그런 차진환 프로듀서의 기도에 답한 것일까. 조회수 : 2,170,344 일일 조회수 이백만 돌파. 이는, 올해 개봉한 영화 예고편의 최대 조회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