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친해져야 한다, 우리 아들.」 한국 백연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의 교수 이혁수. 그의 아내인 길수진은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보렴. 네가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그녀는 이유주의 사진을 아들인 이민혁에게 보이며 말했다. 「몰락한 입시 코디네이터의 딸. 그런데 얘 머릿속에는 지 오빠의 포폴이 전부 들어있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어떻게 해야 백연대 의대의 수석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 아는 거야.」 「엄마, 나는.」 「알아, 우리 아들. 네가 이 애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거. 민서에게 들었어. 오늘 싸웠다며? 내일 가서 꼭 사과해.」 「엄마!!」 이민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아들의 외침에, 엄마인 길수진은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고요한 기색에, 열을 내던 이민혁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그럼, 조금만 더 잘하지, 그랬니.」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이민혁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엄마가 이렇게 하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진작 열심히 했으면 얼마나 좋니. 부끄러워해야지. 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더구나. 그런 애야. 그런 애를 상대로 우리 아들이 이길 수 있겠어?」 심지어 이유주가 나온 중학교는,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가는 이 의 안. 백연 중학교와 얼추 비슷한 수준의 중학교였다. 그런 곳에서 1등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인물. 「심지어 입학생 대표로 나온 것도 이유주였다지.」 즉, 성적에서 완전히 졌다는 말. 그런 어머니의 말에 이민혁은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의사는 해야지. 아들.」 그런 어머니의 말에, 이민혁의 머리가 아주 천천히. 천천히 한 번, 작게 끄덕여졌다. 「그래, 착하구나. 내일 꼭 사과하렴. 민서에게도 말해둘 테니까.」 그리 말하곤, 길수진은 등을 돌렸다. 바닥을 노려보는 아들을 뒤로한 채. 「민서처럼만 해. 알았지?」 성적은 자신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성격 좋은 둘째. 이민서는 이미 이유주의 옆에 찰싹 붙어 다니는 중이었다. '밸도 없는 년.' 이민혁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 날. 이민혁은 첫날 마주쳤던 그 여학생. 이유주의 반으로 찾아간다. 이미 그의 옆에 찰싹 붙어있는 쌍둥이 여동생, 이민서를 보며 실소한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 「미안하다.」 그제야 이유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의아함. 그리고, 그 이유를 눈치챈 이유주의 눈가가 휘어진다. 그리고 입가에 지어진 조소. 「뭐를?」 「어제, 너한테 여기에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한 거. 네가, 입학생 대표인 줄은 몰랐지.」 이유주는 이 백연 고등학교에 있어 이물질이었다. 이 으로 지칭 되는 곳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간다. 선택받은 이들. 대한민국 상위 0.1퍼센트. 돈과 명예. 권력 모든 것을 지닌 이들이 이곳에 거주한다. 그런 와중, 외부에서 온 신입생. 당연히 대부분 곱게 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 마치 계급이라도 있는 것처럼, 천민과 같이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다가가는 이들이 있었다. 민서처럼.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안 알려줘.」 이유주는 천천히 일어나며 이민혁의 가슴팍을 검지로 누르며 말했다. 「우리 오빠의 포트폴리오.」 그 말에, 이민혁의 눈이 커진다. 곁에 있던 이민서도 입을 막으며 슬쩍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그것 때문이잖아, 나한테 사과하는 거.」 이유주는 그리 말하며, 민혁의 가슴팍을 누르던 손가락을 뗐다. 그리고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니 안 알려준다고.」 「너!!」 「하지만.」 이유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아예 비밀로 한다는 건 아니야.」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경쟁자였다. 모두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집안을 위해 공부하는 이들. 물론, 그중에는 어중이떠중이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렇게나 강렬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목적이야 뻔했다. 「나는 변덕이 심하거든.」 그런 이유주의 말에서 이민혁은 자신의 어머니인 길수진이 겹쳐 보였다. 그렇기에, 다음 그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대학은 가야지. 그래, 너희가 바라는 백연대학교. 학과 수석으로.」 「헛소리. ……기껏해야, 조금 아는 것만으로.」 「조금?」 이유주는 그 말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뚝, 하고 멈추며 말했다. 「나 작년 수능 풀어봤거든. 몇 점이었을 것 같아.」 이민혁은 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이유주가 가까이 가져가며, 웃었다. 「만점이었지.」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서 떨어져서, 주먹을 쥔 손에서 검지 하나만을 피고. 「전국 1등이라는 거야.」 묘한 긴장감 속에서, 이민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말에 부정했다. 전국 1등. 그런 허황된 말을 믿을까 보냐. 무엇 하나 보여주지 않고 입으로 떠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건 거짓말일 수도 있는 거잖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어. 어차피 앞으로 보게 될 테니까.」 어차피 고등학교에는 모의고사라는 게 존재한다. 만약, 이유주가 말한 대로의 성적이라면 절대 학교에서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아닌 척해도 선생님들이 알아서 티를 낼 테니까. 「성적만이 아니지, 내신도 관리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그렇지?」 마치 그 말은, 자신의 가치를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았다. 자신과 친해지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민혁은 깨달았다. 우리가, 그녀에게 성적을 얻어내려는 것처럼. 그녀도 목적이 있어, 이곳에 왔음을. 그리고 그 목적은 그 아비의 뜻을 따르고 있음을. 마치, 자신과 같이. 「그러니까, 우리.」 이유주는 생긋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친하게 지내자.」 그녀의 말에, 이민혁은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적어도 이 3년은. 그녀가 바로 이 백연 고등학교의 왕이라는 것을. 그렇게. 의 1화가 끝났다. *** - 그래서 대체 뭔 내용임? - 부자들이 뭐하러 성적에 신경씀?? 찐 부자들 성향을 모르나 보네 ㅋㅋㅋ - 근데 부자들도 자식 성적에 집착하긴 하자너 - 입시코디네이터 ㅋ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1화가 방영되고, 여러 잡음이 들려왔다. 설정 자체가 너무 과장되었다는 측면. 말도 안 된다는 것도 많았고, 지나치게 과장된 전개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 그래도 조금 볼 만은 하던데 - 이유주 재수 존나 없네 - 연기를 잘해서 더 짜증 남 ㅋㅋㅋ 그런 커뮤니티의 의견부터. - 그래서 누가 남주인가요??? - 이민혁;; 설마 얘가 남주 아니죠?? - 솔직히 공중파에 어울리는 드라마는 아닌듯.. 애들보는 만화 같아요 - 그래도 몰입도는 확실히 있던데. - 헐;; 저만 재밌었나요??? 전 진짜 재밌던데 주요 시청층이 많은 SNS에도 평가도 상당히 갈렸다. 재밌다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유치 하다거나 남주가 마음에 안 든다는 글들. 당연히 그런 평가를 본, KMB 드라마국의 분위기는 상당히 우중충했다. "아, 6퍼센트라니." 김일수 감독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필 오늘 촬영이 있는 날이라, 서연과도 만날 예정. '주서연 배우에게는 큰 충격일 지도 몰라.' 서연은 여태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어린 여배우가, 처음으로 받은 혹평에 멘탈이 부서지는 경우는 많았다. "현석아 정신 좀 차려. 그래서 촬영 안 할 거야?" "하지만…… 하아." 당장 오늘 촬영을 위해 온 다른 젊은 배우들만 봐도 그렇다. 이미 인터넷 반응을 보고 온 탓인지, 시청률을 듣기 전부터 멘탈이 부서진 게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촬영 날짜를 조금 조정할걸.' 김일수는 벌써 한숨이 나왔다. 1화 시청률 6퍼센트. 절대 낮은 수치는 아니다. 적어도 평타보다는 아주 조금 더 나은 정도. 문제는 이 정도 시청률이면 앞으로 오르는 것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다. 입소문도 사람이 봐야 나는 법. 6퍼센트는 딱 그 경계선에 서 있는 수치였다. "하필 그랜드 게임이 너무 잘 돼버려서." "맞아요. 이거 비교가 안 될 수가 없겠네." 꽤 나쁘지 않다지만, 말 그대로 나쁘지 않은 것뿐이지 좋은 건 아니다. 백태수 PD의 은 무려 두 배인 12퍼센트!! 경쟁작이 없다면, 반등이 될 확률이 높지만 바로 곁에 대박작이 있는데? 당연히 모두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안 좋은 일투성이구나.' 김일수는 아까부터 반쯤 실신해 있는 민세희 작가를 보았다. 오늘 시청률을 들으러 왔다가, 듣자마자 풀썩 쓰러져 저 상태였다. 크, 크게 기대는 안 해요. 라고 말했던 민세희지만, 역시 비참한 시청률에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가뜩이나 없던 자신감이 더 꺾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 "그, 그래도 제가 최근 보는 유튜버가 있는데. 그 유튜버는 후반 포텐이 기대된다고 홍보하더라고요. 그러니 아직 끝은 아닙니다. 끝은!!" 다른 스태프가 열심히 민세희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물론, 그 근거가 일개 유튜버인 건 우습다만. "일개 유튜버가 아니라 140만 유튜버라니까요!" "140만이면 좀 많네요?" "그, 그쵸그쵸. 원래 주서연 배우의 팬이라 꾸준히 주서연 배우 작품을 리뷰해 주신 분이에요. 거기다 주서연 배우 출연작의 시청률이나 관객 수를 거의 무당처럼 잘 맞춰서……." 뭐, 무당이라고 할 게 있나. 여태 서연이 출연한 작품은 딱 봐도 성공할 것들이었다. 한번 보기만 해도 성적이 대충 가늠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맞췄다고 해서 무당이라는 건 좀……. '그래도, 이번에는 좀 맞았으면 좋겠네.' 힐끗 보면 '봉식'이라는 유튜브가, 이번 분기. 아니 올해 패권은 이 드라마가 될 거라고 침을 튀기며 설명하고 있었다. 인터넷의 혹평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말. - 아이고 봉식아 - 아무리 그래도 하늘정원이 그랜드 게임을???? - ㅋㅋㅋㅋ ㄹㅇ 웃다갑니다 채팅 창의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오히려 과도한 팬심은 독이 된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봉식은 절대 아니라고, 자기가 보기엔 그렇다며 말하고 있었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분위기. "그래도 저렇게 팬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140만 유튜버쯤 되면, 나름 든든한 아군인 셈이었다. "아, 저는 오늘 오다가 백 PD님 마주쳤는데." "헉! 혹시 비웃지……는 않으시던가요?" "아뇨,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뭔가 잘 안 풀리나?" "설마요. 지금 제가 알기로 그쪽은 거의 축제 분위기던데……." 백태수 PD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이건 또 의외인 말이었다. "아, 주서연 배우님 오셨답니다." 촬영장에 서연이 도착했다는 말이 곧이어 들려왔다. 당연히 촬영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긴장한 얼굴로, 서연을 기다렸다. 그리고, 촬영장에 나타난 서연은. "안녕하세요!!" "?" 어쩐지 엄청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라면 담담했을 인사가, 오늘은 유독 들떠 보일 정도로. '오잉?' '멀쩡한데요?' '아니, 멀쩡한 걸 넘어서, 너무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평소처럼 인사하러 다니는 서연의 모습에 김일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청률을 아직 못 들었나? 아니면, 너무 낮은 시청률에 현실을 부정 중인가? "저, 주서연 배우님. 혹시 시청률은……." "아, 들었어요. 6퍼센트라면서요?" 그런데 들었단다. 들었는데, 저런 반응이라고? "제, 제 각본이라 6퍼센트도 안 나올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여태 찌그러져 있던 민세희가 기어 나오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가? 아니, 그럴 수가 있나? 그렇게 망할 각본이라 생각했는데, 제작에 참여했다고?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런 것 치고는 서연은 이번 드라마에 진심이었다. 이 드라마로 따로 하고 싶은 것도 있는 눈치였고. 서연에게선 굉장히 큰 분기점. 첫 주연작을 헛되이 낭비할 이는 절대 아니었다. '대체 뭐지?' 모두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하지만, 서연이 워낙 밝으니, 마치 여태 그들이 고민하던 문제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이 정도 시청률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에이, 설마요. 지금 그랜드 게임도 있는데." "뒤집으면 신이지." 배우 하나가 뒤집기엔 너무나 큰 차이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각본이 도와줘야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1화에서 박살 난 각본이? 모두가 민세희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민세희는 다시 깨꼬닥. 다시 기절해 버렸지만. '1화가 6퍼센트라면, 2화는 몇이 나올까.' 반면 다른 이들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서연은 그저 기분이 좋았다. 어제 밤새 사인 연습을 했을 정도로. '본래 2화의 시청률은 4퍼센트.' 하지만, 이미 6퍼센트인 지금은, 몇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방영된 2화. [뒷심 발휘한 , 시청률 10퍼센트로 상승!!] [그랜드 게임의 턱밑까지 시청률을 좇으며, 반등에 성공?] 본래라면 4화에서부터 시작되었을 역주행. 하지만, 서연은 2화 시청률을 보고 깨달았다. 이번 자신의 은, 역주행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