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금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서란의 신작, 자안효를 관찰했다. 목이 반 바퀴 돌아간다는 부분만 제외하면, 평범하게 귀여운 올빼미였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언니, 얘네 되게 잘 만들었다.” “정말?” “응, 진짜 올빼미 같아서 귀여워.” 서란이 물었다. “애들이 좋아할 것 같아? 막 인형술이 배우고 싶어지고 그럴까? 아금이 네 생각은 어때?” “인형술은 잘 모르겠고, 애들이 좋아하긴 할 것 같아. 목 돌아가는 것만 어떻게 하면...” “방금 전에는 귀엽다며.” “새끼 고양이도 목이 돌아가면 그때부터 안 귀여워져. 그건 그렇고 숫자가 좀 많지 않나? 몇 마리나 만든 거야?” 서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대충 삼백 마리 정도?” 이아금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삼백 마리? 하루에 몇 마리를 만드는 거야?” “오늘은 이백 마리 정도? 똑같은 형태만 계속 만드니까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라.” “잠은 안 자는 거야?” 서란이 말했다. “원영기 수사가 잠을 왜 자?” “안 자?” “응, 안 자는데?” 이아금은 서란과 함께한 여행을 돌아봤다. 생각해 보니 서란이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원체 부지런한 사람이니, 자기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설마 잠을 아예 안 잤을 줄은 몰랐다. 이아금이 물었다. “그러면 나랑 여행 다닐 동안 밤에 뭐 했어?” “수행을 하거나 책을 썼지.” “언니는 항상 부지런하네.” 이아금의 눈매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가끔씩 이상하긴 해도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언니를 향한 존경심이 한층 커졌다. 그때, 대화 소리를 듣고 담청이 나타났다. “오, 아금이가 왔구나. 약을 가지고 온 것이냐?” “안녕하세요, 용녀님. 오늘은 놀러 왔어요.” 서란 약 먹이기 담당은 바뀐 지 좀 됐다. 이아금처럼 우수한 연단술사가 탕약 배달이나 하는 건 명백하게 낭비였다. 현재는 동물 친구들이 대신 배달해 준다. 인사를 마친 이아금은 뭔가를 발견했다. “어, 용녀님. 웬일로 장식을 다셨네요?” 담청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보이느냐?” “예, 정말 잘 어울려요.” 서란도 그제서야 눈치챘다. 담청의 사슴뿔에 뭔가가 묶여 있었다. 오죽문 여자애들이 자주 쓰는 머리끈이었다. 쪽빛 머리끈은 담청의 용안과도 잘 어울렸다. 이아금이 말했다. “혹시 제가 매듭 묶어 드릴까요? 저 그런 거 잘하거든요. 어릴 때 친구들한테 맨날 해 줬어요.” “오, 한번 해 보거라.” 담청이 뿔을 들이밀었다. 이아금은 일단 머리끈을 풀었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매듭을 지었다. 순식간에 복잡한 국화 매듭이 완성됐다. 서란은 깜짝 놀랐다. “와, 뭐야!” 이아금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용녀님. 훨씬 예쁘죠?” “정말 그렇구나! 혹시 다른 모양도 있느냐!?” 이아금이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대나무 매듭, 방울 매듭, 염소 매듭... 너무 어렵지만 않으면 다 가능해요. 언제든지 말만 하세요.” 서란이 박수를 쳤다. “오오!” 참고로 서란이 할 줄 아는 건 캠핑 매듭뿐이었다. 캠핑 붐이 불 때 유튜브로 배웠다. 하지만 일하고 영화 보느라 바빠 직접 캠핑을 해 본 경험은 없었다. 열심히 박수 치던 서란은 문뜩 든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한 번도 안 해 줬어?” “옛날에 물어 봤는데 싫다며.” “그랬나?” 분명히 그랬다, 머리끈 하기 싫다고. 그런 주제에 위급한 상황에서 비수로 사용하겠다며 비녀 만큼은 꼬박꼬박 꽂고 다녔다. 이게 다 영화 때문이었다. 언니를 침묵시킨 이아금이 물었다. “용녀님, 그 머리끈은 직접 사신 건가요?” “같이 공놀이하던 아이가 선물로 줬다.” 수줍게 선물한 쪽빛 머리끈. 왠지 사랑의 색채가 아른거리는 듯 했다. 이아금은 평정을 가장한 채 물었다. “혹시 남자애가 준 선물이었나요?” “여자애였다. 머리끈인데 당연하지 않느냐.” 아니었다. 이후, 셋은 사이좋게 차를 마셨다. ***** 계절은 겨울이 됐다. 몇 달 동안은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산골짜기 하루하루는 굉장히 따분하지만, 수도자의 삶이란 원래 그런 법이었다. 덕분에 서란은 수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잠을 잘 필요가 없어진 덕분에 시간은 많았다. 어인교단 신노릇, 소설 집필, 한증막 명상, 공법 수련, 인형 생산 및 개량 등으로 바쁘게 살았다. 심지어 요즘에는 악기도 배우는 중이었다. 한밤중의 감성 연주를 듣고 담청이 찾아왔다. “악기를 꼭 밤에 불어야만 하는 것이냐?” 쁘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서란이 물었다. “혹시 저택까지 들립니까?” “잘 들리더구나. 특히 자안효들 목소리가.” “아하!” 서란이 주변을 둘러봤다. 협곡에 빼곡하게 늘어선 자안효 군단의 합창. 거리가 멀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서란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담청 님.” “괜찮다, 앞으로는 주의하거라.” “예.” 서란이 손짓하자 자안효들이 눈을 감았다. 자줏빛 안광으로 가득했던 협곡이 어둠에 잠겼다. 행진곡 연습은 낮에 해야할 듯 싶었다. 함께 돌아가던 도중,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담청 님, 용은 꼭 잠을 자야만 합니까?”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될 수 있으면 많이 자는 것이 좋다.” “오, 어째서죠?” 담청은 뿔에 달린 장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의 수면은 수도자가 하는 명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기나긴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알아 가는 과정이지.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안 잘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 “그래서 매일매일 주무셨군요.” “맞다, 추울 때는 더 자기도 하지. 그런데 이게 왜 궁금한 것이냐?” “혹시 독안룡이 자고 있으면 몰래 승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잠시 생각하던 담청이 말했다. “참신한 계획이지만 안 될 것 같구나. 세상의 중심에 머무른 지도 이천 년이 훌쩍 넘었다지? 그 정도 독기면 잠이 눈에나 들어오겠느냐?” “그렇겠죠?” “안 봐도 뻔하지.” 저택에 돌아온 뒤, 담청은 다시 자러 갔다. 갑자기 일정이 빈 서란은 책상에 앉았다. 이 틈에 금영영에게 편지를 쓸 작정이었다. 주기적으로 보내고 있는데 도착 여부를 모르겠다. 아침이 되자 하녀들이 출근했다. 차려 주는 밥을 먹고 사람을 기다렸다. 오늘은 장선화가 오는 날이었다. 장선화는 어느새 서란의 조수가 됐다. 조수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제자였다. 평소에는 점토 공예나 조각 같은 걸 가르쳤다. 서란은 장선화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자기 미학을 이해해 줄 예술가로 만들 셈이었다.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대문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서란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겨울 방학 기간이라 한가해진 호혜문이었다. 비행 법기 대신에 이상한 산양을 타고 왔다. 호혜문은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며 인사했다. “서란, 그 동안 잘 지냈습니까?” “당연히 잘 지냈죠. 그런데 못 보던 산양이네요.” “아, 저 아이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적이 많이 쌓였거든요. 그래서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서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비행 법기가 아니라 산양을 골랐다고요?” “저는 대결계 밖으로는 잘 안 나가니까요. 산맥을 돌아다니는 정도면 저 아이로도 충분합니다. 요수답게 절벽 정도는 훌쩍 뛰어넘거든요. 보기보다 영리하기도 하고.” “그렇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춥죠?” “예, 얼어 죽을 것 같아요.” 곧장 따듯한 차를 대접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호혜문이 말했다. “후, 살겠네요. 최근 겨울은 유독 춥군요.”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장선화도 왔다. 처음에는 눈사람인 줄 알았다. 두꺼운 털옷 위로 눈이 쌓인 탓이었다. 걱정된 서란이 호다닥 뛰어갔다. “선화야, 너 괜찮니!?” “예, 괜찮아요.” 장선화는 제자리에서 통통 뛰어 눈을 털어냈다. 그리고 두꺼운 털옷을 벗었다. 안에는 토끼 몇 마리가 들어 있었다. 서란이 물었다. “이 토끼들은 뭐니?” “추울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서로서로 체온을 나누며 온 모양이었다. 장선화는 예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다. 차를 더 내온 하녀가 토끼들을 안고 사라졌다. 산양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듯 했다. 하하호호 웃고 떠들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서란, 혹시 그 소식 들었습니까? 공동 수뇌부가 약목파와 협상해서 원영기 공법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효능이 대단합니다.” “목속성 공법이겠네요. 어떤 효능인가요?” “초목의 생장을 다룹니다.” 서란의 오래된 기억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약목파, 주나라를 다스리는 수도문파였다. 과거 원영기 수사 한 명이 자기 수행을 포기해서 영초를 잔뜩 재배한 덕분에 문파가 부흥했다. 현재는 수선계 국제 시장 주최 문파였다. 영초 재배, 초목의 생장. 정말 딱 들어 맞았다. “빨리 배우고 싶다...” 서란의 중얼거림을 듣고 호혜문이 말했다. “그래도 당장은 힘들겠죠. 일단 지금 있는 두 종류의 법력부터 조화시켜야 하니까요.” “그쵸? 사실 십 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아요.” 호혜문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엄청 빠른 겁니다.” 서란도 따라 웃었다. “하긴, 양심이 있으면 십 년은 해야죠!” 장선화까지 웃으니 정말로 화기애애했다. ***** 2년 뒤, 서란은 두 종류 법력을 조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