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 반장 정대현. 여태 무인 서바이벌을 촬영하며, 수많은 오지를 오간 예능인. 뛰어난 신체 능력과 그 이상으로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갖춘 그에게 이번 촬영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쉽지 않았다. ‘이거, 분량 뽑기가 쉽지 않겠는데.’ 영화 홍보를 위해 온 두 배우. 이런 경우는 예능보다 홍보가 중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주서연이라는 배우는 아직 십 대의 여고생.’ 당연히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평범한 무인도에,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은 어린 여배우. 솔직한 마음으론 주연도 아닌 인물을 왜 홍보에 내보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방송을 살려봐야지.’ 그는 프로다. 어쨌든 홍보면 홍보. 예능이면 예능. 어느 쪽이든 최대한 살려볼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은 KMB의 인기 예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서연 씨, 물고기 그쪽으로 갔어요!” 방하연의 외침에 서연이 나무창을 들었다. 줄곧 서연이 들고 다니던 나무창이었다. ‘아니, 저런 식으로 어설프게 찌르면.’ 정대현이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푹!! 막 움직이던 물고기의 몸을 창이 꿰뚫었다. 동작은 어설펐지만, 속도가 그것을 커버했다. “오, 잡았다.” “대박!!” 당연히 탐험대의 멤버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설마 서연이 한 번에 잡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창에 꽂힌 물고기를 들며 의기양양하게 웃는 서연에게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지만. ‘응?’ 박희준 배우와, 정우의 경우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눈으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산을 타고, 벌레를 잡고.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는 그 모습에 정대현은 혀를 내둘렀다. ‘혹시 운동 좀 했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지금부터 뗏목을 타고 갈 겁니다. 노를 젓는 건 저와…….” 박희준, 그리고 박정우. 마지막 한 명은 늘 고정으로 손을 맞추던 멤버에게 노를 주려 했으나. “……서연 양, 하고 싶어요?” “네.” 아무튼 뭐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게 예능을 떠나서 뭐라고 해야 하나……. ‘뭔가, 신난 것 같은데.’ 그런 정대현의 생각처럼 서연은 상당히 신이 난 상태였다. 중학교 때 수련회 이후로 아마 가장 기분이 업 된 서연이라 말할 수 있다. 전에 언급했듯, 본래 감정이 무딘 면이 있던 만큼, 서연은 한번 마음이 들뜨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성격이다. 말하자면 쾌락에 유독 취약한 탓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자리에 이지연이 있었으면 한 대 때려서라도 멈춰줬겠지만. ‘이런 면도 있네.’ 정우는 그저 신기하다는 눈으로 신나게 노를 젓는 서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차분한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은근히 승부욕도 있고. 특히 남에게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서연 씨가 처음 봤을 때는 참 까칠해 보였는데.’ ‘요즘 애들 답지 않게 뭐든 참 열심히 해.’ 아무튼 서연의 저런 모습은 출연진에겐 굉장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어린 배우가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니, 당연히 이뻐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서연이 뭘 하든 다들 박수를 열심히 쳤고, 그 탓에 무한 긍정 스파이럴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와, 노 젓는 거 힘들지 않아요?” “서연 양, 체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진짜.” 그것을 지켜보는 스태프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냥 배도 아니라 뗏목. 물론 물살이 강하지 않기는 했지만, 여성이 젓기엔 상당히 힘이 드는 일이다. “그리고 뭔가, 그림이 좋지 않아요?” “어허, 그렇다고 이렇건 함부로 내보내면 안 됩니다. 함부로 이런 걸 밀면 박 배우 팬에게 맞아 죽어요.” 다른 배를 타고 가며, 신 PD가 그런 말을 꺼냈다. 물론 이쪽은 뗏목이 아닌, 제대로 된 모터보트였다. ‘아무튼.’ 신 PD의 입장에선 예상외였다. 설마 저렇게까지나 서연이 야생에 걸맞은 체질이었을 줄이야. 정대현은 몰랐겠지만, 현재 서연을 찍던 카메라맨은 홀린 듯 서연만 찍고 있었다. 그야 보통 기발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거, 단순히 홍보용으로 생각했지만.’ 꽤 괜찮은데? 특히 주서연이라는 배우는 대중에게 연화공주. 즉, 차분하고 도도한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묘하게 주서연 배우의 이미지를 신경 쓴단 말이지.’ 노바 엔터도 그렇고, 서연의 매니저도 그런 기색이었다. 이미지. 하지만 연화공주의 이미지는 나쁠 것이 없었다. 마치, 안 좋은 어떤 이미지가 생길 것을 고려한 느낌. “서연아, 이번 예능으로 홍보도 홍보지만 최대한 밝은 이미지. 알지?” “네.” 서연의 매니저도 서연을 쫓아온 상태였던 터라, 우연히 그런 대화를 듣게 되었다. ‘밝은 이미지?’ 연화공주라는 이미지만으로 충분히 밝은 이미지일 텐데. ‘혹시 에서?’ 신 PD도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인물. 당연히 눈치도 빨랐다. ‘뭔가 있구나.’ 나중에 슬쩍 물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민 감독님. 서연 양 좀 카메라에 자주 비춰주세요.” “네? 박희준 배우가 아니라요?” 게스트 중, 카메라에 누굴 더 많이 비추느냐 하면 당연히 주연인 박희준이어야 했다. 하지만, 신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적어도 반반이 나올 수 있게.” “음, 알겠습니다.” 어찌 됐든 서연도 꽤 보는 맛이 있는 아이라 찍어서 나쁠 건 없었다. ‘저 체력이 계속 갔으면 좋겠는데.’ 신나게 노를 젓는 서연을 바라보며 신 PD가 생각했다. “아, 노가 부러졌어요.” “응?” 서연이 부러진 노를 들었다. 그리고 뗏목은 조금 먼 곳으로 흘러갔고. 그렇게 귀환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 보통 에 출연한 이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건 잠이다. 우선 기후부터 다르고. 꿉꿉하며, 벌레까지 날아다니기에 대부분 잠을 설치기 마련. 서연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불안한 어조로 정우에게 말했다. “저 야외에서 잠자는 건 처음이라 걱정이에요.” “벌레가 문제긴 하지. 그래도 잠은 억지라도…….” 정우는 그렇게 말하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서연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쿨.” “…….” 아니 못 잔다며. 아무튼 그렇게 잠도 잘 잔 서연은 말 그대로 에서 날아다녔다. 처음에는 그냥 손뼉만 치던 출연진도, 그 시점에선 슬슬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지치질 않지?’ 2박 3일. 분명 짧은 일정이지만, 첫 야외촬영이라면 녹초가 되기 마련. 하지만, 사냥도 하고. 뗏목도 타고. 나무도 타고. 아무튼 그러는 동안 서연은 쉼 없이 뛰어다녔다. 도중에는 카메라맨이 지쳐서 못 쫓아갔을 정도. ‘이거, 방송이 나가면 의심받는 거 아냐?’ 신 PD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을 정도다. 특전사 출신인 박희준도 보통은 아니었다. 이쪽은 말 그대로 무인도에 홀로 던져놔도 홀로 서바이벌이 가능할 수준. 하지만 이쪽이야 특전사 출신이고. 서연은 평범한 여고생이다. 평범한 여고생과 특전사가 비슷하다니. ‘는 대체 어떤 영화일까.’ 서연을 보는 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부 잘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너 요리하지 마라.” “왜요.” “그냥 하지 마.” 정우는 서연이 만든 코코넛 요리를 먹으며 말했다. 대충, 무인도에서 잡은 가재로 뭘 보고 만든 모양인데. ‘간이, 이게 맞나?’ 우선 박정우는 다 먹긴 했다. 서연은 요리를 못했다. 그렇다고 막 드라마틱하게 못한다거나 한 건 아니고. ‘간을 대충해도 정도가 있지.’ 마치, 자취방에서 굴러먹는 사내놈이 대충 한 요리와 같다. 그냥 적당히 소금은 이 정도 넣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요리가 되겠지? 그런 안이한 생각이 가득 들어간 요리! “요리는 전부 내가 한다.” 결국 정우가 팔을 걷고 나섰다. 다른 건 몰라도, 요리를 대충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서연 양, 내버려둬요. 박 배우가 예전에 천재 요리사 역 드라마를 찍은 적 있었는데…….” 그때 한참 요리에 빠져 살았다나. 그런 신 PD의 말에 서연은 칼질부터 남다른 정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역에 몰두하는 건 나만이 아니구나.’ 박정우는 서연과 같이 배역에 극도로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를 사용하진 않는다. 그는 우등생이었고, 최대한 배역을 연구하고 해석에 중점을 두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상태. 그러니 박정우의 연기는 늘 스마트했고, 전문적이었다. 요리도 그에 관한 것의 일환이었겠지. ‘사사건건 태클을 걸기는 하지만.’ 그래도 연기에 진심인 건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아.’ 서연은 문득 그런 정우를 바라보다 떠올렸다. ‘드림퓨처.’ 그 드림퓨처 역의 남배우가 바로 박정우였으니까. “뭐야, 왜 그렇게 봐?” 그때, 탐험으로 얻은 플라스틱 접시에 요리를 담은 정우가 다가왔다. “선배.” “왜.” “드림퓨처 오디션, 언제예요?” 드림퓨처라는 말에 정우의 눈이 찡그려졌다. 얘는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있지? ‘혹시 제작진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아나?’ 이 또한 KMB에서 신경을 쓰는 드라마 중 하나다. 투자가 많이 들어갔다는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도전적인 드라마였으니까. “앞으로 한 달 뒤. 근데 너 이미 영화 찍고 있잖아?” “제 분량은 다 찍어서요.” “아, 그래서 홍보 나왔다고 했지.” 정우는 그렇게 말하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슬쩍 서연을 보았다. 표정은 늘 무표정해서 무슨 의도로 물은 건지 알기 어려웠다. “왜, 너도 나오게?” “네.” “…….” 그런 서연의 말에 정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야, 박정우는 그 드림 퓨처의 메인 남주인공이었으니까. 드림퓨처는 여러 젊은 배우들이 등장하고, 각각 커플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 가장 큰 비중을 가진 게, 박정우가 맡은 ‘김시환’ 역과. 그 커플링이 될 ‘송소하’ 역. ‘설마, 송소하 역을 노리는 건가?’ 박정우는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연화공주 때 이미 함께 연기를 했었지만, 그때는 아직 어렸다. 성장한 서연과 로맨스 연기를 한다는 건…… 박정우는 미처 생각도 못 했던 것. ‘한 달 뒤라. 조하린 역의 경쟁률은 얼마나 될지 걱정이네.’ 물론 서연이 노리는 건, 박정우와 커플링이 되는 송소하 역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중 비중이 크지도 적지도 않은 조하린 역. 은근히 호감이 가는 귀여운 캐릭터라 비중에 비해 큰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다. 현재 서연이 에서 맡은 차서아 역과는 정반대되는 느낌의 캐릭터다. 차서아가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라면. 조하린은 그와는 정반대. 캐릭터 설정상 남들보다 배는 강렬하게 감정을 느끼는 캐릭터였으니까. 감수성이 뛰어나고, 활발하고 귀여운 인물. 솔직히, 서연으로선 조금 자신이 없었다. 차서아와 반대의 캐릭터성을 지닌다는 건. 서연에게도 동일하게 해당하는 말이었으니까. ‘그래도.’ 서연은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었다. 처음에 마음먹은 건 광고로 받은 4억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배우라면…… 응당 거쳐 가야 할 길이었다. 언제나 한 가지 캐릭터를 고집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연기만 해선 안 됐다. 변주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배우에게 꼭 필요한 능력. ‘송소하 역은 경쟁이 치열할 텐데…….’ ‘조하린 역은 조금 널널하겠지?’ 그런 둘의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둘째 날이 마무리되었다. ***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드디어 한국이네요.” 2박 3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이거, 방영되면 꽤 인기가 올라가겠는걸.’ 신 PD는 생각했다. 솔직히 처음 에서 영화홍보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무리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첫날은 그렇다 치더라도, 둘째 날과 셋째 날. 미션에서 보여준 서연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연의 말끔한 하얀 피부가 보였다. 2박 3일 동안 뙤약볕에 있었음에도 전혀 타지 않은 맑고 하얀 피부! ‘화장품 광고 찍었다고 했었지.’ 심지어 방하윤도 그런 서연의 피부가 신기했는지 화장품 뭐 쓰냐고 묻는 장면이 잡혔다. 물론 방송상 브랜드는 말하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었지만. ‘이게 방송에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질 터.’ 이래저래 화제의 중심이 될 건 자명한 일이었다. 거기다, 하나 더. 카메라는 여전히 박정우와 서연을 잡고 있었다. 이래저래 얽히는 일이 많았던 터라, 마지막까지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촬영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돌아가냐?” “네. 또 일이 있어서요.” “일?” 정우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얘는 무슨 일이 항상 있는 걸까. 궁금하다는 듯 묻는 정우의 말에, 서연은 드물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네, 저 오늘 생일이거든요.” “…….” 그런 서연의 말에, 정우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