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찾아왔으면 대접해야 하는 법. 부족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은 형편인 드라이우드의 주민들은 이번에도 파견 온 토벌대를 대접하려 했으나, 조릭은 당황하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지금의 토벌대는 어디까지나 이전에 실종된 조사단의 연장. 접대는 실종된 이들이 받은 것으로 칠 테니 이번엔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겨울이 코앞이다 못해 더 빨리 찾아왔는데 비축한 식량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접대를 그만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 "무엇보다 토벌대의 인원도 인원이니. 접대는-" "자고로 접대의 관습을 버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입니다...!!!" "아니, 이보게. 이미 이전의 토벌대가 받은 거로 받은 셈 치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알프레드에게 잘 보이겠다던가, 영토분쟁을 드디어 끝내준 고마움이라던가 부차적인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이우드의 촌장과 주민들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자고로 손님이란 가뭄이 들고 태풍이 불어도 접대를 해야 하는 법 그렇게 옥신각신한 끝에 조릭은 마을에 비축된 식량 중 가장 많은 것의 일부를 받기로 하고 조릭은 이 어처구니없는 안 받으려는 손님과 주려는 주인의 신경전을 끝냈다. 토벌대가 현장에 토착한 다음 날 아침. "과연 먹을 수 있을지 의심되는 잼이네요." "음, 앤틀러방울 잼인가." "아시는 물건인가요?" 캐서린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잼이 담긴 용기를 쳐다봤다. "그래,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음, 확실히. 그런 생김새네요." 카렘은 메리가 버터나이프로 뒤적거릴 때마다 끈적한 꿀에 엉겨 움직이는 나선형으로 꼬인 솔방울 같은 생김새의 열매를 보았다. 듣기로는 앤틀러 숲의 근처에서는 흔한 겨울용 보존식이라고 했던가. 러시아의 솔방울 잼이 떠올랐다. 솔방울을 대체 어떻게 먹냐. 러시아 놈들은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것도 먹는 거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작은 먹을 게 없어서 먹었던 것이 맞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딱해진 것이 아닌, 아직 열매의 생김새를 한 어린 솔방울을 따서 잼으로 만들었겠지만. 아마 이것도 마찬가지. 이동하는 동안은 몰라도 마을에 도착한 이상, 카렘은 팔을 걷어붙이고 본업에 집중했다. 오늘 카렘이 준비한 아침은 팬케이크. 마을에서 구매한 달걀과 우유, 토벌대가 가져온 밀가루를 넣고 반죽을 만들어 버터를 듬뿍 바른 팬에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익히기를 반복해 각자의 접시에 두껍게 쌓아 올렸다. 그리고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팬케이크에 버터를 한 조각. 그리고 그 위로 시럽,이 아니라 앤틀러방울 잼을 듬뿍 끼얹어 발랐다. 카렘의 숟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메이플시럽과는 달리 꾸덕꾸덕한 앤틀러방울 잼이 퍼지며 나선형의 앤틀러방울이 대굴대굴 굴러다녔다. 분명 맛은 있어 보이는데. 엄청 이질적이었다. 호기심, 의문, 과연 이걸 먹을 수는? 아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잘 먹던데. "카렘 후배. 뭘 망설이는 겁니까?" "음." "냄새와 식감이 독특해서 그렇지. 그냥 꿀에 절였을 뿐입니다." "그렇네요." 어쨌거나 이것도 사람이 먹는 음식. 카렘은 두 눈을 딱 감고 큼지막한 앤틀러방울을 팬케이크 조각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 맛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설탕을 넣지 않은 팬케이크의 단맛을 책임지는 꿀. 바삭거리던 식감이 사라지자 느껴지는 부드러운 식감. 곱씹을수록 은행 씨앗처럼 쫀득거리며 고소한 맛과 함께 진하고 상쾌한 풀내음이 올라왔다. 생김새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던 캐서린도 의외로 취향에 맞는 듯 메리가 내미는 팬케이크에 얹어진 앤틀러방울 잼을 얌전히 먹었다. "음, 이 소나기가 내린 깊은 숲 냄새는 적응하기 힘든데." "계약자. 그러면서 잘도 먹고 있군요." "잠깐의 냄새만 지나가면 가을의 단풍 향이 몰려오니까.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다만 카렘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딱 그거 냄샌데. 취향을 겁나 타는 X의 눈, 소나무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우나를 들이마시는 것 같은 음료에 단풍향을 더해 달콤한 잼으로 만든 느낌. 언제 주저했냐는 듯이 카렘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생각나면 또 먹고 싶을 맛. 딱 그런 맛이었다. 다만 꿀에 하도 절여서 혀가 아릴 뿐. * * * 토벌대는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조릭의 지휘 아래에 작업에 착수했다. 그 말은, 캐서린도 바쁘게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음므으으으으-! 음므으으으으-! "아타니타스 님?" "뭐냐." "업무라고 하셨죠?" "그래. 흐, 빨리 끝내고 하던 배합이나 마저 해야지." "그런데 그 업무랑 양은 대체 무슨 상관인가요?" 그렇다. 양이었다. 네 다리를 모두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린 크고 작은 다양한 크기의 양. 털을 깎아내 피부가 훤히 드러나 추위에 오들오들떠는 양 여럿이 눕혀져 있었다. "무얼, 미끼다. 미끼." "미끼. 양이요?" "그래." 캐서린은 아침을 먹을 때랑 다르게 우중충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직접 양의 피부를 도화지 삼아 붓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득 카렘은 이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생각났다. 몇몇 지역에서 맹수를 사냥할 때, 맹수가 지나다니는 길에 양, 돼지, 소 등의 살아있는 미끼를 매어두고 맹수가 먹이를 노릴 때 사냥하는 방법이 있다던가. "다만 양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으니 추가로 가공할 필요가 있겠지." "이 피부에 그리는 그림이랑 글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양과 염소를 희생물로 쓰는 건 고전적인 수법이지. 필요한 상징은 풍요, 활기, 생명력. 이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캐서린은 원을 완성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붓을 움직였다. 파란 원을 중심으로 삼각형을 어긋나게 겹쳐 그리기를 반복. 그로 인해 생긴 공간마다 글자를 하나씩 적은 캐서린이 붓을 놓고는 메리에게서 작은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쓸데없이 재료 탓을 하는 것처럼 마법도 마찬가지. 실력이 부족하면 필요한 매개체와 재물, 시약은 늘어나는 법이며 전개하려는 마법이 자신의 전공과 재능이 그와 연관이 없을수록 더욱 늘어났다. 캐서린 그녀는 대마법사. 비록 지금의 작업이 전공이 아니라고 해도 실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필요한 재료는 딱 셋. 새끼 염소의 몸에 그려진, 마력을 침체시키고 변질시킨 희석한 닭 피. 봄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피어오른 새싹을 말린 가루. 그리고 모든 마법의 시작이자 연료. 생명력을 가공한 마력. 작은 주머니에서 말린 새싹 가루를 흩뿌린 캐서린은 손가락을 튕겼다. 마찰과 함께 녹색 불똥이 튀며 새끼 양의 몸에 떨어지자 파란색이던 마법진이 녹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색이 옅어져 은은한 연녹색으로 가라앉았다. "좋아. 끝이로군." "...이러고도 전공이 아니시라고요?" "연구는 즐겁지만 내 전공은 어디까지나 얼음 마법이니 말이다." "음,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느낌이네요." "오, 그거 좋은 말이로군. 자, 저 천으로 양을 덮어라." 카렘이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새끼 양을 가리자 새끼 양을 억누르던 메리가 양을 놓아줬다. "계약자. 담소가 즐거우시겠지만-" "응?" "시간이 좀 촉박하지 않으십니까?" "하." 캐서린은 억눌렀던 허탈한 심정을 드러냈다. 평면이면 몰라도, 피부가 드러났다고는 하나 양은 어디까지나 평면이 아닌 입체였다. 당연히 마법진을 그리는 난이도는 상승하며, 그동안 양이 잠자코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가만히 있을 리가. 바아아아아아악-!!! 당장 토벌에 필요한 것은 미끼 준비, 사용할 매개체를 준비해야 했다. 그게 끝나더라도 콜던에서부터 들고 온 일거리가 잔뜩 남아있었다. 철야는 확정. 언제나 그랬듯이. 캐서린의 눈이 시커멓게 죽었다. * * * "뭐,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에 맞출 수 있었군요."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한 양이 불쌍해." "이유가 없긴. 카렘 후배.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계약자가 마법은 사용하면 안 되는 작업이라 했으니. 얌전하게 할 방법은 이것이 제일 빠르죠." 카렘은 어제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벌어진 참혹한 광경을 떠올리고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의 그 광경은 과연 현대였다면 동물보호협회가 들고일어나 반발할 것이 분명한 참혹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안 그래도 미끼, 산제물로 바쳐지는 것도 억울할 텐데. 메리는 나중에 가서는 움직임이 거슬린다고 가차 없이 머리를 냄비로 후려쳐 기절시켰다. 까놓고 말해서 양이 불쌍했다. "메리" "음, 뭔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군요." "양이 불쌍해요." "카렘 후배. 후배가 매일같이 먹는 고기들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카렘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안불쌍하죠." "편파적입니다." "때려서 기절시키는 거랑 이미 도축이 끝난 식재료를 다루는 건 엄연히 다르다니까요." "동물도 엄연히 생물일 진데. 카렘 후배. 비정합니다." "그러면 엔틀러 숲에 틀어박힌 그 아이스웜이란 몬스터에게도 공감하시죠?" 카렘과 메리가 유치하게 주고받던 언어적 공방. 이른바 말다툼은 그렇게 서로 꼬투리를 붙잡아가며 끝없이 이어지다가 중단되었다. 쿵-! 지진, 아니 진동. 시끄럽던 야영지가 일순간 정적에 빠져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의 진동은 목표물인 아이스웜이 미끼를 물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야영지에 마련된 캐서린의 천막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렘과 메리도 당연히 그 진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토벌이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네요." "카렘 후배. 그 말은 종자로서 꽝이로군요." "네?" 카렘의 물음에 메리는 눈을 감았다. "종자는 주인이 먼저 계약을 어기지 않는 이상 주인을 믿어야 하는 법입니다." “음, 그러면 제가 할 일은 하나뿐이군요.” 격렬한 실외활동을 하고 나면 당연히 배가 고파지는 법. 하물며 겨울의 실외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열량을 불태우니 묵직한 음식이 당길 것이 분명했다. “재료 손질 좀 도와주실래요?” “카-” 쿵-! 진동이 재차 울렸다. 그리고 이번 진동은 좀 더 강했는지, 천막의 구석에 놓여있던 짐가방이 쓰러져 입구가 열려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내용물들은 모두 작은 자루에 담겨 소분되어 단단히 묶여 있었기에 바깥으로 쏟아진 것은 없었다. 다만... "어, 메리?" "뭡니까. 카렘 후배." "저거, 아타니타스님이 준비한 마법 매개체들이죠?" "하아..." 메리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거기에 담긴 뜻을 파악한 카렘은 무심코 이마를 탁 쳤다. 아이스웜은 아이스랜드에 적응한 데스웜. 얼음 마법에 내성을 가졌다. 혹시 몰라 캐서린은 다른 강력한 마법을 전개하기 위한 재료를 준비했는데, 그게 왜 여기에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캐서린도 사람이니까 깜빡했을 뿐. 떨어지는 접시를 잡아채는 속도로 가방을 낚아챈 메리는 돌풍을 일으키며 천막 밖으로 달렸다. 목적지야 뻔했다. ***자료첨부*** -앤틀러방울 잼(솔방울 잼)을 얹은 팬케이크- 챗GPT가 그려준 그림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