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무리를 짓는 생물의 생존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하며 이는 사람 또한 같은 이치를 공유했다. 아이스랜드의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영지에 흩어진 마을 주민들이 도시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 그리고 사람이 늘어나면 시끄러워지는 법이긴 하지만 콜던은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사람으로 시끌벅적했다. 보더스터의 몇 배는 가볍게 넘기는 콜던의 외성 구역은 보더스터보다 몇 배는 더 시끄럽게 북적거렸다. 오랜 세월 도시에 머물렀던 아이오나는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는 듯이 정겨운 표정이었다. 반면에 두루마리에 집중하려던 캐서린은 시끄러운 소리에 결국 독서를 포기했다. 그리고 카렘은 코를 막고 입으로만 숨을 쉬고 있었다. 삼신교의 장로 겸 공작의 시종장과 대마법사 고용주를 앞에 두고 하기엔 심히 부끄러운 행위였으나, 카렘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첫인상이 반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 도시에 한 번 기대를 저버렸던 카렘. 마차 창문 밖으로도 봤던 웅장한 모습에 넋을 놓았지만 이내 도시의 정문 앞에서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서는 모습을 보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고로 사람이 많으면 모든 것이 배가 되는 법. 보더스터의 외성에서 특이 취향인 사람들만 좋아할 참혹한 광경을 빨리 떠올린 카렘은 쥐를 본 코끼리처럼 기겁하며 창문을 닫고 구강호흡을 시작했다. 마차가 비교적 밀폐되어있다고는 하나, 최소한의 환기를 위해서 바깥 공기가 흐를 터이니 숨이 차기는 하지만 카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화장실 하수구 썩은 내를 맡기보다는 숨 좀 차고 마는 게 나으니까. "...꼬마.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리고 당연히 상황에 맞지 않게 비장하기까지 한 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구강호흡이요." “구강호흡?” “입으로 숨쉬기-” "아니, 그건 모르는 게 이상하지. 대체 왜?" 캐서린으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야 생일 선물을 받은 애처럼 눈을 반짝이다가 그대로 썩어들어가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뻐끔거리고 있으니까. "이미 보더스터에서 경험했는데 또 당할 순 없죠. 내성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럴 겁니다." "뭘, 경험. 아. 그." "제가 왜 이러는지 아타니타스님이라면 아시겠죠?" "음. 확실히 그걸 처음 봤다면..." 코맹맹이로 답하는 카렘은 무척이나 진지했으며 캐서린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층 건물 밖으로 오물 투척은 처음으로 도시에 상경한 촌놈에게는 자극이 너무 과한 광경이었으니까. "아타니타스 공. 둘이서 무슨 말을 그렇게 재미나게 하는가?" 그리고 아이오나 장로가 이렇게 묻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카렘이 코맹맹거리는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하자 아이오나 장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확실히 급격하게 발전한 도시들 대다수가 하수 시설이 미흡해서 발생하는 문제기는 하지. 이거 펠윈터 령도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라 웃을 수가 없구나." "보더스터의 내성은 그나마 덜 했지만, 외성은 마을의 공용 축사보다도 냄새가 더 했어요." "뭐, 그래도 걱정할 것은 없단다." "네?" "콜던은 그런 냄새 걱정은 없다는 말이란다." 아이오나 장로는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카렘에게 손을 내저었다. 확신에 찬 어조와 높으신 분의 말에 카렘은 조심스럽게 코를 쥔 손을 놓았다. "어, 진짜로 냄새가?" "아이스랜드가 비록 척박하다고는 하나 왕국보다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데, 하수 시설 하나 완비되어있지 않다면 그게 문제가 아니겠냐?" "이만한 규모의 도시 전체에 하수 시설이요?" "막대한 돈과 드워프는 답을 알고 있는 법이란다." 아, 드워프. 금속 가공과 건축으로 유명한 난쟁이 종족. 거기에 막대한 예산. "꼬마야. 돈과 장인 정신에 환장한 난쟁이 만만세라는 거다." "그런데 아이스랜드는 척박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세오폰 왕국, 아니 에우로파 대륙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말이지." "그런데 그걸 공사할 돈이 어딨어요?" 땅이 척박하다는 것은 소출이 빈약하다는 것. 소출이 빈약하면 세금도 적어지는 법인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마차 창문 밖에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삶에 찌든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모스톤 마을에서 수없이 봐왔던 절망에 잠긴 표정들. 그와 정반대되는 살기 위한 열기가 느껴지는 활기찬 기색만이 느껴졌다. "아니 그런데 진짜로 뭔가 따뜻한 거 같은데?" "콜던은 온천 지대의 위에 지어져 아이스랜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하다고 하지. 그 덕이다." "그래서 이렇게 훈훈한 거였군요." 라고는 말했지만, 입김이 하얗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도시 바깥의 살이 베이고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칼바람에 비한다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겨울의 바깥에서 종일 고생하다가 실내에 들어와 냉수를 맞을 때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꼴이랄까. 그러는 사이 안내 행렬은 마차의 깃발을 보고 비켜주는 인파를 가로질러 내성, 그리고 펠윈터 가문의 본성인 윈터홈에 도착했다. 비록 카렘이 윈터홈의 바깥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성이 이질적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콜던의 성벽은 지붕을 빼고 감상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도형으로 치자면 네모, 형용사로는 단단하다는 것이 대번에 떠올랐다. 아무래도 드워프가 만들었다고 하니 드워프의 건축 양식이 그런 것일지도. 반면에 카렘이 지금 눈앞에 둔 윈터홈은 겉보기엔 그와 정반대였다. 척 보기에도 공략하기 어려워 보이는 높은 원기둥의 첨탑들과 첨탑의 사이와 사이를 잇는 복잡한 성벽들. 여기까지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화 속 귀족성의 스테레오 타입이나 마찬가지. 다만 다른 점이라면 성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타니타스 님. 여기가 윈터홈이라고요?" "그렇지. 예전에 봤을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군." "이거 성 규모만 큰 마을 하나, 아니 작은 도시가 통째로 들어갈 것 같은데요?" 윈터홈을 둘러싼 성벽 너머로 보이는 대략적인 규모만 그 정도였다. 내부에 있을 첨탑, 건물, 시설들을 다 합친다면 카렘의 말대로 정말로 작은 도시 하나가 그대로 들어갈 만한 규모였으며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콜던의 역사는 세오폰 왕국의 역대 통일 왕조의 역사보다도 더욱더 길었다. 하물며 먼 옛날 세상의 거의 모든 문명을 불태운 마왕의 군세를 돈좌시킨 일등 공신. 그 덕분에 용사가 마왕을 척살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은 에우로파 대륙의 모든 국가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어, 에우로파 전체를 불태운 마왕과 그 군단이요?" "그래. 정확히는 ‘거의’지. 북으로는 레체루스 대공국부터 남으로는 다른 대륙 사막국가 아도비스 신왕국에 이르기까지. 듣기로는 저 멀리 동방도 난리였다고 들었다만." "그 정도면 여긴 사실상 성지 아닌가요?" "그래. 따지자면 성지가 맞겠구나." "그런데 사람들이 오기를 꺼리는 척박한 뭐라고 하셨었죠?" 그런 곳이 여기라면 여기가 왜 촌동네 마굴인거야? 혼란스러워진 카렘은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뭐, 결국 사람의 인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지. 하다못해 척박하더라도 날씨가 좀 괜찮다면 모를까, 원주민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추운 동네에 살고 싶겠냐?" 그런 춥고 척박한 곳에 고용돼서 오신 현자 급 마법사는요? 카렘의 대답을 요구하는 무언의 시선에 캐서린은 시선을 창밖에 고정하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 전에 여기 이 땅을 통치하는 공작의 시종장이 옆에 있는데 이런 소리를 대놓고 해도 되나? "무얼 걱정할 것 없단다. 아타니타스 공의 말은 너무나도 정확하니까." 마차가 윈터홈의 정문을 통과할 때 창문을 열고 경비병의 인사를 받은 아이오나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로 다독였다. "그러면 아타니타스 공. 그대가 머물 탑은 어디인지는 알고는 있을 터. 나는 여기까지만 따라가도록 하지." "아이오나 장로." "그러면 저녁 연회 때 보도록 하지." 캐서린을 따라 카렘이 내리자 아이오나 장로는 그대로 병력을 이끌고 가버렸다. 그렇게 고용주와 함께 덩그러니 성 한복판에 내던져진 카렘은 곧바로 캐서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타니타스 님. 저녁 연회라니요?" "펠윈터 가문은 매일 저녁에 모두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전통이 있지. 다만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연회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윈터홈이 본성이자 본가라고 했으니까. 규모만 생각하면 연회네요." 카렘이 고개를 올려다보자 거인 앞의 양처럼 높은 탑과 각종 시설이 즐비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 다 합쳐도 족히 수천 명은 가볍게 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연회라는 단어에 기대감을 품은 카렘을 캐서린은 고개만 돌려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무얼 규모만 연회지 진짜로 연회같이 각종 진미가 쏟아지는 건 아니니 기대할 것은 없다. 그냥 좀 많이 큰 저녁 식사일 뿐이다. 공작, 아니 이제 주군이라 해야겠군. 주군은 소탈하셔서 말이지." "음, 솔직히 기대했는데 말이죠." “뭐 귀족 치고는 그렇다는 거다. 부어라 마셔라 연회에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충분히 나올 거다.” 하물며 누군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누구는 일하고 있어야 하니 정말로 모든 사람이 한낮 한시에 다 같이 저녁을 먹는 것도 아니었다. "뭐, 식사 때 나오는 요리들도 맛있기야 하다만은, 장담하건대 꼬마. 네 실력이 결코 그들에 비해서 꿀릴 것은 없다. 내가 장담하지." "에이, 그렇게 칭찬해주실 것까지야." "...뭐, 직접 경험해본다면 알겠지." 카렘의 전생 탓에 칭찬을 마다하는 독특한 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캐서린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렘은 당연히 그녀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