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캐서린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일말의 망설임은 그녀가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부엌 전체를 감싸는 달콤한 꿀의 진한 향기. 가을에 핀 수많은 야생화와 과수를 머금은 뜨거운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를 퍼트린 장본인은 보나 마나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장작불의 앞에 쭈그려 앉아 얇은 꼬챙이를 들고서 오븐 속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냄새의 발원지에 가까이 왔는데 탄내가 하나도 나지 않다는 것은 카렘이 기어코 성공시켰다는 것. 캐서린은 흥미를 가득 담은 얼굴로 오븐에 다가갔다. "그래, 이게 네가 보인다는 그 디저트의 정체냐?" "와아아아악! 아, 아타니타스 님!?" "그래, 혹시나 디저트를 만들겠답시고 냅다 꿀을 들이부은 건 아닌가 보군." "깜빡이-하더라도 제가 그럴 일은 없는데요." 카렘은 재빨리 말을 고쳐서 대답했다. 일순간 영문모를 단어가 튀어나온 걸 모를 캐서린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유를 뺀 재료들은 전부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만들 수 있는 걸 만들었습니다." "우유야 지금 시기면 모조리 치즈로 만드느라 시장에 없을 텐데 당연하지. 아니, 그 이전에 우유 없이 만들었다고?" "예에. 카스테라라고 합니다." "카스텔란(Castellan). 카스텔란이라." 캐서린은 오븐에 들어간 것은 케이크의 일종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케이크를 우유 없이 만든다고? 어떻게? 그러거나 말거나 카렘은 오븐 안에 들어간 빵틀의 내용물을 쿡쿡 찔렀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촉을 느끼던 그는 지금이라는 듯 꼬치를 치워버리고는 두꺼운 오븐 장갑을 착용. 손에 열이 전달되기 전에 얼른 오븐 안에서 다섯 개의 빵틀을 모조리 꺼냈다. 카렘은 빵틀을 테이블 위에 몇 차례 탕탕 소리가 나게 테이블에 내려치고는 그대로 도마 위에 엎었다. 위아래로 흔들 필요도 없었다. 버터의 기름기로 접촉을 피한 카스테라가 충격으로 빵틀과 스스로를 분리. 제 무게에 못 이겨 미끄러지듯이 떨어진 카스테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질끈 캐서린의 한순간에 드러난 그 모습에 무심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가 자랑하는 분석능력이 제 능력을 발휘한 탓에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지 오래였다. 오븐의 열기에 직접 닿은 겉은 짙은 갈색으로 그을렸지만, 오히려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빵틀에서 나온 탓인지 달콤한 냄새 또한 더욱 진하게 피어올랐다. 카렘은 캐서린의 추태를 외면하고는 칼을 들어 카스테라를 익숙한 손가락 한 마디 두께로 잘랐다. 자칫 으스러져 망가트릴 수도 있으니 그의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지나 내면의 평화를 되찾은 캐서린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우중충한 하늘의 틈새로 햇빛이 창문을 통해 나무 접시에 담긴 카스테라의 단면에 내리꽂혔다. 오랜 세월 여태 수많은 나라와 멸망한 나라의 음식을 접한 캐서린에게조차 충격이었다. 신선한 오리알보다 더욱 짙은 노란색 단면의 원인은 꿀과 스노우러너알. 주방의 한쪽에 놓인 스노우러너알의 껍데기와 그 내용물, 그리고 빈 꿀단지로 알 수 있었다. 연한 주황색 빛깔의 단면이 햇빛을 받자 한순간이지만 황금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에우로파 대륙에서 최초로 선보여지는 카스테라를 보며 소리 없이 경악했다. 어떻게든 체통을 지키려고 했지만, 몸은 솔직한 듯 신체 나이에 걸맞게 캐서린의 몸은 무심코 팔을 움직여 손가락을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여자가 디저트를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점심때의 디저트는 좀 늦었고, 저녁 먹기 전에 간식이라도 드시렵니까?" "흠, 그, 그래. 대접을 거부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그 카스텔란(Castellan)이라는 것을 주거라." 카렘은 곧바로 밝은 나무 접시에 카스테라 한 조각을 담아 작게 잘라 캐서린을 향해서 내밀었다. 포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캐서린의 눈은 더욱 세세하게 빛을 받아 황금처럼 빛나는 작은 조각을 분석했다. 케이크든 빵이든 발효하는 과정이 있기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치즈에 뚫린 구멍 또한 마찬가지. 그렇지만 지금 그녀의 입에 다가오는 카스테라 조각은 그 어떤 빵과 케이크와도 달랐다. 미세한 구조가 성벽처럼 단단히 서로를 옭아매어 구멍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했다. 파운드 케이크와 비슷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부드럽다니. 조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체통을 지키려던 캐서린은 더는 참지 못하고 재빨리 카스테라 조각을 입에 담았다. 포크로 자를 때의 느낌을 보면 분명 어마어마하게 부드러울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부드러울 줄이야! 커스터드를 활용한 여타 디저트와는 다른 방향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커스터드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씹을 때마다 서로를 단단하지만 약하게 지탱하는 구멍과 성벽이 무너지면서 녹아내려 혀 전체를 감싸는 감촉이라니. 형체를 잃을수록 카스테라가 품고 있던 진한 꿀의 단맛이 모습을 드러냈다. 캐서린은 왜 이 물건의 이름이 성주(Castellan)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물건은 확실히 최소 성주는 돼야 먹을법한 물건. 아니지 미식에 관심이 많은 귀족이라면 칼을 들고 달려들 정도의 물건이었다. 그때, 문득 캐서린의 뇌리에 의문점이 하나 스쳤다. "달, 크흠콤한 건 그렇다고 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군." "예. 그렇게 만드느라 진땀을 좀 흘렸죠." "대체 이 부드러운 것은 어떻게 만들었냐?"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는 다양한 음식을 섭렵했지만, 그녀의 경험과 지식으로도 지금 눈앞의 카스테라는 놀라웠다. 크림을 사용했다기에는 특유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커스터드라기엔 맛도 감촉도 틀린데? 카렘은 그녀의 의문에 그저 말없이 간단하게 머랭을 덜어놓은 그릇을 내밀었다. "이...구름같은 것은....?" "머랭입니다."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그릇 안에 들어있는 머랭은 얼핏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화창한 하늘에 떠다니는 옅은 주황색 구름을 한 움큼 퍼다가 담아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야 옅은 주황빛이 감도는 것의 원인은 꿀 구름 같은 모양새는 흰자를 거품을 쳐서 그러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의 긴 생에 저러한 구름 같은 것은 처음이었다. "꼬마. 설마 해서 물어는 본다만." "예?" "마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겠지?" "...제가 마법을 사용했으면 지금 여기에 있겠어요?" 그렇겠지-. 캐서린은 무심코 이마를 탁하고 쳤다. 그가 마법을 사용했거나, 재능이 있었거나, 정체를 숨긴 마법사였다면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그녀 이전에 고든이 진작에 눈치채고 카렘의 정체를 추궁했을 것이다. 그 정도나 되는 용병이라면 생존본능으로 파악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대체 이것은-" "저기 있는 정체 모를 알을 사용하기는 했는데-" "응? 아, 스노우러너로군." "스노우러너요? 아, 그 꼬치구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어조에 캐서린은 반대로 의문을 품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했다. 한평생 촌구석의 농노로 살아왔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무엇보다 스노우러너는 아이스랜드에서만 사는 토착종. 친척인 샌드, 포레스트러너도 있기야 하지만 그마저도 에우로파 대륙의 몇몇 지역에서만 서식했다. "그래. 여관에서 나온 꼬치구이의 고기도 스노우러너의 고기지. 덩치가 말 만하고 다리 길이만 꼬마 네 키의 두 배쯤 되는 거대한 새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이스랜드가 지척이니 겨울이 되면 볼 수도 있겠군." "그런 조류가 세오폰 왕국에 있었다고요?" "정확히는 아이스랜드에만 있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가던가." 캐서린에 의해 이름이 성주(Castellan)가 되어버린 카스테라를 먹이는 동안 카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최소 20인분은 될 성인 머리만 한 알을 낳는 말만 한 덩치의 이족보행 조류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는 타조라던가. "그나저나, 이 주황 구름을 스노우러너의 알로 만들었다는 말이냐?" "음. 달걀은 익으면 단단해지고, 익을 때 거품이 올라오잖아요? 그래서 거품을 강제로 일으켜서 굳히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솔직하게 말해서 여기서 더더욱 따지고 들어온다면 카렘은 뭐라 따로 할 말이 없었다. 그야 카렘은 기억하는 레시피를 응용하는 것이 전부이지 식품 조리학과 그와 연관된 응용과학을 연구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난 수포자라고! 그리고 카렘에게는 다행히도 캐서린에겐 충분한 설명인 듯했다. "허어, 고작 그것들만으로 이런 거품을 만들 생각을. 상상력이 기발하구나." "어어쨌든. 우유가 있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만." "좋아. 내 지금 당장 나가서-" "일단은 이렇게 해서 조금 더 부드럽게 먹어보시죠." 캐서린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방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카렘이 국자로 그릇 안에 담긴 머랭을 푹 쑤셔 넣기 전까지. "아니, 설마 저걸 그대로 얹어서 먹는다는-" "이렇게해서 한 번 더 먹어보시죠." 기다란 구리 주걱에 노을을 담은 것 같은 주홍빛 구름-머랭이 담겼다. 카렘은 망설임 없이 머랭을 그대로 한 귀퉁이가 잘린 카스테라에 푹-그대로 문질러 두껍게 펴 발랐다. 황금빛 스펀지 같은 직육면체의 표면을 노을을 담은 머랭이 내려앉아 눈이 내린 평원처럼 가려버렸다. 비록 생 흰자로 만들었다고는 하나, 캐서린은 거북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야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본다면 누가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에우로파 대륙에도 귀족들의 수 만큼이나 수많은 디저트가 있긴 했다. 그야 당연하지. 귀족이 자기 가문의 위세를 무력적인 요소 없이 가장 간단하게 뽐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파티를 열어서 귀중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캐서린은 그녀의 마법생을 걸고 장담할 수 있었다. 분명히 이건 맛있을 거라고. 탁자를 짚고 일어서려던 캐서린이 그대로 팔을 풀고 자리에 편하게 앉자 카렘이 곧바로 노을빛 머랭을 얹은 카스텔란을 캐서린의 입으로 가져갔다. 안 그래도 미세하게 뚫린 구멍 탓에 충격적일 정도로 부드러웠건만. 아주 미세하게 뚫린 구멍이란 구멍을 모조리 파고들어 간 달콤하고 부드러운 머랭. 달콤함에 달콤함이 겹쳤건만 거슬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하나가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체화했다. 카스테라를 씹으면서 바스러진 조각들 사이에 머랭이 부드럽게 엉겨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이물감을 씻어버리듯이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캐서린은 불노의 경지에 도달한 만큼 정상적인 범주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겨봤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건 농촌 마을 수확제의 모닥불에서 빙글빙글 춤추는 것부터 왕실 궁정의 파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즐기고 나니 결국 남는 것은 제일 익숙한 것. 너무 많은 경험을 겪은 덕분에 자극에 초연해졌다고나 할까. 까놓고 말해서 캐서린은 현자타임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캐서린은 정말 오랜만에 무언가를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캐서린은 진지하게 카렘에게 제안, 아니 선포했다. "너, 내 전속 요리사가 되어라." "...예?" 카스테라를 먹다 말고 난데없이 그 소리를 들은 카렘의 머리는 적어도 몇 초간 정지했다. ***자료 첨부*** -카스테라(카스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