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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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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안으로 들어서며 내게 가볍게 목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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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밝아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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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혀. 방금까지 싸우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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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웠다고?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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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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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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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손가락에 낀 기묘한 반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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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반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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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탑에서 주웠죠. 별로 맘에 들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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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더 캐묻지 않고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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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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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가 품에서 태블릿을 꺼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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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니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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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꾸 존대 쓰지 말라니깐. 그리고 대표님은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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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십니까? 이제 대표님이 맞지 않으십니까. 원스타 매니지먼트의 김한별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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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풉, 작명센스 진짜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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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하고 좋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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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씩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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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는 지금 일부러 나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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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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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마음대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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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대표님. 그럼 지난번 맡겨주신 오리할콘 판매 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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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의 표정이 다시 진지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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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표와 그래프가 가득한 태블릿 화면을 내게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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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전부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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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그렇게 이걸 좋아한다고요? 그럼 그냥 이거 중국에 한 번에 싹 넘겨버리면 안 되나? 빨리 처리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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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복잡한 건 딱 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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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로커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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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중국 길드와는 절대 직접 거래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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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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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형 길드들은 단순한 헌터 집단이 아닙니다. 국가의 비호를 받는 거대한 기업들이자 약탈자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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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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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가진 물량은 그들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과 직접 거래를 시도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을 겁니다. 그저 먹잇감으로 볼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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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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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은 결국엔 우리를 통째로 삼키려 들 겁니다. 조금 비합법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말이죠…. 우리와 그들은 체급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한번 물리면 그대로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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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게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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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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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아니, 더 높은 위치에서 거래하려면. 그래서 그들이 감히 우릴 삼킬 엄두도 못 내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전력이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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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중국에 S급이 4명이라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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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나 하나뿐이니까 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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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4명분의 전력이라. 나는 그 문장을 머리에 새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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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브로커가 큭큭,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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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 모습이 어린애가 공상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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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어요! 난 진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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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합니다…. 대표님의 포부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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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됐어요. 하여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직접 거래가 불가능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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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법을 다 찾아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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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브로커가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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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대어를 낚기보다는, 여러 개의 낚싯대를 드리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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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태블릿 화면을 넘겨 표를 보여주었다. 표에는 여러 길드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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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급 길드에 개별적으로 접촉할 겁니다. 물량을 몇 번 나누어서, 시간차를 두고 판매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시장에 풀리는 전체 물량의 규모를 숨길 수도 있고, 길드들 간의 경쟁을 유도해서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번에 모든 물량이 풀려서 가격이 폭락하는 것도 막을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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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계획에 감탄했다. 역시 전문가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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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잘 처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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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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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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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거래, 꼭 돈으로만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현물, 즉 아이템으로 받는 것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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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글쎄, 나한테 필요한 건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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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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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레전더리 등급의 장비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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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아이템이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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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평범한 물건이 아닙니다. 대표님께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후보를 미리 추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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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태블릿 화면을 다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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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는 세 개의 아이템 정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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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맞춤형 아티팩트 제작권입니다. 국내 최고의 장인에게 원하는 기능과 형태의 아이템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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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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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난 마법사고, 장비 아이템이 더 필요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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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팡이보다 나에게 더 맞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고? 그럴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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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성장의 룬입니다. 스킬의 등급을 한 단계 올려주는 희귀한 아이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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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건 나쁘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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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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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포텐이 넘치는 스킬인 통찰안이나 광물 포식을 레인보우로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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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인보우 스킬이 3개가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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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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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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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가 마지막 항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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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는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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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언가의 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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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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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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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에 감겨 있던 샌드웜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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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진동하는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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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이 반드시 저 물건을 택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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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깜짝 놀라 내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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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무언가를 원한다고? 도대체 저 돌멩이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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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늦잠을 자다 현관 초인종 소리에 잠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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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폰 화면에는 배달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헌터 전용 로켓 배송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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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엄청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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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얼거리며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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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상자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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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는 보기보다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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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실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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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충격 흡수재에 둘러싸인 계란처럼 생긴 돌덩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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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의 이름은 정령의 정수. 속성은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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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하니 매물이 극히 희귀해, 돈이 많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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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뻗어 그 돌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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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이걸 선택하라고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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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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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 같은 것은 동봉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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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손가락에 감겨 있던 샌드웜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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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그것이 격을 올려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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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첫 번째 피조물, 혹은 자신에게 그것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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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으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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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이 정도 크기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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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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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방 한쪽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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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 이리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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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화재사건 이후 초호기가 이사한 새로운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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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통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초호기가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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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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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을 번쩍 들어 테이블 위에 앉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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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에 누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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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돌멩이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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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샌드웜은 더욱 몸을 꿈틀거리며 자신을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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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자신이 이것을 섭취할 경우, 당신에게 더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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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자신의 잠재력이 모래 인형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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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샌드웜의 주장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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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초호기와 샌드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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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호기에게 정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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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네가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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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결정에 강한 의문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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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이라는 게 있거든. 네가 후배니까 참아. 선배한테 먼저 양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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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샌드웜은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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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녀석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다시 조용히 반지처럼 몸을 웅크리는 샌드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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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초호기는 내가 내민 정수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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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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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뇸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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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입으로 돌멩이를 오물거리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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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가 순식간에 녀석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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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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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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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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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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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그 형체가 희미하게 사라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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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긴장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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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몇 초간 이어지다 이내 서서히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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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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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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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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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변화가 일어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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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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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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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도, 형태도, 심지어 머리에 씌워준 안전모까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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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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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생각과 의도가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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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나와 녀석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한 겹 허물어진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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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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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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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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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한 아이템을 썼는데 고작 이 정도 변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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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샌드웜에게 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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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망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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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에 있던 샌드웜이 갑자기 휙 하고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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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채찍처럼 휘둘러져 초호기의 몸통을 정확히 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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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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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초호기의 몸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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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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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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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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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미쳤나? 당장 갈기갈기 찢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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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온몸을 집어삼켰다. 나는 이성을 잃고 샌드웜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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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손이 닿기도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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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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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갈라졌던 초호기의 두 단면에서 모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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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향해 이끌리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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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나갔던 몸이 순식간에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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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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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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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전한 몸으로 돌아온 초호기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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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팔다리를 움직여보고, 배를 만져보며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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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바닥에 있던 샌드웜의 의지가 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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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피조물이 이제 기초적인 정령이 되어 죽음에 대한 제한적인 저항력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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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지금의 그릇으로는 열 번이 최대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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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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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엄청난 능력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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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당신의 피조물이 더 강해지고 싶다면, 같은 종류의 정수를 더 먹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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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더 상위의 정수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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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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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웜은 이번에는 연공서열을 존중하여 양보했으니, 다음 정수는 반드시 자신이 섭취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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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손가락에 반지처럼 휘감긴 샌드웜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뒤 피식,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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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다음 건 네 거야.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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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순히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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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기묘한 반지가 제법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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