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시커, 검의 구도자. 이 자리에서 단언컨대, 그리 불리는 맹수들은 철저히 관리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무력은 일개 개인이 갖추기엔 너무나도 위험하다. 그들은 홀로서 기사 수십을 상대한다. 자그마치 수십이다! 수십! 소드 시커 하나가 단신으로 잠입해, 아르헤브츠의 영주와 그 가신과 기사들을 모조리 도살한 천인공노할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으리라. 아아, 아르헤브츠! 제국의 충신이었던 아르헤브츠를 기억하라! 단신으로 기사 수십을 상대하며, 잘 훈련된 병사들을 분대 단위로 쓸어버리는 이들이 바로 소드 시커다. 그들을 개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들은 이미 걸어 다니는 하나의 군대다! 귀족이 소유할 수 있는 사병(私兵)이 제국에 의해 철저하게 제한되고 관리되듯, 소드 시커 역시 제국의 관리를 받아야만 한다. 최소한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하, 본인은 아르헤브츠 특별법의 발의를 제안한다. 위 법안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르헤브츠의 비극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소드 시커급의 강자에게 무력과 신원의 공개를 강제한다. 별들의 전장, 마경의 최전선이 아닌 내륙에 발을 디딘 이들은 ‘반드시’ 정보를 공개해야만 한다. 이를 거부할 시. 제국이 어찌하여 제국이라 불리는지 그대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는 경고이며, 또한 자비이기도 하다. 그대들, 명예와 긍지를 안다면 스스로의 발로 제국의 중심에 걸음 하라······. * * * “———여기까지가, 아르헤브츠 특별법.” 디에타가 제국의 역사서를 덮으며 말했다. “제국의 네 번째 황제였던 ‘칼리츠 펜드래곤’에 의해 제정된 법안이에요. 이 법안으로 하여금 소드 시커급의 강자들은 반드시 제 정보를 공개해야 해요.” “정보라 함은?” “언제 소드 시커가 되었는가, 어떠한 무기를 사용하는가, 검기의 형태는 무엇인가. 법안이 발의된 직후에는 약점을 비롯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지만, 수백 년이 흐른 지금은 그렇게까진 안 한다고 들었어요.” 그녀가 테이블을 툭툭 두들겼다. “본명과 나이, 그리고 사용 무기와 경지에 오른 시기. 크게는 이 정도를 파악하는 걸로 알아요. 애초에 이 법안의 목적은 ‘숨겨진 강자’들을 끄집어내는 용도였으니까요.” 당시 혼란스러웠던 제국. 이곳저곳에 숨어있던 강자와, 그들로 하여금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라고 디에타는 설명했다. “관리되지 않는 날것의 무력만큼이나, 국가 입장에선 위험한 게 없을 테니까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대부분의 소드 시커들이 자발적으로 제 정보와 경지를 공개하는 거군요.” “그런 셈이죠. 제국에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히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을 테니까요. 날고 긴다는 소드 마스터조차 제국을 등질 수는 없어요.” 유엘 라지안이 그 예시겠지. 언젠가 그녀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진이 쓰게 웃었다. 제국의 수도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마치 거대한 하나의 벽처럼 느껴지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신의 경우는 특별해요.” 나진이 그리 생각하는 와중, 디에타는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지난 반년간 나진이 활동했던 기록이 정리된 서류를 두들기며 말했다. “난데없이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 나타난 당신은 지나치리만치 빠르게 업적과 소문을 쌓았어요. 악마 기사 토벌,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과 결투, 흑마법사 파우베 토벌······.” 그리고 최연소 적색 등급까지. 하나같이 이목을 끌 만한 사건들이다. “당신이 머지 않아 소드 시커에 오를 거란 이야기가 돌고 있는 와중이에요. 숨긴다고 해서 더 이상 숨기기도 힘들다는 거죠. 제국의 중추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시간문제예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지금까지는 나진의 신원이 캄브리아에 묶여있으며, 캄브리아 재단의 보호를 받고 있기에 개입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진이 소드 시커에 오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벌써 움직이고 있을지도 몰라요. 며칠 전 벌어졌던 습격은 목격자 없이 정리했다지만, 제국이 작정하고 들쑤시면 증거가 나올지도 모르고요. 그렇다면 당신의 경지가 까발려지겠죠.” 나진을 습격했던 소드 시커급의 강자들. 그들은 이미 한참 전에 실종되거나, 일단은 전장에 속해있기에 행방이 묘연한 인물들이었다. 그렇기에 정리해도 흔적이 크게 남지는 않았지만······. ‘확신하긴 어렵지.’ 혹시 모를 일이며, 무엇보다도 교단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교단에서 어떠한 수단을 써서 당신을 압박할지 몰라요. 그리고, 이에 대응할 만한 수단은···.” “이쪽에서 선수를 치는 거겠죠.” “바로 그거예요.” 디에타가 손가락을 튕겼다. “당신에겐 이목이 쏠려있고, 무엇보다도 당신은 젊어요.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른 살은 안 될 거 아니에요?” 위장 상의 신분으로도 스물여덟. 그리고 역대 최연소 소드 시커는 30세. 나진이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랐음을 공개하는 순간, 나진에게 쏠릴 이목은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던 검성조차 30세의 나이에 소드 시커에 올랐어요. 그마저도 수백 년간 존재하던 기록을 갈아치운,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었죠.” 그런데, 그 기록의 갱신자가 나타났다. 제국이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 대사건이었다. “검의 교단이, 온갖 귀족들이, 전장의 지휘관들이, 제국의 중추가 당신을 주목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교단도 당신을 쉽사리 건들 수 없게 되겠죠.” 잘못 건드렸다간 나진에게 쏠려있던 관심이 그대로 교단 쪽으로 쏠리게 될 테니까. 제 아무리 교단의 세력이 거대하다 한들 제국의 눈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은 여기까지인데······.” 디에타가 말끝을 흐렸다. 설명을 마친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진을 흘겨봤다. 눈동자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이쯤 되면 말해줘도 되지 않아요? 나진 당신, 도대체 몇 살이에요?” “······.” “설마 싶은데 저보다 진짜 어린 거 아니죠? 스무살은 되는 거 맞죠?” 나진은 시선을 회피했고. 디에타의 동공은 흔들렸다. “진짜?” 2. 아르헤브츠 특별법. 그 법안의 절차를 나진은 충실히 이행했다.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랐음을 중앙 길드에 알렸고, 캄브리아 재단을 경유해 제국의 중추에 서신을 날렸다. 그리고, 나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사건에 한해 제국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서신을 보내고 단 반나절 만에 캄브리아의 입구에 마차가 도착했다. 평범한 마부를 고용했을 때 브리튼에서 캄브리아까지 사흘이 걸림을 감안하면, 이는 과연 놀라운 속도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캄브리아의 입구에 도착한 마차. 그 마차에는 브리튼 제국의 문양과 함께 황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므로. 아르헤브츠 특별법은 황실이 주관하는 법안. 당연하게도, 그 법안의 실행에는 황실이 관여하게 된다. 캄브리아의 입구에 등장한 마차에 모험가들이 수군댔다. 살면서 황실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를 볼 경험이 얼마나 되겠는가? 누가? 황실이 이곳에 무슨 일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당황한 모험가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물며 마차를 지키고 서 있는 기사의 갑주에는 황실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오직 단 하나의 세력만이 저 문양을 새기는 것을 허락 받았음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로얄 가드(Royal Guard). 황실에 충성하는 제국의 검. 로얄 가드와 황실의 마차. 보통 사건이 아님을 깨달은 모험가들의 시선이 서서히 한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인파를 해치고 마차를 향해 다가가는 인물이 있었다. 적색 등급 모험가, 이반. 그가 인파를 가로지르고 마차의 앞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로얄 가드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황실을 대리하는 기사에게 예의를 갖춘 것이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로얄 가드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나진은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출발하고,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도 모험가들은 도시의 입구에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백각 모험가가 하나 더 나오겠군.” * * * 로얄 가드, 솔티스. 솔티스는 이 상황이 썩 달갑지 않았다. 오랜 세월 황실에 충성한 그는 본래 아르헤브츠 법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소드 시커의 경지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전조 없이 오를 수 있는 경지 또한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랐다고 신고하거든, 그럴 때가 됐지 하며 황실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아니었다. 전조가 없었으며 전례 또한 없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소드 시커. 하물며 캄브리아 재단에 등록된 해당 인물의 나이는 스물여덟에 불과했다. 아르헤브츠 법을 담당하던 부서가 발칵 뒤집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캄브리아 재단에 등록된 정보는 정확한 정보가 아닐 확률이 높다.’ 기회의 도시에선 신분 등록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며, 신분 위장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그러니 자세한 신분은 마탑에서 다시 확인해야 할 테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신분이 정확하다면. 이는 제국이 뒤집힐만한 대사건이다. 그렇기에 제국은 급히, 그리고 신속하게 인력을 파견했다. 로얄 가드를 동원한다는 전례 없는 강수를 두기까지 했다. 그만큼이나 놀라운 사건이었으니. “······.” 그리고, 그 사건의 주인공이 제 앞에 있다. 솔티스는 제 맞은편에 앉아있는 청년을 바라봤다. 청년인가, 아니면 소년인가.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으레 그렇듯 외관만으로는 나이를 파악하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이 인물과 관련된 자료는 가지고 있다. 악마 기사 토벌전,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과 결투, 흑마법사 파우베 토벌··· 굵직한 사건들을 확인하며 솔티스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나쁘지 않군.’ 특히나 악마 기사 토벌과 관련된 부분이 그랬다. 아탕가의 기사단이 청년을 두둔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눈대중으로 읽었던 서류를 다시 확인하며, 솔티스는 나진을 흘겨봤다. 그러고 보니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던가. 이 상황이 썩 달갑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눈앞의 청년에 대한 인상은 썩 나쁘지 않았다. “사담은 좋지 않으나.” 그렇기에 솔티스는 입을 열었다. 눈앞의 청년이 마음에 들었기에, 조언 하나둘쯤은 건넬 만하다고 생각했으니. “하나 조언하자면 마탑에선 진실만을 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분을 위장했더라도, 그곳에선 네 진짜 나이와 이름을 밝혀야 하겠지.” 아마도 진짜 나이와 이름이 아니겠지. 신분 위장은 중죄이나, 캄브리아에서 여정을 시작한 이들에 한해서는 상황에 따라 묵인해 주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청년의 경우에도 그러하겠지. 28세, 이반. 이는 분명한 거짓 신분일 것이다. 그 위대한 검성조차 30세의 나이에 소드 시커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 기록을 갈아치울 인물이 난데없이 나타날 리가 없다. 솔티스는 그리 확신했다. “황실의 마탑에서조차 거짓된 신분을 고한다면 그 죄질은 무거워질 터. 명심하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도 질책은 피할 수 없겠군. 서류를 올릴 때 진짜 나이 정도는 작성해서 보내는 게 좋았을 텐데? 어차피 발각될 신분 아닌가. 이렇게 이목을 끌어보아야 네게 해가 될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경지가 올랐단 사실에 기쁜 나머지.” 나진이 머쓱하다는 듯 웃었다. 하기야, 제대로 된 뒷배도 없이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주변에 조언을 해줄 만한 인물이 많지 않았겠지. 솔티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신분을 위장한 건 맞는 것 같군.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솔티스는 이곳에 파견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다. 어지간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뜻이었다. ‘난데없이 소드 시커에 올랐다는 것도 놀랍거늘,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담당 부서의 호들갑이었을 뿐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솔티스는 눈을 감았다. 물론 이는 솔티스의 착각이었다. 그들이 그리 판단할 만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급히 임무를 하달받은 솔티스에겐 간단한 정보만이 제공될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정말이라면···.’ 단지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솔티스는 상상해 볼 뿐이었다. 정말로 눈앞의 청년이 28세의 나이에 소드 시커에 올랐다면? 제국이 뒤집힐 것이다. 그리고, 소집될 것이다. 전례 없는 인재를 심사하기 위해서. ‘누가?’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이. 검의 정점에 오른 초인들이.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세 소드 마스터가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을 떠올려 본 솔티스는 웃음을 흘렸다. 그만한 장관이 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