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STERIA!!” 수연은 곡명을 벼락같이 외친 후,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이름을 들은 관객 일부는 못마땅해하고, 일부는 어떤 곡인지 잘 모르는 눈치. "와아아아!!"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왜냐하면, 락에 익숙하고 00년대 이후 노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곡이기에. 이후 시작되는 키보드로 편곡된 강렬한 신디사이저 사운드. 들어오는 드럼의 필인. 폭발하는 기타. 리듬을 타며 연주를 하는 기타의 역동적인 동작. 하지만 그와 다르게. 베이스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모니터 스피커에 발을 올린 후 베이스를 거칠게 튕겨내고 있었다. 살짝 불안하고 거친… 정제되지 않은 듯한 핑거 피킹. 그러나 그렇기에, 곡의 분위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연주다. 그리고 해는 떨어지기 직전. 불길한 자주색 석양이 마지막 절규를 뱉어내는 하늘이 창 밖으로 보이는 가운데. 단 한번도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베이스라인은, 특별하게 세팅된 스피커와 맞물려 사람들을 반쯤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스피커 앞단에 선 사람들은, 공기가 떨리는 것을 넘어 마사지기로 머리를 두드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포메이션이 약간 다르네.’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베이스를 끊임없이 치고 있는, 살짝 화려한 화장의 여고생을 보며. 아윤은 그녀가 봤던 첫 번째 공연을 떠올렸다. 용산에서 봤었던 그 공연에서는, 기타가 전면에 나오고 나머지는 뒤쪽으로 살짝 빠지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베이스가 왼쪽 앞에 따로 나와 있고, 나머지 밴드원들은 각자 따로 자리를 잡은 상태. 그 덕에 아윤은, 첫 번째 공연 때 멀어서 못 봤던 베이스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선이 굵고, 전반적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체형. 키도 크고, 손도 크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큰 부분이 많은… 아무튼 그런 여자애. ‘뭔가 엄청 멋있어 보인다.’ 오늘 이 장소에서 공연을 맞이하기 전까지, 아윤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다. 밴드 SNS는 어디 있는 건지, 얘들은 도대체 뭐하는 애들인지… 바닥부터 정보를 긁어모으던 과정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 인터넷 글들. 인터넷에 친숙한 아윤이 보기에도, 악의가 들어간 글들이 다수 존재했다. 기타의 실력을 찬양하면서, ‘아 근데 베이스는 좀…’ 같은 코멘트를 남기는 방식. 일명 ‘긁는’ 글. 아윤은 밴드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데려온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 악기의 조화가 어쩌고 기타가 어쩌고 베이스가 어쩌고, 잘 모르는 이야기. 지금 치고 있는 베이스가 얼마나 잘 치는지도,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잘 몰라도,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베이스라는 거… 엄청 멋지네.’ 표정 없는 얼굴은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것 같다. 허나 화려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잔잔한 수면 밑에서 떠 있기 위해 노력하는 백조의 발이 어떤 것인지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그 모습에, 아윤은 애니메이션에서도 베이스 캐릭터는 항상 멋지게 나왔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키야마 미오, 야마다 료, 이마이 리사 등. 어쩐지 모르게 그녀는 예전부터 베이스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사람의 몸은 객관적이지 않다. 외부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기준대로 보정하여 받아들인다. 대표적인 예가 눈 앞의 코다. 원래라면 인간은 눈 앞의 코를 계속해서 의식할 수 밖에 없다. 허나 뇌의 보정 때문에, 인간은 코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지금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재 파라독스의 사운드 세팅은, 다른 모든 소리를 묻어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흔히들 말해지는 '안 들리는 악기'의 이미지 정도는 박살낼만큼 충분히 큰 사운드. 이것은 의도적인 부분이었다. '아무튼 크면 소리가 좋게 들린다' 라는 트릭을 위해 의도적으로 베이스를 강조한 세팅이기 때문. 물론 이서의 베이스 실력은 괜찮은 수준. 하지만 명전은 ‘괜찮은 수준’으로 들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 이유로 공연장의 세팅은 세밀한 조정을 거듭했다. 그에 따라,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듣는 힙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관객들은, ‘와 베이스 진짜 잘 친다'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밴드는 그러한 인상을 확실히 새기기 위해… 하나의 장치를 더 마련했다. 클라이막스를 알리는 고음과 함께 일시적으로 시작되는 인스트루멘탈 파트.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시작되는 연주. 그리고 이후에는, 원래라면 화려한 기타 솔로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지만… “어, 뭐야?” “베이스 솔로?” 기타 솔로가 볼륨을 줄이며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베이스가 메우며… 16비트의 베이스 솔로가 몰아친다. J-rock 풍의 슬랩 연주를 조금 섞은, 고음역대를 강조한 베이스 솔로. 이때까지 그루비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베이스의 화려한 슬랩에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제이락 코스프레냐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비율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잘 섞었냐는 감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원래라면 이런 식 연주는 아니었는데.’ 기타를 연주하며 명전은 이서를 곁눈질했다. 한치도 떨지 않고, 실수하지도 않은 채 냉정하게 베이스를 연주하는 이서. 평소에 헤실헤실 웃고 다니던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 인기몰이를 꽤나 할 것 같은 느낌. 원래 명전이 계획하던 건, 이른바 'Thunderfingers'로 칭해지던 더 후(The who)의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 풍 베이스 솔로. 벼락같은 스피드로 무자비하게 리듬을 난타하는 스타일의 솔로가 이 곡에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리라 생각했지만, 이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는 이런 쪽이 더 나은 것 같아. 슬랩 자체가 좀 멋지기도 하고…" 라고 말하며 이서가 가져왔던 베이스 라인은, 곡에 꽤나 잘 녹아들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슬랩이 들어가 화려함을 보여주는 연주. 계산이 잘 먹혀들어간 모양인지, 이서가 서 있는 앞쪽의 관객들은 베이스 슬랩을 보며 연신 감탄성을 내질렀다. 보컬이 끝나자 다시금 터져나오는 환호. 밴드는 마지막까지 에너지를 끌어올려… 드럼과 신스, 베이스와 기타를 동시에 내려치며 끝을 맺었다. “감사합니다!!” 다시금 터져나오는 박수. 머리를 쓸어올리는 이서를 카메라로 찍는 관객들도 있다. 아무래도 그들의 계산이 제대로 적중한 모양이다. “잘 들으셨나요. 저희 베이스가 좀 잘 하죠. 이번에 한번 보여드리려고, 이런 곡을 택했습니다. 원래 베이스가 안 들리는 악기라고 하잖아요? 들린다는게 뭔지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아무튼 뭐… 클럽 파라독스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저희는 Group Sound입니다. 저는 메인기타이자 보컬, 하수연. 저기 저 친구는, 베이스이자 서브보컬, 최이서…” 밴드 한명한명을 소개할 때마다 쏟아지는 환호성. 첫 번째 곡을 감명깊게 들은 모양인지, 이서가 소개될 때 큰 박수가 이어진다. 다음은 현아, 서하. 의외로 서하가 소개될 때 아는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 곡 밖에 안 된다는 게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희는 아직 신생 밴드이니까요. 좀 길게 뵐 날이 있긴 하겠죠. 아무튼 뭐… 이번에는 자작곡입니다. 곡명은…” * * * “나는 아직도 찾고 있어, 만나지 못했던 그날의 너를…” 그리고 이어지는 솔로. 완전히 세팅된 스피커와 이펙터를 끼고 나오는 톤은, 유튜브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곡절이라는 것을 체화시킨 듯한 소리에, 무슨 음악이 나와도 개의치 않고 춤을 추던 사람도 굳어버린 모습. 몇분간 몰아치던 파도는, 어느새 잠잠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해진 클럽. 명전은 기타를 짧게 튕기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Group Sound 였습니다.” 좀 전과는 다른 성격의 박수. 이전의 박수가 실력에 대한 환호였다면, 지금의 박수는 곡에 대한 몰입의 댓가다. “아… 재밌었다.” “집에 갈까?” “왠지 다음 공연은 굳이 뭐 안 들어도 될 것 같은데…” 같은 소리를 하는 관객들. 명전은 쓰게 웃으며 장비를 정리했다. “원래 이런 곡이었어?” “신경 좀 썼지.” “그냥 신경을 쓴 수준이 아닌데… 이 정도면 블루스 락 밴드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명전의 이야기에, 서하가 대답했다. 하지만 명전은 그런 방향으로 정하고 싶진 않았다. 가능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딱히 뭐… 몇십년 넘게 했던 걸 죽고 되살아난다음에도 또 하기도 그렇고. ‘이번 곡은 내가 도맡아서 작곡을 하긴 했지만… 이 다음부터는, 아마 이 애들이랑 이야기를 해 봐야겠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하며 명전은 고개를 들었다. 무대 끝 쪽에 쭈그려 앉아, 관객으로 온 여자애들 몇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서. ‘좋을 때긴 하지…’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인터넷의 수천만명이 자신을 싫어한다 하더라도, 한명의 팬이 싸인지를 들이밀고 “너무 영광이에요 싸인 한장만 부탁드립니다…!” 라고 한다면… 그 경험을 잊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명전은 피식 웃고는, 기타를 챙겨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 잘 봤습니다. 뭐 긴 말 필요 없고, 공식 라인업에 들어가는 걸로 하시죠.” “그럼 어떤 식으로 공연을 하게 되죠?” 그 말에 오너는 종이 몇장을 건넸다. 클럽 파라독스의 규칙이 이리저리 써있는 종이. 명전은 그것을 훑어보고는, 뒤로 건넸다. “짧게 요약하면… 한달에 최소 공연 횟수가 있구요. 그리고 그 이상으로 공연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매달 초 다음 달의 스케줄을 정하게 되고,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스케줄에 따라 공연을 하게 됩니다.” “정산은요?” “원래라면 세금 떼고 5:5입니다. 저희는 카운팅 페이(각주 1)를 택하고 있지 않으므로, 매일 입장수익에서 세금 떼고 5:5죠. 5에서 아티스트분들이 갈라 가지는 거구요.” 오너는 그 대목에서 잠시 멈칫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5:5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아는 듯 했다. ‘들어보면 알거든. 우리는 어딜 가도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타입의 밴드라는 것을.’ 여고생 4명이 밴드를 한다. 외모는 다들 괜찮은 수준에, 음악은 딱히 가리지 않는다. 어느 누가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러분들은 저희가 7:3으로 정산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입장수익은 그런 식으로 돌아갈 거고… 나머지 금액은 뭐, 음료 및 안주 판매 금액은 순수 저희 몫이구요, 현장 판매 굿즈는 제작비 제외하고 담당 아티스트가 9를 가져가고 저희가 대행으로 1을 받습니다.” “뭐 그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수준 같네요.” 서하의 대답. 명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카운팅 페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파라독스는 이미 상위권 클럽. 하지만 7:3 정산에, 굿즈 판매까지 있다고 하니 충분히 괜찮은 조건이다. 그 외에 따로 조건이 있느냐는 물음에, 명전은 고개를 저었다. “계약서는 이 주소로 보내주세요. 좀 검토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서.” “어… 아 네, 알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는 오너. 그런 오너를 두고, 명전과 아이들은 클럽을 나섰다. * * * “이제 우리는 실전 연습장을 얻은 셈이지. 돈이 벌릴 루트도 만들고.” 수연은 커피를 쭉 빨아들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빨대를 통해 그녀의 입에 호쾌하게 빨려들어갔다. 춥지도 않은가? 하고 이서는 생각했다. “어우, 힘들었어요.” “대신 뭐 실력은 많이 올랐으니까…” “나는 한 일주일은 이제 연습 못 나올 것 같아. 밀린 일이 너무 많아.” 수연의 선언에 테이블에 널부러지는 아이들. 이서 또한 서하와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커버곡을 바꾸는 바람에, 최근에는 만사를 다 미뤄놓고 연습을 해 왔으니… 이제는 더이상 다른 일을 미룰 수가 없는 상황. “그럼 이제는 당분간 한시름 놓은 건가? 이제 좀 쉴 수 있나?” “무슨 소리야.” 그런 희망이 담긴 이서의 물음에, 수연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이제 정부지원사업 대비해야지. 쉴 틈이 어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