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잠시 시간을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룹 사운드의 공연이 끝난 뒤 쯤으로. “저희 밴드는… 도화서 팀을 멘토로 선택하겠습니다.” “굿! 매우 좋은 선택이라니까요.”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멘티(Mentee) 쟁탈전. 무슨 도떼기 시장마냥 “그룹 사운드 여러분, 저희를 뽑으시면 입고 계신 옷 다 명품으로 바꿀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저희랑 하시면 저희 음반 피처링 다 그룹 사운드에게 맡기겠습니다!!” 같은 공약이 난무했다. 그런 가운데, 그룹 사운드의 선택을 받은 것은 싱어송라이터 ‘도연’과 솔로 기타리스트 ‘김진서’로 이루어진 멘토 팀, ‘도화서’. 명전은 ‘도화서’를 멘토를 뽑은 이유로 “멘토가 되시기에 제일 진정성을 가지신 것 같아서요…” 를 들긴 했지만, 실은 ‘그다지 간섭 안 할 것 같아서’ 였다. ‘멘토랍시고 들어와서 헛소리만 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프로 뮤지션이니만큼 나름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려고 노력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레벨의 밴드들에게나 유효한 것. 나이는 여고생이지만 경력은 교수급인 명전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는 조언들이었다. 이후 몇번의 공연이 이어진다. 그룹 사운드를 픽하기 위해서 아껴놨던 픽들이 아낌없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촬영 최후반부에는 MC가 “라스트 찬스입니다!! 픽을 바꿀 수 있는 기회!!” 같은 소리를 외치기도 했다. 그에 실제로 픽을 바꿔버리는 멘토들, 그리고 천당에 있다 지옥에 떨어진 밴드나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밴드들이 생겨나고. 그런 모든 아비규환이 정리되고, 탈락할 6개 밴드가 선정되자… MC가 다시금 무대 앞으로 나와 진행 멘트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늘 선택받지 못한 밴드들은… 아직 끝이 아닙니다. 레파차지! 패자 부활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부활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지금 픽된 밴드들도 안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옥에서 돌아온 사자들이 당신의 목덜미를 덮칠 수도 있으니까요!” 열띠게 외치던 MC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진정한 기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다음 라운드의 미션! 이 과연 무엇이며. 그리고 오늘 투표된 관객 점수! 는 도대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MC가 숏카드로 스크린을 가리키자, 강렬한 시각 효과와 함께 스크린에 타이포들이 나열되기 시작한다. 24개의 곡. ‘탄창소년단’이니 ‘노이즈’니 ‘걸프렌드’니, 명전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 이름들. “다음 라운드 미션은, ‘편곡’입니다. 현재 한국 음악 씬은 ‘아이돌’들이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리스트에 등재된 곡 중 대부분은 꽤나 무난한 것들이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고, 밴드 곡으로 편곡하기도 썩 괜찮은 것들. “다음 라운드 미션은, 이 24개의 리스트에서 원하는 곡을 골라 그 곡을 편곡해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밴드 여러분들의 편곡 센스와, 창의력, 그 외 많은 요소들을 평가하려 합니다. 어떤 장르이든 좋습니다! 충격적이고 이색적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퍼포먼스 또한 가중치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아야 한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밴드들은 그런 대다수의 곡들보다 ‘일부 곡’들에 주목했다. 명전은 주위에서 “저건 절대 걸리면 안 될 것 같은데.”, “카트리나 뭐냐고…”, “그래도 점핑보단 낫지.” 같은 소리를 들었다. 뭐가 어떤 곡이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인가. “지금 저 밑에 있는 곡들 들어본 적 있어?” “아니?” “한 십년 전에 나온 곡들 아닌가.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서와 서하가 하는 말에,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어떤 곡인지는 몰라도 주위의 반응을 보면 그다지 좋지는 않은 모양인데. “그리고 이 곡들을 선택하는 기준은…! 바로 관객 점수 순위입니다! 관객들이 여러분들의 퍼포먼스를 평가한 값을 바탕으로 선택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즉! 첫번째 선택권은 관객 점수 1위 [WEKIDS]에게! 그리고 관객 점수 최하위인 [Group Sound]는, 마지막 남은 곡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경악에 빠진 관객들의 반응. 하지만 명전은 뭐, 그렇게 문제 될 것 있나 생각했다. 어차피 아이돌 곡이라는 게 결국 듣기 위해서 나온 것들 아닌가. 그럼 별 문제 없을 것이다. * * * “이거 어떡하냐.” 편곡 회의. 하지만 나가지 못한 진도.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곡을 들으면서, 명전은 머리를 싸맸다. 수십 년 음악 인생에서 이런 난관은 처음 겪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핸드폰 화면에서는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여자 아이돌들이 V6 엔진을 모방한 듯한 춤을 추고 있었다. 츄리닝을 입은 채 손을 무릎위에 얹은 후 삐죽삐죽 튀어나오거나, 잔상을 남기는 듯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거나. 게다리춤을 추거나. 가사라도 얌전하면 모르겠으나, 그것도 전혀 아니었다. 시종일관 “점핑!” “팝 팝 팝!”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 가사. 그거 외에도 뭔가 외치긴 하는데 곡이 끝나고 나면 점핑! 팝 팝 업! 점핑! 팝! 날따라 뛰어! 팝 콘 처럼 ! 어쩌고 저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편곡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긴 했다. 디스코풍 멜로디를 가다듬어 디스코 락처럼 만든다던가, 가사를 무시한 채 밴드 사운드를 첨가한 발라드 풍의 노래로 만든다던가. 그러나 명전이 보기에는 죄다 별로인 아이디어였다. 너무 무난하거나, 기존 컨셉/가사와 어울리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는 아이디어들. 정작 본인은 손도 못 대긴 했지만, 아무튼 아닌건 아니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이거 중독된다 은근히.” 그런 명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왠지 모르게 츄리닝을 입은 이서와 현아가 뮤비의 춤을 따라하고 있었다.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폼과 은근히 맞지 않는 박자를 보면, 요즘 아이들이 왜 ‘킹받는다’ 라는 말을 하는지 알 법 했다. 이런 상황에서 쓰는 용어란 거겠지. “다음 촬영이 언제라고 했지?” 할 짓 없이 춤이나 따라 추고 있는 둘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 서하가 질문을 던졌다. “음… 일단 다음 촬영까지는 여유가 그래도 있는 편이긴 한데…” “멘토가 점검? 그런 거도 해야된다며.” “그게 제일 문제야. 그 전까지 뭔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지가 않은데.” 명전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곡만 만든다고 생각하면 시간 자체는 그렇게 적지 않으나 곡 연습을 포함하면 꽤 빠듯한 일정. 게다가 무슨 멘토 검사니 뭐니 하는 그런 것까지 있으니, 곡 컨셉을 얼마나 빨리 잡느냐에 따라 오디션의 등락이 달린 상황이었다. ‘그냥 탈락할까?’ 음악으로 하는 웬만한 일은 다 자신이 있는 명전이었으나, 이번 미션은 너무도 험난해보였다. 뽕짝 디스코풍 아이돌 팝을 들을만한 밴드 사운드로 만들라는 게 말이 되는지. 차라리 패자부활전을 노리고 탈락을 한 다음, 거기에서 다시 올라가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명전은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가능성이야 있긴 했지만, 어떤 미션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그렇게 해야지~’ 하고 손을 놔 버려서는 안 된다. 게다가 1라운드 공연을 그런 식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누구도 나를 탈락시킬 수 없다 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데. 그래놓고 2라운드 탈락을 해 버리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방안도 없는 것이 현실. 명전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뭐 방법이 없을까. “아! 나 잠시 좋은 생각 났음.”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갑자기 이서가 소리를 빼액 지르며 연습실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너 진짜 좋은 생각 아니고 뭐 이상한 헛소리 하면 맞는다.” “아니, 진짜 좋은 생각이라니까. 이 노래가 좀 그 뭐냐, 틀니들 말로 ‘병맛’이잖아?” 명전은 무심코 “틀니는 좀.” 이라고 중얼댔지만, 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이걸 한층 더 강화시키는 건 어때?” “그게 뭔 소리야.” “그러니까 지금 막 이런…” 이서는 다시금 빙글빙글 돌다가 엔진 춤을 추는 등의 동작을 해 보였다. “거를 이제 극단적으로 강화시켜보자는 거지. 오히려 더 막나가는 느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긴 했다. 아이돌 노래를 락으로 편곡하는 사례는 일찍이 많이 있어 왔다. [나는 가수다]에서 윤도현 밴드가 보여주었던 [Run Devil Run], 시나위가 보여주었던 [강남스타일] 등. 하지만 명전이 그쪽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현대문물에 익숙하지 못한 명전조차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병맛’을 뒤틀어서 ‘멋지게’ 소화한다? 그렇게 해서 좋은 노래를 만든다? 너무 무난한 선택지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서가 내놓은 컨셉은 꽤나 마음에 들긴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극한으로 밀어붙이자 뭐 그런 느낌인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인데…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거든. 이미 B급 정서의 노래인데 여기서 더 추가한다고 해 봐야 뭔가 더 될 것 같지가 않아. B급을 더 쌈마이하게 만들어서 C급으로 만든다고 해서 뭔가 좋아진다거나 웃겨지지는 않잖아?” “그렇긴 하네.” 살짝 시무룩해진 이서의 목소리. 명전은 팔짱을 끼었다가, 풀었다가, 머리를 꼬았다가, 다시 싸매기를 반복했다. 길은 보이는데 갈 수 없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야, 야야, 야. 이거, 이거 들어봐. 이걸로 가면 될 것 같은데?” 갑자기 어깨를 흔들며 핸드폰을 들이미는 서하. 명전은 도대체 뭔가 하고 서하가 건넨 이어폰을 귀에 꽂은 후, 커피를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들리는 노래에, 커피를 뿜었다. “어악!” 마른 하늘에 커피 벼락을 맞은 이서가 비명을 질렀지만, 명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에 꽂히는 이 드럼. 높은 톤의 보컬과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어울리는 거친 사운드. ‘이거다!’ * * * 인베이전 2024의 제작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인터넷의 반응은 커뮤니티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으나, 방향 자체는 일관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 그걸 2회를 만드냐?’ 미묘한 성공, 미묘한 시청률, 미묘한 실력, 미묘한 어쩌고 저쩌고. 망한 것도 아니지만 흥한 것도 아닌 인베이전 2023. 그 까닭에, 인베이전 2024가 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었다. [(단독) 인베이전 프롬 서울(Invasion from Seoul) 제작 메인 프로듀서는 윤동욱 피디… ‘잔인한 오디션’ 또 재현될 것인가?] 그러나 여론은 빠르게 뒤집혔다. Mtown 오디션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윤발놈’ 윤동욱 피디의 귀환. 주종목인 ‘아이돌 오디션’은 아니지만, 윤동욱은 제작발표회에서 본인이 직접 “좀 더 발전한 재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선언까지 했다. 그 탓에 ‘요즘 오디션은 뭐 맹맹해서 재미가 없다’ 라고 하던 열혈 오디션 시청층이 몰려들고, 그로 인해 생긴 노이즈가 다시금 라이트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아직 방영조차 되지 않은 오디션이 수많은 커뮤니티에 언급되기 시작하고, [윤동욱 저렇게 오디션 방송 복귀 시켜도 되는 거 맞아?], [요즘 윤리적인 방송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 ㅋㅋ 그냥 씨발 갓동욱 기대되면 개추 ㅋㅋ], [어차피 밴드도 딴따라인데 조리돌림 감당하고 데뷔하는 거 아님? 누가 칼 들고 협박함?] 같은 글들이 커뮤니티 상단에 조금씩 등장할 때 쯤에. 그 반응들을 폭발시킨 것은, 0화 방영 초반부에 삽입된 한 인터뷰였다. 오디션장에 들어온 4명의 여성 밴드. 상당히 이쁜 여자아이가 자신을 “안녕하세요, 하수연입니다.”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삽입된 인터뷰. [Q : 기타 친지는 얼마나 됐어요?] [A : 1년 살짝 넘었습니다.] [Q : 어렵지 않으세요?] [A : 어렵지 않죠. 그냥 다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나오는 장면은 다른 참가자 밴드들이 기타를 치는 장면들이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타 어렵죠.] [초심자이긴 한데, 배우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듯한 참가자들의 대답. 그리고 그들을 무감정하게 쳐다보는 여성 참가자, '하수연'의 모습. 보기만 해도 제작진의 의도를 알 수 있을 법한 그런 장면에,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