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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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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특하다'는 감정이 뜻하는 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만약 정의가 ‘착하고 대견하며 칭찬받을 만하다'라면 정확히 부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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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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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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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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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러나 당연히 실제로 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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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유월은 무림맹주라는 자신의 잃어버렸던 꿈을, 협회라는 새로운 선택지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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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강한 내담자가 보일 수 있는 최상의 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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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의원인 내가 협회 소속이라 단순히 따라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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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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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게 맑은 눈을 하고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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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협회의 관계자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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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설유월이 협회에 입단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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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제출? 면접?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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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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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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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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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협회장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녀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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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는 기본적으로 S급 헌터라는 인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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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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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이와 게이트의 발생 빈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때는 협회에도 S급 헌터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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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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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들의 위협이 일상이 되고, S급 헌터 한 명의 가치가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게 되면서 그들의 수요는 증가했고,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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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그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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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기업을 뒷배로 둔 10대 길드들이 제시하는 천문학적인 계약금과 특혜들을, 국가 기관인 협회가 맞춰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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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협회 소속의 S급 헌터들은 모두 길드로 떠나갔고, 협회는 그 공백을 다수의 A급 헌터를 고용하여 양으로 메우는 선택지를 골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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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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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을 못 맞춰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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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길드들이 제시하는 다른 혜택들이… 이미 제공 가능한 복지의 범위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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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아부터 길드의 지분을 제시받았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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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검증된 인재인 설유월이 협회로 간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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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받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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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있는 사실을, 그녀가 이해하기 쉽게 그대로 말해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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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협회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만 하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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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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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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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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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마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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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내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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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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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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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가 S급 헌터를 소속으로 두었던 게 언제인지도 까마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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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해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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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뭘 할지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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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 가지 확실하다. 협회는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설유월이 원하는 무엇이든 하게 해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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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입단 과정에서, 협회와 유월 씨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정하게 될 겁니다. 유월 씨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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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부드럽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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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과정에는 저도 함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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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객관적인 관점으로 그녀의 편에 서서, 부당한 계약을 맺지 않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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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속에, 설유월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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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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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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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어머님께도 이 이야기를 전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아직 연락을 드릴 수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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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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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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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당연히, 자신의 딸인 설유월이 창천맹에 들어올 것이라 믿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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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어도,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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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전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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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은 간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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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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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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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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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유월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통제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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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과의 오랜만의 만남은 잘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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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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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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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실에 만족하며, 내 역할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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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실로 돌아오자, 팀장이 내게 다가와 협회의 남은 일정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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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이번 기수 이방인들의 기초 교육도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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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이 많지 않아서 금방 끝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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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창천맹주님에게도 요청하신 대로 말씀드려 놨습니다. 지금 바로 이쪽으로 오시고 계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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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해도 될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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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그렇게 말씀은 드렸는데, 직접 오시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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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의 퇴근은 아직 멀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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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서령이나 창천맹에 대한 직접적인 연락처를 갖고 있지는 않다 보니 팀장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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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오셨다고 하네요. 면회실을 열어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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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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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답변하고 다시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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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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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이 뭘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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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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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차를 마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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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모마일 티와 내가 마실 커피를 한 잔 들고 약속된 면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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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복도 저편에서 면회실로 들어서는 이서령의 뒷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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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칠흑같이 검은 장포로 몸을 꽁꽁 싸맨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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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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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입던 옷이 아니어서 살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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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춥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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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씨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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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녀를 뒤따라 면회실의 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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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커피를 입에 문 채, 손으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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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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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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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며 문고리를 돌려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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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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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을 닫은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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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장포는 벗어진 채 의자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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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서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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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의 곡선이 전부 드러나는 하얀색의 비단 드레스를 입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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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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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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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얼떨떨한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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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를 왜 입었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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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긴, 해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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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평소에 입는 옷과는 조금 괴리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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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헌터 갤러리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켤만한 옷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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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내 당황한 시선을 의식한 듯, 부끄러운 표정으로 변명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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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끼는 아이가… 꼭 한번 입어보라며 준 옷인데… 제게는 너무… 남사스럽고 과한 것 같아 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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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갈아입을 생각도 못 한 채 급히 달려오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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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월의 소식을 듣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바로 달려왔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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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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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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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잘 어울리십니다. 물론, 약간… 만 가리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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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설픈 칭찬에, 이서령이 긴 소매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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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예를 갖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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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의원님. 말씀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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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슥, 하고 다가오더니. 내 앞에 놓인 의자를 조심스럽게 뒤로 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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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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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의자를 빼준 모양새였기에,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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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서령의 극진한 대접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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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의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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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미리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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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티 입니다. 혹여나 입맛에 맞지 않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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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차를 받고 잠시 향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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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모금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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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을 뜬 이서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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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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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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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소에 나는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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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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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설유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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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디를 가고 싶어 할지에 대한 나의 걱정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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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신의 옛꿈이었던 무림맹을 협회에 덧대어 보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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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그녀 스스로 협회로 가고 싶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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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설명을 마치고, 이어질 이서령의 반응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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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설유월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길드의 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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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를 놓치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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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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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또다시,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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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잠시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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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차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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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침묵 끝에 그녀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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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길을 정했단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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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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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옛꿈을… 무림 맹주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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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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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컵을 든 채, 그저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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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평생을 강요했던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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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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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의 의사와는 관련 없이, 제 욕심으로만 떠밀었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의 꿈이라고 생각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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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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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는, 그저 기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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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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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은 제가 하지 못했던, 아니, 할 줄 몰랐던 유월이의 부모 역할을 대신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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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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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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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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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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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지를 건네고 그녀의 눈물이 멎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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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약간의 대화를 더 나누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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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서령은, 설유월의 선택을 완벽히 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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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에 대한 감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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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오늘 할 이야기는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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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훗날 설유월의 협회 계약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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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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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려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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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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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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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이 내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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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품에서는 따뜻한 차의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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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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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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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한 걸음 물러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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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감사를 표하는, 저희 중원의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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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령은 귀까지 새빨갛게 변한 채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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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차마 인사를 드리기에도 너무 미흡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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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하나 알아간다. 중원에서는 감사의 의미로 포옹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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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중원의 예법에 맞춰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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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한번, 팔을 크게 벌려 그녀의 몸에 닿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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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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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소저의 뜻을 존중해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맹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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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담긴 미소로, 나 또한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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