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술의 사생아, 인형술. 무생물을 생물처럼 움직이게 하는 법술이다. 인형술사들이 무한한 자동성을 추구하는 이유다. 자동 인형에게 영혼이 없을지라도 괜찮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흉내도 극에 달하면 원본과 다를 바 없으니까. 고도화된 자동성은 언젠가 자율성이 되리라. 서란도 인형술사들의 의견에는 적극 동감했다. 다만 약간 방향성이 달랐을 뿐이다. 서란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수동 조작도 극에 달하면 자율성과 같습니다.” 관제소에 앉은 두 자문 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서란, 호혜문, 담청 셋은 지금 채석장에 있었다. 예전에 죽순탄도탄 만들겠다고 미사일 사일로로 개조해버린 그 채석장이 맞다. 서란이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죽순탄도탄을 가리키며 질문했다. “저건 실패작입니다. 이유를 아시겠나요?” 첫 번째 자문 위원 담청이 대답했다. “글쎄, 개발 지원금을 못 받아서?” 두 번째 자문 위원 호혜문도 답변했다. “유도 기능이 없어서 그런가요?” 서란이 선선히 수긍했다. “전부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 아집 탓이었습니다. 바로 자동성에 대한 아집!” 청중은 서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시를 보여줬다. 불가청비가시 살인광선 발사기, 광자포였다. “광자포를 보십시오. 이렇게나 작고 가볍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바로 자동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모든 과정이 수동 조작으로 진행되죠.” 죽순탄도탄은 나름 첨단 기술의 집합체였다. 발사부터 명중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세심하게 조율된 자동 절차를 통해서 진행된다. 사전에 비행 궤도만 입력해주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 자동성 때문에 크고 무거워졌다. 자동성을 위해서 탑재한 감지 기관, 출력 조절 기관, 입자 변환 기관, 자세 제어 기관 등은 혹덩어리와 같다. 죽순탄도탄의 중량은 증가하고, 추진 기관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다시 무거워진다. 반면에 광자포는 다르다. 법력 충전 과정, 수동. 목표 조준 과정, 수동. 광선 발사 과정, 딸깍. 충전부터 발사까지, 모든 절차가 수동 조작이었다. 그래서 광자포는 작고 가볍다. 만약 중간 과정을 절반만 자동 절차로 변경해도 광자포는 휴대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해질 거다. 글방에서 공연했던 연극이 촉박한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제작진이 서란과 호혜문 단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분신술 대신 배우 수십 명을 동원했으면 제대로 연습도 못하고 연극을 망쳤을 게 분명했다. 요점은 간단했다. 극단적인 구성 요소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설명을 듣던 호혜문이 뭔가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설마...” 서란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만들 폭탄 꿀벌인형에 자동 기관은 없습니다. 유도 기능도, 출력 조절도, 자세 제어도 전부 제가 하면 그만입니다.” 자동화를 통한 능률 향상은 범인의 발상이다. 그런 나약한 생각으로는 선계에 갈 수 없다. 충분히 강한 힘이 있으면 수동 발전기로도 원자력 발전소를 압도할 수 있다. 진정한 초인이란 세발자전거를 타고도 자전거 경주 국제 시합에서 우승하는 이를 의미한다. 서란이 외쳤다. “우리라면 할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할 수 있다!” 호혜문과 담청도 따라서 소리쳤다. “할 수 있다!” 드디어 인형 제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즉시 난관을 만났다. “그런데 꿀벌인형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느냐?” 담청의 물음에 서란이 대답했다. “적에게 날아가서 고압의 법력 폭발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일회용이겠지?” “아무래도 그렇죠.” 담청이 걱정을 표했다. “그러면 기껏 만든 폭탄 꿀벌인형도 일회용 법기로 분류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는 개발 지원금이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데...” 과연 추정 연령 천 살 이상, 예리한 지적이었다. “그러면 어쩌죠?” 당황하는 서란을 호혜문이 진정시켰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일회용만 아니라면 괜찮겠지요. 그렇다면 아예 다수의 약한 인형이 아니라 소수의 강한 인형을 만들죠.” “소수 정예, 정말로 합리적이구나.” 담청도 새로운 방향성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서란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개발 방향성을 틀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구상했던 ‘멋지게 휘두른 벌통 안에서 무수한 꿀벌인형이 튀어나와 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기’ 계획안을 고수할 것인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오늘부로 폭탄 꿀벌인형 계획안은 폐기합니다.” 열차가 출발과 동시에 선로를 이탈해버렸다. ***** 인형의 형상은 사람으로 정해졌다. 목표는 일단 고속 비행체였다. 하지만 날개가 아니라 추진 기관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날짐승은 후보에서 제외됐다. 인형 분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범선 같은 구조물의 형상도 불가능했다. 결국 만만한 게 사람이었다. 서란은 지저 세계에서 겪었던 흑린역류혈사와의 혈투를 떠올렸다. 생장술을 사용한 거인과 거대 뱀요괴의 괴수 대전. 점토를 잘 빚어서 임시로 형태를 잡았다. 호혜문이 의견을 냈다. “조금 더 크고 강해보였으면 싶군요.” 담청도 이런저런 제안을 했다. “폭탄은 이만 포기하는 게 좋겠다. 차라리 광선을 쏘는 건 어떻겠느냐.” 서란은 나름 상상력을 발휘해봤다. 하지만 분류상 인형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사회 통념상 인형의 범위에서 너무 벗어날 수는 없었다.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완성된 축소 모형은 대장군처럼 보였다. 두꺼운 갑옷과 부리부리한 두 눈이 인상적이었다. 움푹 파인 손바닥, 발바닥은 추진 기관이었다. 서란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가진 재료가 너무 적잖아.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야. 어쩔 수 없으면 타협할 줄도 알아야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거대 로봇이야. 나는 대만족이야. 그렇게 마음을 속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러면 이대로 만들어 봅시다. 크기는 대충 이층 건물 정도로 할까요? 거기서 더 키워봤자 재료가 부족할 것 같네요.” 손을 터는 서란에게 담청이 물었다. “자네는 이걸로 만족하는 건가?” “그럼요.” 서란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담청이 버럭 화를 냈다. “그건 거짓말이군!” 용안에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이 있다. 서란은 분명 진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억지로 참고 있을 뿐이었다. 담청은 얼어붙은 서란을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네 마음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존귀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고 용이 될 기회를 마다하던 예전의 너를 떠올려라! 나는 그때 너에게서 눈부신 광채를 느꼈다!” 그 외침이 서란의 심금을 울렸다. 그랬던 건가. 나는 아직도 충분히 내려놓지 못했구나. 여전히 상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야. 수선이란 초월. 초월은 곧 보충. 불완전함에 대한 보충. 진정으로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초인에게 걸맞는 마음가짐 역시 필요하다. 수동 발전기로 원자력 발전소를 압도하기 위해서는. 세발자전거로 사이클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토속성 공법으로 끝내 선인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상식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망치로 고정된 틀을 깨부숴야 한다. 내면에 잠들어 있던 소년이 물었다. ‘두려운 거예요?’ 초월을 바라는 소녀가 대답했다. ‘아니, 전혀.’ 울부짖어라, 나의 이데아. ***** 서란이 한동안 침묵하자, 담청은 노심초사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말이 조금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서란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호혜문과 담청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서란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서란...” 담청의 부름에 서란이 드디어 눈을 떴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한마디했다. “비로소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자문 위원 둘은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상식이란 미학을 구속하는 족쇄일 뿐. 제가 진실로 내려놓지 못했던 건 범인으로서 살아온 제 과거였습니다. 마치 애착 이불을 버리지 못하는 아이처럼, 저는 두려워했던 겁니다.” 두 자문 위원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란은 결연히 외쳤다. “하지만 이제는 저도 어른! 심지어 알을 깨고 초인이 되길 원하는 수도자로서! 지금 이 순간부터 나약한 범인이던 류서란은 죽었습니다! 진정한 예술성은 용맹함에서 나오는 법!” 그러더니 거대괴뢰 대장군 축소 모형을 걷어차 버리고는 크게 선창했다. “우리라면 할 수 있습니다! 미학을 위하여!” 호혜문과 담청도 곧장 따라서 외쳤다. “미학을 위하여!” 더 이상의 범인 행동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예술성만을 추구한다. 오직 미학. 서란이 말했다. “여전히 목표는 사람 인형 제작입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주저하지는 않을 겁니다.” 호혜문이 물었다. “그 말은?” “일단 허리를 자릅니다. 비행체에게 다리는 사치!” 담청이 경악했다. “엄청나게 참신한 발상이군!” 호혜문도 동조했다. “그야말로 미학의 극치!” 서란은 반쯤 트랜스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가뜩이나 개방적이었던 사고방식에 한층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다. 닫혀 있어야할 두개골이 활짝 열린 격이었다. 제작자가 제정신이 아닌 셈이다. 이럴 때는 자문 위원이 제동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호혜문과 담청도 딱히 정상은 아니었다. 호혜문은 어릴 적 예술에 관심이 아주 많았었다. 그리고 모든 자극이 그렇듯 미학에도 역치가 있다. 최고 지배 계층이던 그녀의 미학적 역치는 자연스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자문 위원 자격이 없는 건 담청도 마찬가지였다. 연령을 생각하면 보수적일 것 같지만, 아니다. 담청은 종종 하늘이 발사하는 괴전파를 머리에 달린 사슴뿔로 수신하고는 했다. 심지어 용이라서 사람과는 기본 세계관부터 다르다. 당연히 개발 과정도 폭주했다. 며칠 뒤, 이아금이 채석장에 방문했다. “다들 제정신인가?” 그리고 명계에서 기어올라온 것처럼 생긴 삼두육비의 근육질 거대마신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