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봉식입니다!" 140만 유튜버 한봉식은 웃는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90도로 인사했다. 구독자 140명부터 변하지 않은 한결같은 인사. 구독자 수와 다르게 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이래저래 시청자들에게 어필이 되는 편이었다. "이번에 제가 기대하고 있던 드라마 예고편이 오늘 떴는데요." - 아 또 주서연 코인 타려고? - 솔직히 40만을 넘게 올려주셨는데 타야지 - 하늘 정원은 잘 모르겠던데 - 근데 노래는 좋던데 가수가 누구지?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에 봉식은 대체 어떤 드라마이기에 '잘 모른다.'라는 반응이 나올까. 드라마의 내용이 아닌, 노래가 언급된다는 건 그만큼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럴 수가 있나?' 봉식은 영화나 드라마 위주로 리뷰하는 유튜버. 하지만, 다른 방송을 안 보는 건 아니었다. 특히 주서연. 봉식은 서연에 대한 방송은 빠짐없이 보는 편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서연으로 조회수가 왕창 오른 탓에, 꿀을 빨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최근엔 아니었다. 진심으로 봉식은 서연의 팬이 된 상태였다. 정말로. '지난 팬 사인회에 가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었건만.' 심지어 도 재밌게 보았던 봉식은 지난 팬 사인회에 가지 못했던 게 너무 아쉬웠다. 아무튼, 봉식이 서연의 팬이 된 이유는 단순히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선구안. 서연은 기묘할 정도로 선구안이 좋은 편이었다. 그중에는 서연이 연기력으로 커버한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 작품이라는 건 개인의 연기만으로 흥행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서연의 연기력은 뛰어났지만, 그만큼 작품이 뛰어났기에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물론 봉식은 서연의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상으로 그녀의 선구안을 높이 평가할 뿐. '그런데 이번 하늘 정원이 미묘하다고?' 이번 이 주서연에게 가지는 의미는 굉장히 컸다. 여태 악역, 그리고 비중 있는 조연. 뭐, 의 경우엔 주연으로 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주인공'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 다르다. 그건 서연이 처음으로 주인공 역을 맡게 되는 드라마. 배우에게 있어, 처음으로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되는 작품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그렇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작품에서 대차게 망해봐라. 당연히 PD들이나 감독들 입장에선 조금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한데.' 봉식은 서연의 선구안을 인정하는 만큼,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시에 궁금증도 함께 생겼다. 대체 어떻길래 이런 반응인 걸까. "우선 한 번 보겠습니다. 이번에 우리 주 배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 봉식아 넌 예능 리뷰는 안 하냐? - 이번 황금 오리새끼 재밌던데 "예예, 안 합니다. 저는 영화랑 드라마 리뷰어잖아요. 제가 주서연 배우 팬이지만, 예능은 아니죠." 물론 봉식은 주서연 편을 전부 다 봤다. 그것도 방송도 미루고 본 방으로. '주서연 배우 가족들은 색깔이 좋단 말이지.' 그래서 주서연 같은 딸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아버지인 영빈이 레이윌 게임즈의 개발자라는 건 의외였지만. 한 때 레이윌 게임즈의 게임을 열심히 했던 봉식으로선 참 묘한 기분. 아무튼. "이거, 단순한 청춘 드라마가 아니네요?" 재생된 의 예고편. 현재 공개 이틀 차. 그 조회수는 이제 3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좋냐면, 그냥 무난한 편이다. "최근 KMB에서 공개된 월화 드라마 예고편 조회수가…… 이미 80만이 넘었네." 봉식의 지인 중에는 KMB에서 일하는 이도 있었다. 최근 내부적으로 드라마국을 나눈다느니 하며, 상당히 시끄러운 모양. 특히 이번 월화와 수목 드라마는 그 내부 경쟁에 상당히 중요한 지표인 모양이다. 현재 성적만 보면 수목 드라마인 이 상당히 떨어지는 느낌. '그랜드 게임인가.' 현대인의 황금 만능주의를 꼬집는 드라마. 거기다 최근 가장 핫한 여배우 고미은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대대적으로 어필한 상태. - 솔직히 그랜드 게임이 더 재밌어 보임 - ㄹㅇ ㅋㅋㅋ - 솔직히 학생들이 주인공인거 개노잼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봉식은 예고편을 이어 리뷰했다. "생각보다 색감이 굉장히 칙칙한 느낌이네요. 이쪽도 힘은 썼어요. 마치 영화 같은 느낌이네." - 한쪽은 황금만능주의고 이쪽은 학벌임 - 근데 이쪽은 딱 봐도 남주가 미묘함 그 말대로였다. 의 캐스팅은 대부분을 젊은 배우 위주. 당연히 시청자들에게 낯선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낯설다는 반응은,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는 드라마에 있어 굉장히 위험한 평가였다. "드라마가 확실히 좀 낯선 느낌입니다. 이게, 보통 1화에서 얼마나 시청자를 몰입하냐가 중요하거든요. 예고편만 보면 그게 잘 느껴지지 않는……." 봉식은 한창 이야기하던 중 말을 멈췄다. 예고편의 내용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연기파로 유명한 어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작중 중심 내용. 말하자면 '이유주'라는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국내 최고의 대학인 '백연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이유주가 가진 공부법. 말하자면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자식들을 이용해 접근시킨다는 그런 내용이다. - 백연대가 대충 서울대임? - 솔직히 서울대 보내려고 저러는 거면 좀 짜치지 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러했다. 하지만 봉식은 계속 가만히 그것을 보았다. 2분의 예고편 중, 앞의 1분은 그런 '동기'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남은 1분. 갑자기 청량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며, 주인공인 이유주가 등장한다. 「오빠가 백연대 수석이라 들었어요. 그것도 의대.」 「네.」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생각했던 분위기와 달랐다. 묘하게 스릴러 느낌이 감도는 두 여성의 대화. 특히 이유주의 눈빛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봉식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의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눈빛이었으니까. 「대단하죠. 정말로.」 미세하게 입술을 비틀며. 「민서. 친하게 지낼게요.」 나직한 그런 이유주의 목소리와 함께 예고편이 끝났다. 맑은 목소리가 담긴 노래가, 오히려 섬뜩하게 다가오는 그런 예고편. - 연기는 진짜 좋긴 하네 - 근데 정확히 뭔 내용인지 모르겠음 - 로맨스 없어서 난 좋음 - ㅋㅋㅋ공중파에서 로맨스없으면 걍 망하지 그런 반응을 보며, 봉식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 "이게 이번 분기 패왕이겠는데요?" - ? -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네, 아, 전 진짜 재밌게 봤습니다. 이게 왜 조회수 30만이지?" 월화 드라마 에 대한 리뷰도 이미 진행한 봉식이다. 그때는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시청자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 또또또 주서연 팬심으로 억빠하네 - ㅋㅋㅋㅋ 봉식이도 이제 한물갔냐? 물론 봉식은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은 이해했다. 이번 의 예고편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말하자면 조금 미묘하게 예고편이 나온 건 맞다. 하지만. "종편 드라마 느낌이네요." - 그럼 안 좋은 거 아님? "안 좋은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묘하게 참신하게 다가오는 게 있어요. 본래, 낯섦과 참신함은 한 끗 차이거든요. 예고편은 이중 전자가 강조된 거죠. 하지만…… 본 방송 때 참신함으로 어필이 된다면." 봉식은 잠시 말을 골랐다. 시청률 맞추기는 그에게 있어 연례행사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번에는 솔직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올해 나오는 드라마 중에, 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에 걸겠습니다." - 미쳤냐? 안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기타 하나 들고 홍대 가서 라이브 한번 때리죠." - 진짜임??? 나 이거 캡쳐함 ㅋㅋㅋ - 봉식이 억빠도 정도껏해야지 ㅉㅉㅉ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에 봉식은 과장된 반응을 보이며 웃었다. 하지만, 이번 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오히려. '이 이 공중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지도.' OTT 시장으로 관심이 넘어가는 현 상황에서 그 관심을 일부 나마 공중파로 돌려줄 드라마. 봉식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140만 유튜버인 봉식의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뒤늦게 입소문이 탔기 때문일까. [ 예고편. 뒤늦은 뒷심으로 일주일 만에 조회수 100만 달성!] [의 삽입곡을 부른 가수는 누구? 관심 집중!] 슬금슬금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 "하늘 정원 예고편 봤어?" "노래 좋던데. 그거 드라마 시작하면 음원 뜨나?" "느낌만 보면 아이돌은 아닌 것 같은데, 신인 가수인가?" 학교에 가면, 의외로 여학생들 틈에서 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아무래도 보다 높은 연령대를 노린 보단, 아무래도 쪽이 어필이 된 모양. 뭣보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같은 학급에 있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누가 말 좀 걸어봐.' '가수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알 거 아냐.' '하지만~.' 서연은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론, 서연은 그런 여학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였다. '그거 난데.' 나라고!!! 진심으로 그리 말하고 싶었다. 당장 앞으로 뛰쳐나가 교탁을 두드리고. "사실 제가, 이번 하늘 정원 OST를 불렀습니다." "와 대단해!" "믿고 있었다고!" ……물론 그렇게까지 뇌절할 만큼 서연의 성격은 적극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심정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이미 의 이민화 PD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서연 양이 부른 OST가 너무 좋다고 다들 호평이에요. 나중에 저희가 좀 더 드라마틱하게 공개하려고 하거든요." "드라마 틱하게요? 어떻게요?" 갑자기 짠! 제가 불렀습니다! 하는 정도로는 딱히 큰 임팩트가 없을 것 같은데. "예능이랑 연계할까 생각 중이에요. 아아아, 맞네. 서연 양 스케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최근 엄청 바쁘죠?" "네, 조금 그렇긴 한데. 종류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근데 예능이라. 솔직히 예능은 한동안 쉬려고 했지만, 이게 또 드라마와 관련된 거면 말이 다르긴 하다. "우선 조금 고민 중이거든요. 서연 양의 노래 실력도 많이 올랐고. 이걸 대중에게 어떻게 보여주냐…… 하고 고민도 많았어요. 뭣보다 저희 심 PD님 아시죠? 얼마나 서연 양 데려오라고 성화인데요." 심경훈 PD. KMB에서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의 PD였다. MDC의 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본 그는 최근 이민화 PD를 아주 들들 볶고 있었다. 주서연 배우, KMB 예능 하나만 출연하게 해주세요!! 라고. "……뭐, 물론 심 PD님의 억지 때문은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하늘정원, 그리고 서연 양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함이에요." "근데 노래는 나희 언니……, 아니 여름 소녀도." "그쪽은 아무래도 아이돌이니 노래는 당연히 잘해야죠. 요즘 아이돌에 대한 요구 수준도 높아지니까요." 그건 맞긴 하네. 아이돌도 엄연히 가수지. 생각해 보면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말도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마치 연기파 배우같이.' 연기하는 게 일인 배우가, 연기 실력이 좋다고 연기파 배우라는 말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어떤 예능인데요?" "서연 양도 들어봤을 거예요. 최근엔 죽기는 했는데, 여전히 홍보로는 썩 괜찮거든요." 그렇게 말하니, 서연도 하나 생각나는 예능이 하나 있었다. 최근 좀 시청률이 죽었지만, 꾸준히 기사도 나오고 보는 사람들은 꾸준히 보는 예능. "가면 싱어요." *** "여희 언니." 이제는 거의 10년 넘게 함께 해온 매니저의 말에, 부스스한 인상의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모습에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하는 꼴은 20대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언니다. 결혼은 대체 언제 할 건지. 아니, 마흔이면 물 건너갔나? 하지만 연예인이고, 외모도 여전히 서른 초반 정도로 보이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저런 부스스한 안색과 달리, 가히 자기 관리의 화신 같은 사람이니까. 생활은 게으르지만, 이러나저러나 외모적으로는 열심히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어떤 예능을 보고 자극 받았는지, 지금처럼 팩도 하고 아주 열심히였다. 듣기로는 피부과도 예약했다던가. '수아수아 그랬던 것 같은데.' 근데 수아가 누굴까. 연예인인가? 다른 연예인한테는 관심도 없던 여희가 관심을 가지니 조금 궁금한 부분이다. "근데 가수가 노래를 해야죠." "나 앨범 나간 지 얼마 안 됐어." "솔로 가수는 요즘 방송 열심히 안 하면 금방 잊히는 거 몰라요? 아이돌들 땜에 설 곳도 없어요." 그건 나도 알지. 여희라 불린 여성은 하품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매니저가 저런 말을 한다는 건 뭔가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은퇴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냥 모아둔 돈으로 여행이나 다니며 살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어떤 예능을 보지 않았다면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언니한테 예능 섭외가 들어왔어요." "아, 진짜? 감 없네." "감이 없어서 섭외된 거니 꼭 출연해야죠." "얼씨구." 말 참 밉살맞게 하네. 여희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매니저를 보았다. "그래, 뭔데?" "가면 싱어요." 아, 그거 가수가 나가도 되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실력파 가수들은 이미 죄다 나간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최근엔 묘하게 사고 치고 은둔했던 연예인들의 복귀 프로그램이 된 느낌이다만. 그래서, 전처럼 실력이 뛰어난 가수들이 나오지 않아 시청률도 점점 떨어지는 예능이었다. "나가지, 뭐." "헛, 진짜요? 당연히 거절할 줄!" 매니저는 그렇게 말하곤, 문득 방 안에서 어떤 노랫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구간 반복인 듯, 계속해서 목소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신인이에요? 목소리 좋네." "어, 응? 신인인가? 신인이긴 하지?" "그래요? 근데, 이거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물론 매니저는 이 노래를 어디서 들었는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그야 2분 남짓 한 드라마 예고편에 삽입된 노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