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이익! “오, 맛있는데? 딱 이렇게만 나오면 문제없겠다.” 제육볶음을 먹은 민주희 선배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내 반응에 주희 선배는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토닥여 준 다음 다른 애들 쪽으로 향하셨다. “야, 이거 양 이렇게 주면 누구한테 먹이려고? 아무리 대학 주점이라지만 이게 먹으라고 주는 거야?” “바깥은 다 타고 안쪽은 덜 익었잖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티가 팍팍나네. 집에서 연습 좀만 해오라니까.” “계란말이에 뭐가 이렇게 씹히냐……? 아 씨! 확인 똑바로 안 해?! 껍질 들어갔잖아!” 바로 다른 애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시면서 한마디씩 하는 걸 보니 나한테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팔아야 하는 음식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했다. ‘……다행이네.’ 며칠 동안 제육볶음만 해 먹길 잘했다. 물론 내가 좋아해서 해먹은 이유도 있긴 하지만. 주점은 저녁때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일찍 검수를 받은 나는 약간 시간이 남았다. 평소였다면 그냥 주방에 틀어박혀 있었겠지만 애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썩 곱지 않았기에 밖으로 나섰다. ‘뭐, 말한다고 바뀌진 않겠지.’ 민주희 선배가 내가 아니라고 부정을 해줬더라도 뭔가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부정한 셈이니 믿을 수 없었겠지. 이런 걸 보면 서예린이 들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홀 쪽도 나름 분주하니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홀이라고 해봤자 천막 밑에 테이블이랑 의자 깐 정도긴 해도 말이다. “메뉴 붙여두게 테이프랑 좀 가져와 봐!” “나무젓가락이랑 플라스틱 숟가락 어디 갔어? 안 보이는데?” “그거 안 사 왔다고 했어! 편의점 가서 사와야 해!” 과대인 최이서와 부과대인 안현호를 주축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중간중간 2학년도 보였으나 그들은 설렁설렁 놀거나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최이서뿐만 아니라 서예린이랑 유아린도 보였는데 두 사람도 나름대로 바삐 일하고 있었다. 서예린은 나랑 눈을 마주치니 방금 전 일이 생각났는지 볼을 부풀리며 얼굴을 붉혔다. 아무래도 제정신을 차리니까 삐진 모양이다. 유아린은 심드렁하니 나를 노려보면서 놀지 말고 도와달라고 했지만 바로 중지를 날려서 거절했다. 얼추 틀이 잡히며 정리가 끝나가는 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축제 부스들도 얼추 정리가 되어가고 있으며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입장하고 있었기에. “몇 사람이 홍보 좀 하러 가자.” 전단지 같은 걸 돌리는 건가 했으나 쓰레기가 너무 많이 생겨서 총학생회에서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단다. 그래서 택한 홍보 방법은 작은 칠판에 홍보문구를 적고 돌아다니는 거였다. 검은 칠판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홍보하려는 것 같은데 꽤나 괜찮은 전략처럼 보였다. 바빠지면 폰으로 연락해서 다시 부르면 그만이고. 또한 자연스럽게 축제도 돌아볼 수 있으니 꽤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단…… 예린이.” 최이서는 무슨 상장 수여하는 것처럼 바로 서예린에게 칠판을 건네준다. “한 바퀴 쭉 돌고 오자. 입구 쪽에서 있으면 될 거야.” 최이서가 찝찝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괜히 헌팅 당해서 시간 버릴 수도 있으니까 같이 있어 줄게. 바로 가자.” 자연스럽게 옆에서 등장한 한강 선배 때문. 한강이 끼어드니 다른 1학년들도 입을 다물었고, 서예린은 당황하면서도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 문득, 나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림 좋은데?” 솔직히 서예린이 한강 선배를 불편해하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알겠지만. 일단 둘이 서 있는 그림이 괜찮다. 딱 봤을 때도 선남선녀라서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한 번은 다시 뒤돌아볼 것 같았다. 엄지를 척 치켜들며 고생하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하자 서예린은 내 쪽을 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선배, 가요!” “어? 그, 그래.” 갑자기 적극적인 서예린에게 당황했는지 바로 뒤따르는 한강. 뭐가 됐든 일단 두 사람이 출발했으니 홍보에 있어선 우리 과를 이길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 뒤에도 최이서는 홍보를 잘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칠판을 건네줬는데. “너로 정했다.” 어느새 내 옆에 와서는 칠판을 들고 있는 유아린. “엥?”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유아린은 곧장 팔짱을 끼고는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다녀올게!” 유아린에게 끌려가며 슬쩍 뒤를 확인한다. 거기엔 팔짱을 낀 채로 입술이 살짝 나온 최이서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어느 정도 우리 쪽 부스에서 거리가 벌어지자 유아린은 곧장 내 팔을 놓으며 짜증을 냈다. “아, 제육 냄새.” “……사이코니?” 방금 전까지 헤실헤실거리면서 데려가더니 이제는 짜증 내면서 나를 밀어댄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으나 유아린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물치과 부스 같이 가보자.” “음? 혼자 한다니까?” 뜬금없이 같이 가겠다는 유아린. 그냥 혼자 가겠다고 말했으나 이미 유아린의 발걸음은 물치과 부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와주려는 건가 싶었으나 유아린의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재밌어 보이니까 자기도 한 발 거들어서 끼려는 것뿐이겠지. 물리치료학과 부스가 어디 있는지 찾느라 좀 헤맸지만 홍보한다는 목적으로 돌아다녔으니 별문제 없었고. 도착하자 물치과 부스는 벌써 활발하게 운영하는 중이었다. “악력 측정?” 악력 측정을 통해서 일정 수치가 넘은 사람에게는 기념품을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뒤쪽을 보니 혈압을 재거나, 어깨 마사지 같은 걸 해주는 등 잡다한 걸 많이 하고 있었는데. “노잼이네.” 너무 바로 반응이 오긴 했으나 솔직히 유아린에게 동의했다. 좀 노잼이긴 노잼이었다. “어우! 커플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방금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물치과 학생이 바로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이런 머저리랑 안 사귀는데요.” 바로 선을 긋는 유아린.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얘 썸타는 애 있어요.” 정찬우를 생각하면서 말한 거였는데 눈치챘는지 바로 나를 올려다보며 으르렁거리는 유아린. 시선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참가비를 내고 악력 측정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내 수준으로는 택도 없었다. “네에, 아쉽네요.” 오랜만에 힘을 많이 줘서 저릿한 손을 흔들어 풀면서 악력기를 가져가려는 학생에게 슬쩍 말을 건다. “저기, 혹시 물치과 4학년 분들은 안 계신가요?” “네?”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한 모습이었으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아, 뵙고 싶은 선배가 있는데 오늘 오시나 싶어서요.” “으음.” 뭔가 애매한 이유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물치과 학생. 하지만 그러면서도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답했다. “4학년 분들은 아무도 안 계시죠. 지금 실습 나가셨거나 아니면 취업 때문에 따로 준비하실걸요? 찾으시려면 여기가 아니라 도서관 같은 곳 가시는 게 더 빠를 텐데.” “아, 그렇군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물치과 학생은 다시금 좀 고민하더니 손뼉을 치면서 답했다. “혹시 은우 선배 말하시는 건가?” 은우 선배? “이번에 졸업하고 바로 조교로 전향한다고 들었거든요. 대학원 간다고 했나?” “…….” “그래서 교수님들 오실 때 같이 올 수도 있어요.” 미묘하긴 했으나 어쨌든 뭐라도 건진 게 있다. 은우라는 분이 익명90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혹시 언제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모르죠.” 으쓱거리면서 대답을 꺼리는 물치과 학생. 아무래도 내가 너무 과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쉽네.’ 4학년 중에 축제에 오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아냈다. 4학년을 넘어 대학원이나 조교까지 갈 생각이 있다면 아직까지 대나무숲을 이용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은우라는 사람을 용의자로 넣어두고 떠나려는데. “우오오!” 악력기를 든 채로 양손을 치켜올리며 환호성을 내지르는 유아린. “여, 여자 최고점! 최고점 갱신입니다!” 여자 쪽 악력에서 최고점을 갱신했는지 기분 좋다고 웃고 있었다. ‘저건 놀러 온 건가.’ 분명 나랑 같이 물치과 화석 찾겠다고 왔던 거 같은데 왜 저렇게 신이 난 거지. 어쨌든 간단한 열쇠고리 같은 참가비도 안 나올만한 물건 하나 받은 유아린. 경품 자체는 마음에 안 들지만 여자 악력 기록을 갱신했다는 게 기분 좋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축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참, 편의점 가자. 가서 젓가락이랑 숟가락 사가야 함.” “이래서 같이 가자고 했구나? 금방 돌아가야 하니까.” 내 물음에 유아린은 여전히 기분 좋은 티를 숨기지 않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답했다. “주방에서 제육 볶아야 하는 애를 데리고 어떻게 돌아다니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돌발행동한 걸 주대장님께서 아신다면 한마디 하시겠지. 편의점에서 사오라고 들었던 물건들과 각자 초코우유 하나씩 산 다음 우리는 다시 영문과 부스로 돌아갔다. 서예린과 한강의 조합 때문인지 아직 술 마시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하나둘 들어온 손님들. 나도 곧장 주방으로 가서 내 자리에 위치했는데. “제육 하나.” 곧장 제육 주문이 들어오면서 빠릿빠릿하게 볶기 시작한다. 금방 만들어진 제육 옆에 두부도 작게 썰어서 올려준 다음 서버한테 건네려 했는데. 떡하니 기다리고 있던 최이서. “어디 다녀왔어?” 제육을 받으며 묻는 그녀에게 나는 어색하니 웃으며 답했다. “무, 물치과 쪽. 거기 악력 테스트하더라.” “흐응.” 뒷말을 끌던 이서는 무덤덤하니 중얼거리며 가버렸다. “거기만 안 가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