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죠? 이제 이러다가 어느새 여름 되고 이러는 계절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많이들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 저 어릴때만 해도 봄은 확실한 봄이었고, 가을도 확실한 가을이었는데 말이죠. 제가 명전 선생님을 만난 것도 상당히 오래 되었습니다.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듣기는 했는데, 어느날 연락이 안 되셔서 수소문을 들어보니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청천벽력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지나보내고 나니 이 시간이 되어버렸죠. 어쨌든 갑작스럽게 개최된 서명전 선생님의 추모 콘서트에 와주신 것에 대해서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음악에 족적을 남기셨던 명전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하여, 많은 뮤지션 분들께서 영상으로나마 메세지를 보내셨습니다…” 콘서트가 시작되고, 명전이 기억하던 사람 중 한명이 MC에 올라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상편지를 보내온 사람 중 대부분은, 그가 세션을 녹음해주었거나 오며가며 본 게 전부인 유명 뮤지션들이었다. 친분이 있던 유명 뮤지션 중 일부는 직접 오기도 했고. 다들 아무튼 추모해주겠답시고 몰려와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걸 보니, 살짝 뭉클해지는 부분도 있긴 했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모여서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게 좀 고마운 일 아닌가. ‘문제는, 정작 나는 여기 살아있는데 나를 두고 죽었다고 하는 걸 보니 참 미묘하단 거지만.’ 명전은 머리를 꼬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약 3~4시간 정도 이어질 예정인 콘서트였기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떠드는 사람들 소리는 일종의 장례식장을 연상케 했다. 테이블 하나를 놓고 새우깡에 소주를 까고 있는 영감들. 어찌저찌 끌려와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도 못한 채 앉아있는 젊은 뮤지션들. 콘서트 진행하느라 이리저리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 명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명전이 생각하는 ‘요즘 여고생 같은 행동’ - 아 예 정도만 하고 흥미 없다는 것 어필하기 - 을 몇번 하자, 대부분 다 자기들 할일이나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연 선생님?” 그런 명전을 불러세운 것은, 콘서트의 스태프였다. 곡명 몇개가 적혀 있는 종이를 들어보이는 스태프. “오늘 이 곡 하시는 거 맞나요?” “네. 그리고 한두곡 정도 더 있긴 한데…” “더 있다고요? 혹시 악보가 있으신가요? 지금이라도 악보를 주셔야 가능한데.” “아뇨, 기타 솔로로 칠 거에요.”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는 스태프. 명전은 의자에 앉아 기타를 꺼내들었다. ‘살짝 연습이나 해볼까…’ 시끄러운 대기실 안에서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기타를 튕겨본다. 미약하게 들리는 기타 소리는, 마치 대도시의 광장에서 홀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해 주었다. ‘이게 그 감성이라는 건가.’ “도대체 이런 거추장스러운 일은 왜 하는 거냐?” 라는 그의 말에 “감성이 중요하다고!!” 라고 외치던 이서나, “기왕이면 이쁜 게 더 좋지 않아?” 같은 이야기를 하던 다인. 원래의 ‘서명전’이라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을 부분이었으나, 여고생들과 몇달 동안 부대껴 지내던 세월이 영향을 준 것인지… 그도 점점 뭔가 그 ‘감성’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제말이 그 말이 아니라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오늘 칠 곡을 튕겨보던 중, 갑자기 대기실 구석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살짝 높은 목소리. 사람들의 주목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명전이 형님이 위대한 기타리스트인 건 인정을 한다니까요.” “아니 그럼 그냥 인정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뭘 가타부타 덧붙이고 있어.” 명전은 슬쩍 고개를 내밀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해보았다. 그와 영 의견이 맞지 않았던 기타 후배. 십여년 전 쯤 한번 크게 싸우고 그 뒤로는 얼굴을 안 봤는데, 여기 온 건가. 술을 꽤나 마신 건지 얼굴이 불콰해진 상태다. “위대한 기타리스트지, 위대한 뮤지션이 아니잖아요. 우리 까놓고 말합시다. 그 형의 기타 테크닉이 위대했지 뭐 다른 게 위대하다, 예를 들어 작곡 실력이 위대했던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냥 곡은 졸라 못썼지.” “야!” 그 말에 언성을 높이는 사람과, 이어지는 만류의 목소리. “아니 내가 틀린 말 했어?”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고는, 기타를 치는데에 집중했다. 그가 생각해도 좀 치사한 짓이긴 하지만, 아무튼 오늘 이후로는 그나마 ‘서명전’의 평판이 좀 나아질 예정이니까… * * * “안녕하세요. 그, 그룹사운드인가 하는 밴드. 맞죠?” “안녕하세요~ 네 맞아요!” 평소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전혀 없는 그들이었다. 학교에서도 친한 친구들이나 “이서 너 밴드한다며~ 올~” 이나 “현아야, 밴드 하면 예대 입시는 괜찮아?” 같은 소리를 하지, 바깥에 나가면 그냥 여고생 3명이 다니고 있네~ 정도의 감상밖에 듣지 못하는 그들. 하지만 이 곳에 와서는, 벌써 열명이 넘는 사람이 그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싸인까지 해달라는 사람도 있어, 이서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싸인을 이 자리에서 구상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우리 알아보는 사람이 많네.” “그러게요…” “그 뭐야, 패러독스? 거기 공연이 아무래도 효과가 있었나보네.” “뭐, 아무래도 이런 데 오는 사람들은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그날 공연이 ‘서명전의 제자 하수연이 꾸린 밴드’ 뭐 그런 걸로 유명했던 모양이더라고.” 서하의 부연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머지 둘. 그런 와중에도 은근슬쩍 옆에 와서 “싸인 좀 부탁합니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 근데 여기 지금 천명 넘게 있는 것 같은데 천명 중에 수십명이면 비율이 엄청 낮은 거 아닐까? 아직 멀었긴 해.” “그렇긴 하지…” 이서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잠시 쉬는 시간이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서명전’이 썼다는 곡이 연주되기도 하고, 그가 세션으로 섰다는 곡이 연주되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던 곡이 연주되기도 했다. 이서로써는 ‘서명전’이 수연이의 스승님인 만큼, 좀 긍정적인 부분으로 바라보고 싶긴 했지만… 아무래도 ‘서명전’의 자작곡은, 나머지 두 그룹에는 못 미치는 면이 있었다. 박수나 반응도 좀 적었고. ‘그건 그렇고, 얘는 왜 우리랑 같이 공연을 안 선 걸까?’ 솔직히 기대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런 곳에서 공연을 서면, 그 자체로 이미 인지도가 상승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수연은 단 한번도 그녀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을 뿐. 약간 아쉬운 마음을 느끼며, 이서는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이제 수연이 나올 차례였기에. * * * “다음 무대는… 이전 무대들과는 살짝 연령대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누구보다 잘 어울리시는 분이기도 하죠. 서명전 선생님의 제자 분이신, 밴드 ‘그룹 사운드’의 하수연 기타리스트 모셨습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명전은 기타를 들고 무대로 나섰다. 노인이거나 중년이거나 했던 사람들이 주로 서던 무대에 여고생이 서게 되어서일까, 이전에 나왔던 유명 뮤지션보다 기분상 박수가 왠지 더 큰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명전은 마이크를 잡고 인사와 함께 몇마디를 했다. ‘서명전’과 ‘하수연’의 추억 같은 걸 대충 지어내고,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등등. 정말 기타를 많이 가르쳐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주워섬기자 박수를 치는 관객들. “그럼 첫 곡은…” 명전은 그렇게 말하며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이서와 현아, 서하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손을 흔들어왔다. 그도 손을 슬쩍 흔들어주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명전 선생님이 좋아하던 곡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세요. Eric Clapton - Tearing Us Apart 입니다!” 드럼스틱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경쾌한 멜로디의 리듬 기타가 시작된다. 명전은 스크래치를 한번 쓱 긁고는, 리드 기타를 힘차게 연주했다. 에릭 클랩튼의 후반기 곡 답게, 팝적인 사운드가 상당히 들어가 있는 곡. 여성 보컬과 남성 보컬로 나뉘어 있는 곡이니만큼, 메인 파트는 명전이 부르지 않기로 했다. 베이스를 맡은 명전의 후배는, 어떻게든 클랩튼을 따라하기 위해서 목을 연신 긁어대며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명전의 파트. 이제까지의 공연에서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던 고음을 연신 뽑아내며, 명전은 경쾌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어지는 베이스 솔로. 명전은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며, 저 멀리의 이서를 바라보았다. 에릭 클랩튼의 라이브에서는 보통 네이선 이스트(Nathan East)와 같은 전설적인 베이시스트가 무대에 선다. 물론 그 사람이 직접 온 것은 아니지만, 명전은 이서가 타인의 연주를 듣고 조금이나마 자극을 받았으면 했다. ‘물론 그 이유만 가지고 쟤들을 안 세운 건 아니긴 하지만.’ 베이스 솔로에 이어 따라오는 기타 솔로를 연주하며 명전은 생각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저 애들과 공연에 서기 위해서 연습을 같이 하게 되면… ‘사기를 못 친단 말이지.’ 명전이 기획한 ‘서명전 평판 개선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명전은 밴드 애들을 공연에 부르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 뿐이었다. 네 번째 곡을 마치자, 쏟아지는 우레와도 같은 박수. 수연이 꽤나 성실하게 관객의 반응을 유도한 탓에, 이전과는 달리 감정이 섞인 환호나 박수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곡은, 명전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겼던 곡입니다.” 환호가 잦아들자, 마이크를 든 수연. 그녀의 말에 관객석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뒤의 스태프들이나, 연주를 마치고 앞줄에 앉아 관람을 하고 있던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소요가 일어났다. “그 중의 한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어쿠스틱 곡이구요, 이름은 [무제 12]입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지어놓으셨고, 제가 이름을 따로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수연은 그런 관객의 술렁임 따위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스태프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건네받은 후 의자에 앉았다. 살짝 당혹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연주가 시작된다. 모든 소리가 멈춘 가운데, 조금씩 연주되는 어쿠스틱 기타의 스틸 스트링 소리. 찰랑찰랑하는 사운드는, 관객들에게 꽤나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사운드도, 멜로디도, 불러일으키는 감정도 상당히 옛날의 것이다.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대에 선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덩치가 크고, 꽤나 늙었으며, 흰 머리가 가득한… 꼬장꼬장한 외모의 기타리스트. 무대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살짝 버거워 보이는 크기의 어쿠스틱 기타를 공들여 치고 있는 여자아이. 그리고 조금씩 분위기는 바뀐다. 오래된, 6~70년대 시절의 블루스와 락. 그 시절의 음악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 그러므로 매우 익숙했던, 평범하게 혹평을 들을 것 같던 ‘서명전’의 음악.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트로트 테이프마냥, ‘좋았던 시절’만 반복하고 있었던, 그리고 반복하고 있던 그 음악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오르듯,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색채를 바꿔나가고 있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갖혀 텔레비전만 보던 늙은이가, 고집을 꺾고 스마트폰을 배워나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