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그저 평범한 뮤직비디오였다. 흔히 아이돌들이 제작하듯이 그룹의 매력을 최대한 보여주는 쪽으로 만들어진 뮤비. Group Sound가 가진 부정할 수 없는(누군가는 부정하고 싶겠지만) 장점 중 하나인 ‘얼굴’을 최대한 부각시켜, ‘우와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밴드까지 한다니? 그런데 실력까지 완전 장난 아니죠? 당 장 봐’ 같은 느낌으로 만들려고 했던 MV. 팬들에게 전력으로 어필할 겸, 사장님 딸을 이쁘게 찍어 사장님에게 아부할 겸… 억 단위의 예산을 집행할 예정이었던 뮤직비디오. 하지만 그랬던 흐름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바뀌어버렸다. “너무 평범하지 않나요?” 밴드 멤버에게 MV를 어떤 식으로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소집했던 회의. 그 회의에서, 턱을 괴고 뮤비를 보고 있던 하수연이 했던 이야기. “응??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어… 뭔가 구체적인 건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표정에는, 뭔가 살짝 망설임 같은 것이 맴돌고 있었다. 전문영역에 내가 구태여 발을 들여놓을 필요가 있을까 같은 느낌. 하지만 정유영은 수연의 의견을 잠자코 들었다. 이런 곳에서 갑자기 힌트가 나오는 경우도 적잖아 있으므로. “일단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게 전통적인 뮤직비디오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그런 형태는 저 대기업도 만들고 뭐 어쩌고도 다 만들텐데. 뭔가 차별화가 안 되지 않을까요. 일단 만듬새부터 차이가 나니까.” 그러면서 수연은 “뭐, 예를 들어서 애니메이션이라던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요. 요즘 그런 게 좀 유행인 것 같고, 얘들도 좋아할 것 같고.”라고 말을 맺었다. “야! 씹덕이라고 모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같은 이야기를 이서가 하는 동안, 정유영은 잠시 그 이야기를 입속에서 되뇌었다. 그리고 뇌에 번개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수연의 제안이 완전무결하게 성공할 수 있으며, 엄청나게 참신한 이야기… 라고 할 순 없다. 이미 기존에 그런 식으로 가고 있는 뮤지션들이 있긴 했고 그들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특히 일본 쪽 뮤지션들은 체감상 태반이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방금 들은 수연의 이야기는, 첫 팀장의 무게감에 짓눌려있던…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자신이 이전 회사에서 했던, 검증된 방식 그대로 가려고 했던 정유영의 발에 묶여있던 족쇄를 산산조각내기에는 충분했다. 유영은 그 길로 회사 사무실에서 내내 밤을 샜다. 고경민 팀장이 “아이돌 회사는 원래 그렇게 일하나?”라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밤을 새가며 컨셉을 만들고 유명한 애니메이터를 찾아 돈을 퍼부어가며(그래도 실사 MV보단 저렴했다) 만들어낸 것이 바로, [공중정원]의 뮤직비디오였다. [Group Sound ‘공중정원’ MV]. 정유영이 노린 것은 꽤나 복합적이었다. 이미 한국 사회에 깊숙히 스며든 숏폼(숏츠, 릴스, 틱톡 등) 동영상과, 거기에 따라오는 ‘챌린지’ 문화. 이미 반쯤 대중화된 일본 애니메이션 감성. 아직도 수그러들 생각이 없는, 오히려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은 시티팝과 레트로 감성, B급 정서, 그 외 기타 등등. 그 모든 것을 한번에 잡아내기 위한 설계. 유영의 다른 설계들 또한 훌륭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이게 작동한 것은 챌린지를 노린 시그니쳐 동작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손을 이래저래 휘적이며 춤을 추는 장면. 누구나 다 따라할 수 있는 그런 장면. 하지만 중독성 있는 후렴구에 엮여들어가 임팩트를 남긴 장면. 그 장면을 본 사람 중 누군가가 #공중정원챌린지 같은 것을 만들어 올리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것이 틱톡에서 퍼지는 데 또한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정유영이 코피를 터트려가며 작업하고 계산했던 MV. 그리고 그동안 쌓아오고 있었던 입소문. 신선한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목마름. 그리고 기타 등등 등에 힘입어 Group Sound의 뮤직비디오가 얻은 성적은… [조회수 283만회 | 6일 전 | 인기 급상승 음악 #4위] 그야말로, 예상 외의 성적이었다. * * * “… 그렇게 해서, 현재는 300만회를 돌파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갑자기 외국어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요!” “진짜야? 진짜 우리 영상을 300만명이 봤다고?” 어처구니 없다는 듯 되묻는 혜인.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300만명이 본 건 아니고, 300만회를 봤다는 거니까… 실제로 본 건 한 몇십만명에서 최대 한 백만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저렇게 짧은 영상은 보통 한번만 보지는 않으니까.” “아니 그래도…” 살짝 얼어붙은 혜인.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동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도 체감이 잘 안 됐다. 300만명이 봤다는 것도 놀랍지만, 300만명이 봤는데 인기 음악인가 하는 게 4위 밖에 안 된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위의 영상들은 도대체 뭐란 말일까. “그리고 이 영상의 조회수만으로는 현재 [공중정원] MV의 영향력을 측정하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조회수는 숏폼 영상에 몰려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정유영은 여러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최소 백만의 조회수가 넘어가는 틱톡, 릴스, 숏츠 영상들. 그 중에 몇몇은 정유영이 직접 어느 아이돌 그룹의 누구다, 혹은 어떤 셀럽이다 라고 소개까지 해주었다. 대부분이 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 댄스를 따라하고 있는 모습들. “그래서 말인데!” 그 부분에서 정유영은 탕 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얘 왜 이래? 라는 표정으로 보는 고경민 팀장을 무시한 채,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미 불이 붙기 시작한 이상 불은 계속해서 타오를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옆에서 불이 타오를 수 있게 도와준다면 더 빨리 불타오르겠죠!” 그 말에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왜 정 과장의 눈이 그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챌린지의 노래를 직접 만들고! 그리고 총 지휘까지 하고! 밴드의 리더까지 맡고 있는, 하수연 학생이 챌린지에 도전해주신다면! #춤춰보았다 라거나 #직접해봤습니다 라는 태그까지 달고 한다면 천만 조회수 이천만 조회수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절대 안 합니다.” 그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최근 매번 거절에 실패했던 사례와는 다르게, 그는 이번에야말로 거절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더 적합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이런 거 하면 재미있는데. 왜 안 해?” “내가 그걸 왜 하냐.” 자진해서 자신이 하겠다고, 잘 할 수 있다고 손을 들고 나섰던 이서. 덕분에 그는 전국민 앞에서 이상한 춤을 추며 귀여운 척을 하는 대참사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그 점에 고마워하며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그보다 아까 그 프리미엄? 그 이야기는 뭔데?” “너 안 듣고 있었지.” “안 들은건 아닌데.” 그는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이해를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선행이 어쩌고 티켓이 어쩌고 한정 상품이 어쩌고 저쩌고. 전용 한정 굿즈 등등. “쉽게… 말, 하면… 구독… 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딱 막 불타오르는 시기에 영업 돌리겠다는 거겠지 뭐.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않나.” “하긴 그래.” 정유영이 나눠주었던 종이를 펴서 그에게 설명을 해주는 이서. 그녀의 등 뒤로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등을 돌리고 이빨을 드러내는 이서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습 버스킹인지 뭔지도 하고. 또 뭐였더라. 어디 유튜브도 나가고, 연예인들이랑 그런 거도 찍어야 된다고 했는데.’ 물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규앨범 녹음이긴 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지만 여유가 될 때 새 노를 마련해놓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았다. * * * “으에엑…” 복잡한 강의실을 빠져나온 다음, 현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축 늘어졌다. 사람이 많은 것이야 서울 사람으로서 매번 경험하는 일이지만, 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 정도였나…?’ [공중정원]을 작업하고, 뮤비를 찍고, 릴리즈를 한 다음에도… 현아는 집 밖에 나갈 일이 없었다. 나간다고 하면 고등학교 졸업식 정도였을까. 그 때도 아이들이 드문드문 알아보긴 했지만 그녀는 그냥 고등학생들의 습성인 ‘남에게 관심 많음’을 발휘한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있다 맞이한 대학 생활은… 그녀와 같은 내향형 인간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음대라 그런 건지, 세상에서 제일 시간이 많다는 대학교 1학년들이라 그런 건지. 캠퍼스 내를 오가다 보면 꼭 한명씩 그녀를 알아보고 “혹시 공중정원…?” 라는 말을 건네왔다. 이 때 맞다고 해주면 위험하다. 싸인이나 사진 찍는 것은 부담이 없는 수준. 같이 틱톡을 찍자는 아이들이 하도 많은 탓에, 그녀는 매번 도망을 쳐야 했다. ‘예정대로 갔으면… 더 나았으려나…?’ 하지만 그랬었다간, 그냥 음대 자체를 못 들어왔겠지. 게다가 밴드 활동도 불투명해졌을 것이고.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에 고민하는 사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 “여, 여보세요…” [“언니! 지금 혹시 강의중이야?”] “아, 아니요…” [“혹시 그러면 놀러 가도 되나? 우리 지금 잠시 시간 남아가지고!”] “네, 네…?” 두 사람이 연예인들마냥 인파를 구름처럼 몰고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아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수연과 이서에게 따라다니는 사람의 규모가,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을 넘어 방해를 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괘… 괜찮아요?” “아~ 안 괜찮을 게 어디있어. 다 우리를 알아보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인데.” “나는 안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는 수연에게 “그런 말 하지 마.”라며 정권을 내지르는 이서. 수연이 이서를 째려보는 사이, 이서는 털썩 앉아 입을 열었다. “대학 생활은 어때? 청춘을 막 즐기고 있어? 막 MT 가서 술게임도 하고…” “전혀 안 했어요… 당장… 저번 주… 까지 녹음했잖, 아요…” “그렇긴 해.” 대학 입학식 전에 끝내주겠다며 호기롭게 외쳤던 수연이건만, 앨범 녹음은 저번주에야 끝마칠 수 있었다. 학교에 오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녹음에 쏟아부어서 이뤄낸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데 재녹음 해야 할 것 같은데. 4번 트랙이 사운드가 좀…” “야! 너는 무슨 7번을 시켜놓고…!” “7번이 아니라 100번을 해도 사운드를 좋게 뽑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거지.” 정론을 말하는 수연. 현아는 질렸다는 듯 그런 수연을 바라보았다. 앨범 퀄리티에 대해 수연이 보여준 집착은 그야말로 광기라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컨트롤하기를 원했던 그녀. “농담이고. 이미 믹싱이랑 마스터링 작업 들어가서 재녹음 할 수가 없어.” “그런 농담좀 그만해!! 진짜 우리 죽을 뻔 했어. 현아 언니는 이제 수업 시작된다고.” 할 농담이 따로 있지, 라며 길길히 날뛰던 이서. 그러다 갑자기 다가와 “혹시 그, [공중정원] 부르신…?”이라고 묻는 사람의 말에 “아 맞아요! 반갑습니다!”라며 뛰쳐나갈듯 반응한다. 사진도 찍고, 틱톡을 찍는 건지 영상을 찍는 건지. 그녀들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도 뭔가 영상을 찍는 것 같아서, 현아는 수줍게 브이자로 반응해주었다. “수연님, 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자 영혼 없이 손가락 하트 모양을 보여주는 수연. 이서가 돌아와 “야 좀 제대로 해 줘야지!”라고 하는 말을 무시한 채, 수연은 입을 열었다. “이제는 너희들이 할 작업은 없어. 앞으로는 나랑, 이제 레이블 직원들이 해야 할 작업만 남은 거지. 아니 뭐 컨텐츠를 찍을 것도 있긴 하겠지만…” 그런 작업은 얼마 걸리는 게 아니니까. 수연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믹싱과 마스터링. 트랙리스트의 최종적인 결정. 그 외 음향과 관련된 모든 작업들. 밴드 멤버들이 도와주기 힘든 그런 영역. “아무튼, 이제 곧 정규앨범이 발매될 거니까. 현아 너는, 그때를 더 대비해야 할걸. 지금보다 더 유명해질 수도 있으니까.” 수연은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그 말에 현아는,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을 했다. 지금도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다니는데, 앞으로는 원격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