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누군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법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건 대상이 충분히 맛있게 먹고 있지 않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캐서린이 먹는 모습은 새벽부터 연구와 분석을 끝마치느라 아침과 간식을 거른 나르케에게는 충분히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나르케는 주저하고 있었다. 사람은 첫인상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법. 그런 의미에서 카렘의 발사믹 양념 치킨은 나르케에게 나쁜 의미로 영향을 주었다. 뇌리를 자극하는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단번에 몰아낸 일반적인 음식들과는 달리 식욕을 억제하는 검은 빛. 프라이드 치킨을 코팅한 검붉은 소스 일부는 굳은 피처럼 검게 응어리져 치킨을 덮고 있었다. 그래도 냄새는 여전히 좋은 의미로 자극적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람을 유혹하는 식충식물과의 몬스터, 알라우네나 네펜데스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아그작! "음. 이런 육즙이 튀어버렸군." "바로 닦아드리겠습니다." 그저 바삭하기만 한 것이 아닌, 바삭함과 쫄깃함이 공존하는 소리. 누구보다 빨리 일어나 피로감에 찌든 몸의 텅 빈 위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거기에 누가 보더라도 이건 맛있다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 캐서린의 입에서 노골적으로 터져 나온 육즙. 순간 우중충한 하늘 사이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의 빛이 한순간이나마 캐서린을 비추며 나르케에게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했다. 이야, 독하다. 이래도 참는다고? "그냥 솔직하게 배고프다고 말씀하시면 될 것을." "응? 무슨 말이야?" "몸은 솔직하신 모양입니다. 에스카르나님." 갑작스러운 카렘의 빙글거리는 어조에 눈만 깜빡이던 나르케는 순간 양손의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시선을 내렸다. "아, 아차! 어느 틈에!?" 상처가 난 줄 몰랐다가 인식하면 급격하게 아파지듯이 한 번 신경을 쏟기 시작하자 봇물이 터진 것처럼 수많은 폭력적인 정보가 나르케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잠시 멈칫하던 나르케는 이내 첫인상(사실 아님)을 망친 눈을 꾹 닫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닭다리를 입에 가져갔다. 아그작- 찌익- 과연 지난 며칠 동안 먹었던 프라이드 치킨의 바삭한 튀김옷과는 다른 느낌의 식감이었다. 서로 맞물린 바삭함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씹는 맛은 늘어났다. 오랫동안 스튜, 수프에 끓이거나 로티세리한 닭 껍질의 중간에 해당하는 쫄깃함. 그런 만큼 질기지는 않았으며, 이빨의 움직임만으로 찢어질 만큼 충분히 부드러운 식감이었다. 담백한 프라이드 치킨의 튀김옷과는 완전히 다른 맛. 소스에 절인 자극적인 달콤함과 함께 풍부한 향이 느껴지는 산미가 전기로 혀를 자극하듯이 나르케의 신경을 거미줄처럼 타고 올라갔다. 나르케는 이와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그녀가 아직 에우로파 대륙을 거닐고 있을 때. 어느 때와 같이 자리를 잡지 못한 네크로맨서답게 구질구질하게 살던 그녀에게 맛있는 식사란 사치나 다름없었다. 다른 건 익숙해져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금이었다. 건빵과 엄지손가락만 한 암염 몇 개로 반년을 넘게 연명하는 것은 그녀에게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먹는 짜디짠 육포는 곧바로 그녀의 혀를 단번에 관통하고 전신의 신경을 일깨웠다. 소스가 혀에 닿자 바로 그 잊을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과한 자극에 혀가 마비될 무렵 비단결 같은 살코기가 찢어지며 내뿜은 뜨겁고 고소한 기름과 육즙이 이를 진정시켰다. "...!" 강렬한 자극에 입가의 힘이 풀릴 뻔했지만 어떻게든 나르케는 이를 흘리지 않고 모두 삼킬 수 있었다. 그러고 표정이 흐물흐물해졌다. 혀를 타고 목구멍까지 느껴지는 소스와 치킨의 엑기스에서 느껴지는 조화. 강렬한 소스로도 뚫지 못한 튀김옷에 갇혀있던 치킨의 농밀하고 따뜻한 맛이 홍수처럼 입안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바삭함이 사라져 쫄깃함만이 남은 튀김옷의 식감과 함께 부드럽게 찢어지는 닭다리살. 나르케는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양 끝의 오돌뼈만 남은 다리뼈를 쥔 자신을 인지할 수 있었다. 빠르게 오도독거리며 오돌뼈마저 뜯어먹은 나르케는 곧바로 남은 닭다리를 집어들었다. 캐서린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저번부터 생각했지만, 다리만 선호하다니. 취향이 독특하군." "뭐, 어느 부위를 두고 싸울 필요는 없어서 좋은 게 좋은 거죠."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닭가슴살 파인 카렘이 말했다. 에우로파 대륙엔 닭가슴살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단순하게 그쪽이 고기의 양이 더 많았으니까. 뭐? 닭다리가 대신 더 부드럽고 육즙이 많다고? 그건 그 요리사가 조리를 잘못해서 가슴살을 푸석푸석하게 만든 것이고. 전생에도 다이어트를 하느라 닭가슴살을 조리하는 실력만큼은 프로에 버금간다고 스스로 장담했던 카렘이었다. 굽기, 찌기, 튀기기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치킨 프랜차이즈의 푸석푸석한 닭가슴살과 비교한다면 실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닭고기는 다리를 제일 좋아하는 특이취향(?)인 나르케는 변함없이 아무도 손대지 않는 닭다리를 집었다. 쿠우웅-! "뺘아아-아아아악!?" 몸이 들썩일 정도의 충격과 소리에 나르케는 비명을 질렀고, 이내 다른 의미로 비명을 이어서 질렀다. "내 다리!" 갑작스러운 충격에 나르케의 손에서 양념치킨은 자유의 몸이 되어 그대로 지휘탑의 나무 바닥에 그대로 몸을 뉘었다. 그 대참사에 나르케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닭 한 마리에서 고작 두 조각밖에 나오지 않는 귀중한 다리 하나가 억울하게 희생된 참혹한 광경. 그러거나 말거나. 카렘은 인상을 찌푸리며 저 멀리 숲의 중앙을 보고 있었다. 시커먼 기운이 천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타니타스님. 저기 숲에서 뿜어지는 게 뭐죠?" 캐서린은 숲의 검은 기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꼬마. 지금 저게 보인다는 말이냐?" "저 뚜렷하지만 검은, 촉수 같은 기운이라면. 예." "그렇다는 말이지." "좋은 소식은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니지. 유형화된 사기(死氣)라니.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군. 따라와라!" 캐서린이 지팡이를 집어 들고 튀어나가듯이 지휘탑을 내달려 내려갔다. 카렘은 곧바로 양념치킨을 바구니에 담고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르케를 끌고 뒤따랐다. "생각보다 아주 혼란스럽진 않은 것 같네요." 마을은 제법 혼란스러웠지만, 콜던에서 파견된 모험가 길드의 직원들이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를 펑거스비 촌장이 이끄는 자경단과 모험가들 몇몇이 돕고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촌장은 캐서린을 발견하고는 단번에 달려왔다. "영주님!" 촌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캐서린을 불렀다. "모험가 길드 직원들을 불러라. 토벌에 참여한다는 모험가를 전부 마을 광장에 집합시켜. 난 내 종자들과 함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광장으로 말입니까?" "그래. 문제의 원인이 나온 것 같으니. 최고 전력을 동원해야겠지. 나도 토벌에 참여한다." "대, 대마법사이신 영주님께서.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주가 아니라 고문이다. 그리고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을 병사들을 광장으로 호출하도록." "예!" 말을 마친 캐서린은 촌장을 내쫓았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자경단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마을 전체로 흩어졌다. "아이스웜 토벌 때처럼 직접 나서신다고요?" 바구니를 양손으로 소중히 안아 든 카렘이 물었다. "그래. 마력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유형화된 사기라면 늦장을 부렸다간 상황이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저 숲이 진짜로 언데드를 뱉어내는 던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 캐서린은 신경질적으로 지팡이를 땅으로 짚으며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래, 저만한 사기라면 본능만 남아있을 버섯 골렘을 자극하는 데는 충분하겠지. 며칠간 보고는 받았지만, 숲 안은 생각보다도 더 난장판일지도 모르겠다마는." 탑에서와는 달리 마을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던 카렘. 하는 일이라고는 세 끼 식사와 간식을 만드는 일, 그리고 두 마법사와 수다를 떠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마법과 네크로맨시에대해 가벼운 아이스 브레이킹 수준의 지식은 갖출 수 있었다. 유형화된 사기(死氣)에 대한 지식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사기란 마력이 부패한 시체의 기운과 독에 오염되었을 시에 발생하는 기운. 당연하지만 일반적으로 마력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의 눈엔 보이지 않았고,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유형화가 되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이를 악화시킨 사람, 혹은 물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데드는 발생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 언데드가 발생할 분의 마력이 버섯 골렘으로 형성되고 있었으니." "하지만, 중급 언데드 수준의 골렘과 마주칠 각오는 필요하겠는데요." 나르케는 평소처럼 말을 덜덜 떨지도, 주변의 눈치를 보지도 않으며, 아래로 축 처져있던 귀를 하늘 높이 꼿꼿이 세운 체 분노를 곱씹으며 말하고 있었다. 평소엔 소심하더니, 나르케에게 이런 면이? 카렘은 나르케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진작에 사라져버린 마왕군이 됐든, 민폐만 끼치는 동업자가 됐든, 헛바람이 든 선배의 유물이 되었든 간에. 닭다리에 대한 원한은 꼭 갚아주겠어." 뭐야, 착각이었나. 말더듬증만 사라졌지 여전히 한없이 맹하기 그지없는 어조와 내용에 카렘은 그러면 그렇다는 얼굴로 나르케를 응시했다. 당연히 그걸 모른 채 나르케는 원한을 불태우며 캐서린을 뒤따랐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촌장이 모험가 길드 직원들과 함께 헐레벌떡 뛰어왔다. "후우, 현재 마을 안에 있던 모험가들에겐 전부 전달했고, 자경단원과 일부 모험가들이 마을 인근에 있던 모험가들을 불러 모으러 갔습니다." "혹시 모르니 비전투원은 안전 구역으로 피신시키도록 하지." "자경단원들은 모두 목책으로 보내 숲을 경계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험가들을-" "걱정할 것 없다. 나와 함께 숲에 들어가는 놈들을 뺀 나머진 모두 마을을 지키는데 동원하면 되니까." 캐서린이 길드 직원과 촌장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숲에 들어간 모험가들 이외의 모든 모험가가 모이자 캐서린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토벌 목표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C급 이상의 모험가들은 캐서린 자신과 함께 숲으로 향할 것. D급 이하의 모험가와 일부 C급 이상의 모험가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마을에 대기하는 등등. 마지막으로 캐서린 휘하의 네크로맨서가 함께할 테니 주의하라는 명령에 찡그리거나 혀를 찰지언정 반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 의뢰 및 토벌대의 물주, 한 나라에 몇 없다는 S급 모험가 혹은 그 이상인 현자에 다다른 대마법사, 펠윈터 가문의 최고 마법 고문. 돈, 지위, 실력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귀족의 명령이었으니 당연했다. 당장 눈앞에서 반발하는 극소수의 사람도 원인이 캐서린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 새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 시궁창스러운 기운에 혹시나 하였는데 어떻게 마을 한복판에 있을 수가!" "야, 이 기도쟁이는 갑자기 왜 이래!?" 카렘은 곧바로 고성이 오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음의 진원지는 광장의 중심에 자리한 모험가 파티. 직업은 전사, 마법사, 궁수, 도적, 사제. 종족은 드워프, 인간, 엘프, 노움으로 종족이 다양했다. 그야말로 모험가 파티의 정석 중의 정석. 그리고 하얀 사제복을 걸치고 철퇴를 허공에 휘두르는 여인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카렘과 캐서린, 촌장을 비롯해 주변 모험가와 이제 막 광장에 진입한 병사 등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네크로맨서와 마족은 이단! 멸절의 대상! 이거 놔아아아아아!!!!" "야! 요술쟁이! 설마 너 또 주의사항 깜빡했냐!?" "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오." "이거 놔아아아!!! 저기 이단의 머리통을 부술 수가 없잖아아아아!!!!" "드워프. 기절시켜." 엘프 궁수의 말에 드워프 전사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냄비를 휘둘렀다. 깡-! 갑작스럽게 광신자처럼 발작하던 사제는 찌그러진 냄비와 함께 침묵했다. 카렘의 고개는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한창 분노하던 나르케는 맥이 빠진 듯 해탈한 분위기와 함께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 이, 이렇게 동업자에 대한 선명하고 순수한 증오심은 오, 오랜만인데." "이게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의 취급입니까?" "지, 지역과 어느 신을 믿냐에 따라 다르다고 해야 하겠지? 주, 주로 구세심판교회라던가, 티르의 좌검 쪽이 그런 편인데." 한순간에 광장에 서린 긴장이 날아가 버린 광경. 캐서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정도 이상으로 긴장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니. 꼬마." "넵. 저도 대피소에 가겠습니다." "그래. 바구니는 잘 지키고 있어라. 쯧!" 하지만 캐서린도 신경질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식사하는 중인데 일을 벌여? 놈이 든 것이든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지.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