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이랑 잔다니까 어쩔 줄 몰라서는 울상이 된 서예린의 모습이 귀여웠고. ‘똑같네.’ 자신이랑 똑같이, 여유 따위 없이 질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당황해서는 아무 말이나 내뱉는 서예린은 귀여웠다. 그래, 같은 여자인 유아린이 봐도 귀엽다는 감상이 절로 튀어 나왔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안타깝지만 유아린은 그런 걸로 흔들리거나 입장을 번복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일어나, 이 새끼야.” 바로 고개를 돌려서 김우진에게 짜증 내자 벌떡 일어난 녀석. 맞고 죽을 것처럼 굴었으면서 정작 어정쩡하니 서 있는 걸 보니 그냥 호들갑 떨었던 모양. “크흠.” 어색하게 헛기침하는 김우진을 데리고 그대로 떠나려는 유아린이었고. “자, 잠시마안!” 어떻게든 붙잡아보려는 서예린이 다급하게 뒤따라온다.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유아린의 주변을 맴돈다. “아린아아! 처, 처음이잖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너, 그런 말 잘도 한다?” 유아린이 아는 서예린은 이런 얘기하는 걸 상당히 꺼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도대체 애를 어떻게 버려놓은 거야?’ 얼마나 음란한 생활을 했으면 서예린이 성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 싶어 김우진을 노려본다. 물론, 김우진의 입장에서는 꽤나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너도 했으면서 나한테는 하지 말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면서 유아린이 노려보자 서예린도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 머뭇거렸으나 물러서진 않았다. 정말로 유아린이랑 김우진이 관계를 가질까 봐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예린이도 사람이지.’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었다. 절대적인 자신감이라는 건 없다. 자신에게는 강한 척을 했었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이 툭 떨어지니 질투할 수밖에 없겠지. “봤지, 예린아. 협력 같은 건 불가능해.” 김우진의 팔을 꽉 잡으면서 유아린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 새끼 내가 가질 거니까. 너는 다른 좋은 사람 찾아.” “아, 아린아? 오늘 방에 들어오는 거지? 응? 나, 나 기다릴 거예요? 치킨 시켜두고 기다릴 거예요?!” “닥쳐, 언니 오늘 여자가 된다.” “아린아아아아! 그,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응? 처, 처음이니까 내가 옆에서 같이 해줄게!” “미쳤니?” 울먹이고 있는 모습에서 김우진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건 알겠지만 미친 소리까지 지껄이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저기요?” 그때, 옆에서 묵묵하니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든 김우진. “제 의사는요?” 손을 들고 인간으로서 나름의 권리를 주장하는 김우진이었으나. “할 거면서 뭘 튕겨.” “너는 그냥 하자면 하잖아아!” 무슨 짐승처럼 다뤄지고 있는 본인의 취급에 “시불년들.”이라 중얼거리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걸로 봐서는 욕은 했지만 정작 틀린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린아? 대리님이 부르시는데?”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으나 다행인 건 서예린이 아직 일하는 중이었다는 점. 그녀를 찾으러 온 같은 알바에게 불린 서예린은 결국 울상이 되어서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서아와 한봄도 빵을 다 샀는지 돌아왔고, 이제 퇴근해도 되는 시간이었기에 다 같이 돌아가기로 했다. * *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나는 진지하게 고민에 잠겨 있었다. ‘정말로 하는 건가?’ 유아린이 말했던 오늘 섹x 할 거라던 발언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이런저런 경험을 해봤다고 해도 어쨌든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 미묘한 긴장감을 머금은 채로 슬쩍 유아린 쪽을 확인하니, 녀석은 창가에 턱을 괸 채로 바깥을 보는 중이었다. 매일같이 보는 풍경일 텐데 뭘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지. ‘어색하네.’ 사실 진짜로 하자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피임구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어도 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우리가 머무는 곳이 호텔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방 하나를 더 잡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지금 성수기라서 골드원 호텔 값이 진짜 말도 안 되게 비싸다. 돈을 벌러 온 거였지 돈을 쓰러온 게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2학기 들어서면 진짜 쪼들려 살아가게 될 텐데 허튼돈을 쓰고 싶진 않았다. “야.” 고민 중인 나를 힐끔 쳐다보며 유아린이 물어왔다. “지난번에 예린이랑은 어디서 했냐.” 나랑 같은 걸 고민하고 있었구나. “……우리 숙소에서.” “숙소?”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묻는 유아린. 오히려 예상하지 못해서 그런지 똘망한 눈으로 순박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룸메들 있잖아.” “그, 처음 할 때는 아무도 없었거든.” “아아.” 어떻게 상황을 잘 잡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뭔가 의아함을 느꼈는지 눈가가 찡그려진다. “처음 할 때는? 그게 뭔 소리야?” “……이거 꼭 말해야 하는 거야?” 솔직히 좀 부끄럽기도 하고, 서예린이랑 나의 프라이버시 같은 느낌인데. “…….”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유아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찔러본다. “막 룸메들한테 안 들리게 몰래 했다 그런 건 아니지?” “아닌데요.” “이 시발, 맞네.” 아니 뭐야. 어떻게 알았지? 발끈해서는 입술을 앙 물고 나를 노려보는 유아린. “너, 나랑 예린이 두고 고민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그걸 이용하진 마라.” “무슨 소리야.” “예린이한테 이상한 거 주입하지 말라는 소리야. 괜히 나랑 경쟁 부추겨서 억지로 네 성적 취향을 충족시키지 말라고.” 이건 진짜 억울한데. 베란다에서 하자고 했던 것도 서예린이 먼저였고, 애들 왔어도 소리 죽이고 하자고 꼬드긴 것도 서예린인데. ‘섹x좌를 모르니까 이런 말을 하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서예린의 본성을 모르니까 이런 말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억울하기도 했으나. 막상, 그럼 너는 즐기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찌를 때마다 억지로 신음을 삼키면서 발버둥 치던 서예린의 반응은 맛있다 못해 달콤했으니까. 특히나 못 버티겠다면서 빼려고 허리를 움직일 때 강제로 붙잡고……. “크흠.” 상상하면 안 됐는데. 막상 그때를 떠올리니 억울함이 좀 사라진다. 나도 많이 즐기긴 했다. ‘생각할수록 안 억울하네.’ 공범이었음을 쿨하게 인정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는데. 그런 내 표정을 보면서 눈을 작게 뜬 유아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예, 예린이한테 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 알았지?” “방금 네가 한 말 잊었냐?” 경쟁심리 부추겨서 억지로 시키지 말라고 해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지만 유아린은 내 어깨를 한 대 툭 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닥쳐! 예린이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거야!” “…….” 붉어진 얼굴로 서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 유아린은 뭔가 부끄러웠는지 힐끔 시선을 아래로 내렸는데. “왜 세우고 있냐.” 바지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내 하반신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를 노려본다. 지가 세워놓고. 사실 서예린이랑 했을 때를 상상했을 때 힘이 좀 들어갔는데 유아린의 고백이 추가타를 날렸다. “안 섰는데.” 일단 발뺌한다. “저건 뭔데 그럼.” “호신용 총이야.” “딱총이네?” 이 시발 년이? 풋 하고 비웃으면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유아린에게 나름대로 변명을 해본다. “눕혀둬서 그런 거임.” “눕혀? 뭔 소리야.” “그런 게 있다.” 뭔가 의아함을 느낀 유아린은 이제는 아예 탐구하듯이 빤히 쳐다본다. 그것에 화답하듯 나도 모르게 힘을 줬는데. “……이거 왜 꿈틀거리냐?” 손가락으로 내 물건을 가리키면서 묻는 유아린에게 나는 이마를 탁 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쳐다보니까 부끄럽다잖아. 부탁이니까 제발 다른 곳 봐라.” “만져 봐도 되냐?” 되겠냐. “얼마든지.” 어머 시발. 이놈의 입이 문제라고 손바닥으로 입을 툭툭 때리고 있자니 유아린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따, 딱총……은 아니네.” “샷건이라고 해주라.” “그 정도는…….” 나쁜 년.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는데 바지 안에 있어서 그런지 금방 익숙해져서는 모험이라도 하듯 손가락이 이곳저곳 탐색한다. “방아쇠는 어디 있어?” 슬슬 여유로워졌는지 씨익 웃으면서 능글맞게 물어오는 유아린에게 나는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며 버스 천장을 올려다본다. “펌프샷건이라 위아래로 움직여야 장전됨.” “흐흫, 김우진 미친 새끼.” 조금 편해졌는지 유아린은 콧소리를 흘리면서 계속 만지작거렸는데. “야, 오늘 진짜 할 건 아니지?” 여기서 더 하면 진짜 못 참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묻자 유아린도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마 서예린한테 지기 싫어서 일단 내지르고 본 것이겠지. 오늘 진짜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 거다. “고, 고민 좀 해보고.” “뭔 고민이야. 그렇게 걱정하는 거 보면 안 하는 게 맞아. 괜히 이상한 자존심 세우지 마라.” “…….” 내 말에 흔들리는지 유아린은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도 아까 서예린 때문에 너무 급발진 했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서예린이 문제다. “예전에 최이서도 그랬거든. 지금 하면 서예린 때문에 초조해서 하는 게 아니…… 아아아악!?”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이쪽을 쳐다봤으나 잠깐이었을 뿐이다. “뭔데 김우진.” “왜 그래?” 뒷자리에 있던 이서아와 한봄이 물어왔으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아, 아파아!”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는데, 유아린은 씩씩거리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딴년 얘기를 참 쉽게도 하시네요?” “아, 아니 그냥 그런 일…… 알았어! 미안해! 진짜, 진짜 아파!” 최대의 약점을 잡힌 탓에 발버둥 치며 고통을 호소하자 유아린은 이를 으득 물곤 선언했다. “나 비어있는 호텔 방 카드키 하나 있어.” “그, 그게 왜 있으세요?” 좀 놔주면 좋겠다. 샷건 부러져서 딱총 될 것 같아. “부회장님 비서분이 주고 가셨어. 혹시 필요하면 쓰라고.” 형수 진짜. 그럴 거면 나를 줘야지 왜 유아린한테 준 건지 모르겠네. “뽑히기 싫으면 따라와, 씹새꺄.” 인질을 잡고 강압적으로 선언하는 유아린에게 나는 울상이 된 채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