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란은 우선 금단 생존자에게 몸을 만들어 줬다. 재료는 강변을 파서 찾아낸 점토였다. 순식간에 손바닥만 한 점토인형이 완성됐다. 마지막으로 인형 오호의 내부에서 떼어 낸 음향장치를 점토인형 머리통에 잘 부착시켰다. 금단도 얼른 자기 하반신을 포기했다. 하체가 저절로 타오르더니 금단 안으로 흡수됐다. 서란은 금단을 점토인형 몸통에 집어 넣었다. 금단 생존자는 곧장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수선계 지명수배자 위지목. 죄목, 많은 수도자들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함. 목적은 원영 의식임이 확실시됨. 서란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런 나쁜 놈이 원영기 수사가 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종합한 뒤 도출해 낸 신빙성 있는 결론이죠. 그는 높은 확률로 유나라에서 원영 의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유나라에서? 위지목이라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위험한 장소 아닌가요? 주변에 자리 잡은 수도문파가 이렇게 많은데?” 금단 생존자가 서란의 의문을 풀어줬다. “위지목은 과거, 삼환문의 수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 전의 멸문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위계 수사 중에서 혼자만 살아 남았거든요.” “그래서요?” “멸문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위지목은 문파의 물자를 모조리 챙겨서 도망친 모양입니다. 하지만 혼자 옮기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이었겠죠. 그래서 멀리 가지 못하고 부득이 근처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서란이 납득하자 금단 생존자는 급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보고 위지목이랑 싸워 달라는 건가요?” 금단 생존자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아뇨아뇨! 같은 결단기라고 홀로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닙니다. 저희 합동 추격대도 전력을 오판했다가 전멸했습니다. 우리끼리는 역부족이니 원영기 선배님을 모셔와야만 합니다.” “방법이 있나요?” “전투 현장까지만 데려다 주시면 됩니다!” 서란은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다. 말하는 사이에 떠내려간 인형들도 돌아왔다. 서란과 인형 사 자매, 금단 생존자는 다 함께 비행법기를 타고 상류로 향했다. 금방 전투 현장에 도착했다. 혈흔이나 시체는 없었지만, 온통 엉망이었다. 폭발로 쑥대밭이 된 현장을 둘러보던 금단 생존자가 어떤 수풀을 가리켰다. “저 수풀 근처입니다!” 서란은 수풀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어떤 물건을 발견했다. 굉장히 작은 피리였다. 새나 곤충을 부를 때 쓰는 물건. 이것도 물론 금단 생존자의 업적이었다. 죽기 전에 잽싸게 피리를 던져서 숨긴 것이었다. 금단 생존자가 말했다. “제가 알려주는 대로 힘껏 불어 주세요.” 서란이 피리를 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나 곤충에게는 들리는 모양이었다. 귀여운 인면조 한 마리가 날아왔다. 참새 몸통에 달린 어린 소녀의 머리통,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외형이었다. 만일에 대비해, 합동 추격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다가 피리 소리를 듣고 접근한 모양이었다. 인면조가 서란 주위를 날며 물었다. “암호, 암호!” 금단 생존자가 슬쩍 귓속말을 했다. “참새 구이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한 암호였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참새 구이!” 인면조가 서란의 왼쪽 어깨에 앉았다. 서란은 작은 쪽지에 암호문을 적었다. 옆에서 금단 생존자가 알려줘서 가능했다. 쪽지를 잘 말아서 작은 원통 안에 넣었다. 원통을 목에 건 인면조가 동쪽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참새 엉덩이를 보며, 서란이 물었다. “원영기 선배님은 언제쯤 오실까요?” 오른쪽 어깨에 앉아있던 금단 생존자가 말했다. “인면조의 속도를 고려하면... 하루 정도면 원영기 선배님이 여기까지 도착하실 겁니다.” “우리가 서대륙을 구했군요.” “맞습니다.” 서란과 금단 생존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둔중한 울림이 두 사람을 두드렸다. 마치 태산만 한 북을 두드리는 듯 했다. 실상은 소리가 아니라 법력의 파동이었다. 서란은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원영 의식이잖아!” 누군가 원영 의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상황은 바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했다. 조만간 위지목의 원영 의식이 시작된다. 금단 생존자가 다급히 질문했다. “원영 의식은 보통 얼마나 걸리죠? 당연히 결단 의식보다는 훨씬 길겠죠? 제 말이 맞죠?” 서란이 대답했다. “그래봤자 한나절이면 끝날 겁니다.” 원영기 수사의 도착까지는 대략 하루가 걸린다. 하지만 원영 의식은 고작 한나절이면 끝난다. 준비 단계까지 포함해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서란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금단 생존자가 들려준 혐의가 절반만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위지목은 끔찍한 악종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재능까지 출중하다고 한다. 원영기 수사가 된 위지목은 얼마나 강할까. 그는 필히 다음 경지까지 도달하고자 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때는 피가 강처럼 흐를 게 분명했다. 사실, 서대륙의 위기가 서란의 위기는 아니었다. 서란은 오죽문으로 돌아가서 보호를 받으면 된다. 위지목이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오죽문을 지키는 네 명의 원영기 수사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러면 대륙이 시산혈해가 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위지목이라는 재앙은 결코 서란에게 닿지 못한다. 어차피 시간은 서란의 편이었다. 그냥 화신기까지 폐관 수련만 해도 그만이다. 수십 년만 지나도 원영기인 위지목 정도는 벌레처럼 죽일 정도로 강해질 게 분명했다. 애초에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원영기 수사에게 쫓길 신세였다. 천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추살될 것이요,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영원히 숨어 지내야할 것이다. 그러니 서대륙이 위험하다느니 어쩌느니 했던 금단 생존자의 경고는 허황된 소리나 다름없었다. 물론 서대륙이 다소 혼란스러워지긴 할 거다. 꽤나 많은 수도자가 죽을 확률이 높다. 세상이 어지러운 틈을 타 요괴들도 극성일 테고, 범인들의 삶도 덩달아 힘들어질 것이다. 생각을 마친 서란은 석연화에 올라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목적지는 원영 의식이 준비 중인 제단이었다. 금단 생존자가 당황해서 물었다. “지금 혼자서 쳐들어가는 겁니까?!” 바람 때문에 서란은 큰소리로 대답해야만 했다. “원영 의식만 방해하고 도망칠 겁니다!” “아니, 무슨!” “자꾸 떠들면 두고 갈 겁니다!” 잠시 침묵하던 금단 생존자가 대뜸 소리쳤다. “저, 당신을 압니다! 방금 기억났어요! 스무 살에 결단에 성공했다던 오죽문의 류 수사! 당신, 화신기에 도달하는 게 확실시된 천재잖아요!” 서란이 뭐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금단 생존자가 말을 계속했다. “어리석은 짓 하지 마세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위지목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죽을 거라고요! 하늘이 준 재능을 진창에 버릴 셈입니까?!” “저는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수선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도망갈 수는 없어요!” 금단 생존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당신 재능은 이미 충분히 귀하다고!” “귀한 재능 말고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금단 생존자는 말문이 막혔다. 서란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합동 추격대에 자원했었다. 금단 생존자는 서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협력하도록 하죠! 날아가면서 들으세요! 지금부터 위지목이 사용할 만한 전술이나 법기에 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착실하게 위지목에게로 나아갔다. 심장 소리처럼 맥동하는 법력의 파동 덕분이었다. 그저 맥박의 근원으로 향하기만 하면 됐다. 의식 장소는 어떤 산봉우리였다. 산허리부터 거대한 결계로 둘러싸여 있었다. 법기인지 진법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수준 높은 은밀성을 지니고 있었다. 의식 준비의 영향으로 천지영기가 맥동하지 않았다면 찾는데 한참 걸렸을 것 같았다. 서란이 외쳤다. “꽉 잡으세요!” 인형 사 자매의 눈 여덟 개가 동시에 빛났다. 한 점에 집중된 광선이 결계를 약화시켰다. 서란과 금단 생존자, 인형 사 자매를 태운 석연화가 한계까지 가속했다. 그리고 서란 일행은 결계와 충돌했다. 유리처럼 깨져 흩날리는 결계의 파편. 충격에 튕겨나가는 인형 사 자매와 금단 생존자. 웅장한 의식용 제단 위에 선 위지목. 그리고 제단 꼭대기에 놓인 오색 보주. 서란은 제단의 구조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어차피 그런 건 문파에서 준비해 줄 테니까. 그래서 원영 의식을 시작하는 법, 의식 도중에 내리치는 천겁에 대응하는 법, 원영을 응집시키는 법 외에는 모른다. 당연히 의식용 제단을 망가뜨리는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 물건을 고장내는 건,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것보다 월등하게 쉬운 법이다. 게다가 딱 하나, 저 오색 보주의 역할은 잘 안다. 서란은 오색 보주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약탈 목표 너머로 낯선 사내의 얼굴이 보인다. 사내의 당황한 눈동자에 서란의 얼굴이 비쳤다. 정말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황한 사내, 위지목은 과연 비범했다. 그의 영민한 두뇌가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습을 당했다. 눈앞의 습격자에게 동료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위지목은 현재 대륙 전체에게 쫓기는 입장이었다. 기습당한 상태에서 몇 명인지도 모르는 적들과 싸우는 건 명백하게 하책이었다. 시간은 절대로 위지목의 편이 아니었다. 당장 원영 의식을 시작해야만 했다. 일단 천겁이 내리치기 시작하면, 원영기 수사 정도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못한다. 위지목은 오색 보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서란의 머리도 맹렬하게 회전하는 중이었다. 목적은 위지목의 원영 의식을 방해하는 것. 그러려면 반드시 오색 보주를 차지해야만 했다. 저 보주가 있어야만 의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란은 속도와 거리를 가늠했다. 속도는 법기에 탄 서란이 월등하게 빠르지만, 보주까지의 거리는 위지목이 훨씬 가까웠다. 보주만 낼름 챙겨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류서란과 위지목. 삼백 년 간격으로 유나라에서 태어난 두 천재. 두 결단기 수사의 손끝이 보주에 닿았다. 그리고 동시에 영혼과 금단을 공명시켰다. 두 사람의 법력이 손을 통해서 보주로 전해졌다. 오색 보주가 성대하게 폭발하자 그 안에서 뿜어진 두 줄기 광채가 하늘로 솟구쳤다. 서란과 위지목은 폭발의 여파로 튕겨 나갔다. 돌풍과 함께 먹구름이 산꼭대기로 모여들었다. 천공에 응집된 천지영기가 저절로 번쩍였다. 이내 소나기 같은 벼락이 쏟아졌다. 하늘이 내리는 시련, 천겁. 대상은 서란과 위지목, 두 사람이었다. 미증유의 동시 원영 의식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