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금이 찾아올 때까지, 세 예술가는 채석장을 떠나지 않았다. 서란과 담청은 원래부터 하는 일이 없었다. 글방 선생 호혜문도 요즘은 한가했다. 겨울 방학 기간이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거대인형 제작이었다. 어떤 의견이 나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개발 과정은 지나치게 순조로웠다. 사공 세 명이 열심히 노를 저었다. 고급 재료가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벽을 만났다. 담청이 합당한 지적을 했다. “그런데 지금 가진 소재가 너무 적구나. 얼마나 거대한 인형을 만들 것인지는 둘째치고 재료부터 구해야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기껏해야 머리 하나 완성하고 동이 날 판이다.” 최근 득도한 서란이 눈을 반개하고 물었다. “담청 님, 어찌하여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좋은 소재가 없다면 덜 좋은 소재를 사용하면 그만인 것을... 돌이라면 이 채석장에 있는 것으로도 족합니다.” “허억!” 놀란 담청이 숨을 크게 삼켰다. 사공 셋을 태운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흩어진 일행이 바위를 굴려 한곳에 모으던 중, 호혜문이 물었다. “그런데 석재들의 크기가 별로 만족스럽지 않군요. 거대인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것보다는 커다란 덩어리가 필요하지 않나요? 차라리 작은 돌산이라도 하나 깎을까요?” 서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 또한 무의미한 욕심... 바위가 작다면 요철을 만들어서 서로 조립하면 됩니다. 마치 벽돌담처럼 말이지요.” 설법 한 번에 해탈해버린 호혜문이 외쳤다. “제가 어리석었군요!” 배가 거센 물살을 힘차게 갈랐다. 석재를 어느 정도 모은 일행은 일단 머리부터 시험 제작 해보기로 했다. 서란이 작성한 설계도에 따라서 가공된 석재 블록이 사람 키보다 높이 쌓였다. 이제 조립만 하면 머리가 완성된다.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을 이리저리 조립하던 도중, 담청이 의문을 표출했다. “그런데 접착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아무리 딱 맞게 조립해도 결합부가 요철뿐이면 곤란할 것 같구나. 강한 충격이라도 받으면 맞물린 접합부가 파손되면서 연쇄적으로 분해될 것이 분명하다.” 강력 접착제는 굉장한 고가였다. 대폭 삭감당한 개발비로는 감당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미학을 추구할 수는 있다. 다소 몰상식한 사람이 될 뿐이다. 상식을 버린 자, 류서란은 멈추지 않는다. “제 거대인형에게 접착제는 필요 없습니다.” 아직 비상식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어리석은 용이 다시 한번 질문했다. “하지만, 그러면 내구성이...” “쉿!” 서란의 검지손가락 담청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내구성 같은 사소한 걱정을 하시다니. 담청 님 답지 않게 자꾸만 범인처럼 생각하시는군요. 중요하니까 반드시 기억해두세요.” 잔뜩 집중한 담청과 호혜문에게 서란이 말했다. “몸을 지키는 갑옷이란 화살이 두려운 범인에게나 어울릴 하찮은 물건입니다. 진정한 강자에게는 피격 상황을 상정한 방어 수단이 불필요한 법!” 호혜문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맞습니다. 내구성이 부족해서 걱정이십니까? 애초에 맞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신경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저라면!” 절대 맨몸 회피 선언. 호혜문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언변이 유창해졌다. “결코 외물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그 결연한 의지, 잘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묵묵히 전진하는 구도자에게만 허락된 품격! 역시 저의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류 수사가 품고 있는 권각술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함께라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을 추구하는 권각술 애호가의 열렬한 반응에 담청도 약간 솔깃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접착제는 필요가 없겠구나!” 셋은 하하호호 웃으며 조립을 이어갔다. 배가 이미 육지에 도착했건만, 아무도 노젓기를 멈추지 않았다. 개발 과정에서 무수한 문제가 속출했다. 일단 머리, 몸통, 양팔이 완성되었다. 배꼽 아래에는 주요 추진 기관을, 양손에는 보조 추진 기관을 부착했다. 두 눈에는 광자포가 탑재되었다. 시험 삼아 비행해봤더니 추진력이 부족했다. “공격을 전부 피하기에는 속도가 좀 느리구나.” “그러면 팔을 여러 개 달아버리죠.” 호혜문은 적극 찬성했다. “주먹이 무려 여섯 개! 완전 무신!” 보조 추진 기관이 세 배로 증가하자 최고 속도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파괴광선의 명중률이 곤두박질쳤다. 조준을 위한 머리의 회전 속도와 거대인형의 이동 속도 간의 월등한 격차 탓이었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호혜문의 주장이었다. “현재로서는 이 속도가 가장 최선입니다. 여기서 더 빨리 회전시키면 소재가 버틸 수 없어요. 즉시 목이 분리될 겁니다.” 회전 속도는 변경할 수 없다. 그러면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회전 각도를 좁히면 된다. “머리도 여러 개 달죠.” 유일무이한 비인간, 담청은 감탄했다. “머리가 세 개? 정말로 강해 보이는구나!” 머리통 세 개가 뒤통수를 맞댔다. 완벽한 정삼각형, 사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 번에 발사하는 화력도 세 배로 강해졌다. 다른 의미로 땅 짚고 헤엄치던 배다. 초인적인 노젓기가 배를 산꼭대기까지 올려놓았다. 사공이 셋이나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삼두육비 거대인형은 그렇게 탄생했다. 자동 기관을 일체 배제한 수동 조작 인형이다. 당연히 조작 방법도 끔찍할 정도로 어렵다. 조작 설명서만 열 권이 넘어갔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이쯤에서 개발이 중지된다. 하지만 류서란은 탈범인 초천재 일영근자. 제각기 좌우로 회전하는 머리, 세 개. 상하좌우 따로따로 움직이는 눈알, 여섯 개. 단순한 동작에도 서로 관절이 꼬이는 팔, 여섯 개. 하늘에 닿은 오성이 끝내 조종에 성공해버렸다. 일곱 줄기 광채를 뿌리며 인형이 하늘을 날았다. 마치 거대한 가오리연을 보는 듯 했다. 채석장에 도착하자마자 그 장엄한 광경을 목격한 이아금이 감탄사를 내뱉은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다들 제정신인가?” 참으로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 이아금은 삼두육비 거대인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서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삼두육비 거대인형이야, 우리가 만든 걸작이지.” 우쭐한 표정을 보니까 정말 쥐어박고 싶었다. “허리 아래는 왜 아무것도 없어? 아직 미완성이라서 그런 거야?” “하늘을 나는데 다리가 왜 필요해?” 하반신이 없는 삼두육비 어쩌고는 팔 네 개를 다리 삼아서 지상에 착륙한 상태였다. “팔이랑 머리는 또 왜 이렇게 많아?” “그게 바로 미학이지.” 서란이 뒤를 돌아보자 자문 위원들도 동의했다. “맞아요, 저 선명하게 갈라진 팔 근육을 보세요.” “머리가 무려 세 개다. 족히 세 배는 강하겠지.” 이아금은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다. 기껏 얻은 휴일인데 그냥 방에서 쉴 걸. 예술가 삼인조가 이아금에게 신제품을 설명했다.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형태란 무엇인가? 낡은 상식을 버려야 한다, 아금아. 삼두육비라는 초현실적인 조형, 여기에 담긴 철학이 느껴지니?” 상식에 더해서 이것저것 같이 내려놓은 류서란. “저 세밀한 근육 묘사를 보렴. 비범한 목 근육은 또 어떻고. 신체 부위가 세 배로 늘어났다는 단순한 차이점에서 비롯된 이 압도적인 박력과 전율, 정말로 감동적이지 않니?” 기괴한 육체미에 심취해서 몽롱해진 호혜문. “머리, 셋... 머리가 셋... 세 개의 머리...” 또 이상한 전파를 수신했는지 뿔을 번쩍이는 담청. 이아금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귀가 사람을 어설프게 흉내낸 듯한 조형. 지나치게 세밀한 묘사로 도달한 불쾌한 골짜기. 심지어 이리저리 끼워맞춘 석재마다 색이 다르다. 마치 시체를 얼기설기 기워 붙인 누더기 괴물, 이아금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뿐이었다. 물론 서란은 수리와 개선에 효율적인 모듈 형식 디자인이라고 우길 테지만 말이다. 넋이 나간 이아금에게 서란이 물었다. “이 걸작을 가까이에서 감상한 소감은 어때?” 이아금은 고개를 돌려 서란을 바라봤다. 기대감에 부푼, 확신 가득한 표정이 보인다.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난 예술은 잘 모르지만, 멋진 것 같아.” “정확히 어떤 부분이...” 이아금은 황급히 말을 돌렸다. “언니, 그런데 저 구멍은 뭐야?” 서란은 몸통에 빼곡히 난 구멍을 보곤 말했다. “저건 관측창이야. 저 안에 들어간 분신이 저 구멍을 통해서 외부를 관측하고, 나는 그 시야를 공유받는 방식이지.”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서 서란이 분신을 생성했다. 그러자 관측창 너머에 갈색 눈이 나타났다. 좁은 공간에 원격 생성된 서란의 분신이었다. 관측수의 예리한 눈초리가 사방을 이리저리 훑었다. 인형과 주인이 시야를 공유하는 고난이도 법술은 인형술 심화편에 도달해야만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서란은 거기까지 공부하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분신이라는 꼼수를 사용했다. “어때? 이러면 사각도 없어.” 무수한 관측창 안에서 분신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아금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단한 걸...” 물론 반어법이었다. ***** 다시 며칠 뒤. 삼두육비 거대인형의 최종 완성이 다가왔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은 상황이었다. 바로 휴대를 위한 소형화 기능 탑재였다. 금영영의 방천화극 법기나 금중패가 준 붓-구슬 법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삼두육비 거대인형을 구슬로 변신시켜서 휴대하고 다니는 게 서란의 장대한 청사진이었다. 그래서 서란은 연기술 전문가를 찾아갔다. 법기 장인이 말했다. “그건 조금 힘들겠네요.” “엣...”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었다. 날개 없는 배가 가파른 산꼭대기에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