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렘, 그에게 버섯 몬스터란 어렸을 적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초등학교에서 돌아와 부모님의 허락을 맡고 간 PC방 그곳에서 카렘은 처음으로 온라인 게임을 접할 수 있었다. 게임의 근간이 뒤바뀌는 대격변 급 패치가 벌어지기 전의 메X플 스토리. 세상을 탐험하며 여러 감동적인/개 같은/흥미로운 퀘스트를 수행하며 다양한 몬스터를 처치하고, 점점 강해지는 0과1로 이루어진 분신. 물론 키우는 건 좀 좆같았다고 생각했다. 시발 2차 전직하는데 1주일이 걸리는 게 말이야 방구야. 아무튼, 그런 카렘에게 있어 버섯 몬스터란 어렴풋한 머릿속의 안개 너머로 물러난 추억을 되새기는 소재였다. 설령 나이가 들어 버섯 몬스터의 근본인 마이코니드를 비롯해 각종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버섯 몬스터를 접하게 되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렘은 전생부터 소중하게 품어온 그 동심이 깨질 것만 같았다. 끼이이이익- 곰은 가볍게 넘어서는 거대한 덩치가 큰 호두 형상의 버섯 골렘이 휘두른 앙증맞은 하얀 주먹은 전방에 나선 모험가의 대방패에 가로막혔다. 터어엉!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분산시킨 모험가의 대방패에 공기 중의 습기 탓인지 유형의 충격파가 일어난 것이 보였다. 카렘이 시선을 돌리자 커다란 호두알에 크고 작은 호두가 자라난 듯한 버섯 골렘이 짧은 촉수를 빠르게 움직이며 다가와 끄트머리가 버섯으로된 굵은 촉수를 휘둘렀다. 그 묵직하고 날카로운 일격을 한 엘프 모험가가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회피하며 불화살을 연달아 발사했다. 버섯 골렘의 몸통에 화살이 꽂히자 갈색, 검은색으로 타들어 가며 착탄 지점에 연기와 불꽃이 피어올랐다. 지글거리는 소리 사이로 고소한 버섯 내음, 그리고 왠지 모를 잘 익은 소고기 냄새가 카렘의 콧가를 자극했다. "와, 냄새 하나는 끝내주네요." "그렇다고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외견은 거대한 아-니지. 꼬마 넌 딱히 상관없으려나." "제가 미쳤다고 저걸 먹겠어요? 어떤 버섯일 줄 알고." "응?" "음?" 뭔가 대화의 아다리가 맞지 않는데. 카렘은 버섯 골렘이 투척한 달걀 모양 버섯을 방패로 걷어내는 모험가를 보다 캐서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모스톤에서 온갖 것을 먹으며 생존하긴 했지만, 버섯은 정말정말로 확실한 거 아니면 대부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식용 버섯이 뭔지는 누가...아." "알려줄 사람도 없는데 뭐가 뭔 줄 알고 먹겠습니까." 전문가라도 100%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버섯이었다. 그것만큼은 전생이나 현생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식용 버섯이라며 당당하게 채취한 버섯을 먹다 골로 가버린 마을 최고의 버섯 전문가인 숲지기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카렘이 장담할 수 있었다. 전생에 카렘이 그나마 접했던 버섯들은 마트, 시장에서 파는 극히 일부의 식용 버섯일 뿐. 숲에는 난생처음 보는 버섯투성이였다. 그런 버섯 군락에서 식용 버섯을 골라낼 바에야 다음날 먹을 설치류와 벌레나 잡는 것이 더욱 영양학적으로 올바른 행동이었다. 카렘의 옆에 서서 모험가들과 버섯 골렘의 대난투를 지켜보던 나르케가 늘어진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 그런데 아타니타스님. 저희 이렇게 지, 지켜보기만 해도 될까요?" "응? 이게 무슨 문제지?" "아니 뭐라고 할까. 스, 습격을 당하는 와중인데 저희만 너무 평화롭다고 할까. 야, 양심에 찔린다고 할까." "무얼. 상관없다." 캐서린은 지팡이로 땅을 통통 두드리다가 마차에 기대어 섰다. "돈을 잔뜩 들여서 기껏 모험가를 고용했는데. 그만큼 일을 시켜야지." "슬슬 끝나는 모양이네요." 확실히 캐서린에게 고용된 모험가들은 실력자들인 건 확실하다고 카렘은 생각했다. 마차를 호위하는 모험가보다 두 배는 넘었을, 덩치도 가장 작은 것이 사람만 했던 크고 거대한 호두알 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히 바닥에 몸을 누이며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미끄러운 진액을 흘렸다. "와, 비주얼 봐라. 진짜..." 주먹 안에 쏙 들어오는 호두알이라면 모를까. 그 크기가 거대해지니 숫제 거대한 뇌가 촉수를 휘두르며 다가온 꼴이었다. 마치 8~90년대 B급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던 외계인같은 생김새였다. 모험가들이 전리품을 루팅하는 사이, 마지막 버섯 골렘을 베어 가른 올벡머리를 한 날렵한 인상의 모험가가 롱소드를 역수로 쥐고 캐서린에게 다가왔다. "아타니타스님. 일단 습격한 골렘들은 전부 처치했고 현장을 정리 중입니다." "아아, 수고 많았다." "목적지인 마을은 저런 상황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험가의 물음은 당연했다. 마차를 습격한 버섯 골렘은 전부 토벌됐지만, 아직 목적지인 마을은 족히 백은 가볍게 넘을 다양한 크기의 버섯 골렘들에 의해 두들겨지며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카렘은 혹시나 해서 모험가에게 물었다. "저 마을의 버섯...골렘들도 어떻게 해결이 될까요?" "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으면 뭐 다들 시도해보기야 할 텐데." 올백머리 모험가는 칼을 집어넣고 마을을 포위한 거대 버섯들을 둘러보았다. "두 배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숫자만 세 배 이상이라 각이 안 보이는데." "뭐,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았으니 너흰 전리품이나 갈무리하면 된다. 그나저나 아쿠사레 버섯이 골렘으로 화한건가? 알아봐야겠군." 캐서린은 스태프를 고쳐 쥐며 앞으로 걸어나가자 고대 제국의 세 번째 정복을 상징하는 스태프의 첨단에 달린 호박이 창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캐서린의 손을 기점으로 스태프의 아다만티움 회로를 타고 하늘색 마력이 빠르게 뻗어 나가기 시작하자 대기 중에 퍼져있던 습기가 일제히 응결해 바닥으로 낙하했다. "하! 이래서 추운 북쪽 나라가 좋다니까." 새파란 하늘색 안광을 발하는 캐서린이 가볍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버섯 골렘에 포위된 마을. 펑거스비엔 때아닌 대한파가 휘몰아쳤다. * * * 펑거스비. 마법사의 탑의 영지에 속하게 된 마을은 아이스랜드에서 드물게 몬스터나 맹수도 드물고, 숲의 성장도 크게 빠르지 않은 평온한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의 특산물은 바로 아쿠사레 버섯. 주먹만 한 호두 모양의 버섯은 세오폰 왕국을 넘어 대륙에서도 인기 품목이었다. 덕분에 세금으로 바치고 남은 것을 영주가 전량을 매입했기에 마을은 언제나 풍족했다. 그런 펑거스비의 일상은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봄이 찾아오자 여느 때와 같이 마을 차원에서 모험가를 고용해 언데드 토벌을 의뢰하고, 버섯을 채취할 준비를 하는 사이 사건은 벌어졌다. 숲에서 대규모 언데드가 몰려나왔다. 다행히 아무리 풍요롭다고는 하나 감당하긴 힘든 중급 언데드는 없었다. 하나같이 동네 마을 주민들도 상대가 가능한 하급 몬스터들. 그동안 아쿠사레 버섯을 판 비용으로 보강된 목책에 가로막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몰려온 언데드는 펑거스비에 있던 모험가들에게 순식간에 토벌당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숲을 헤치고 크고 거대한 버섯 골렘들이 이전의 언데드는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대량으로 몰려들었다. 다행히 펑거스비는 언제나 초과 이상으로 물자를 비축하고 있었고, 목책은 튼튼했으며 모험가들도 있었기에 마을을 방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한, 두 번이면 모를까.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몰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버섯 골렘의 습격은 나흘이고 열흘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목책은 파손되어도 여차하면 건물을 해체해서라도 보강할 수 있었지만, 문제라면 역시 식량. 나무도, 무기도 충분했지만, 식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얼마 남지 않은 며칠 분의 식량을 아끼며 방어하던 끝에 캐서린의 마법이 작렬한 것이었다. 캐서린과 함께 펑거스비 촌장의 보고를 잠자코 듣던 카렘이 물었다. "아타니타스님.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일단 콜던에 연락을 하고. 토벌 의뢰를 거는 것이 우선이겠지." "오, 저는 직접 토벌하실 줄 알았는데." 캐서린은 카렘의 말을 듣고 스태프로 목책 너머의 울창한 숲을 가리켰다. "저 넓은 숲을 나 혼자 무슨 수로 탐색하냐? 설령 지금 고용한 모험가들을 데리고 고용한다 쳐도 무리다. 무리. 내 시간은 그렇게 값싸지 않다. 이럴 땐 월동을 끝내고 주머니가 텅텅 비어있을 모험가를 써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촌장!" "네, 네!" 캐서린은 품속에서 양피지와 깃펜을 꺼내 빠르게 휘갈긴 후 둘둘 말아 봉인 마법을 걸고는 촌장에게 넘겼다. "이 문서를 빠르게 콜던의 마법사 탑으로 전달하면 후속 지원과 함께 모험가 길드에 의뢰가 걸리겠지. 모험가를 몇 명 붙여줘야 하나?" "아, 아닙니다. 마을에서 고용한 모험가들이 있으니 충분합니다!" 촌장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자비로운 지배자를 칭송하며 뒤로 물러났다. * * * 캐서린은 펑거스비에 마법사의 탑에 명령한 지원과 모험가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애당초 펑거스비와 콜던의 거리는 걸어서 반나절. 캐서린의 요청을 빙자한 명령서를 올리비에에게 전달. 올리비에가 물자를 준비하는 사이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내걸어 토벌대를 꾸리고, 가장 먼저 의뢰를 접수한 이들이 토벌대의 물자와 함께 펑거스비에 도착하는 데는 길어봤자 이틀. 물론 그다지 멀진 않지만, 나중의 일이었다. 캐서린과 나르케를 따라 목책에 오른 카렘은 열심히 일하는 모험가와 마을 사람들을 둘러봤다. 깡! 깡! 퍼석! 깡! 일부 모험가와 무장한 마을 사람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가운데, 펑거스비 촌장의 지휘를 따라 모험가와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연장을 휘둘러 바위처럼 얼어붙은 버섯 골렘을 분쇄하고 있었다. "이미 다 얼어 죽은 거 같은데. 현장을 정리하는 겁니까?" 카렘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 엄밀히 말하자면 버섯 골렘들은 아, 아직 죽은 게 아니니까." "죽은 게 아니라니요? 저런 상태인데도 말입니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캐서린을 대신해 나르케가 대답했다. "고, 골렘은 애초부터 몸체 어딘가에 있는 핵을 부수기 전까지는 주, 죽은 게 아니라서 그래." "그거참 골치 아프겠네요." "그, 그렇지? 아, 저쪽을 봐봐." 카렘은 나르케가 가리키는 지팡이의 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한 무리의 모험가가 목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버섯 골렘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결정과 살점이 융합해 그 위로 버섯과 곰팡이가 자라난 것 같은 덩어리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주, 주변 환경에 따라 골렘의 핵도 골렘만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어. 지, 지금 꺼내고 있는 저게 버섯 골렘의 핵이야." "저걸 몸체에서 분리해야 죽은 거라고요?" "아, 아니면 부수거나?" "그런데 왜 저렇게 핵을 꺼내고 있는 겁니까?" "그, 그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골렘의 핵은 나름 값이 나, 나가는 물건이라? 원래 골렘을 침묵시키려면 핵을 파, 파괴해야 하거든." "그거 참..." 말릴 수 없는 소리였다. 골렘의 핵이 골렘의 몸체 어디에 있다고 두들기고 앉아 있을까. 카렘의 속마음이 표정으로 나왔는지 나르케가 고개를 저었다. "그, 그나마 버섯이라서 다행인 거야. 바위나 금속이었으면 여, 여기는 진작에 사라졌을걸?" "...금속이요?" "그럼. 용암이나 물로 이뤄진 라, 라바 골렘이나 워터 골렘도 있는데. 아이스 골렘도 이, 있어." "그나마 버섯이어서 다행이네요." 카렘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생각했다. 당장 저 버섯 골렘만 해도 타격만으로 충격파가 눈에 보이는데, 용암으로 이뤄진 라바 골렘은 또 뭐며 유동체인 물로 이뤄진 워터 골렘이라니. 어쨌든 핵을 부수면 된다고는 하지만 상상으로도 상대하기 싫었다. 물론 요리사인 카렘이 직접 상대할 일은 없었지만, 기왕이면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 "좋아 정했다." 눈을 감고 있던 캐서린이 팔짱을 풀고 눈을 떴다. "꼬마야 오늘 저녁은 뭔가 버섯 요리가 먹고 싶은데." "...진지하게 뭘 고민하나 했더니 그런 걸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그것만큼 진지한 것이 어디 있다고?" 캐서린은 턱짓으로 목책 바깥을 가리켰다. "마을에 식량도 부족할뿐더러 저런 상황인데 대접을 받아봤자 얼마나 시원찮을까. 그냥 네가 하는 저녁을 먹고 말지. 그리고 나르케." "네, 넵!" "저녁 먹기 전까지 넌 날 따라와라. 우린 할 일이 있다." 캐서린의 손짓에 나르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카렘도 더는 목책에 볼일이 없으니 그녀들을 따라 목책에서 내려갔다. "아 맞다. 이거 받아라." 캐서린은 내려가다 말고 카렘의 손에 은화 주머니를 턱 얹었다. "혹시나 부족한 재료 있으면 알아서 구매하고. 간식도 못 먹었으니 최대한 빨리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