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선문은 오죽문 동쪽에 있다. 금작파는 오죽문 북쪽에 있다. 그리고 약목파는 오죽문 동북쪽에 있다. 네 문파는 지리적으로 굉장히 인접한 이웃이다. 장막 속에 감춰져 있던 네 번째 친선대회 참가 문파가 바로 해선문이다. 참고로 일강이중일약에서 일약을 담당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해선문은 나머지 세 문파와 겸상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마침 자리가 하나 남기도 했고, 나름 이웃 문파인데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놀면 따돌리는 것 같아서 껴줬다. 학연 지연 혈연 중 지연 찬스를 쓴 셈이다. 그래도 내륙 문파인 오죽문과 금작파에게는 소중한 해상 자원 공급처였다. 보통은 자염과 해산물을 구매하곤 했다. 당연히 큰 돈벌이는 안된다. 가난한 해선문은 경매에서 손가락만 빨다가 마지막 번호를 받았다. 의뢰 내용은 작은 인공섬 건설이었다. 자기들도 영초 한번 길러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얘기를 듣던 서란이 물었다. “영초를 키우는데 왜 섬을 만드시나요?” “섬 주변에 산호를 잔뜩 심을 예정입니다. 키우려는 영초가 산호초에서만 자라거든요. 다 자란 모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해선문 수사가 그림을 보여줬다. 산호초에 영초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이건 해초 아닌가요?” “해초도 풀입니다.” 수긍한 서란이 즉시 공사를 시작했다. 이미 거산요지선공에 통달해 버린 서란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뒷짐 지고 해역을 빙빙 돌았더니 섬이 생겨났다. “영석은 오죽문으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약목표국에게 특급배송으로 맡기면 금방 가져다줄 겁니다.” 공사를 마친 서란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삼백 건이 넘는 의뢰를 해결했다. 그리고 방금 완성한 인공섬이 마지막 의뢰였다. 무인도에 도착하자 담청이 반겨줬다. “금방 끝났구나.” 변온동물인 담청은 모래사장에 파묻혀서 얼굴만 내놓고 모래찜질을 즐기는 중이었다. “고작 섬 하나 만드는 일인데요, 뭐.” 서란도 곧장 옆에 드러누웠다. 토신력을 사용하자 모래가 서란의 몸을 덮었다. 선글라스가 없는 건 아쉽지만, 어차피 결단기 수사는 태양 좀 직시한다고 다치지 않는다. 내리쬐는 햇빛,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좋은 친구. 작년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일만 했다. 서란과 담청은 놀 자격이 충분했다. 두 절친의 여름 바캉스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해변, 그리고 생선 대가리. 잠깐, 생선 대가리?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부조화를 감지한 서란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생선들이 두 다리로 해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선 머리에 박힌 크고 둥근 눈알. 쌍꺼풀이 아니라 아예 눈꺼풀조차 없었다. 비늘로 덮인 전신, 손발에는 물갈퀴도 존재했다. 바캉스를 방해한 불청객들은 어인족이었다. 다만 의도적으로 찾아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누가봐도 당황한 채 다급하게 시선을 교환하던 어인족은 대표를 한 명 뽑아서 보냈다. 천천히 다가온 어인이 말했다. “저기, 이 섬은 저희 어인 교단의 사유지라서요. 실례지만 즉시 퇴거해 주시겠습니까?” 서란은 내심 당황했다. 네 섬, 내 섬이 어디 있어? 이거 혹시 그건가? 계곡에 평상 펴놓고 마음대로 자릿세 받는 그거?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무슨 권리로 저희를 쫓아내는 겁니까!” “그거야 해선문에게 땅문서를 산 주인의 권리죠.” 서란이 크게 외쳤다. “당장 퇴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누워있던 모래사장을 정리했다. 옆에서 눈치보던 담청도 슬그머니 일어났다. 덕분에 사슴뿔도 모래 위로 드러났다. 어인들은 담청의 뿔을 보곤 헉하고 경악했다. “저건!” “요, 용!” “용이잖아!” 어인 대표가 갑자기 떠나려는 둘을 만류했다. “자, 잠시만요!” 떠나려던 서란과 담청이 의아해서 바라봤다. 반사적으로 둘을 멈춰 세운 어인은 고뇌했다. 그리고 엄청난 순발력으로 핑계를 지어냈다. “아차, 이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다니... 다시 생각해보니 저희 교단이 구매한 사유지는 이 섬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만 착각해 버렸지 뭡니까. 쉬시는데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삼척동자가 봐도 굉장히 수상한 태도였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놀아도 상관없는 게냐?” 담청의 물음에 어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요. 애초에 저희 섬이 아닌데 무슨 권리로 여러분을 내쫓겠습니까. 무인도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나요.” “그래, 알았다.” 대답을 들은 담청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자기가 누워있던 구덩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란을 바라봤다. 서란은 모래를 덮어주며 어인에게 질문했다. “혹시 다른 용건이 있으신가요?”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에 어인이 고개를 저었다. “용건이요? 전혀요. 저희는 이만 가보죠.” 어인족은 우르르 바다로 입수했다. 하지만 섬을 떠난 건 아니었다. 해수면 위로 떠오른 생선 대가리들이 아직 서란과 담청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란과 어인들은 잠시 눈싸움을 했다. 눈꺼풀이 없는 어인과 결단기 수사. 하나가 수명이 다해서 죽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대결을 멈춘 건 어인의 외침이었다. “혹시 휴식을 방해한 보상이 필요하십니까?!” 서란이 마주 외쳤다. “아뇨!” 잠시 침묵하던 어인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수사님의 법력은 토속성이시군요?” 서란이 대답하지 않자 어인이 계속 떠들었다. “토속성이라니, 이거 참 공교로운 일이군요. 마침 저희 교단에도 수리할 건물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용궁을 지탱하던 산호 대들보에 잔금이 갔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옆에 있던 어인들이 일제히 동의했다. “일등 신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어요!” “서둘러서 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다간 용궁이 무너져 버려요!” 누워서 듣고 있던 담청이 벌떡 일어났다. “용궁이라고?” 당연하겠지만 용궁에는 용이 산다. 담청은 살면서 다른 용을 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동굴 호수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일등 신도가 반색하며 물었다. “혹시 용궁에 흥미가 있으십니까?” 담청이 선선히 수긍했다. “그래, 괜찮다면 한번 방문하고 싶구나.” “당연히 괜찮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걱정된 서란이 담청에게 속삭였다. “진짜로 따라가시려고요? 어인족 녀석들 엄청 수상해 보이는데요? 함정이 분명해요. 용궁이라는 것도 전부 방금 지어낸 거짓말이라고요.” 하지만 담청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거짓말이면 어떻고 함정이면 어떠냐. 어인족이 무슨 재주로 용을 해친다고. 속인 사실이 드러나면 벌을 주면 그만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여의주를 가진 용에게는 신화적인 힘이 있다. 그래서 적어도 인계에서만은 천하무적이었다. 더 강한 존재들이 전부 승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심이 안된 서란이 말했다. “그러면 저도 같이 가죠.” “위험할 것 같다더니?” “그런 곳에 어떻게 담청 님을 혼자 보냅니까. 함정이라면 혼자보다는 둘이 더 안전하겠죠. 만약에 거짓말이 아니면 저도 용궁 구경하고 좋죠.” “그래, 같이 가자.” 담청이 웃으며 서란의 손을 잡아 끌었다. 기다리던 일등 신도가 반갑게 맞이했다. “두 분이 함께 가시나요? 좋습니다, 그러면 바로 출발합시다. 저희는 이제부터 천해 지부를 거쳐서 심해에 있는 교단 본부로 갈 예정입니다. 아참, 형제님께서는 먼저 가서 소식을 전해주시죠. 환영 준비를 부탁합니다.” 서란과 담청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물었다. “환영 준비요?” “뭔가 거창하구나.” 일등 신도가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선물도 잔뜩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어인의 눈꺼풀 없는 눈알이 둘을 응시했다. ***** 전령은 순식간에 교단 본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산호로 지어진 용궁이 심해의 짙은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용궁에 들어선 전령이 곧장 교주의 거처로 향했다. “교주님, 긴급 속보입니다!” 산호 분재를 다듬고 있던 교주가 물었다. “신도님, 아직도 수행이 부족하시군요. 해류에 떠밀리는 해초가 아니라 굳건한 산호와 같은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소식인가요?” 서두른 탓에 아가미를 헐떡이던 신도가 외쳤다. “천해 경비대가 순찰을 돌다가 용을 만났습니다! 용과 그 일행께서는 지금 초대를 받고 심해로 향하고 계십니다! 어서 환영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교주님!” 깜짝 놀란 교주가 집게발 가위로 애지중지 가꾼 분재 허리를 잘라버렸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초대를 수락하셨다고? 혹시라도 무례한 언사로 강요한 건 아니겠지요?” 전령이 입을 뻐끔거리며 대꾸했다. “저희가요? 용을?” 교주도 금방 납득했다. “하긴,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설득은 마침 자리에 계시던 홍린어 일등 신도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오오, 그녀가 이번에도 큰일을 해주었군요.” 교주가 감탄하자 전령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뛰어난 언변으로 순식간에 신뢰를 얻어내는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교주는 어인족의 오랜 고난을 상기했다. “다행입니다, 신께서는 아직 우리 어인족을 버리지 않으셨군요.” 힘들게 살아온 전령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예, 맞습니다.” 물고기라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