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내 옆자리에 앉는 서예린. 기숙사 입소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당황했고, 다른 사람들도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응? 뭐가 취향이야?” “야, 그것보다 여기 기숙사 들어오는 사람들만 있는 자리야.” 괜히 서예린이 같이 있어서 다른 애들이 서예린도 기숙사에 들어오나 기대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아, 그랬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천진난만하게 놀라는 척하는 거 봐라. “그럼 다른 곳 가서 마시자.” 바로 벌떡 일어나서는 나를 데려가려는 서예린. “아냐 아냐! 여기서 먹어. 괜찮아. 나도 기숙사생 아닌데 그냥 같이 마시고 있어.” 그런 서예린을 다급하게 붙잡는 이은우.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서예린이 가는 걸 원치 않는 듯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예쁘고 잘생기면 대학 가서 술값 낼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진짜였다. “감사해요.” 눈웃음과 함께 자리에 다시 착석한 서예린.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내가 마시던 술잔을 가져간다. “우진이는 이제 그만 마셔.” “왜.” “너 많이 마시면 돌아갈 때 내가 힘들잖아.”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아.” “지금까지 몇 잔 마셨는데?” “음- 한 병 정도?” “충분히 많이 마셨네.” “나 맥주나 소주에는 잘 안 취하는 거 알잖아.” “그러면서 계속 마시니까 결국 취하잖아.” 서로 술잔을 쥔 채로 티격태격 거리고 있자니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옆을 확인하자 다른 사람들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좀 당혹스러웠다. ‘하여간 서예린이랑 같이 다니면.’ 이게 문제다. 영화배우들조차 직접 찾아와서 스카우트하고 싶어 하는 외모. 배우들 사이에서도 빛을 발하는 외모인데 일반인들 사이에 있으면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미 남자들 중에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마스크 같은 거 안 가지고 다니니? 좀 쓰고 와라.” 서예린에게 얼굴 좀 가리라고 말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니 뒷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긴다. “일부러 예쁘게 하고 온 거야.” “지 입으로 지가 예쁘다네.” “그래서 안 예뻐?” “……왜 그렇게 왔는데.” “얼르은. 대답. 예뻐?” 얘는 진짜 눈치가 없는 건가? 주변에서 다 쳐다보고 있는데. “하아, 예뻐. 네가 예쁜 거 말고 쓸데가 어디 있니.” “으흥, 예뻐서 다행이다. 엄마아빠 고마워요.” 지랄을 해라 진짜. “원래 대학 기숙사가 사고 같은 거 많이 일어나잖아. 막 양다리 걸치고, 문란하고.” “…….” “그래서 미리 알려주러 왔지. 얘 이미 여자 있으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내 뺨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서 웃는 서예린. 앙큼하면서도 순수한 미소가 참 잘 어울렸다. “우진이는 여기서 더 늘면 네 다리잖아.” 작게 속삭이면서 이번에는 볼을 꼬집는 그녀.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허리가 빳빳하게 서면서 힘이 들어갔다. 기숙사의 문란함이나 사건 같은 걸 지금의 나한테 가져다 대는 건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딱 봐도 너 요즘 기분도 안 좋아서 사람들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아싸 코스프레 하고 있을 테니까.” “야.” “우진이 기 좀 살려주려고 꾸미고 왔지? 어때? 막 우월감 느껴져?” “…….” 우월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알량한 우월감 때문에 서예린을 다소 가볍게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은 언짢았다. “다음부터는 하지 마. 알았지?”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어깨에 얼굴을 비벼댄다. 이미 다른 사람들 시선은 무시하고 있는 지 오래였다. ‘됐다, 나도 모르겠다.’ 술잔은 서예린한테 뺏겼으니 고기나 먹고 있는데.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영어영문과 1학년 김철수입니다!” “같은 1학년 최영희입니다!” 철수와 영희? 뒤에 다른 애들도 같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해 왔다. 아까 나 혼자 있을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더니 서예린이 오니까 바로 인사 박는 것 좀 봐라. ‘내가 영문과인 걸 몰랐을 수도 있었겠네.’ 내가 또 워낙 조용하게 대학 생활을 하지 않는가. “안녕, 얘들아. 2학년 서예린이야. 이쪽은 2학년 김우진.” “넵, 선배님들 술 한 잔 올려도 괜찮을까요?” 바로 냅다 술병을 내미는 철수. “아냐, 얘 더 마시면 취해서 안 돼.” “야, 안 취한다니까?” “네엡, 우진이는 안 취했어요오. 우리 눈치 안 봐도 괜찮아 얘들아.” 다시 내 볼을 꼬집으면서 놀리는 녀석. 말투부터 표정까지, 1학년들에게 친절한 게 보기 좋았지만. 속내는 그냥 상대하기 귀찮다는 게 나한테는 딱 보였다. 1학년들이 다시 자기들 테이블로 돌아가고. “애들이 너한테는 인사 안 했어?” 의아해하며 묻기에 나는 고기를 입에 넣으며 끄덕였다. “뭔 인사를 해. 쟤네 나 영문과인 것도 몰랐을걸?” “응? 모를 수가 없는데.” 뭔 소리인가. “모를 수 있지. 나만큼 조용하게 대학 생활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 술은 통제당해서 사이다를 마시고 있는데 서예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 “너만큼 시끄럽게 대학 생활하는 애가 어디 있어 우진아.” “이건 뭔 소리야.” 내가 뭐가 시끄러운가. “노래방에서 기억 안 나? 한강 선배랑 싸웠던 거? 그래서 대나무숲에서 저격도 받았잖아.” “…….” “곱창집에서도 3학년 선배들한테 소리 지르면서 막 뭐라고 했고. 그때도 대나무숲에 저격당했었잖아. 저격만 두 번을 당했네.” 근데 그때 서예린 없지 않았나? 찬우한테 말해서 데려가라고 말한 다음에 찾아간 거였는데. “1학년들한테도 이미 소문 돌았을걸? 가까이 가면 안 되는 선배 1위! 김우진!” “…….” “그러면서 본인은 조용히 대학 생활한다는 게 진짜 어이없네. 이게 갑부의 마음 뭐 그런 거야?” “야, 나 갑부 아냐. 이제 알바도 해야 돼.” “무슨 알바?” “모르지. 근데 내가 골드원에서 잘했으니까. 그런 쪽으로 가지 않을까?” “잘하는 거? 업소에서 일하게?” 바로 손을 뻗어서 양쪽 뺨을 잡고 쭉 늘려주자, 서예린이 배시시 웃어댄다. “아핳! 농담이야! 농담! 아파아!” “이게 미쳐 가지고. 선을 왜 이렇게 넘지?” “너도 넘자나아!” 한숨을 내쉬며 뺨을 놓아주자, 서예린은 나한테 뺏어간 술을 마시고는 끈적한 숨을 흘린다. “근데 우진아.” “또 왜.” 내 어깨에 툭 기대어 온 서예린이 나만 들을 수 있게 은근히 속삭여왔다. “너 그때, 진짜 멋졌던 거 알아?” “언제.” “나 도와줬을 때.” “도와준 적이 워낙 많아서.” “흐힣, 그치. 맞아.”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이야. 은근슬쩍 팔짱까지 낀 서예린. 풍만해진 그녀의 흉부가 팔을 부드러이 압박해 온다. “노래방에서도 그렇고, 곱창집에서도 그렇고. 이번에 카지노도 그렇고. 계속 구해줬잖아.” “…….” 다소 감성적이게 된 걸까. 솔직히 그때는 좀 흥분해서 막 나가긴 했는데, 종종 떠올리면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근데 서예린에겐 아니었던-. “그거 떠올리니까 흥분된다.” “……뭐지, 추억을 회상하는 좋은 분위기 아니었나.” “젖은 것 같은데. 만져주라.” “여기 가게다. 다른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서예린 쪽을 계속 힐끔힐끔 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미 그런 거 신경 쓰는 건 포기했지만. “그게 흥분되는 거 아닌가.” “대학생활 조지고 싶은 거야?” “넌 이미 조졌잖아.” “…….” 팩트로 때리시면 좀 아프네요. 대화가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 좀 곤란할 것 같았기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옆자리에서 부러운 눈치로 우리를 계속 보고 있는 이은우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이은우랑 서예린도 나름대로 관계가 있지 않은가. 익명69와 익명90으로. 말해볼까. 이은우는 아직 서예린의 정체를 모르고, 서예린도 이은우가 익명90이라는 걸 모른다.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그냥 하지 말기로 했다. 익명에는 익명인 이유가 있었고. 만약 서예린한테 말해준다면. ‘……바로 현피 뜨자고 말하겠지.’ 익명90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으신 섹x좌니까. “근데 여자 셋 끼고 있는 게 어떻게 대학생활 조진 거지.” 옆에서 꿍얼거리듯 속삭이는 서예린의 목소리에, 나는 녀석의 입에 쌈을 싸서 넣어주었다. * * * “…….” 용점퍼에 손을 푹 찔러 넣은 민주희는 괜히 땅을 내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기숙사 회식이 있는 고기집 앞에 있는 흡연부스. 도착한 다음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건, 그만큼이나 민주희가 고민했다는 의미였다. ‘후우, 이제 진짜 들어가야 해.’ 기숙사 모임 같은 걸 딱히 좋아하진 않는 민주희였으나, 여기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김우진이랑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서. 마침 술을 마셔서 거나하게 취했을 테니 속마음을 듣기 쉬울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왔으나. 막상 다짐은 해봐도 초조함에 고기집 앞에서 담배나 피워대고 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며,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 “아.” 김우진과 서예린. 아직 회식은 끝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먼저 일어나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본인이 취하면 어쩌자는 거지?” “안 취했는데요!”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서예린을 부축하는 김우진. 민주희는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본다. “우지나, 너희 집에 갈 거야?” “너 데려다주고.” “왜에? 나, 너희 집에서 잘래!” “싫어.” “그럼 네가 우리 집에서 자라.” “아, 맞다. 집 앞까진 못 가준다. 혹시 어머님 뵈면 이상해지니까.” “어우, 술이 확 깬다 우진아.” 꽤나 친근한 대화를 나누면서 가버리는 두 사람. 흡연부스에 숨은 채로 두 사람의 등을 멍하니 지켜보던 민주희는 담배를 끈 후. “…….” 괜스레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돌아가기로 했다. * * * 기숙사 입주 날. 1년 동안 잘 지냈던 방을 빼고, 짐을 전부 옮기는 중이었다. 이삿짐을 부르기엔 양이 많지도 않고, 대상 형님께서 자차로 옮겨준다고 하신 덕분에 방으로 옮기기만 하면 됐다. 이번에 기숙사 티오가 좀 남았는지 혼자서 방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개꿀이네.’ 기숙사 1층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한창 이사 중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소 혼잡해 조금 있다 시작할까 고민하는 와중. 콕콕. “음?” 누가 등을 찔러왔기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남색 저지를 걸치고 있는 최이서가 있었다. “최이서?” 아직 개강도 안 했기에 왜 여기 있나 싶었는데, 최이서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사,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