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게 뭐야.” “웩. 징그러.” 아직 햇볕이 들어오는 오후 방안, 무슨 애들 바자회라도 하는 것처럼 늘어놓은 성인용품을 둘러보고 있는 여대생들. 그걸 보고 있자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성인용품 가게를 운영하면 매일같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건가 싶기도 했으며. 내가 가자고 했고, 내가 사라고 외쳤으며, 내가 카드를 긁었지만 이상하게 억울했다. “와, 와아. 진짜는 처음 봐.” 그중에서도 가장 눈을 빛내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 서예린. 하나씩 들어보고 둘러보고 하면서 탐구하듯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내고 있는데 나중에 같이 성인용품점 가자고 하는 거 아닐까 불현듯 걱정됐다. “이건…… 뭐야?” 반대로 최이서 같은 경우는 이런 쪽으로는 그렇게까지 지식이 없었는지 텐가를 보며 의문을 표했고. 그걸 본 유아린이 굳이 빨간색, 파란색 텐가 두 개를 집더니 머리 위에 폭하고 얹는다. “뿔인 듯?”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유아린. 당연히 장난이라는 걸 알았기에 최이서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힐끔 나를 쳐다본다. 내가 뭐라 대답할지 기대되는지 유아린은 여전히 뿔이라며 텐가 두 개를 위에 대고 있는 상황. “그거 덮개야.” 나는 뻔뻔하게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덮개?” “어, 꼬x 덮개.” “…….” “겨울철에 추우면 끼고 다니려고 사뒀음.” “어우, 뭐래 미친 새끼가.” 확 짜증 내면서 텐가를 나한테 집어 던지는 유아린. 이럴 거면 본인이 설명하든가 왜 나한테 떠넘긴 건지. “남자들 자기위로 할 때 쓰는 거야.” “기, 기분이 엄청 좋다고 들었어! 소, 손으로 하는 거보다 좋다고!” 옆에서 아는 얘기 나왔다면서 서예린이 끼어든다. 마찬가지로 텐가를 들고 있는데 이놈의 텐가는 증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일회용이야?” 최이서가 텐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리듯 묻자 유아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아닐걸? 그래도 몇 달은 쓰지 않을까?” “……그걸 네 개?” 시발. 이건 도대체 뭘 어떻게 변명해야 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네. 흥미진진한 서예린. 혐오스럽단 최이서. 어디 변명해 보라는 유아린까지. 형형색색 네 개의 텐가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곤 답했다. “할 때마다 다른 거 번갈아 가면서 쓰면 매일 다른 사람이랑 하는 기부……푸허어얽!?” 그대로 유아린과 최이서의 주먹이 꽂혀 들어왔기에 나는 무릎을 꿇으며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아오, 진짜.” “미친 새끼.” 나름대로 개 쩌는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안 통하네. 쓰러진 나를 내버려두고 자기들끼리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야한 속옷부터 시작해서. “이, 이건 속옷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이는데?” “우진이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아니야, 시발.” 여성전용 바이브 마사지 기구. “와, 김우진 이 새끼 이런 것까지 사네.” 지이이이이잉! “흐헉?!” “아, 아플 것 같아.” 마사지기를 들고 쓰러져 있는 내 등을 조지기 시작한 유아린을 내버려둔 뒤 최이서랑 서예린은 다시 다른 물건을 둘러본다. “끄어어어어얽!” “흠, 도구로 앙앙거리게 만들면 이런 기분인가?” 최대 출력으로 했는지 등이 박살 나는 줄 알았다. 뇌까지 울리는 게 저거 출력이 이상하다. “코, 콘돔 한 박스.” “하아, 저거 진짜…….” 두 손으로 콘돔박스를 든 서예린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고, 최이서는 지난밤의 일을 떠올리며 이마를 탁 쳤다. 콘돔이 없어서 못 했다고 이렇게 사둔 걸까? 징글징글한 집념이라고 볼 수 있었다. “히야, 재밌었다.” 축 늘어진 나를 내버려두고 다시 바자회에 합류한 유아린. 이것저것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서예린이 꺼내든 건. “우, 우아.” “그건 좀…….” “남정네 새끼가 이건 왜 산 거야?” 영롱한 보랏빛을 내고 있는 딜도. 노골적으로 남성기 형태를 띠고 있는 걸 보면서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일단 최이서는 바로 눈을 돌렸고. 유아린은 딜도를 쥐더니 그대로 그걸 가지고 쓰러진 내 뺨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으며. 마지막 서예린은. “쓰읍, 우진이가 저거에 비해…….” 미친 소리를 내뱉던 와중,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이미 서예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 * * 시체가 되어 쓰러진 김우진을 집에 내버려둔 채로, 막걸리 집에 온 세 사람. 서예린과 최이서 그리고 유아린 사이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까 서예린의 폭탄발언 이후, 다들 술이 땡긴다면서 이번에는 여자들끼리 술을 마시러 온 것. 하지만 막상 이렇게 왔음에도 서로 눈치만 보면서 미묘하니 시간만 흐른다. “이, 일단 주문할까?” 최이서가 조심스럽게 메뉴판을 펼치면서 묻자 다른 두 사람도 냉큼 메뉴판을 살펴본다. “우, 우와. 막걸리 종류 엄청 많구나.” “나도 처음이야. 신기하네.” 두 사람의 귀여운 반응에 살포시 미소 지은 최이서는 간단하게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그녀 같은 경우는 과대라서 이런저런 회식 자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나름대로 와본 적이 있었다. “여기 단계별로 있으니까 맞춰서 먹으면 돼. 좀 달달한 게 맛있긴 하더라.” “그래?” “술 이름들이 예쁘네.” 안주는 당연히 부추전과 김치전으로 시켰다. 치즈가 들어가는 전도 있었지만 일단 먹어보고 시키기로 했다.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시키고 나서 막상 또 할 말이 없어졌다. 서예린과 유아린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최이서와 서예린도 최근 많이 친해졌다. 최이서와 유아린이 서로를 조금 불편해하는 게 있긴 했으나. 어쨌든 서예린이라는 윤활유가 있으니 문제없어야 하는 게 원래는 맞았겠지만. 서예린의 폭탄발언 때문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분위기가 애매했다. 우습게도.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바로 어제, 남정네들의 꼬x파티에서도 그랬듯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세 사람은 나온 술을 열심히 들이키기 시작했고. 어느새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어가기 시작했다. “어제 우진이랑 통화하는데 걔가 치킨 집 아니냐고 그랬다니까?” 막걸리가 맛있었는지 열심히 들이킨 서예린이 웃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자 바로 두 사람도 공감한다. “그래, 나도 횟집 아니냐더라.” “썅, 나는 이상한 놈들 바꿔줬는데.” “서예린이라고 말해주니까. 그럼 서예린을 배달해 달라고 그러더라 지난번에 맛있었다고.” 사실 그 집 치킨 맛있었다고 했지만 서예린은 앞에 있던 치킨은 못 들은 걸로 쳤다. “…….” “……그거 성희롱 아냐?” 최이서와 유아린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서예린을 봤으나 그녀는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히죽히죽 웃으면서 손사래 쳤다. “취해서 그런 거지 뭐.” 말은 그렇게 했으나. “맛있었구나, 히.” 뭔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 괜히 심통이 나는 최이서는 삐죽거리면서 끼어든다. “걔 집에 콘돔 박스로 사뒀잖아.” 취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화는 하지도 않았을 텐데. 물론, 단순히 술에 취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겠지만. 앞에 서예린의 도발과 더불어 이미 두 사람이 관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최이서는 괜히 기분이 나빴기에. “지난번에 나랑…….” 지난번 김우진의 집에서 자고 갈 때 콘돔 사건을 언급하자 서예린과 유아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다. “아, 나, 나는!” 불이 붙은 두 사람. 막걸리 병은 계속 쌓여만 가고, 의외로 할 얘기가 많은 두 사람 사이에 낀 채로. 고작해야 초코우유 나눠 먹고 가슴 만지작거린 추억 정도밖에 없는 유아린은 밖에서 바람 좀 쐬겠다고 나왔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던 덕분에 초코몽을 하나 사 마시면서 쭈그려 앉는다. 누가 보면 담배 피는 줄 알겠지만 그냥 빨대 꽂아서 초코우유나 마시는 상황. 술에 나름 센 편인데도 막걸리라서 그런 건지 어느새 취기가 훅 들어오는 게 당혹스럽다. 쫍쫍거리며 초코몽을 마시다 도저히 못 참겠는 마음에 통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김우진의 목소리에 괜히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으나, 말투는 퉁명스럽게 나가고 있었다. “이 스끼야.” - 취했냐? “취했다아!” - 어제 내가 술 마시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알려줬는데? “닥쳐! 미친놈아!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 - ……괜히 더 실수하기 전에 그만 마셔라. “데리러 와!” - 개소리야. 나 게임 중임. “헌팅 당하고 있어!” - 너 나보다 싸움 잘하잖아. 내가 가도 안 되니까 억지로 굴면 경찰 불러. 뭐 이딴 놈이 다 있을까. - 야, 그것보다 집에 물건 몇 개가 사라……. “닥쳐!” 전화를 끊은 유아린은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방금까지는 적당히 마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막 들이키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런 충동도 금방 사라졌는데. 자리로 돌아가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히익?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어?” 언제 챙겨왔는지 콘돔상자를 열어서 하나씩 숫자를 세는 최이서. “그니까 우지나아.” 보라색 딜도를 옆자리에 두고 김우진이라며 대화 중인 서예린. 불러야 했나? 데리러 오라고 불러야 했던 걸까? 다시 핸드폰을 들었는데 때마침 옆자리에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슬며시 다가와서 웃는다. “죄송한데, 제 무선이어폰이 그쪽 분들 핸드폰에 잡힌 것 같아요.” “…….” “그래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면 확인 한 번씩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이 광경을 보고도 헌팅을 하고 싶으세요?” 한 명은 콘돔 개수 세고 있고 한 명은 딜도한테 말 걸고 있는데? “하하, 개성 넘치시네.” “……꺼지세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헤픈 여자라고 보였던 걸까. 아니, 이 광경을 보면 누가 헤픈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할까. 유아린은 얼른 자기 가방에 콘돔상자와 딜도를 집어넣고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건다. “친구분들은 오늘 좀 외로우신 것 같은데?” “아, 좀 꺼지라고! 네 이어폰이 우리한테 왜 잡혀 미친 새끼야! 헌팅도 하려면 머리를 좀 써라!” “…….” “꺼져! 다 임자 있으니까!” “네, 넵! 죄송합니다!” 끈질긴 남자를 떼어낸 유아린은 씩씩거리던 와중 드디어 김우진이 전화를 받았으나. - 한타 중임. 그리 말한 다음 통화를 끊어 버렸다. “……후.” 머리끝까지 열불이 터진 유아린은 앞에 있는 막걸리를 병으로 목구멍까지 들이마신 후. “여기 막걸리 세 병만 더 가져다주세요!” * * * 한타에서 대패한 다음. 돈을 썼는데 또 그냥 방치해둘 수는 없으니 텐가를 좀 체험해 볼까 싶어서 나름 심도 깊게 오늘의 여인을 찾던 와중. 똑똑. 문밖에서 들려온 노크에 표정을 팍 찌푸렸다. “아, 진짜.”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 같아서 아쉬워하면서도 아직 시작은 안 했으니까 바로 일어난다. “누구세요?” 문 앞에서 묻자 밖에서는 유아린의 잔뜩 취한 목소리가 답으로 돌아왔다. “사자니이! 부것굿 사민분요!” “……뭐?” “여기가아! 부것굿 맛지비야!” “맛있겠다아! 나 처음이야!” 신이 나셨는지 혀가 꼬인 유아린에게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서예린과. “스으읍, 별로 맛없을 것 같은데에?” 발음은 그대로인데 지가 끓여놓고 맛없다고 개소리하고 있는 최이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가 여러모로 아파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