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서란은 수행 전반을 보이콧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단약 섭취도 수선의 일부였다. 덕분에 담당자인 이아금만 생고생을 했다. 입을 꾹 닫고 도리도리하는 금쪽이에게 약 한번 먹여 보겠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는 소리다. “덜컹덜컹, 마차가 들어갑니다. 성문을 열어주세요.” 이아금이 약숟가락을 서란의 입으로 가져갔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성문은 요지부동이었다. 서란은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음, 으음!” 어린애 반찬 투정과는 격이 다른 철벽 수비였다. 애가 뭘 거부하면 억지로라도 먹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결단기 수사가 인간을 초월한 교합력으로 이를 악물어 버리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아금은 접근 방법을 바꿨다. “언니, 진짜 이렇게 유치하게 굴 거야? 이제 계절 바뀌면 언니도 스물네 살이 되잖아. 약 먹기 싫다고 투정부릴 나이는 한참 지났거든?” 짐짓 화를 내도 안 먹혀서 작전을 또 바꿨다. “알았어, 그러면 오늘은 딱 한 입만 먹자. 나도 더 먹으라고는 안 할게. 진짜 딱 한 입이야. 자, 여기 봐봐. 이 조그만한 약숟가락 보이지? 아 하세요, 아.” 미운 스물세 살은 이번에도 들어먹질 않았다. “관둬, 전부 관둬. 먹기 싫으면 억지로 먹지 마. 이거 정말 귀한 탕약인데 언니 대신에 내가 다 마셔야겠다. 아, 맛있다 맛있어. 이러다가 내가 언니보다 경지가 더 높아지겠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유도도 무용했다. 다른 방법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아금은 그냥 왼손으로 서란의 코를 꾹 막아버렸다. 숨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리면 그 틈에 탕약을 콸콸 부어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단기 탈인간 보디는 호흡마저 불필요. 자존심 강한 두 수도자의 대결이 계속됐다. 탕약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서란이 눈알을 굴려서 이아금을 바라봤다. 모두 함께 시선으로 말해요. 대충 ‘저런, 안 통했는데 어쩔래?’ 라는 눈이었다. 열받은 이아금이 잠깐 고민했다. 그냥 코로 부어 넣을까?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니야. 참아야 한다, 아금아. 상대는 너를 업어 키운 서란 언니다. 결국 더 어린 동생이 백기를 들었다. ‘서란에게 단약 먹이기’는 오늘도 실패했다. 이아금은 일단 약당으로 돌아갔다. 작전상 후퇴였다. ***** 이아금이 서란과 실랑이하고 있던 시간. 연단술사들은 전부 모여서 토의하고 있었다. 물론 류서란 때문이었다. 어떻게 단약을 먹일 것인가. “이 수사가 또 늦는 걸 보니 오늘도 약을 거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제 어쩌죠?” “밥이나 간식은 제대로 먹고 있지 않나요? 식사에다가 몰래 섞어서 줄까요?” “류 수사는 의욕이 없는 거지, 갑자기 지성이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리고 비싼 단약을 억지로 먹여도 본인이 약효를 흡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결국 오늘도 이렇다 할 명안은 나오지 않았다. “내일도 단약을 조제할까요?” “일단은 양만 조금 줄이고 매일 가져다 주죠.” “먹지도 않는데 굳이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약재 아깝다고 대뜸 주는 걸 멈췄다가 더 엇나가면 어쩌려고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사소한 부분에서 상하는 법입니다. 꾸준히 가져다주면 언젠가는 생각이 바뀌겠지요.” “그럼 안 먹은 단약은 어쩌죠? 시간이 지나면서 약효도 빠르게 사라지는데...” “그건, 이 수사 먹이죠 뭐.” 다들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하긴 거의 의자매던데, 좋은 생각입니다.” “류 수사도 별로 안 아까워하겠어요.” 그때 문이 열리며 이아금이 들어왔다. “저기...” 면목 없는 얼굴로 들어온 이아금에게 한 연단술사가 말했다. “오늘도 실패했나보군.” “그게, 도저히 입을 열질 않아서...” 연단술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알만하군, 수고했네. 아참, 그 탕약은 이 수사 자네가 다 마시게나. 버리기는 아깝고 보관할 방법도 마땅치 않으니.” “예...” 이아금이 차가운 탕약을 사약처럼 마셨다. ***** 파업을 하고 열흘이 지났다. 서란의 마음은 점점 불편해져만 갔다. 처음부터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너무 지쳐서 그랬다. 침대에 누운 서란이 속으로 생각했다. 늦잠 자니까 너무 좋다. 그런데 언제까지 쉬지? 한 달? 아니면 반 년? 경지 올리는 건 지금도 빠르니까 좀만 더 쉴까? 그래, 여태까지 열심히 달려왔잖아. 일 년 정도는 푹 쉬는 거야. 편안한 표정으로 다시 단잠에 들던 서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역시 일 년은 너무 긴가?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데. 그때 가서 다시 하려면 힘들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일 년을 논다고 의욕이 날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질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시작하기 힘들 것 같아. 서란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혼잣말했다. “역시 수행을 해야겠어.”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 때문에 쉽사리 침대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아, 진짜 하기 싫은데 어쩌지. 내가 게으름 피우면 문파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혼자서 단약이랑 영석 잔뜩 빨아먹더니 논다고. 아직 호의를 보일 때 수행을 재개해야 하는데. 미움받고 싶지는 않은데. 딱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할까? 하지만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부정적인 사고가 무한 나선을 그렸다. 우스갯소리로는 결단기병이라고 부르지만, 서란의 증상은 본질적으로 심마였다. 심마란, 마음을 좀먹고 영혼을 죽이는 병이었다. 서란은 점점 극단적인 망상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수행을 완전히 포기한 미래를 상상했다. 문파 비승이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오죽문 수도자들이 서란에게 가시 돋친 욕설을 토해냈다. 얄팍한 인간 관계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친구들마저 서란에게서 등을 돌려 떠나갔다. 서란은 모두의 원망 속에서 고독하게 죽었다. 수행을 재개할 경우를 가정한 미래도 있었다. 상상 속 서란은 오랜 휴식기 동안 녹이 슨 감각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부랴부랴 수선에 힘썼다. 하지만 이미 볼품없이 퇴색된 재능은 두 번 다시 빛나지 않았고, 서란은 화신기 수사가 되지 못했다. 이번에도 서란은 쓸쓸하게 죽었다. 천운으로 화신기에 도달한 미래도 비참했다. 간신히 문파 비승에 성공한 서란은 너무 무리한 탓에 수행이 퇴보해서 대부분의 경지를 잃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서란을 내쫓아 버리고 자기들끼리 행복한 선계 생활을 즐겼다. 서란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채 죽었다. 심마가 서란의 영혼을 갉아 먹었다. 서란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하지만 피해 망상은 점차 심해졌다. 끝내는 환청까지 들렸다. “네 부모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심지어 너 자신마저 그랬지. 하긴, 누가 너 같은 걸 사랑하겠어.” “아니야...” 서란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애써 부정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심마가 서란의 귀에 계속해서 속삭였다. 귀를 틀어막아도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란은 밤새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다음 날 아침, 이아금이 약을 가져왔다. 서란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 오죽문 수뇌부는 당시에 막 축기기 수사가 된 호혜문을 보고 글방 선생이 제격이라고 생각했었다. 빛나는 지성, 모범적인 행실, 박학다식함까지. 그야말로 엄격한 글방 선생이 되어서 오죽문 아이들을 효자 효녀로 개조해줄 것 같았다. 물론 호혜문의 글방에 엄격함은 없었다. “선생님, 저 가지 먹기 싫어요.” 편식하는 아이에게 호혜문이 말했다. “가지가 먹기 싫어요? 왜요?” “그게...” 아이가 입을 다물자 호혜문의 미소가 짙어졌다. “으응, 왜 그럴까요? 말하기 싫어요?” “아뇨.”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요, 그럼 선생님한테만 몰래 알려줄래요?” “다른 사람한테 말해주면 안 돼요.” “알았어요, 약속할게요. 자, 귓속말.” 아이가 작게 속삭였다. “미끄덩거려서 안 좋아해요.” 호혜문이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면 선생님이 대신 먹어줄까요?” “정말요?” “네, 정말이에요.” “선생님은 가지도 먹을 수 있어요?” 호혜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수 있어요.” “왜요?” 뭔가 이상한 질문이지만, 선생 경력만 오 년이었다. “골고루 먹어야 미인이 되거든요.” 아이는 호혜문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 진짜 골고루 먹었나보다.’ 그리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면 저 반만 먹을래요.” “그럴까요?” 엄격함은 없었지만 호혜문은 좋은 선생이었다. 그녀의 애정 가득 교육 방법은 수많은 꾸러기 꾸러기 말썽꾸러기들을 모범생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래서 오죽문 내부에서는 호혜문의 글방은 효자 효녀 제조소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글방 졸업식, 참스승 호혜문은 올해도 무수한 금쪽이들을 바른 생활 어린이로 갱생시켰다. 부모들의 눈물 어린 감사와 함께 한 해가 끝났다. 호혜문은 바쁜 탓에 신경써주지 못했던 친구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서란은 소통을 일절 거부했다. 몸을 둥글게 만 것이 꼭 고슴도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