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요망한 서예린 때문에 하반신이 빳빳해져서 잠시 진정될 때까지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어쨌든 편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딸칵. 푸슉. 시킨다고 시킨다고 하다가 뒤늦게 시킨 에너지 드링크를 한 모금 마시면서 편집하고 있자니 정말 무슨 전문가가 된 기분. 30분 정도 되는 단편영화가 촬영도 촬영이지만 편집도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는 걸 알아냈다. 농담 아니라 재촬영이 몇 개 필요할 것 같았는데 주변 풍경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로 넘어가는 장면이나, 따로 쓸 배경 같은 게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아예 제목도 따로 타이포를 제작할 생각인데 놀랍게도 이건 즉석으로 해결되었다. "어때요? 이렇게?" "오, 역시 디자인 학과." 다른 친구분 하나가 디자인 학과였던 덕분에 옆에서 냉큼 제작해 주셨다. 본인 태블릿이 있어서 그걸로 그려서 즉석에서 나한테 메일로 쏘아준 걸 제목으로 떡하니 박자 마음에 쏙 든다. 이걸로 도입부에 몇 초는 날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디자인 학과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고딩 때부터 이런 걸 즐기긴 했죠." "진짜 예뻐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도와준 게 고마웠기에 나는 냉큼 주문 화면으로 들어가서 묻는다. "하나 사드릴게요. 아무거나 드세요." "나는 미숫가루!" "나는 짜파구리 먹을래." 왜 이상한 년들이 끼어드는 건지 모르겠다. 유아린과 서예린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옆에서 달려들었으나 가볍게 무시해 준다. "어떤 걸로 드실래요?" 내가 되묻자 디자인 친구분은 해맑게 웃으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리켰다. 바로 시키려는데 마우스를 잡은 내 손 위에 포개어진 서예린의 손. 억지로 힘을 주면서 추가로 주문하게 만들려고 한다. 아무리 내가 허접이라고 해도 여자 하나한테 힘에서 질까 싶었는데 몸을 불쑥 내민 유아린까지 가세하니 생각보다 버거웠다. "꺼, 져…… 이것들아!" "시켜줘!" "나, 미숫가루!" 미친년들이 왜 이렇게 뻐팅기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있으면 정말 마우스의 주도권을 뺏길 것 같았기에. 일단 내 앞에 훤히 보이는 유아린의 허리를 손으로 쥐며 힘을 준다. "흐얏?!" 깜짝 놀라서 몸을 뒤튼 유아린. 덕분에 아까 열었던 에너지 드링크가 엎어졌다. "야! 흘렸잖아!" "변태 색갸!" "아, 유아린 진짜. 개 폐급이야. 넌 군대 가지 마라." "미친놈인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팔짱끼듯 자기 몸을 끌어안은 유아린. 쟤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인가. 다행인 건 키보드 같은 장비들에 흘리지 않았다는 거. 냉큼 행주를 받아온 서예린이 책상 닦는 걸 도와준다. 이럴 때는 행동이 재빠른 게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다. 디자인과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의자를 돌려 본인 자리로 다시 돌아갔고. 유아린은 씩씩거리면서 발로 내 의자를 한 번 찬 다음 고개를 휙 돌려 아까 보던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거 줘. 내가 닦을게." "아냐, 내가 닦을래." 일부러 몸을 쭉 빼서 내 자리를 닦아주는 서예린. 이렇게까지 해줄 일인가 싶었는데. 서예린은 행주랑 같이 가져온 일회용 티슈를 뜯어서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린다. "여기도 묻었잖아." "……!?" 나도 모르게 몸이 퍼뜩 경직됐다. 왜냐면 서예린의 손이 닿은 곳이 내 하반신이었으니까. 정확하게 고간 쪽에 손이 간 서예린은 물기 하나 없는 내 바지를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 점점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는 게……. '아, 아니지. 이게 아니야.' 이러면 큰일 난다. 여기 공공장소인 데다가 옆에는 유아린까지 있다. 자칫 잘못하면 편집 때려치고 서예린을 데리고 근처 모텔이라도 들어갈 것 같아서 멈추려는데. "……."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슬쩍 고개를 돌리자, 진짜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유아린이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소중하다면서 열심히 닦아주고 있는 서예린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손이 쉬질 않는다. "아……." 미약한 탄성과 함께 고혹적이고 뜨거운 숨결이 바지에 닿는 게 느껴졌으나. 나는 얼른 서예린의 뒷목을 잡으면서 바로 당겼다. "초크슬램!" 원래 반대로 잡긴 해야 하지만 뭐가 됐든. 일단 서예린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아쉬워하던 서예린은 이제야 유아린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곤 부끄러움에 모니터 쪽으로 얼굴을 쭉 내밀었다. 얘가 스위치가 들어가면 막 나가는데 막상 그게 꺼지면 평소의 청순한 척하는 서예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게 열 받는다. "시발?" 드디어 한마디 해주신 유아린은 벌떡 일어나서는 나한테 달려들었다. 턱! 가녀린 유아린의 손이 내 목을 잡고는 그대로 뒤로 내리친다. "초크슬램 씨발 놈아!" 의자 목받이에 머리가 부딪치면서 등받이가 쭉 뒤로 내려간다. 의자가 좋은 거라서 그런지 거의 180도까지 내려간 기분. 간이 초크슬램을 경험했으나 아프진 않았다. 다만, 유아린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은 채 이를 으득 물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개새꺄, 여기 공공장소야. 애들도 있고." "그건 네 친구한테 말…… 컥! 죄송합니다!" 변명을 차단하려 유아린이 힘을 줬기에 바로 꼬리 내리자 녀석은 한숨을 내쉬면서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아오, 짐승 새끼." 그러니까 그건 서예린한테 말하라고. 잔뜩 화가 났는지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돌아간 유아린. 나는 목덜미를 추스르며 다시 편집하려고 했는데. "저기, 이런 디자인은 어떠세요?" 디자인과에서 재미가 들렸는지 다른 글귀로 타이포를 제작해서 주셨는데. "……잠시만요." 아래에 피가 쏠린 게 아직 풀리지가 않아서 좀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집에 갈까.' 가서 텐가 사용후기나 적어볼까. * * * "하암." 어제 PC방에서 밤을 새운 다음이라 그런지 일요일에는 늦게 일어나 버렸다. 아침 일찍 주희 선배한테 보냈던 영상은 최고라면서 극찬을 받았고, 오늘 운동할 거냐고 묻는 최이서에게 싫다고 답장한 다음. 간단하게 아침을 식빵으로 때우면서 대나무숲을 보는 중이었다. 분명 매일 보는데 묘하게 오랜만인 느낌이랄까. 주말이라서 그런지 종교 동아리 쪽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 익명77: JLY!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동방 오면 즉시 가입 가능. 십자가 증정. 학년 상관없음(。♥‿♥。). - 익명88: 나무아미타불. 불교수행회에서 언제든 모시겠습니다. 매주 금요일 염불수행, 매달 한 번씩 등산, 오늘 마음공부 하는 날. - 익명185: 무교동아리에서 모든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신은 없습니다. 심심하면 개독이랑 빡빡이들 까면 됩니다. ↳ 익명77: 사탄아 물러가라! ↳ 익명88: 나무아미타불. ↳ 익명185: 쉽죠? 바로 발작하는 거 보삼. "에휴." 왜 쟤네가 가장 날뛸 때 깝치냐. 지난번에 유아린도 경험했지만 일요일에 종교 동아리 건드리면 괜히 대나무숲만 더러워진다. 동아리 홍보 글은 하루 세 개까지만 제한되기에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바로 하루 정지 때릴 심정으로 기다리면서 다른 글들도 본다. - 익명103: 분명 어제 중간본 거 같은데 왜 이제 기말임? ↳ 익명221: ㄹㅇ ↳ 익명91: ㄹㅇ ↳ 익명88: ㄹㅇ ↳ 익명185: 땡중 쉑은 가서 염불이나 외워. ↳ 익명11: 185 좀 닥쳐. 쓸데없이 물 흐리지 마. ↳ 익명145: 그걸 쌈닭이 말하는 건 좀; - 익명90: 섹x 하고 싶다! ↳ 익명75: 이제 얘가 진짜 섹x좌임. ↳ 익명85: 이 정도면 누가 함 주라! - 익명69: 섹x 하고 싶다아아! ↳ 익명319: 늦었죠? ↳ 익명75: 가짜가 된 소감은? ↳ 익명11: 걍 꺼져라. 동정아다새끼야. - 익명98: 주말 아침부터 내가 한 발 뽑은 야짤 달린다.(사진) ↳ 익명189: ? 개잖아. ↳ 익명52: 아 씨발 수간충 새끼. ↳ 익명110: 얘는 진짜 퇴학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 ↳ 익명11: 가현대에 좆지랄 배우는 학과 있냐? 왜 이렇게 좆 같은 새끼들이 많지? - 익명44: 싱글벙글 일본에서 있었던 신사 괴담. 시골에 있는 한 신사에 벌어진 일로……. - 익명59(관리인1호): 어제 환몽전 봤는데 꿀잼이더라. 비슷한 거 추천 좀. ↳ 익명113: 지난번에 '세뜨외'랑 '환몽전' 가지고 불타던 거 모르냐. 관리인이 장작을 집어넣네. ↳ 익명59(관리인1호): ㅗ ↳ 익명113: 세뜨외 미만 잡이다. 그거 보면 환몽전 잊게 됨. ↳ 익명59(관리인1호): ㅗ ↳ 익명113: 시발. 관리자한테 문의 넣는다. 좀 있다가 진짜로 113한테 문의가 왔다. "어휴." 얘는 왜 점심부터 대나무숲에서 싸우고 있냐. 그야말로 관리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아린의 글에 추천을 눌러주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어제 밤새우면서 편집한 덕분에 다시 여유로워졌지만. 기말고사도 이제 봐야하니 얼른 끝내놓잔 생각으로 씻는다. '다시 PC방 가야 하나.' 또 PC방에 가야한다는 게 싫긴 했지만. 그렇다고 컴퓨터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가뜩이나 겨울방학에 알바할 상황인 데다 2학년부터는 기숙사에 들어갈 팔자인데 말이다. "어우, 귀찮아아." 대충 씻고, 모자를 쓴 후 밖으로 나가는데 울리는 핸드폰. - 최이서 - "네, 딸기잼7, 땅콩잼3의 식빵 황금비율을 알고 있는 김우진입니다." - ……무슨 컨셉이야? "방금 빵 먹어서." -재미없는 거 알지? "내가 재밌는 사람이었으면 인싸였겠지." - 뭐해? "뭐하게." - 오늘 왜 이러시지? "……PC방 가. 과제 끝내려고." - 제로PC방? "응. 어제 밤 샜는데 오늘 또 하려고." - 기특하네. 수화기 너머의 최이서는 작게 웃는다. - 같이 가자. 나도 집에서 심심해. "너 집에 민지 있잖아." - 민지 지금 드라마 정주행 중이라서 건드리면 안 돼. 어휴. "PC방에서 만나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전화주기." - 오케이. 오늘은 최이서랑 놀게 된 건가. 자막 노예가 생겼다고 흥얼거리면서 PC방에 도착했다. 내가 먼저 왔기에 최이서에게 전화하면서 카운터에 있는 찬우랑 인사했다. "너도 왔네?" "너도?" 통화연결음을 들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묻자 찬우가 바로 앞자리를 가리켰는데. 거기엔 그야말로 올스타. 표진호, 강한강 그리고 안현호가 주르륵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쟤네 왜 여기 있냐." "한강 형이랑 진호 형이 군대 가잖아. 가기 전에 같이 유아이 콘서트 간다고 티켓팅하고 있어." "어떻게 얼굴만 봐도 저렇게 못나 보이냐. 안현호는 왜 있는데?" "둘이 불렀다는데? 티켓팅 도와달라고." 나한테는 연락 없었는데? 왜 왕따당한 기분이냐. - 여보세요? 도착했어? "속보, 안현호 있음." - ……다른 PC방 가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