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렘은 망설임 없이 도마를 팬 위에 엎었다. 척! -치이이이이이이이이!!! 은은한 연기가 피어오르던 팬에 닿자 차돌박이 더미는 새하얀 김을 맹렬하게 뿜어냈다. 팬의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쌓인 차돌박이는 새하얀 김 사이로 빠르게 줄어들며 기름을 뱉어내고 있는데... 보르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흠...팬을 맡긴 사람으로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말이오." "뭔가 불편하신 부분이 있으신지?" "정녕 이렇게 굽는 것이 맞소?" 과한 욕심은 던전에서 죽음을 불러오는 법. 차돌박이의 산은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산 안에서 겉돌아 쪄지며 육즙을 뱉어내는 것이 보르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였다. "만일 내 신참 부하 중 한 놈이 이랬다면 주방에서 바로 내쫓았을 것이오." "그러면 고참이신 분이 그러셨다면?" "냄비로 대가리를 후린 다음 이유를 물었을 것인데." "이것도 이유가 있어요." "흠?" 카렘은 보르고가 왜 그러는지는 알았다. 요리에서 수분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너무 없다면 스테이크는 푸석푸석, 채소는 질겅질겅. 그렇다고 덜 날리면 스테이크는 쪄지고 채소는 녹아 내린다. 모든 요리사가 처음부터 요리사는 아닌 법. 카렘 또한 전생에 여러 경험이 있었다. 소고기를 많이 먹겠다고 잔뜩 올렸다가 소고기 수육이라는 괴악한 물건을 만들어버렸다. 불과 양 조절에 실패해 스테이크는 고무 덩어리가 되기 일수. 하지만 차돌박이는 다르다. "흐으음. 아, 그렇군. 얇아서-" 보르고의 눈썹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글지글지글지글- 수분이 나와 바글거리던 육즙은 어느새 날아갔다. 흥건한 기름에 잠긴 차돌박이가 자글거리기 시작하자 카렘은 곧바로 이를 뒤적거려 흩어놓기 시작했다. 하나로 뭉친 덕분에 아직 익지 않고 있던 차돌박이는 낱낱이 풀어진 상태로 기름에 잠겨 순식간에 구워지고 튀겨졌다. 그러는 동안 팬의 밑바닥. 차돌박이의 산 가장 밑의 지층을 구성하던 차돌박이는 수분이 완전히 날아가 쪼그라들다 못해 오그라들기 시작. 더 늦기 전에 카렘은 재빨리 차돌박이를 건졌다. "하." 보르고는 감탄했다. 다 구워진 차돌박이 개개는 전보다 작았지만, 접시 위에 쌓인 차돌박이의 산은 이전보다 더욱 거대했다. 산을 구성하는 각기 다른 형태의 차돌박이. 가장 밑에 깔려있었던 것은 무게에 눌리듯이 튀겨져 수분이 완전히 날아가 오그라들다 못해 흑갈색으로 구워져 가느다란 지방의 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완전히 대비되는 고기 또한 있었다. 가장 위에 있던 탓에 뜨거운 기름에 가장 늦게 노출된 차돌박이는 튀겨졌으나, 지방은 새하얬고 고기 또한 밝은 회색빛이 돌았다. 거기에 중간 사이에 껴 고기의 감칠맛은 감칠맛대로, 튀겨지기는 또 적당히 튀겨져 처음 먹었을 때의 모습을 지닌 차돌박이가 나머지.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카렘은 보르고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보르고는 이를 구이용 포크로 찍으려다 멈칫. 곧바로 조리용 스푼으로 교체. 차돌박이 산의 1/3을 쓸어 입안에 쏟아부었다. 그제야 카렘도 차돌박이의 산을 입안이 넘치도록 쓸어 담았다. "그래. 고기는 한가득 물어뜯어야지...!" 바자작! 바삭! 아그작! 가장 먼저 입안에 들어가 압력을 받은 바짝 튀겨진 차돌박이가 부서지면서 육즙, 기름과 섞여 차돌박이 특유의 고소함을 한층 더 강조했다. 거기에 바싹 튀겨진 차돌박이의 지방. 씹을 때마다 튀겨지면서 실낱같이 남아있던 지방이 이빨을 울리며 기름을 뱉어냈다. 그 뒤를 한없이 부드러운, 그리고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차돌박이가 바짝 추격. 얇게 저민 소고기 특유의 부드러움. 브리스킷 특유의 쫄깃함. 베이컨의 바삭함.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리한 세 종류의 고기에서나 느껴질 법한 풍미가 입안을 휘몰아쳤다. "흐으으으음. 맙소사." 보르고가 콧수염이 흩날리도록 비음을 흘리며 감탄. 연신 비음을 흩날리며 천천히 씹고 있을 때, 칼국수처럼 자른 스파게티를 삶던 요리사가 소리쳤다. "대장! 다들 일하는데 혼자서만 먹고 있기요!?" "이런 미친! 대장이 귀빈이랑 둘이서만 고기 구워 먹는다!" "너희 점심에 구워 먹을 고기를 테이스팅하고 있었던 거다. 봐라. 이게 끼니가 되겠냐? 시끄럽고, 준비는 다 끝났냐!?" 그 소리에 된장찌개를 끓이던 요리사가 찌개에 붉은 마녀의 손가락 가루를 거침없이 투입하며 소리쳤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슬슬 준비 됐으니까 너흰 그만 놀고 줄 서!" "접시는 필요할깝쇼?" "위에 그냥 얹을 테니까 철판, 아니 제빵 트레이 가져와!" 항의를 묵살한 보르고가 넓은 제빵 트레이를 받아 화로에 올리는 동안 카렘은 된장찌개가 담긴 들통 안쪽을 들여다봤다. 주황색 거품이 끓어오르는 짙은 진황색 국물 속에서 고춧가루와 채소가 차돌박이와 함께 한가득 헤엄치고 있었다. '거 참 맛있겠네.' 카렘은 솔직하게 말해서 기대됐다. 첫 번째보다 더욱더. 탕, 국은 대용량으로 조리할수록 맛있으며 이는 전생의 훈련소에서 먹었던 삼계탕이 증명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대량의 재료를 넣고 푹 우리면 정상적으로 간을 했다는 전제하에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것이 정상. 요리사가 옆에 놓여있던 초벌로 익힌 면발을 투입. 수분을 빼앗기고, 면발에 묻은 전분이 풀어지기 시작한 찌개는 찰랑거리던 것이 무색하도록 더더욱 걸쭉하게 변해 면발이 건더기와 함께 헤엄쳤다. 스튜보다도 짙은 농도의 된장찌개 국수. 된장국수. 보기만 해도 짠 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쪽도 슬슬 줄 서는 게 어떻습니까?" "오, 아. 와. 언제 줄을 저렇게." 족히 수십 명은 되는 요리사들이 큼지막한 그릇을 하나씩 들고 오는 모습에 카렘은 조금 망설이다가 근처의 아무 그릇이나 하나 들고 어느샌가 그의 옆에 만들어진 줄의 맨 뒤로 가서 섰다. 사람은 많았지만, 배식 속도가 빨라 제법 뒤에 서 있던 카렘은 금방 배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릇에 한가득 담긴 된장국수를 들고 앞사람을 따라갔다. 제빵 트레이 앞에서 보르고는 차돌박이를 산처럼 쌓아놓고 굽고 있었다. 손질이 끝나 준비된 차돌박이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수십 인분은 가뿐하게 넘을 것 같은 얇은 고기의 산맥. 어마어마한 양인데도 차돌박이는 요리사 몇이 지나가면 바닥을 보여 보르고는 불 앞에서 관심을 돌릴 틈이 없어 보였다. "오, 오셨군. 그래서, 스파게티를 넣은 그 콩 가름 스튜는 드셔보셨소?" "아뇨. 그 전에 준비 다 됐다고 휙휙 줄을 서는 바람에-" 척. 그릇 위로 차돌박이의 산이 얹어졌다. 찌개와 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 앞사람보다 더 많은 거 같은데." "나이도 어리신데 점심을 가볍게 먹는다고 해도 이만큼은 드셔야 배가 찰 것 아니오?"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 "괜찮소. 괜찮아. 면은 금방 꺼지니까." 그리고 카렘은 정신을 차려보니 줄에서 내몰려 있었다. 한 손에는 포크를, 다른 손에는 (찌개와 면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차돌박이가 쌓인) 된장 국수. 카렘은 테이블에 그릇을 놓고 차돌박이의 산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에는 짜 보였는데-" 지금은 느끼해 보였다. 하지만,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애초에 차돌박이는 뭘 위해서 먹을까? 바로 특유의 감칠맛과 섞인 기름기에서 비롯된 풍미. 밑에 있는 된장국수에 깔릴 기름기가 걱정됐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카렘은 수북하게 쌓인 차돌박이를 덮밥을 먹는 것처럼 포크로 입안에 쓸어 담았다. 전생에도 생각만 했을 뿐. 실천한 적은 한 번도 없는 사치스러운 행위. 입안 가득 차돌박이를 넣었는데도 차돌박이가 남았다는 사치스럽기 없는 현실과 소고기를 거침없이 집어 먹는다는 배덕감에 카렘은 안팍으로 만족감이 폭발했다. 위쪽에서는 간을 조금 했는지 소의 진한 육향을 은은한 후추의 향기가 강조했으며, 혀와 혀 뿌리는 차돌박이를 씹을 때마다 폭발하는 육즙과 기름에 잠겼다. 육즙과 기름의 홍수. 느끼하다고? 오히려 이러한 느끼함은 바라던 바였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서야 카렘은 드디어 된장국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과연, 처음 먹었을 땐 제법 실망스러웠는데." 지금은 또 어떠려나. msg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대됐다. 최소 수십 인분 이상의 재료에서 나왔을 맛. 면발을 넣어 한층 더 진해진 국물. msg가 없더라도 무시 못 할 조합은 아니다. 우선 국물부터. 카렘은 입가에 그릇을 가져가 기울였다. 더 뜨겁고 진한 무거운 국물이 입안으로 밀고 들어오며 코팅한 육즙과 기름을 말끔하게 밀어냈다. 전에 먹었을 때보다 훨씬 나았다. 역시 대용량이라고 생각했을 때, 뒤이어서 느껴지는 차돌박이의 느끼한 기름. 산더미처럼 쌓인 차돌박이의 기름은 역시나 찌개에도 가라앉은 것이 분명했지만, 느끼함을 채 다 느끼기도 전에 국물에서 느껴지는 매콤함이 이를 가렸다. 하지만, 국물에도 차돌박이는 들어가 있다. 아직은 차돌박이가 국물보다 조금 더 우세했다. 그러자 카렘의 손은 자연스럽게 면으로 움직였다. 포크로 면발을 한 번 휘저어, 입안으로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노란색을 띠는 두꺼운 면발이 한가득 들어오자 탄수화물만 충족시킬 수 있는 특유의 깊은 만족감을 카렘은 느꼈다. 역시 짜고 매콤하고, 느끼한 기름. 무엇보다 소고기는 역시 탄수화물. 왜 사람이 그렇게 밥, 빵, 쌀에 목매는지 절절하게 느낀 카렘은 입과 목으로 면발의 감촉을 느꼈다. 그 뒤로 면발에 붙어 끌려온 된장 육수의 끝 맛. "...뭔가 아쉬운데." 이렇게 했는 데도 뭔가 부족하다니. 카렘은 처음보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실망감을 느꼈다. 아니, 오히려 맛 자체는 전생에 수 없이 먹어본 수 많은 된장찌게 중 상위권에 해당되는 맛이지만, 마지막 혀끝에서 느껴지는 끝 맛이 부족했다. 구체적으로는 2%의 감칠맛. ‘다시마 말고 다른 육수를 써볼 걸 그랬나? 사골이나, 고기 육수나.’ "뭐, 그래도 맛은 있는데." "엇차. 만족할만한 맛이오? 왠지 불만족스러워 보이는데." "기대했던 것처럼 나왔고, 맛도 있는데. 좀 불만족이랄까요." "아. 그 마음 나도 잘 알지." 자기 몫의 된장국수를 들고 온 보르고는 차돌박이를 한 움큼 입안에 쓸어 담고 씹었다. "흠. 원래 요리라는 건 수 많은 개선을 통해 정답에 가까운 레시피를 완성하는 것이니 조급해할 것 없소." "하긴, 다 끝난 레시피도 다시 뜯어 고치죠." "무엇보다 이 콩 가름 스튜 자체는 이번에 처음 만들어보는 것 아니오? 처음인데 이 정도 완성도라면 훌륭한 편이지. 돼지나 소뼈를 우린 육수 베이스가 더 개인적으로 좋지 않을지-" “저랑 생각이 비슷하네요. 뭔가 부족해.”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면 된다고 일축하며 카렘을 위로한 보르고는 국수 위의 차돌박이를 전부 먹더니 국물에 면발까지 한 번에 들이켰다. "아니, 좀 천천히 먹죠?" "우리한테 스파게티는 그렇게 먹으면 영 감질나서. 게다가 어차피 점심이니 가볍게 끼니만 때우는 셈이니 나중에 묵직하게 먹으면 되는 일이오." "음." 하긴 면이 원래 그런 물건이긴 한데. 라고 생각하며 카렘은 자기 그릇을 내려다봤다. 면발과 건더기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국물만 남아있었다. 맛은 있었지만, 다시 만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절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같이 먹을 흰 쌀밥을 어떻게 구하기 전까지는. '뭐, 귀리밥이 있긴 한...미친 소리.' 스스로 일축한 카렘은 남은 국물을 마저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에 그릇 세 개를 얹었다. 그걸 보고 입맛을 다시던 보르고가 물었다. "한 그릇으로는 부족하셨소? 하긴 면발이니까 그럴 법도 하지." "아뇨. 저거 동나기 전에 맛보여 드릴 분들이 계셔서요." "아, 그쪽이랑 함께 온 일행들?" "...아이스랜드라면 어디에나 계신 분들이긴 하죠." 아무렴 메주를 띄우는데 공로가 가장 크신 분은 따로 있다. 카렘은 경건한 마음으로 쟁반을 들고 다시 줄을 섰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소리를 앞에서 들었다. "아무래도 식감이 부족한 거 같은데. 흠...그래! 치즈를 넣으면 좋겠군." "시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것 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자료 첨부*** -차돌 된장국수- -차돌박이(한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