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re you taking, about?” (무슨 소리야 얘들아?) 와. “Don't scare me like that, I'm really scared of ghost stories!” (무섭게 그런 말 하지 마. 나 괴담 같은 거 진짜 무서워한단 말이야!) 내가 더 무서워. 농담이 아니라 오늘 누가 나랑 같이 가서 자주면 안 되냐. 무서워서 손잡고 자고 싶은데. 서예린 빼고. “Hyunho, let's cross our arms!” (현호야 팔짱 끼고 가자!) “O, OK.”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끼는 안현호. 그걸 본 순간 나는 촬영 중이던 핸드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 다시 해야겠는데.” 내가 안현호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나도 그냥 넘어가 주고 싶다. 안현호를 괴롭히려고 이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과제 중인데 길어지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대본에는 분명히……. “야.” 방금까지 안현호의 팔짱을 끼고 있던 상큼하고 발랄하던 주희 선배의 표정이 변한다. 정색한 채로 노려보시는 게 섬뜩하기 그지없다. “몇 번을 틀리는 거야. 아까까지 다른 신에서는 잘하다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선배의 양갈래 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린다. 뒤따라가는 역할인 서예린, 최이서 그리고 유아린은 한 걸음씩 뒤로 빠지면서 엮이고 싶지 않다는 걸 대놓고 표출하는 중이었고 나도 그냥 못 본 척하고 싶었다. 한강 이 새끼, 도망친 게 현명한 거였구나. “어? 잘 좀 하자 현호야. 이 나이 처먹고 양 갈래하고 후배 팔짱 끼고 대가리 빈 년 연기하는 거 힘들어 뒤지겠다.” “넵! 선배!” “그래, 다음에도 또 이런 식으로 실수가 나오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주희 선배. 내가 남자 주인공이었으면 바로 울면서 못 하겠다고 했을 것 같다. 선배는 심호흡하며 다시금 자세를 잡는다. 어느새 깨발랄한 표정을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가자!” “푸훕!” ……. ………….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무슨 아동만화 주인공처럼 외친 선배의 발랄함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 거였는데. “웃겨?” 천천히 다가오는 주희 선배. 아니, 이거 솔직히 내 탓 아니지 않은가. 앞에서 대놓고 웃으라고 하는데 안 웃을 수가 있냔 말이다. “선배, 제가 어제 본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웃은 겁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선배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자, 주희 선배는 내 앞에 우뚝 선 채로 묻는다. “해봐.” “…….” “안 웃기면 뒤진다. 해봐.” “……옛날 옛날에.” 뻐억! “어억!” 바로 어깨를 때리고 들어온 주희 선배의 일격.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자 주희 선배는 주먹을 쥔 채로 노려본다. “도입부부터 재미없어.” 인정한다. 갑자기 생각하려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버렸다. “다시 간다. 집중하고 한 번에 끝내자.” 다시 상큼발랄한 민주희로 돌아가기 위해서 집중하기 시작한 선배의 등을 보면서 장학금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참고로 안현호는 뒤로 NG만 3번을 내서 주희 선배한테 몇 대 얻어맞으면서 끝낼 수 있었다. * * * 영화 촬영은 주말에도 계속되었다. 초반에는 좀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흐름을 타기 시작하자 한 장면 촬영하는 데 크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깜찍폼의 주희 선배. 이제는 저것도 몇 번이나 봐서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 저거 봤을 때 악몽 꿨었다. “컷!” 죽어버린 깜찍폼 주희의 촬영을 끝내자, 벌떡 일어나는 선배. 그러고는 묶고 있는 머리끈 두 개를 바로 풀면서 쓰레기통에 집어 던진다. “아오! 이거 드디어 끝났네!” 그래, 오늘이 바로 깜찍폼 주희 선배의 마지막 날. 작중에서 주희 선배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굳이 등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참고로 죽은 이유는 유아린이 주희 선배가 마신 커피에 청산가리를 넣었다는 다소 기괴한 설정이다. “와아, 잘 찍혔는데?” 각본가 겸 배우 겸 게스트 겸 분충 겸 노예 1호 겸 관리인인 유아린이 내 옆으로 다가와 촬영한 영상을 확인한다. 주희 선배가 말은 부끄러워하고 있으나 연기도 꽤나 수준급으로 잘하셨다. “그치? 선배가 괜히 나한테 촬영 맡기는 거 아니라니까?” 지난번에 한 번 촬영한 다음부터는 내가 그냥 계속 촬영하고 있었다. 따로 짬 처리당한 게 아니고 내가 자처한 거였는데, 촬영을 몇 번 해보니까 나중에 편집할 때 구도나 컷을 나누는 게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촬영한 핸드폰을 내려놓고 따로 가져온 노트에 지금 떠오른 편집점을 간략하게 적고 있는 중이었다. “음? 야, 문의 왔다.” 내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던 유아린이 슬쩍 핸드폰을 건넨다.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대나무숲에 문의가 온 거였다. “이거 다른 사람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그랬냐?” “……최근에 촬영한다고 좀 부주의해지긴 했어.” “노예 2호 구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왜? 구하면 좋겠어?” “솔직히 막 엄청 필요하진 않은데. 있으면 편하긴 하지 않을까? 후임 갈구는 맛도 있겠고.” 무슨 군인… 아니, 한강이냐. 만약 구해도 1호와 2호가 서로 정체를 알게 될지는 모르겠다. 물치과 4학년이자 익명90으로 아직도 활동 중인 이은우가 관리인 2호가 됐더라도 유아린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 - 익명243: 관리자님. 지난번에 알려드렸던 '내 소꿉친구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딸인데 내가 드래곤이라고?' 보셨나요? - 익명243: 그거 진짜 명작입니다. 대숲 애니좌인 제 기준 평점 4.6/5.0 입니다. 진짜 한 번 보세요. “이거 뭐야.” 문의를 대신 확인한 유아린이 미간을 팍 찌푸린다. “243이면 애니좌라고 불리는 오타쿠 맞지? 11한테 매번 줘터지는 애.” 시비충 익명11의 전용 샌드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작 익명243은 익명11에게 별 반응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애니좌 이런 것도 너한테 보내?” “애니좌만 보내겠니.” 문의 기능은 사실상 관리자와의 1:1 채팅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때마침 또 온 문의 하나. - 익명69: 섹x 하고 싶다아아! “와, 얘는 문의로도 이러고 있었구나.” "......" 오늘 약속 있다고 늦는다던 서예린이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문의를 보낸 건지. 알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무시하면서도 핸드폰을 슬쩍 주머니에 넣는다. 혹시라도 위로 올려서 익명69와 개인적으로 얘기했다는 걸 유아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쟤는 징하다. 섹무새 짓만 몇 달째냐?” 그게 네 고등학교 동창이자 베프라는 말이 입 밖까지 튀어나올 뻔했으나 억지로 삼킨다. “나는 게시판 관리만 해서 몰랐는데 그런 식으로 문의도 계속 오는구나.” 나름대로 내 고충을 알게 된 유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 든다. 고생한다고 해서 혹시 나 주는 건가 했는데 그대로 유아린의 입으로 들어갔다. 괜히 고까워서 유아린한테 한마디 툭 던진다. “야, 그런데 대본이 좀 막장으로 가는 거 아니야? PC방에서 짰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분명 귀신이 나오면서 로맨스가 약간 가미된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사이코패스 여학생이 좋아하는 남자애 때문에 친구들 다 죽이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내 말에 유아린도 쓰게 웃었다. 마치 자신이 바라는 글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걸 써 내려간 작가의 모습이었다. “교수님이 나이가 좀 있으시잖아. 그래서 이런 막장 드라마 쪽을 좀 더 좋아하신다더라. 주희 선배가 이거 들었던 3학년 선배들한테 물어봤더니 이렇게 강렬한 게 점수 잘 받았대.” “허, 이야기의 완성도니 뭐니 그랬던 것 같은데.” “교수님이 보시기에 이런 게 완성도가 높나 보지. 내가 봤을 때 교수님 아침 드라마 애청자실 듯.” 킥킥거리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갑자기 울려오는 유아린의 핸드폰. 얘도 은근 친구가 많아서 연락이 자주 온다. 바로 옆에 있어서 나도 핸드폰 화면이 자연스럽게 보였는데. - 표진호 - “성이 표 씨야?” 특이한 성씨구나 싶었는데 유아린은 빤히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더니 슬쩍 몸을 틀었다. “나 전화 좀 받고 옴.” 그대로 가버린 유아린. 주희 선배는 뭐 하시나 싶었는데 흡연구역으로 가서 담배를 태우고 계신다. 표정이 여전히 구겨져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깜찍폼이 싫으셨던 모양이다. ‘슬슬 촬영도 끝나가네.’ 아직 주요 장면을 찍을 게 꽤 남아 있지만 어쨌든 촬영했던 시간보다는 적게 남았다. 솔직히 최근 손이 좀 근질거렸다. 편집 프로그램을 다운받고, 너튜브로 공부하는 중인데 편집이라는 게 꽤나 흥미로운 분야였다. 과제가 이유긴 해도, 너튜브를 통해 배운 걸 제대로 써보고 싶어서 일부러 유료 편집 프로그램도 한 달 구독했다. ‘빨리해 보고 싶네.’ 처음에는 귀찮았고, 나중에는 주희 선배 눈치 보면서 시작한 거긴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직접 이것저것 배우면서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좋은 거 아니겠는가. 서예린이랑 최이서 그리고 안현호는 조금 있다가 합류하기로 했으니 한동안 좀 쉬어도 되겠거니 했는데. 우웅! 울려오는 전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서예린 아니면 최이서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지만. - 정찬우 - 뜬금없으면서도 반갑게도 찬우였다. 오늘 주말이라서 PC방 알바하고 있을 텐데. “모시모시.”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으나. - 우진아. 찬우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PC방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너머에서 들려오지만 목소리는 낮춘 게 뭔가 있어 보였다. - 지금 아린이 거기 있어? “있는데 누구랑 통화하러 잠깐 갔어.” 내 말에 찬우는 안도의 한숨을 한 번 내쉰 후, 부탁해 왔다. - 가능하면 오늘 아린이랑 계속 같이 있어 줄래? 우리 PC방 근처로는 안 오게. “어렵진 않은데. 이유는 알고 싶어.” 그냥 막 도와줄 정도로 내가 성격이 좋진 않아서. 일단 이유를 좀 알고 싶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찬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해 보였기에 찬우는 황급히 설명했다. - 미안해. 나중에 설명할게. 아니면…… 아린이한테 표진호가 왔다고만 말해줘. 표진호? “어…….” 방금 유아린이 통화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뚝. 찬우 쪽에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지.” 분위기 자체가 묘했기에 일단 유아린이 전화를 받는다고 한 곳으로 가봤는데. “유아린?” 유아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는데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유아린!” 어쨌든 방근 찬우의 전화부터 해서 불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디 있냐고!” 갑자기 이렇게 말도 없이 사라질 애가 아니었기에 다급하게 유아린의 번호를 찾으면서도 주변을 계속 둘러본다. “야! 유아리인!” “아, 왜 불러 이 새끼야!” 그때 저 멀리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는 유아린. 손을 씻었는지 물기를 털어내며 짜증 내고 있었다. ‘아.’ 언제 이런 느낌이었는지 생각났다. 지난번에 민지 만나러 갔을 때, 걔가 극단적 선택하는 줄 알고 호들갑 떨었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투덜거리면서 다가온 유아린을 보며 나는 정색하고 답했다. “부른 적 없는데?” “지랄하네. 뭔 일인데?” “부른 적 없다니까? 팝송 부른 거임. You are in~.” 아는 팝송이 없어서 대충 흥얼거리고 있자니 유아린이 나를 보면서 혐오스럽단 표정을 짓는다. “똥꼬쇼 할 거면 화장실 변기 위에서 해라.” “…….” 시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