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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동굴에 진입하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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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뿌리, 그 내부에 존재하는 적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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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몰려드는 수는 총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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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전방으로 기감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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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등급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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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급만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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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하듯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여덟 마리의 최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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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으로 확인된 그들은 전부 6위계 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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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다섯 번째 뿌리처럼, 회복을 담당하는 피통 역할의 개체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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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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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숫자에서 오는 압박감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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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좀 간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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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목소리가 한유성의 귓가에 계속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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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네 놈씩 맡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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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옆에 선 반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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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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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벅차? 내가 두 마리쯤 더 맡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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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네 놈씩, 깔끔하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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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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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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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남아있던 용혈의 혈청을 옆구리에 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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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극한의 숨결까지 복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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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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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 역시 숨을 내쉰 뒤 극한의 숨결을 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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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검에 백광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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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입자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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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을 강하게 즈려밟고 나아가는 한유성의 왼쪽 눈에는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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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義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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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의안이라고 볼 수 있는 장착형 렌즈 아티팩트가 한유성의 왼쪽 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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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일 오큘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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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약점을 군청색의 선으로 표시하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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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여타 생명체의 특이점도 알아낼 수 있는 아티팩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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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선배에게 차원 간 거래로 인해 받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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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나도 등반자 너처럼 가진 게 없었던 상태에서 탑에 소환됐거든. 애초에 그냥 무역선 선원 출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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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딱 죽기 좋은 상황에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이템이 스콜라의 눈이라는 아이템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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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그걸 토대로 내가 직접 만들어낸 아티팩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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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난이도 종결자인 개척자 선배가 전투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사람이라는 건 한유성으로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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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보일 약점이 한두 군데는 아닐 거야. 약점을 한 가지만 가진 몬스터는 생각보단 드물거든. 약점이 반드시 치명적인 약점인 것은 또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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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치명적 약점은 군청색 기류가 더 강렬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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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 발동 조건은 극소량의 마력을 티라일 요큘러스에 주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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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개척자 선배의 말대로 의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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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최흉들의 약점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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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으로 인한 효과로 몸의 감각은 끝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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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왼발이 최흉의 오른발을 강하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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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제어하는 힘을 잃은 최흉의 몸뚱이가 앞쪽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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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전처럼 쏘아진 한유성이 검으로 최흉의 허리를 베고 그 기세로 머리통까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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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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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도 한유성과 마찬가지로 극한의 숨결을 주입한 채 적의 멱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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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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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거의 같은 속도로 적들을 도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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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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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마력을 나선으로 휘감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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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혈류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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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오퓨리(Cardio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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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중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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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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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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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벽안에 핏발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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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오퓨리의 3단계를 사용하는 건 가문 내에서도 사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최종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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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에 전조 증상도 없는 '탈진' 상태에 돌입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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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하나 꼼짝할 수 없는 정지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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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투가 아주 과열되고 길어지는 상황에서 일어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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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홀로 전투하는 중에 3단계를 쓰면 모순적이게도 혈류 가속 상태에 진입하기 전에는 위협조차 되지 않았던 적에게 죽을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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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단계에 돌입하는 건, 탈진 상태에 이르러도 옆에 있는 한유성이 자신을 도와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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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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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육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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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반은 끝없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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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지난 다섯 번째 뿌리와 다르게 도중에 회복이 되는 최흉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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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을 끊으면 그대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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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를 죽였을 때 레벨이 올랐다. 52에서 53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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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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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티라일 오큘러스가 알려주는 약점의 위치대로 검로를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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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남아있는 최흉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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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같은 게 없음에도 단번에 여섯 번째 뿌리를 노릴 수 없는 이유도 수문장처럼 철벽같이 뿌리의 앞을 지키고 있는 저 두 최흉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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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들이 으스러진 펼쳐진 난장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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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반 이네르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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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입가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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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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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뿌리 앞에 있는 최흉 중 권역을 쓸 줄 아는 최흉이 아예 없다는 점은 안 그래도 한유성이 의아해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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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두 최흉의 발아래에 드넓은 원형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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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에서 퍼져나가는 폭력적인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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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두둑- 뚜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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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 그래도 거대하고 근육질인 최흉의 몸뚱이가 더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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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마치 강맹한 맹수와 곤충을 뒤섞어놓은 듯한 기괴한 이족보행 괴물, 최흉을 보며 검에 백광의 검기를 다시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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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심이 아예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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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쟁심이 그 공포심을 완전히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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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놈을 반드시 꺾어야만 뿌리를 격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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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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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강화형 권역 같네. 육체 강화와 마력 증폭 중심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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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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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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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두 최흉이 권역을 전개한 뒤에도 '티라일 오큘러스'로 보이는 약점이 변화하지는 않는 걸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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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약점은 똑같이 뒤쪽 목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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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덜미의 안쪽에 깊이 박혀있는 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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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 깊이 있는 핵?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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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설명을 들은 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발을 강하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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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몸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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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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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신형은 곧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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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팔의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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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팔의 껍질과 육신을 검으로 베고 상체를 올라타고. 어느새 등 위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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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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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미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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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카디오퓨리를 사용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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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으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한계 너머로 향하는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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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정도로 신속하고 날카로워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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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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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반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최흉의 목 아래로 검을 들이민 반은 팔을 들어 올리며 최흉의 목 반절을 잘라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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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뒤쪽 목덜미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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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벼락이 목을 파고들고 핵을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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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직후였다. 수문장 둘 중 하나를 죽인 반 이네르가 땅으로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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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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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다급히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 떨어지는 반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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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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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한 마리가 내리찍은 회색 철퇴를 피하기 위해 몸을 바로 뒤로 내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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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피와 땀에 절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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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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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게 내쉬는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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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흐려진 동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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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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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게 반이 말했던 카디오퓨리 3단계 중 겪을 수 있는 탈진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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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과 달리, 체력 소진으로 인한 탈진 상태는 아니었다. 혈류가 꼬여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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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카디오퓨리의 시작점인 좌측 관자놀이의 반대편인 우측 관자놀이에 마력을 옅게 휘감은 검지를 누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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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마력을 섬세하게 휘감은 검지를 반의 우측 관자놀이에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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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반 이네르의 몸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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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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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옅게 웃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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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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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이번에도 제 몫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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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한 마리는 자신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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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 티라일 오큘러스의 능력으로 보이는 마지막 최흉의 취약한 약점을 모조리 타격 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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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흉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최흉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최흉에게 공격을 먹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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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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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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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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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꺾어, 무릎을 완전히 꿇렸다. 그리고 뒷목을 향해 백색 검기를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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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악! 키르악! 쾅! 콰앙!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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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의 울음과 발버둥이 멎을 때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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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최흉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여섯 번째 뿌리에 신성의 돌을 찍어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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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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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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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3 → Lv.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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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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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은 채, 친근한 얼굴로 손을 들고 있는 반 이네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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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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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도 오른손을 들고서 그 말에 화답하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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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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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빛이 한유성의 시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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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동굴 전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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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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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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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뒤덮었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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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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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건 투명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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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3층 스테이지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괴상한 존재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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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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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덩치의 머리 부분에는 마치 수십 바늘로 꿰맨 것 같은 기이한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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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에는 또다시 투명한 벽이 있었고. 그 안에는 반 이네르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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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존재는 한유성의 앞에 있는 불투명한 벽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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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반갑습니다. 저는 탑의 2급 관리자 플레셰크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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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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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는 한유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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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2분 뒤부터 플레이어님이 치르셔야 할 결투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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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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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미간을 와락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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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플레셰크라는 존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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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관리자들은 매 기수마다 최상층부에서 [리뉴얼]에 대한 명령을 하달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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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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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플레이어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몇몇 층계의 [밸런스 패치]나 새로운 [컨텐츠 공급]이 필요할 때, 그게 리뉴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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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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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간혹 그런 [오류]가 있는 층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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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리뉴얼]이 불가능한 오류가 있는 층계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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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 [13층]의 난이도는 겪으셨다시피, 혼자서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를 월등히 상회하고 있습니다. 판데모니엄 난이도에 걸맞은 플레이어가 13층에 도달한다고 해도 혼자서는 절대 클리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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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 분기에서 가장 높은 최대 기록을 세웠던 [반 이네르]. 지난 기수에서 사망한 그녀를 저희의 능력으로 현재 층계, [13층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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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존재의 활성화는 지금처럼 13층에 다른 등반자가 진입했을 때만으로 한정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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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두 명의 플레이어가 13층 스테이지를 진행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반드시 이 층계가 공략되길 바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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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플레셰크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이제야 그 개요를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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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는 의문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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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혼자 공략 할만 했는 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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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몸소 경험한 바로는 이 판데모니엄에 혼자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층계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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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층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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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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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 말씀이 맞죠. 사실을 고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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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의 말이 잠시 텀을 두고 덧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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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3층 리뉴얼의 명령을 내린 것도. 그 오류의 수정을 위해서 필요한 공략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지난 기수의 플레이어인 반 이네르 님을 조건부 부활 시킨 것도. 이 [판데모니엄 탑]이 직접 내린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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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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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놀랐죠. 탑이 적극적 의사표현을 하는 건 지극히 드문 경우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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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것이. 한유성의 머릿속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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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은 일개 관리자가 최상층부도 쩔쩔매는 탑의 자체적인 결정을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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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는 그 말 직후, 갑자기 대뜸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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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두 분은 훌륭하게 공략을 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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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희 관리자는 이 골치 아픈 13층을 클리어해준 반 이네르 님과 한유성 님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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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두 분이 함께 판데모니엄의 등반을 하실 수 있게 만들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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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플례셰크의 입에서 튀어나올 다음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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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 님께서 완전히 플레이어로서 부활하고 14층에 올라가기 위해선, 한유성 님이 죽으셔야합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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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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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동의도 없이 육체를 다시 일으켜 세운 반 이네르님에 대한 무례를 최대한 갚기 위해, 며칠 전에 이런 사실을 먼저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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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를 끝낸 직후에 스테이지에서 한유성 플레이어님을 죽이거나, 지금 이곳. 결투장에서 죽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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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투명 벽의 너머, 텅 빈 공간 뒤. 또 다른 투명 벽 뒤에 서 있는 반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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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 님께서 스테이지를 끝낸 직후, 한유성 님이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을 때 죽이는 걸 추천해 드렸습니다만. 그러지 않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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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을 마주보고 있는 반 이네르는 옅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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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제 1분이 남았군요. 1분 뒤에는 양쪽 투명 벽이 걷히고. 지금 양측의 좌측에 있는 촛불을 먼저 끄는 쪽이 승리하는 겁니다. 물론, 상대방의 촛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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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좌측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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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투명 벽과 유사하게 생긴 사각형 안에 초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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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붙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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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올라갈 방법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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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플레셰크가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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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입니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두 분 중 한 명이 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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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한유성은 증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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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에게 주먹을 뻗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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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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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벽에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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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가 시작되고 10분 안에 승자가 가려지지 않으면, 저희가 상흔의 정도나 타격 성공 횟수 등등을 토대로 승자를 가려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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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플레셰크는 공간의 가운데로 걸어가더니, 정좌 자세로 가만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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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벽 너머에 있는 반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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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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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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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이름을 계속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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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소리는 투명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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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의 검기를 집결시킨 검으로 투명 벽을 내리쳐도 벽에는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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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바깥에 있는 플레셰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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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벽을 부수려면 위계를 더 올리셔야 합니다. 지금 듣고 계시다시피, 제 목소리는 벽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지만 저도 벽을 부수지는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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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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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 신성 결투장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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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소리만 벽 안에서 울려 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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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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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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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이번 일에 대해 알게 된 한유성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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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며칠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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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강합니다. 반 이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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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다섯 번째 뿌리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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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뿌리는 카디오퓨리의 3단계를 발동,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벽을 부수고 뿌리를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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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죽은 건 여섯 번째 뿌리죠. 사인은 탈진 상태에서 맞은 일곱 번의 치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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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강합니다. 저자를 죽이고 온전한 부활을 하여 14층에 충분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플레셰크는 당신을 경외하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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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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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셰크의 말을 듣고 계속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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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쏘면서 고민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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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캐치볼을 하면서도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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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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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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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사라질수록, 깊어졌던 고민의 결론은 손쉽게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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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장에서는 꽤나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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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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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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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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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탑은 그런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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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 삶에 대한 욕심이 생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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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친구와 같이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강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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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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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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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서 한유성을 죽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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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호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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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이 대결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사라졌던 플레셰크가 한 번 더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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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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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목숨줄과 같은 촛불은. 언제부터 끌 수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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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 장막이 내려가면 전투가 시작되면서 초를 둘러싼 장막도 내려갑니다. 그때부터 건드릴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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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투 시작 전, 대기 시간에 초를 건드리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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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하하, 저도 반 이네르 님께 최대한 편의를 맞춰 드리고 싶습니다만…그런 식의 특혜를 드릴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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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 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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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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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초를 건드리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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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오른손이 초를 둘러싼 장막을 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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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를 오른손으로 든 반 이네르는 자신의 앞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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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앉아있는 플레셰크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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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장막 때문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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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함께 힘을 합쳐서 저놈부터 죽여보자. 뭐 그런 내용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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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처음 플레셰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죽여버리려고 검을 뽑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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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죽이셔도 이 결투에 대한 변화는 없습니다. 제가 죽어도 결투의 진행은 이어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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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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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이기적이지만, 이해를 해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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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둘 다 살아서 올라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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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어. 나는 너랑 다르게 고민을 정말 오래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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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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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자신의 앞에 있는 투명 장막 앞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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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이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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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시작되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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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한 대로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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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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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초를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반 이네르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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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반의 이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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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에 대한 반의 반응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댄, 조용히 하라는 수줍은 손동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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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입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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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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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모양만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가 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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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맞다.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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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말하는 내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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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캐치볼이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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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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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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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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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랑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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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그 말을 끝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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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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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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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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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권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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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무너지듯 천천히 쓰러지는 반 이네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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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반 이네르, 결투를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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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반 이네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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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한유성, 5초 후 자동으로 14층 층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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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얻은 심상에 대한 갈무리를 끝내고 숙소의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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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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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일으키고 문을 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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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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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네 목이 날아갈 걱정은 마.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까. 내 말대로 네가 일정 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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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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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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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겉보기엔 연설아에게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방비는 해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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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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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을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획득한 아이템인 파명전가부(把銘轉嫁符)를 연설아에게 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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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부의 효과는 소지자가 공격을 받았을 때, 미리 정해놓은 대상이 그 공격을 대신 받으며 그뿐만 아니라 공격을 전개한 존재마저 대상의 앞으로 전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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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봐도 쓰임새가 정해진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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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존재 둘을 상대할 때 한 놈에게 대상 지정을 하면, 그 강적 둘을 격돌하게 할 수 있는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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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렇게 써먹으라고 준 아이템이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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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유성은 이 아이템이 가진 10회의 전이 횟수를 모두 자신에게 발생하도록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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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연설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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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명전가부가 일차적으로 만들어놓은 방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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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방어선으로 구성한 건 단순히 육체에 방어막을 치는 아이템. 글라벨 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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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봤자 글라벨 실드는 B+등급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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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이상의 무인이 전력으로 공격을 하면 몇 차례 버티지 못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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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방어선까지 도달하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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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방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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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적들이 전이되었을 때 무조건 끝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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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한유성은 그런 행운으로 점철된 전개가 자신에게 주어질 거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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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방금 벌이신 대전 때문에 정말 쟁천무회 제일인이 저희 호북연가의 대리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상상하기 시작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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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호들갑을 떠는 연설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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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해,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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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은 더 이겨야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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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수록 적들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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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아직 많은 위기가 들이닥칠 거라고 예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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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나선 한유성과 연설아는 비무대의 앞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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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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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파의 석이준을 쓰러트린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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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한유성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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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조금 전에 눈앞에 나타났던 알림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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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알려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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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무림에 이름 석 자가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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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도 있겠고. 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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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가 배경이었던 세계에서도 그랬듯이, 이 탑의 이야기는 단일 층계로서 끝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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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무림 테마의 층계가 걸린다면, 지금과 시간 선이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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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 단위로 시간의 흐름이 뛸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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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경기를 눈으로 보려고 나온 의도도 있었지만, 초월갤 선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촬영할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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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관객석의 최상층에 있는 이들을 단말기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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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대세가의 가주들을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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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팔을 뻗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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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숙소로 돌아온 한유성은 초월자 갤러리에 무림맹에 소속된 오대세가 가주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첨부한 게시물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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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 선배님들이 원하는 무림맹 소속 가주들의 얼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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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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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2831092382903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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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단 본선 진출하고 1승은 달성함. 백리세가나 그놈들이랑 연합한 걸로 보이는 하북팽가 측에서 연설아를 언제까지 가만히 놔둘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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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흐으음, 가주들의 이름이 죄다 아는 놈들이랑 다른 걸 보니 아예 한 세대가 지나간 게 맞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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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저희와 함께했던 무인들은 뒷방…아니닛, 원로원에 있을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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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밀실론자) 내가 경험한 바로는 무림계도 겉으로 막 나서는 양반들보다 흑막처럼 암약하는 놈들이 더 강한 구석이 있었지, 원로원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 이 세상은 거대한 밀실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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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맞아워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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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대가 끊어지고 다른 놈이 가주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늙은이들의 얼굴에 늙은이들의 면면이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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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ㄹㅇ 그렇네. 모용세가 가주가 그나마 좀 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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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무림맹주…이름이 남궁원이라고 했나? 저놈이 십 대 후반일 때 본 것 같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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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벨투이도 만났던 것 같아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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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제갈가의 가주놈이 6위계 밖에 되지 않는구나, 무재(武才)가 부족하군…그래도 전대 가주는 7위계 중위까지는 이루어 냈던 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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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뭐, 저놈들은 정치질과 인맥과 전통으로 살아남는 놈들이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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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등반쟈가 계속 무림계를 등반하다 보면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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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그럴 것 같다!! 육신이 거의 늙지 않는 놈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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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소녀와 친구를 먹은 이들도 어딘가에선 살고 있을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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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무림계가 이계보단 선배들의 등반 시기보다 시간이 더 많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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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창의 둘째가 벌써 패배할 줄은 몰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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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가의 가주 당명허의 말에 모용진천이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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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신인이 등장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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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 남궁원이 하북팽가의 가주 팽무일을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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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가문의 일을 쟁천무회까지 끌고 오지 말기를 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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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말에 팽무일은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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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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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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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않은가? 자네를 믿지만, 그저 맹주로서 하는 경고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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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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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와 백리세가가 긴밀한 관계인 건 중원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하북팽가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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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라는 애송이를 죽이려는 의지는 있어도, 동맹 관계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백리세가를 움직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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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시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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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세가 가주 중 유일하게 6위계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제갈세가가 가지는 입지는 흔들릴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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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의 전반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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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에 문제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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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질문에 제갈시헌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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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이름을 올린 맹원 분들을 제외한 7위계 이상의 무인들은 결코 쟁천무회장의 땅을 밟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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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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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7위계 이상의 적들은 등장하지 않을 테니, 그나마 그자에겐 숨 쉴 틈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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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유성이라는 애송이가 온전히 호북연가의 여식을 지켜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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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 측에서 결승이 시작되기 전에는 손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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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이 쟁천무회가 끝나기 전, 그 전에 한유성의 목숨이 끊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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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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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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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본선 진출 후 있었던 첫 번째 승리 이후, 두 번의 대결에서 더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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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번의 승리를 더 거두면 쟁천무회의 우승을 쟁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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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두 번의 승리 뒤에 레벨 1을 또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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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경험치 상승의 이유는 중원 무림에 이름을 떨쳤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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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파 출전자 자선은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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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상대로 여기까지 올라오셨구려, 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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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대 위에 두 사람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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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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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는 대전 중에서 ‘권역’을 사용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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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유성은 자선이 권역을 펼친다고 해도 자신이 패배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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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아주 잘 쓰시오. 이번에도 검을 쓰시는 게 좋을 듯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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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주먹에 금빛 권기가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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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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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해 격돌하는 한유성과 자선에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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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마찬가지로 전신에 호신강기를 씌운 자선이 한유성에게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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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검이 허공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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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주먹도 대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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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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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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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의 수준을 알아보듯, 공격들을 교차시킨 둘은 다시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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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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촥 펼쳐진 자선의 오른손에 금빛의 기류가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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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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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의 흐름이 자선의 손짓에 의해 꺾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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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백색검기를 맺은 검으로 그 찬란한 공격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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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움직임은 끝나지 않고 물결처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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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신권(百步神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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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 바깥에 있는 적이라도 격살하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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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의 대표적인 무학이 자선의 손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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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강한 검기를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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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뷔르트 4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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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검(傾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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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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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의 형상으로 퍼져나가는 강맹한 기파를 검격의 궤적이 파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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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펼친 횡 베기가 자선이 뻗은 권로(拳路)의 균형을 뒤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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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몸뚱이 너머에 풍경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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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늦었다면, 몸뚱이가 으스러졌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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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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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가 권강(拳罡)의 형태로 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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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는 엷게 퍼져 팔에 넘실거리는 불꽃 같았다면, 권강은 그 불꽃을 응집한 결집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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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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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강으로 치환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초월갤 선배들의 댓글에서 본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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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가 줬던 피엘뷔르트 검법서의 초장에 적혀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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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 네가 검강(劍罡)를 출수할 수 있는 단계는 6위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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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검강이 검기보다 우월하다고 할 순 없다. 검강은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게 아니라, 검기를 극한으로 조율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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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6위계부터는 육신에 방호용으로 펼치는 호신강기도 공격형으로 치환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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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자) 결국, 중요한 건 시전자의 역량이라는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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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을 집어삼키듯 뻗어 나오는 금빛 섬광들을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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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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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지닌 권격들을 검을 휘둘러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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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막아내지 못한 공격도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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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을 허용한 몸 곳곳에서 묵직한 고통이 치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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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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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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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호신강기에 균열을 내며 복부를 강타해버린 권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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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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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오른손을 정면으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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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전신에서 서려 있던 호신강기가 출렁이더니, 모조리 한유성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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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여래장(千手如來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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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세를 낮추며 무수한 권격들의 간격 내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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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가각! 카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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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의지대로 꺾이는 수십 갈래의 장을 튕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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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충분히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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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판을 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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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을 하는 건 자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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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양손이 대기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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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서 있는 비무대에 서늘한 기파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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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복마권(金剛伏魔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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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을 뒤덮은 회색의 권강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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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이 권역을 펼친 것도 아닌데 그에 비견되는 중압감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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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움직임에 망설임은 여전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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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로로 삼을 여백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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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5일 전, 석이준과의 전투가 끝난 당일 밤 그에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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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격을 전개할 때 어떤 방식으로 검기를 운용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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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은 말 그대로 미친놈 보듯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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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네가 한 문파의 비기를 어떻게 쓰는 건지 물어보고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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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알려줘도 문제없는 요건들은 썩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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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일순간 그때 자신을 마주하고 있던 석이준의 공격 자세를 떠올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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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을 뒤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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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쏘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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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심상의 원천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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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그런 거창한 심상을 그려낼 능력이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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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목표를 간단하게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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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주먹의 영역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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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선의 목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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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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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오른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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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은 그리지 못하지만, 얻은 개념을 섞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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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으로 본 사일검법과 용살검의 2식, 히야르타그니르를 겹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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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 맺힌 백색빛이 수십 번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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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풍광이 뒤로 훅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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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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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복마권이 만들어낸 반달 모양의 기파가 모조리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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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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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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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목에 한유성의 검이 겨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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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멍한 얼굴로 상황을 파악한 뒤, 아주 인자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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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의 승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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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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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한유성의 승리들도 파문은 일으켰지만, 이번의 경우는 파급력의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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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파의 자선은 신진 고수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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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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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소림파 자선의 대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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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가량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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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화산파의 유화윤과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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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의 탐지가 닿는 숙소의 바로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기에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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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유의미한 성과를 얻고서, 눈을 천천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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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바로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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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일으킨 한유성의 눈에 보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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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직! 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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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대기에 일어난 공간의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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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일곱 번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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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서 튀어나와 땅에 발을 내디딘 흑의의 사내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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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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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 계집의 몸에 손을 대려는 순간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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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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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명 중 가장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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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 계집의 몸에 어떤 사술을 펼쳐놓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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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대답을 하지 않고 복면을 쓰고 있는 이들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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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뜨는 알림창에 따르면, 5위계가 다섯, 6위계가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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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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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에게 손을 쓰기 위해 들이닥친 자들, 그들이 모조리 다 전이 된 게 분명했다. ‘파명전가부’의 효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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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6위계 무인 홍기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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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뭐 잘됐다. 이놈은 결국 죽여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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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이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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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을 펼친다. 아무런 변수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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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검에 검강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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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림파의 자선을 꺾은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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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뒷말은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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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일 놈의 콧대를 세워 줄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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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한유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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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흔들려도, 눈물을 뚝뚝 흘려도 모자라지 않은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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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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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지나치게 고요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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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옅은 위화감은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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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한유성이 여기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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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한 명을 죽일 때 쓰기엔 과한 진법까지 펼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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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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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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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서 있는 한유성의 목을 베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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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펼쳐진 게 분명한 진법을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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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에 대한 건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이 말해준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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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의 용도는 말 그대로 상대방을 완벽하게 죽이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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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는 의도에서 펼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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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지면에 내려앉아있는 진법은 자신의 발을 완전히 묶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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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은 마치 대못들이 길게 늘어진 것 같은 형상으로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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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진법은 사냥꾼이 깔아놓는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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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진법은 역이용할 수 있는 구석도 있는 검다!! 진법을 시전한 쪽은 진법 내에선 권역을 사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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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진법에 걸렸을 때의 대처법이 뭔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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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쫄지 말고 진법의 중심이 되는 진원(陳源)을 부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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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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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당장으로선 그 진원이란 것의 위치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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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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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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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맨 끝으로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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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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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오는 게 불가능하게 하려고 횡 방향의 원거리 참격을 내뻗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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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단말기를 잽싸게 꺼내, 영상 촬영 기능인 비소그라피카를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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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을 건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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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그라피카의 남은 사용 가능 횟수는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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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전투는 찍을 가치가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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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이외의 존재들에겐 보이지 않는 촬영 드론이 활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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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는 거냐, 저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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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홍기륜은 갑자기 몸을 뒤로 훅 빼낸 한유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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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위계의 부하인 6위계 가진풍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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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의 진원을 찾기 위해서 거리를 확보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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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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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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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지면 진원이 잘 보이기라도 한단 말이냐? 이상한 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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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검에 검강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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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끝내야 한다. 쟁천무회의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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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륜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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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적으로 두고 있는 한유성이 두려운 게 아니라, 소란이 크게 벌어져 호북연가의 연설아를 납치하려던 걸 들키는 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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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자신이 충성하고 있는 백리세가에게 피해가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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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맹주인 남궁원은 오늘의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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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팽가의 영향력에 묵인해주고 있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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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팽가는 일이 잘못되어도 백리세가라는 꼬리를 잘라 내버리고 책임에서 회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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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놈을 죽이는데 다섯이면 충분하다. 둘은 빠져서 계집을 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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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의를 입은 사내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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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린 둘의 발걸음이 숙소의 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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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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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칼자국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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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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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육음이 거칠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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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 끝에 있던 한유성의 몸은 어느새 문 앞에 도달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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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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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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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을 모조리 잘린 둘의 비명이 입 밖으로 뱉어지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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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 있는 놈의 목에 깊이 검이 쑤셔박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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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있는 놈의 심장이 꿰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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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 숙소를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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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기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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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바깥에 있는 연설아에게 멀어져 있던 유화윤이 다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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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파의 출전자인 유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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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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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한유성은 유화윤에게 언질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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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조만간 목숨이 노려질 거니까, 한 번 위험해지고 나서 명분 생기면 도와줘. 그냥 막 도와주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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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유성은 그냥 막 도와주려는 선인들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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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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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화윤은 웃으며 그렇게 해주겠다고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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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궁창검성) 화산파는 대체로 선하다. 대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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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하연) 반드시 선하진 않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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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도 그 정도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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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게 현 상황에서 조치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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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신경을 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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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눈앞에 있는 적들에게 집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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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의 유화윤은 6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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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세가 측에서 보낸 주요 전력으로 보낸 이들을 자신이 제대로 막고 있으면, 연설아가 죽을 일은 없다고 믿고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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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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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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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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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신강기를 먼저 일으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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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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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색의 검기를 검신에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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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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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은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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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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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건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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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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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륜은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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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놈이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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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소림파 자선과의 전투를 객석에서 목격한 이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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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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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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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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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둘을 죽인 한유성의 움직임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것과 괴리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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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르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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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은 자신의 앞에 내리치는 적색 섬광을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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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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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법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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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의 무인은 서서히 한유성을 포위하듯 전방위로 좁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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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법의 힘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동시에 몰아붙이면 아무런 피해 없이 죽여버릴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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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륜의 명령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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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칭을 내려찍을 거다. 동시에 달려들어서 숨통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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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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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법을 조율하는 홍기륜이 지면에 검을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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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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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저놈의 묫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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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별들이 한유성의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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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칭이란 게 뭔지 절로 체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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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움직일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압박감이 정수리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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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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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거대한 대못이 몸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은 이질적이면서도 불쾌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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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은 검기를 모조리 가라앉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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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쌓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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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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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덧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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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짙어지는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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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 두 겹, 세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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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검 끝에서 휘돌아가는 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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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을 비롯한 이들의 얼굴에 이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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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의 검을 타고 흐르는 기류는 도저히 검기라고 부를 수 없는 형상을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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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劍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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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이상의 전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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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의 미간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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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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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에 소림의 자선과 전투를 벌일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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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선과의 전투를 끝낸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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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위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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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을 담당하고 있는 중추의 양옆으로 자리 잡은 세 개의 기둥이 한유성이 6위계에 올랐음을 방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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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파 출전자 자선과의 대결 후, 또다시 이름을 알렸다는 알림창과 함께 2레벨의 상승이 이루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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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상태에서 창안한 고유의 내공심법을 공전 시킨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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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위계의 상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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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도 없이 계속 두드리고 있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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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벽이 이제야 허물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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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진법의 진원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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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진법에 아주 강대한 공격을 먹이면 진원에서 퍼져나가는 흐름이 보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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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아무리 네놈이라도 곧바로 권역을 쓰는 건 역부족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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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검) ‘권역’의 창안은 6위계를 들어서는 것만큼이나 많은 시일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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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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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룡왕) 벨투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그걸 스스로 알 필요가 있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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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6위계의 무인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은 검다!! 단,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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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진법을 부술 수 있을 만한 검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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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살검 중에도 있으나, 그중에서 고르기엔 아직 학습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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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 이네르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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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뷔르트의 극의 중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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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이동의 제약이 걸려있을 때도 대기를 뒤덮을 수 있는 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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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劍罡)의 상태를 유지한 채, 검신에 검강의 기류를 압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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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날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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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로서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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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는 검기의 세밀한 조율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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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란 즉, 심상을 검로에 이끌어낼 수 있는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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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지금부터 행할 무공이 펼쳐내야 할 풍광을 머릿속에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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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의 방향과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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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걸맞은 검강이 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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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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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부터 백색의 참격이 대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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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검의 세 번째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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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천(凶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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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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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무언가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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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의 백색 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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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이 뒤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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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핏방울이 허공을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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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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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홍기륜의 오른팔이 검격의 방향을 따라 대기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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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의 찢어질 듯이 커진 두 눈이 정신없이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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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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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둘의 상체에 돌이킬 수 없는 검흔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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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은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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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은 죽지는 않았으나,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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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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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의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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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기를 일으킨 왼손으로 완벽히 잘려나가 비린 단면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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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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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고통이 뇌리를 후벼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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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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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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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쏟아내라던 피가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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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보다 허탈감이 몇 배는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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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참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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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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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이제는 잊고 살았던 단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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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민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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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재능이 6위계가 한계라는 걸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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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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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눈앞에 나타난 새파란 애송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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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까지는 5위계였으며, 조금 전에 6위계로 올라온 게 분명한 애송이의 손에 오른팔이 완전히 절단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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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이딴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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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의 원활한 가동 때문에 펼치지 않고 있던 권역을. 이제는 강제로 펼치지 못하게 된 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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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권역은 일순간 막강한 힘을 끌어올리는 순수 무력 쪽에 치우쳐 있어, 몸뚱이가 멀쩡해야 운용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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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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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판에 끼어들어 설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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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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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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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에서 쓰러트린 기사 데칸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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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레타의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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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내 묫자리가 아니라는 건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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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가 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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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지금 처음 시도하려는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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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던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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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검(投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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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검의 체공 시간 중, 그리고 목표물을 맞히는 그 순간까지 검에 서린 검기를 유지할 수 있을 거란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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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천’의 일으킨 파장으로 인해, 진법의 진원이 은은한 적색 빛을 대기에 흩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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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을 맺은 데칸의 검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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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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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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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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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구조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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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미약하게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녹듯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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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깃털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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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어나간 섬광의 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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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6위계인 가진풍의 심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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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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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뒤편에 펼쳐진 자욱한 칼바람을 끝내기 위해선, 가진풍을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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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풍의 왼손에 쥐고 있던 도(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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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의 몸뚱이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상흔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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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쌓인 고통 내성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했는지, 생각보단 참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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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물약의 절반은 상흔에 들이붓고. 절반은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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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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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위계인 6위계 간의 전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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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생사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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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을 향해 달려들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딘 홍기륜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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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드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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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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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한 그림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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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하북팽가 가주 7위계 팽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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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모용세가 가주 7위계 모용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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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사천당가 가주 7위계 당명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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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남궁세가 가주 7위계 남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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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제갈세가 가주 6위계 제갈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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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건물의 지붕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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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무림의 핵심들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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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검에 흘리고 있던 검기를 증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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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주들의 면면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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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지붕에서 내려온 가주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무언가 대답을 요구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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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우두커니 서 있는 홍기륜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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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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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지금이 기회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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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이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선수를 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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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의 여식, 연설아를 해하기 위해 온 습격자들을 제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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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검지로 엉거주춤 서 있는 홍기륜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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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일을 주동한 대장쯤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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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가 나쁜 새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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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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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거지)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일단 판의 흐름을 잡아야 하는 거요. 윗놈들은 예의를 차려주는 걸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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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거지) 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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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녀) 하와와, 억울한 척을 좀 해야 하는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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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이 입을 열어서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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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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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소협 말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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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유화윤의 말에 무림맹 핵심 인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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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모인 이들은 이제 무림맹 관계자들뿐 아니라, 각지에서 온 무림인들도 몇몇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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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의 무사들이 제지를 했지만, 이미 끌린 시선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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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 소저가 습격당한 걸 직접 목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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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문 상황 자체가 좋지 않은 연설아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신지 고수인 한유성의 말에 비해서, 화산파 유화윤의 말은 강한 신뢰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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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 남궁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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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고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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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시선은 한유성을 보고 있었지만, 그가 집중하고 있는 대상은 한유성이 아니라 하북팽가의 가주, 팽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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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증인도 있군, 이러면 널 묵인해주는 건 상관없어도. 백리세가까지 그냥 넘어가 줄 수는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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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일의 머릿속에 남궁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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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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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무일은 욕이 치밀어올랐지만, 분노의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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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의 말대로, 일이 커져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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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홍기륜의 머리 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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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의 기류가 남궁원의 손아귀에서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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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의 양쪽 무릎이 단번에 굽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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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강제로 무릎을 꿇는 형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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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르륵…끄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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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의 입가에 거품이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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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뇌가 타는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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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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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말이 홍기륜의 귓가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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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네게 이런 일을 지시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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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핏발이 선 눈으로 남궁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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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의 주요 가문 가주들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통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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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 쟁천무회장에 들어서 있는 세가나 문파들은 대부분 중원 무림의 사정에 밝은 부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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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의 여식인 연설아가 왜 갑자기 습격을 당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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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의 사주를 한 것은 어느 쪽인지 대부분이 예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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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의 납치를 주도한 백리세가의 뒤에 하북팽가가 있다는 사실까진 모르는 이들도 다수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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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에 대한 충정으로, 홀로 납치를 주도했다고 말하려고 했던 홍기륜의 귓가에 남궁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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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주도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는 내뱉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사실대로 자백해준다면, 네 죽음으로 끝을 내주겠다. 네 핏줄은 살려주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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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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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죽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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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사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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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의 차남, 백리휘가 명령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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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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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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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륜은 남궁원이 자신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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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자신과 홍기륜을 빙 둘러 있는 핵심 가문 가주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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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에 불만이 있는 자가 있다면 의견을 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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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세가의 모용진천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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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을 바로 죽이는 건 불만이 없는데 말이오. 백리세가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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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처분을 내릴 생각이오. 명령을 내렸다는 당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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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말에 모용진천이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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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맹주께서 다소 관대해지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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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성한 쟁천무회를 더럽힌 것은 중죄이나, 장남의 죽음은 백리세가에 있어 큰 악재이니 최소한의 처벌로 끝낼 생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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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진천을 제외하곤 맹주 남궁원을 관대하다고 여기는 가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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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의 가주, 당명허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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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백리세가의 입지는 호북연가보다도 줄어들어 버리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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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가 본인들이 계획했던 판대로 실행에 옮기는 걸 성공했다면 호북연가를 그대로 집어삼켰을 수도 있겠으나, 계획이 완전히 실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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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무림의 주목을 받은 이상, 백리세가의 부흥은 향후 몇십 년간은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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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의 가주 백리태경과 둘째인 백리휘를 데리고 오도록. 저항한다면 무력을 동원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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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 남궁원이 자신의 오른팔인 6위계 무인 회백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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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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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원의 시선은 다시 한유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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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적잖이 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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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에 직선으로 난 상처를 바라본 남궁원이 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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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天醫), 이자의 상처를 치유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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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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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라 불린 긴 머리카락의 여성은 대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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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손이 초록빛으로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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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처럼 뻗어 나간 기류가 벌어져 있는 상흔을 꿰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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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면 멀쩡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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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천의’라는 별호가 썩 과장된 게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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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과장된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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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만했으나 분명 묵직하게 올라왔던 통증도 확연히 휘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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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진천이 한유성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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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파 자선과의 대전 후 6위계를 달성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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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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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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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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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아주 난 놈이구나. 내 제자였다면 썩 예뻐해 주었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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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진천의 말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공간이 소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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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의 가주와 둘째 아들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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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태경과 백리휘가 굳은 얼굴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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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본인들의 무력 수단인 수하들 열댓 명을 데리고 왔지만, 이들을 운용할 수 있는 상황은 오지 않으리란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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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태경, 그대가 쟁천무회의 개시 전날 인사를 건넸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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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태경은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떨고 있는 홍기륜을 보며 미간을 와락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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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가 이미 자백을 했네, 자네의 아들 백리휘가 주도해서 벌인 일이라고.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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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휘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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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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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나이대에선 어딜 가도 무시 받지 않던 고강한 위계였지만, 노괴들이 한데 모여 있는 이곳에선 애송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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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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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네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을 하겠다만. 호북연가와 백리세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모르는 자는 이 무림에 몇 없으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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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태경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남궁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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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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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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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하나 정도를 자르고 기둥을 폐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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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을 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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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즉, 한 무인이 쌓아 올린 기존의 내공을 완전히 상실하고. 앞으로도 무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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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휘의 무인으로서의 생명력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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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백리태경, 그대도 잘 알 것이오. 세가의 일원이 잘못한 것은 세가 전체의 잘못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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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태경은 이어지는 남궁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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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경, 그대가 운용하는 주요 병력 중 하나인 백리대를 무림맹 소속으로 옮기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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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태경은 끌어 오르는 살의를 애써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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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대의 일원을 죽여버리든, 완전한 무림맹의 무력 수단으로 쓰든 무림맹주의 마음대로 하겠다는 선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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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멸문보다는 나은 징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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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앞서 말한 것 중, 그 무엇도 무를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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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맹주가 아주 관대한 처우를 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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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시헌은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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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냉혹한 판단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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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세가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조용히 호북연가의 여식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더라면…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고 세가의 성장을 이뤄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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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실패함으로써 받게 된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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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고 있었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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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자신에게 호북연가의 여식이 있는 쪽에 진법이 펼쳐지는 게 확인되어도 일단은 방관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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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입장에서 별 상관없는 일이기에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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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림맹이 주관하는 ‘쟁천무회’가 공개적으로 더럽혀졌기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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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남궁원의 사사로운 유희에 가까워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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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이번엔 멍하니 서 있는 연설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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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의 연설아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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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의 말에 연설아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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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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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라비가 벌인 살육은 정말인지 아닌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반면, 널 죽이려고 한 이들의 죄는 명명백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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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갑자기 검의 방향을 바꾸더니, 손잡이를 연설아가 잡을 수 있도록 검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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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저 백리휘의 팔을 베어도 되는 상황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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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가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자, 맹주의 시선이 한유성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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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면, 한유성 소협이라고 했나. 소협이 저놈의 팔을 잘라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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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양손을 흔들며 거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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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가 백리휘의 팔까지 자르면 너무 미움을 사지 않겠습니까. 좀 사리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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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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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맹주 남궁원이 호탕하게 웃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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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말이 맞군. 내가 강호 신성의 손을 너무 쉽게 더럽히려고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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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이 옆에 있는 회백에게 검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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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행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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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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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없이 대답한 회백은 백리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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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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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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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악! 하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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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휘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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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안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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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 장면을 눈에 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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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썩 참혹한 광경을 만들어냈지만, 남이 만들어내는 참혹함까진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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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맑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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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과 파육음과 피를 마주하는 대신,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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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하늘에서 무언가 어긋나는 순간을 가장 먼저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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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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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코 밑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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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몸이 무형의 기운에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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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까지 겪었던 진법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중압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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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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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무릎이 강제로 꿇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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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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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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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가 펼친 방벽 뒤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연설아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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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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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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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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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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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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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궁금증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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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 두른 호신강기를 더 견고하게 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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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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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맑은 하늘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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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신선처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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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천마(天魔) 8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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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나지막한 미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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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가누는 데 성공했네, 아주 기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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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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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개를 다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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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직접적인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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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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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7위계 이상의 존재들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초월갤 선배들에게 15층 진입 당일 밤 들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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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성좌들 보고 우리가 답도 없는 겁쟁이들이라고 놀려댔지만, 그건 대부분이 8위계라서가 아니야. 8위계씩이나 되어놓고 포기를 해서 비난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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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8위계면 자신보다 하위 위계에 있는 이들이 인간이 아닌, 개미 정도로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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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실제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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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손을 대지 않고 죽이려면 죽일 수 있는 수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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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사실 7위계도 본심을 다하면 그래. 6위계 이상부터는 단순한 숫자 단위 하나 차이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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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친구!!! 너도 5위계 이하인 놈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거다!! 6위계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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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엘프다) 넌 5위계 때도 6위계급 괴물들 몇 번 이겨봤다고? 그건 네놈이라서 그런 거야. 보통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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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그러니까, 각을 잘 재야 한다는 말이다. 제대로 된 괴물들을 만났을 때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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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대뜸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고 죽게 되는…그런 웃기지도 않는 돌연사를 겪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네가 오르고 있는 곳은 판데모니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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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밀실론자) 판데ㅋㅋㅋ모닠ㅋㅋ엄ㅋㅋ엄엄ㅋㅋㅋ – 이 세상은 거대한 밀실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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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덕분에 시간을 죽일 수가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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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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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 각이라는 게 좀 많이 잘못 재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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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머릿속에 이어지는 천마의 전음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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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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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한유성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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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말하면, 정파 무림을 내려다보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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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왜 여기까지 당도했는지, 그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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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이 끌어올린 기운을 유지한 채 하늘에 서 있는 천마에게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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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천마의 기세를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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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갈 수밖에 없는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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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옆에 있는 존재들의 기세를 홀로 억누르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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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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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감히 자신을 놔두고서 하늘을 논하느냐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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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말이 개소리에 가깝다는 건, 무림맹의 일원들 모두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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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라는 이름은 전대 천마가 있을 때도 사용했던 유서 깊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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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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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에는 법칙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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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당대의 천마를 꺾고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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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이 아들이 아버지를 죽여야 할 상황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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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스승을 죽여야 할 상황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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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천마의 자식은 우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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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자가 스승을 죽여버렸다는 비화가 무림까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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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천마 장강은 역대 천마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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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장강을 죽이고 당대의 천마가 된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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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천마가 약할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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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천마 청강이 전대 무림맹주에게 쓴 패배를 안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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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무림 역사에서 흑역사로 점철된 정마대전에 대해 언급을 함에도 무림맹의 일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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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약육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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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고위계의 세계라서 더 심한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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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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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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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선포와 별반 남궁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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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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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마대전을 다시 벌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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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눈에는 여유롭게 계속 하늘에 떠 있는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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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천마가 하늘에서 내뿜는 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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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의 중압감이 짙어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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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이런 괴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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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마력을 운용하는 것으로 겨우 몸을 가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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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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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을 비롯한 무림맹 주요 일원들은 천마가 내뿜는 엄청난 기세에 기세로 대해 맞대응할 뿐, 더 이상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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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천마의 목소리가 한유성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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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날이 성장을 하는 게 보이더구나, 그게 아주 신기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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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마치 쟁천무회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한유성에게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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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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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도 전음의 원리를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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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그 전음의 첫 시도를 갑자기 나타난 천마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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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계속 행해지는 전음을 계속 잠자코 듣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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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전투도 그렇지, 아주 훌륭한 판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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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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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진법이 쳐진 상태에서 행해진 전투가 천마의 눈에는 다 보였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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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8위계 쯤 할 수 있는 것보다 되면 못하는 걸 찾는 게 더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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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 대해 좀 궁금해졌으니,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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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별로 안 그러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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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개를 살짝 들어 저 멀리 보이는 천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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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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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몸을 온전히 가눌 수 있게 된 게 천마가 내뻗고 있던 힘을 거두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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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그렇게 도저히 천마가 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내뱉고는 나타났을 때와 같이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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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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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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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에는 한참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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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태풍이 남긴 후폭풍이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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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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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고 물어볼 사람을 한 명은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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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굳은 얼굴로 서있는 사내, 소림파 자선에게 전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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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어볼 게 있는데. 저 천마가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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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고개를 돌려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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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주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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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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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소이다. 근 15년간은…. 갑자기 나타나서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할 만한 말을 해버렸으니, 정파의 입장에선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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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전음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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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쟁천무회는 이대로 종료가 되지 않을까 싶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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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시주와 유화윤 소저의 결승전만이 남은 상황이니 말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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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난 줄 알았던 자선의 목소리는 한 번 더 한유성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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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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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쟁천무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끝이 나면, 시주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을 것이오. 젊은 6위계 고수라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 말이오. 어디서 폐관 수련이라도 하다가 나오는 게 좋을 것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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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선의 말이 맞다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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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쟁천무회는 오늘을 기점으로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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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의 말투는 그 누구의 반론도 듣지 않겠다는 듯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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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을 뱉을 상황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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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는…어차피 유화윤이나 이 한유성이. 둘 중 하나일 테니, 공동 우승으로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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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을 내뱉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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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일원은 이미 이번 일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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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백리세가는 방금 막 세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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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이번에는 둘의 소원을 모두 행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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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은 한유성을 향해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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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5년간 적용시킬 규율을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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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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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제가 대리인이라 호북연가 장녀의 말을 좀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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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능청스러운 말에 남궁원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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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겠지. 이번 일이 끝나면 무림맹에 소속될 생각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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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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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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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연설아의 안전이 확보된 게 되면 15층은 클리어되고. 층계 대기실에 소환될 확률이 다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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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에게 다가간 한유성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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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가문 전부 호북연가에게 불리한 일을 행할 수 없다. 그 일은 침략이나 협잡질 등을 모두 포함한다…뭐 이 정도 규율이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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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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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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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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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상황이 진행되는 속도를 머릿속으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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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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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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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멀뚱멀뚱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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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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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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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말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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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연설아에게 직접 규율을 세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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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일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맹주 남궁원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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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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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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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개판이 된 가문을 완전히 끌어 올리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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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중대한 일의 시작을 알리는 일은 연설아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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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촬영 기능 비소그라피카가 종료되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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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다음 눈앞에 알림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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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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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 무림맹주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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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에 대한 말을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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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어떻게든 살길을 계속 모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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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 한유성' 15층 스테이지 점수를 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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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15층 랭킹 점수 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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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연합장 : 1,12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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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자명천녀 : 1,10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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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 흑성 : 89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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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 추적중 : 84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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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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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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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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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 5,40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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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플레이어들의 점수가 드디어 네자릿수를 돌파한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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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의 ‘자명천녀’는 14층에서 처음 한유성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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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에선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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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연합장과 엇비슷한 무력 수준을 평가받는 탑의 정점 중 한 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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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 지구 출신, 하드 난이도 등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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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천녀가 그간 순위권 밖에 있어서 한유성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몬스터는 제외하고. 최대한 불살 루트를 지향하는 정신 나간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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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 자주 함께 다니는 광마(狂魔)라는 존재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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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는 괴상한 면이 있어서 보상이 있을 때도 순위 등록 자체를 안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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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진입 전까지는 뭐 그런 인간이 있나,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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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무림이란 판을 겪으니 충분히 그런 종류의 인간이 있을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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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15층 스테이지의 점수는 13층이나 14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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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소림파 자선의 말대로 자신에게 쏘아지는 시선이 늘어난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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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옆에 있는 사천당가의 가주, 당명허가 갑자기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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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협이 하고 있는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사천당가에 한 번 들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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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모용세가 가주 모용진천도 히죽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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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가 되었다곤 하나…6위계 둘과 5위계들을 혼자 저렇게 만들다니. 아주 대단하다! 모용 가에 들려라. 대련은 실컷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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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저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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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후에 자동으로 '16층 층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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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곧 16층 층계 대기실로 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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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세가의 가주들 뿐 아니라, 각지의 가주들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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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나마 한유성이 펼쳐놓은 살풍경을 본 이들이 접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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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낭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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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소속된 곳이 없으면 우리 가문에 들어와 보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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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앞을 가로막은 이들을 보며 대충 손을 휘적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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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실 있죠? 피곤해서 일단 좀 쉬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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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계도 이계의 경우처럼 단발적인 경험으로 끝날 확률은 극히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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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어떻게든 날 찾으려고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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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다음 층계도 무림계라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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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소환될 경우를 대비해서, 뿅 하고 사라지는 건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나았다. 홀로 의원실 구석에 틀어박힌 채 16층 층계 대기실의 소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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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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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층 층계 대기실에 소환되자마자 눈앞을 뒤덮는 건 무수한 알림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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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먼저 뜬 랭킹 점수 등록은 거절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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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알림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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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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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경험치 보유 조건이 해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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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승리를! 더 많은 명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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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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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70 → Lv.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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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을 오르기 전에 레벨이 70이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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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돌입 당시에 갑자기 여섯 단계의 레벨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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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림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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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旅路)에 올라섰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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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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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6위계에 오른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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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질문 거리들을 정리하며 초월자 갤러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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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초월자 갤러리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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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6층 층계 대기실임. 6위계 달성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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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한 영상 보면 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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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부터 시작해서 그 상황 마무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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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23112903128309.mk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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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키야, 미친놈 미친놈. 기어이 6위계를 달성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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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냥 미친놈이면 달성 못 하지 ㅇㅇ 제대로 미쳐야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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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20층이 되기도 전에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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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뭐임?? 전투 영상임? 키야악 개꿀이고고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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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갸르꾸구울-!! 점수, 얼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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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점수 등록은 안 해도 점수는 궁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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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꽁! 착-석!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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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자아아아, 관람 드가자ㅏ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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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3, 2, 1, 0. 재새애앵이예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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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이게 무(武)인 검다!!!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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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부터 달린 댓글들은 영상에 대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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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처음에 신속하게 둘을 죽인 것은 아주 훌륭한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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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근데 이 시점에서 이미 6위계에 오른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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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천마 선배가 용케도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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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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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여윽시 천마고. 어떻게 알아차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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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검기의 기파가 더 안정된 게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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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장면은 진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벨의 검법인 피엘뷔르트의 한 수를 쓰려고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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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가 검강으로 변하는 그 순간이 제대로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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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미미(美味)……!! 검에 맺혀있는 검기가 더 강맹해지는 광경…! 아주 아름다운 검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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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조각을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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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이야, 영롱하다. 영롱해. 근데 마법은 진짜 안 써먹는구나?? 좀 서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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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선배의 댓글을 본 한유성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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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친절하게 개량한 마법을 안 써먹고 있으니 서운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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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써먹지만 않은 거지, 마법 수련은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실전에 도입시킬 자신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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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ㅈㅅ ㅈㅅ 무림계에선 무공을 써야 한다는 고집을 좀 부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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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뭐, 그 정도면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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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깎!! 맞슴다!! 그게 낭만인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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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 건 모르겠고. 무공만을 고집한 효과는 톡톡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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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봐도, 무공 쓰는 것에 집중한 덕분에 유의미한 성취를 끌어내 끝에는 6위계 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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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존나 시원하게 촤아아악 썰어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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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타격감 오지게 느껴짐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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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은 한유성의 검격에 무너진 지붕 위로 가주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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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압박감 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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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압박감도 오지고 저분들 얼굴도 좀 빡세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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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내가 무림계 진행할 때는 이런 노괴들 면상은 거의 80층계 대에서나 봤는데,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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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그래도 노괴들한테 도움을 받은 일은 없었던 것 같구려. 잘했소. 괜히 피곤한 일이 벌어지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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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한유성과 무림맹주의 대화가 계속되던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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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전조도 없이 하늘에서 천마가 도래하는 장면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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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어우 존나 놀랐네. 뭔데 갑자기 나타남?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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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천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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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저딴 식으로 무식한 기 흩뿌리면서 등장하는 연놈들은 천마 아니면 혈마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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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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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런 것 같더라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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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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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갑자기 무림맹주를 비롯한 정파의 수뇌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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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등장한 존재가 갑자기 벌인 미친 돌발행동에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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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저 여자, 제정신이 아니다!!!! 엮이지 마라, 친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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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여윽시 천마란 새끼들은 정상이 없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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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동의함. 자연의 이치같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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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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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처맞은 천마 선배는 ‘?’ 하나를 치는 것으로 평정을 유지했는지 더 이상 어그로에 걸려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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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한유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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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저 자가 개인적으로 네게 한 말은 없었나? 전음이라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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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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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는 거야,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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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천마의 정확한 예상에 그렇게 생각을 하며 답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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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어떻게 알았음. 전음으로 막 떠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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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저 천마도 해봤겠지, 비슷한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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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큼, 난 이런 상황에선 직접 말을 했을 터다. 전음을 하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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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ㄷㄷㄷ 그럼 자네와 대화한 셈이 되는 상대가 정파 측이라면 무려 천마신교 교주와 내통하는 작자로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역시 천마다운 극악한 인성을 가졌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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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형씨, 조금만 더 긁으면 현실에서 처맞겠어. 감당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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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크아아아!! 해볼 테면 해보라고 할 뿐이다. 신의 경지에 이른 창술이란 게 뭔지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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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하긴, 천마가 정배이긴 해도 창왕도 무시할 수 없지. 일단 중원 무림의 절반이 날아갈 것임 ㅇㅇ 대피할 곳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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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그런 일이 생긴다면…! 식량을 최대한 비축한 뒤에 봉문을 할 검다!! 흐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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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일단 계속 펼쳐지는 혼란의 댓글들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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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층계의 천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축약해서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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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걍 그 대회, 쟁천무회가 진행되는 중에 내가 계속 성장하는 걸 봤다…그런 식으로 전음을 보내왔음.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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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뭔 천마가 플러팅을 하고 앉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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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뭐 사지를 분질러버리겠다 그런 거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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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음, 납치 같은 걸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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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 납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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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8위계에 천마…! 그리고 시간상 전대 천마라면 꽤나 강했었는데! 그 천마를 죽이고 당대 천마에 올라선 것임다! 그렇다면 당대 천마도 꽤 강하다는 뜻인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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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정신이 나간 데다 꽤 강한 존재인 것 같으니 조심하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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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또다시 뒤통수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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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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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등반자가 내가 있는 세계에 있었다면 잡아서 레어에 가둬놓았을 거예요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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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왕 선배의 댓글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 같아서 더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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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초월자 갤러리를 종료하려던 한유성은 아직 질문 거리가 하나 남았다는 걸 떠올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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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6위계에 진입하자마자 여로에 들어섰다는 알림창이 뜨던데. 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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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여로(旅路)!! 아주 험난한 길에 들어섰다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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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6위계에 들어섰다는 걸 빙 둘러서 말하는 거다. 끝도 없는 여행길에 들어섰다는 뜻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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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인간이란 범주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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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클리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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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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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형이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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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던전,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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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한유성은 두 층계에서 성좌들에 대한 차단을 풀고 진행을 하여, 아이템을 다량 받아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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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상승이 중요했기에, 마력 증가 효과를 가진 영약들을 넙죽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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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위치는 20층 층계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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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의 층계를 오를 동안 상승한 레벨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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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레벨은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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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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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 :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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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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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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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 :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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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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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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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 통각 억제 Lv.20 평정심 Lv.20 엄폐 Lv.20 위기 감지 Lv.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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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확장 Lv.20 집중 강화 Lv.20 투사의 움직임 Lv.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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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신체 강화 Lv.20 둠브링어 Lv.20 정신 방벽 Lv.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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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적 간파 Lv.20 어둠 속성 공격 저항력 Lv.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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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에 기입되는 스킬 레벨의 최대치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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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도가 올라가도 그 이상은 표기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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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에 들어선 후, 가장 명확해진 생각은 레벨보다는 위계가 더 중요하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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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은 육체를 차곡차곡 성장하게 해주는 탑 한정의 시스템인 반면, 위계는 탑 외적으로도 적용되는 세계의 진리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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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힘은 위계를 쌓으며 제련한 고강한 검기 앞에서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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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은 레벨업도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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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계를 쌓을 수 있는 매개체는 결국 건강한 육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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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탑에서 쌓아 올린 레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육신의 힘과 마력은 탑의 종결 시키고 본래 세계로 귀환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선배들이 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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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레벨이든 위계든, 이젠 난 네 성장 속도에 대해선 이야기 할 게 없네. 하드 난이도 38층에서 6위계에 도달한 내가 판데모니엄에 15층에 6위계에 도달한 네게 무슨 말을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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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해석 : 이 새끼가 얼마나 더 괴물이 될지 나는 예상이 안 되니 더 이상의 예측을 포기하겠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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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이야, 독심술사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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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초월갤 하드 난이도 선배 중에 자신과 같은 아예 노베이스 출신은 개척자 선배 한 명이었기에, 은연중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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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개척자 선배는 15층에서 6위계를 달성한 한유성에게 조금 거리감이 생겨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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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6위계라고 권역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만? 구상 자체가 잘 안되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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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그건 당연한 일이다. 6위계에서 경지가 멈춰버리는 자들의 특징이 권역을 구상해내지 못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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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마법은 멀쩡히 쓰면서 권역은 못 만들어내는 애들도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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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권역을 창안하는 데만 5, 6년이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유의미하게 촉진되는 탑 내에서도 2년은 기본으로 두고 들어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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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그리고 천재인 본좌가 보기엔 네놈은 그 이상으로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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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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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그냥 천재라면 남들보다 단축된 1년 반 정도 걸리겠지만, 천외천의 천재라면 탑이라도 2년도 넘어선 3년이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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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바로 본좌가 그랬지. 본좌는 탑에 들어오기 전에 겪은 일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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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그릇이 커서 ‘권역’이 ‘고유영역’ 수준으로 창안되어버리는 거다. 마치, 법칙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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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자신을 천외천의 천재라고 말한 천마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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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하지만 그마저도 세계의 이치다. 조급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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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은 일단 내려두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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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간 조금도 진척이 없으니, 내려놓을 만해서 내려놓은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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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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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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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20층 스테이지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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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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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은 내게도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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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5분에 1에 도달했다는 그 수치 자체로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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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단 해당 층계를 끝으로 성좌들을 원천 차단하려고 정해놓은 층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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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수가 생기면 차단을 풀게 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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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의 미라도 거두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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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형 스테이지가 걸리면 마지막이고 뭐고 그냥 차단한 상태로 내버려 두려고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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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난이도 20층은 던전 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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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층계도 던전 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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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던전, '타오르는 관'을 클리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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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이름 한 번 무식하게 음산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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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던전 이름이 타오르는 관인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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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가 바닥에서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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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호신강기를 펼쳐, 치고 올라오는 불꽃과 열기를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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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던전의 구조부터 파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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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을 펼쳤지만, 당장 알 수 있는 건 아주 좁디좁은 공간에 처박혀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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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은 투시 같은 능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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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구조물이나 풍광에 흘려보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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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에 반응하는 생명체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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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또한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투시라고 할 정도의 정확성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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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단번에 끝이 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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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에 쥔 검은 13층 달성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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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비광(燕絲飛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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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계 층계 달성 아이템답게 중원 무림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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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사비광]을 [문둠 엑스팅귀트]와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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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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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 검강을 일으킨 상태로 폐쇄된 던전의 벽면을 내리쳤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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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부술 수 없는. 말 그대로 안에서 공략해야만 하는 던전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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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차단을 풀기 전에. 먼저 초월갤 선배들에게 질문을 먼저 던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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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뭐 이런 데 갇힌 적 있는 선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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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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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이름은 타오르는 관…일단 기감으로 살펴본 것만 말하자면 직선의 공간임. 바닥에서는 열기랑 불길 좀 치솟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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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 없었으면 바로 불에 전신이 타들어 갔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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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탈출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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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폐쇄형에 특수 구조물이구나 ㅇㅇ 빨리 탈출해야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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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음, 불꽃의 색이 어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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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히 붉은…색인 줄 알고 그렇게 댓글을 쓰려던 순간, 내 발밑에 일렁거리는 검은 불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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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둥실 떠 있는 자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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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검은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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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흑염(黑炎)이네…골치가 좀 아픈 종류의 불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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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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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 흑염은 상성인 물이나 얼음이 잘 통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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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물론, 제 얼음은 통해요…! 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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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선배가 이번 층계에 필요한 아이템을 줄 수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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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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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하지만!!! 차원 간 거래는 쿨타임이지이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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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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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간 거래는 빌어먹을 쿨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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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필드에 흑염이 깔려있다면, 보스 몬스터는 같은 놈은 흑염을 제대로 써먹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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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아마도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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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20층의 층계를 경험한 나로서도 이제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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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방법이 있긴 해. 네가 가진 것들로 해결할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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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선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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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마법사 선배에게 그 방법을 듣고 납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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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를 종료하고 단말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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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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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화염이 허공에 짙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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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성좌들의 차단을 풀어놓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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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영광을 지닌 황제'가 반갑다며 손을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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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눈을 가진 심판자'가 현 위치가 판데모니엄 20층계 스테이지임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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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르는 길잡이'가 그닥 좋지 않은 곳에 떨어졌다며 당신을 비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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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아주 친숙한 곳이라고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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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측 하단에 성좌들이 보내는 알림들이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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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이 층계의 보스 몬스터는 자신의 권능이 없다면 클리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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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유성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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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선배에게 들은 대 흑염 대처법은 아직 써먹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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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몬스터 급이 아니라서, 본래 하던 공격대로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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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속을 유영하는 감시자’가 당신의 위계를 6위계로 추측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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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태풍의 검귀’가 당신의 성장 속도에 경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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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들이 당신의 성장 속도를 보고 경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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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3할 정도는 숨겨두고 있음에도 6위계로 추측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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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예측을 잘한다고 해야 할지 못한다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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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갤 선배들 말대로라면 ‘악령’에 가까운 형태의 몬스터인 잔향의 유령은 매서운 불빛을 뿜어냈지만, 생각보단 쉽게 소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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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를 유지한 채 첫 번째 불의 장막을 꿰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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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자욱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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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계속 마주한 몬스터는 두 종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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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생긴 건 잔향의 유령과 비슷하나, 실체가 또렷하고 몸에 달라붙어서 폭발하려고 하는 몬스터 스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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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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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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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드는 썩 앙증맞은 소리 뒤에 우렁차게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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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드의 폭발은 호신강기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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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불의 감시자’라는 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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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병사가 양손으로 든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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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담긴 불꽃은 6위계가 발현할 만한 강기와 비견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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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돌풍이 옆구리 옆을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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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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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불똥 사이로 한유성의 검로가 짓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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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머리통이 으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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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마지막 장소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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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스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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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처럼 생기지 않은 거대한 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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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이름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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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관짝의 문을 열어젖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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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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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보았던 몬스터들과 달리, 흑염의 농도가 확실히 짙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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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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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나르(Revn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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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몸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덩치를 가진 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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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이 차곡차곡 쌓인 형상의 악마였다. 거대한 덩치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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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으로 쥔 망치가 땅에 수직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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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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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이 공중에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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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발의 차이로 몸을 뒤로 쭉 뺀 한유성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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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보스 몬스터 레브나르는 자신의 권능을 부여받지 않고서는 처치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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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당신에게 권능을 부여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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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의 약점은 속성상 상성인 물 부류가 아니라, 흑염보다 더 강한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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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하는 확신이라는 것은. 초월갤 선배도 앞서 말했던 이 부분을 근거로 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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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성좌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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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걸었나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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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를 등록한 것은 예상 밖의 성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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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퀘스트 발생! '빛을 쫓는 성녀'가 퀘스트를 등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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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어떠한 성좌에게도 권능을 받는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해당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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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조건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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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 아이템 – 회복의 용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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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보상이 권능 같은 게 아니라 아이템이라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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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는 성녀’는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에게 몇 달 전에 따로 이야기를 들었던 성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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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성좌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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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자신에게 완전히 적대적인 위치에 서 있는지, 아니면 성좌라는 입장 때문에 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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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빛을 쫓는 성녀'는 아마도, 베디스 마르니아…말 그대로 성녀야. 일단 힐러 포지션이고…탑 끝자락에 다다르면 결국 혼자 등반해야 하는 상황에선 조금 더 불리할 수밖에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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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음, 베디스에게 단 한 번이라도 도움을 받지 않은 하드 난이도 등반자는 드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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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스스로 무한 회복하면서 몬스터들 두들겨 패던 피 칠갑 성녀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앗!! 재가 나보다 더 강할 때도 있었다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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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전 기수 등반 당시에는 평판이 멀쩡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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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나도 마르니아에게 도움은 꽤 받았지…근데 그렇다고 ‘빛을 쫓는 성녀’가 된 그녀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어쨌든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성좌는 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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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생각도 대마법사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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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는 성좌 차단 안 하고 층계를 클리어하는 조건을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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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런 건지, 깜빡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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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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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성좌들에게 마법을 보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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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있다면 숨기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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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20층계 이후로는 어떠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성좌 차단을 풀 생각이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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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나르의 얼굴은 눈코입이 없는 그저 불꽃 그 자체였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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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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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 검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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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기는 곧, 검강(劍罡)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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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대마법사 선배에게 들었던 조언의 핵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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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흑염은 물 속성 공격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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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그런데 더 강한 같은 화염 계열의 공격으로 맞대응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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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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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해볼 만해서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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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 검강을 피워올린 상태로 왼손으로는 마법 술식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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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속성 계열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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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드르(el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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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와 마법의 동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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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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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融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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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에 무언가 한 겹이 더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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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검강 속에서 홍염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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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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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가파르게 꺾이는 게 느껴졌지만, 잔여 마력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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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개별적으로 발현시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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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과 마법을 일체로 뒤섞어버리는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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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을 당해서 못 보는 성좌들이 봤다면 이 장면을 보았다면 경악을 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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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초월갤의 대마법사 선배가 오러회로를 통한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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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초월자 선배들도 봤다면 썩 놀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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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회로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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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와 마법의 혼합을 수차례의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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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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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걸 단번에 해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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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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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보스 몬스터 레브나르의 몸이 양 갈래로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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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시야를 다시 알림창이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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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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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82 → LV.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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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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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 한유성' 20층 스테이지의 점수를 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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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20층 랭킹 점수 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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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연합장 : 1,12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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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자명천녀 : 1,11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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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 흑성 : 91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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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 추적중 : 89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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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 삶은고통이기본값이다 : 89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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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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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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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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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 5,4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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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차단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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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은 풀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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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잘린 채 재와 연기를 흩뿌리며 소멸하여가는 모습이 성좌들의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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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자신의 도움 없이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을 쉽사리 믿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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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저 알림은 좀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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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근데 검강을 최대로 끌어올린 상태로 지속해서 두들겨 팬다면, 굳이 ‘흑염’을 공략하는 관점으로 접근하지는 않아도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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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빛의검 선배가 달았던 댓글대로 검강과 마법을 융합하지 않았어도, 순수하게 힘을 더 끌어올린 검강만으로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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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와 마법의 융합을 실행해보기 위해 조금 더 수고를 들인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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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가 성좌가 입이 그렇게 가벼워서 쓰냐며 어떤 성좌를 크게 비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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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창성자’가 거대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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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는 성녀'가 등록한 성좌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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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 '회복의 용골'이 지급됩니다. 6층 층계 대기실에서 수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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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는 성녀'가 당신에게 고생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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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림창을 끝으로. 21층 층계 대기실로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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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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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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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초월자 갤러리를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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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21층 층계 대기실에 왔음을 초월자 갤러리에 글을 올리면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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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1층 층계 대기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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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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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강이랑 화염계 마법 융합시켜서 쓰러트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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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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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게 무슨 소리니…등반 등반자야. 시잇팔- 그게 융합이 왜 되는 것이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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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가 된다고 설명했는데 왜 갑자기 그랬던 적 없는 것처럼 다들 호들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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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된다고 한 걸 다 해내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거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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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아주 맞는 말이에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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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혹시 사진은 찍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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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선배의 말투가 급격히 부드러워진 걸 보니, 검기와 마법의 융합 형태가 꽤나 궁금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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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ㄴㄴ 못 찍음. 거리가 벌어졌을 때 한 게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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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찰나의 상황에서 갤러리 단말기를 들고 사진을 촬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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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좀 쉬다가 대기실에서 해서 찍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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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여기서 찍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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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고마워. 궁금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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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스윗- 하네. 등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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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은 개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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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비롯해서, 내가 이 판데모니엄 탑에서 아직도 살아있는데 일조를 해준 선배인데 그 정도 수고는 해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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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단 한숨을 돌리며 미래에 대해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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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이 빠르게 더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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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좀 있으면 또 교류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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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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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뒤면 교류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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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층 스테이지에 진입하기엔 상당히 애매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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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수련이나 좀 하다가 교류회를 끝내고 다시 등반을 이어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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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어볼 게 하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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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회복의 용골이란 아이템을 성좌 빛을 쫓는 성녀에게서 받아냈음. 성좌 퀘스트 클리어해서. 쓸만함?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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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회복계 G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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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최상급 회복 아이템 중 하나임. 저것의 최대 장점은 보통 저 정도로 회복력이 뛰어난 아티팩트는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게 대부분의 한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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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그건 다른 이들한테도 효과 적용해 줄 수 있음. 플레이어든 NPC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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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효과 능력은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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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몸체 잘린 부위 수복. 내장 파열 수복. 신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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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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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회복력을 가진 아이템이라면 꽤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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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가 가진 아이템 중에선 레벨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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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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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로 만들어진 팔찌처럼 생긴 [회복의 용골]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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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벤토리에서 야구공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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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손아귀에 있는 야구공은 첫 번째 야구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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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내의 코인 상점에서 산 야구공은 내가 마운드 위에 서서 던졌던 야구공보다도 더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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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첫 번째로 구매한 야구공은 몇 번 더 던지면 부서질 정도로 마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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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이 끝났을 시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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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첫 번째 공을 던지지 않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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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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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공은 의미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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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부숴버릴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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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에 쥔 건 네 번째 야구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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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와 세 번째는 진작에 박살이 나버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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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을 혼자서 벽에 던지고 받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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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맑아지게 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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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부좌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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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 일은 ‘권역’을 창안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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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을 창안해야만 그다음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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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권역의 앞쪽에 무언가 채워야 할 빈칸이라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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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 창안의 벽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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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 무한한 상상력과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실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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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검 선배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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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상상력까진 몰라도, 권역을 창안할 정도의 상상력은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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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상상력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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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뭔가 다른 게 비어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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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아마도, 계기가 부족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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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심상을 구체화할 경험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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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더 큰 역경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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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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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역경과 위기는 충분히 겪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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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판데모니엄 탑은 내가 어느 정도의 역경과 위기를 겪길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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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에 도달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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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독한 역경의 반복과 깨달음의 연속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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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이상의 경험치가 축적되어야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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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을 조금이라도 구체화 시키려고 하면 흐지부지 흩어져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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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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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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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교류회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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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교류회 서버#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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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교류회 테마 :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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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인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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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대에 들어선 이후, 첫 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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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경을 보아하니, 위치는 산 아래에 있는 출발점 정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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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누구 하나 쉽사리 먼저 움직이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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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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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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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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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20층대까지 올라왔다면, 이 탑에 적응을 완전히 하진 못하더라도 탑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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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비누’가 아닌 이상, 플레이어 간의 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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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는 플레이들만 있다고 해도, 최소한의 긴장감은 흐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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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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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는 여느 교류회에서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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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층계 거주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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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면 같은 걸 착용할 생각도. 음성 변조를 할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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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부터는 쭉 층계 랭킹 점수 등록을 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조금 강한 모습을 보여도 ‘비공개’라는 걸 유추하는 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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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의 경우에는 힘껏 싸울 때나, 여타 다른 이들의 힘 정도만 발휘해서 클리어했을 때나. 얻어가는 경험치 차이도 없었기에 머릿속이 복잡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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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내는 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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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번 교류회는 자신과 같은 21세기 지구인들이 20대 층계에선 통상적으로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무력은 어떤지. 그 정도를 알아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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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층 이후의 정보들이야 를 눈팅할 수 있는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 덕분에 알 수 있었지만 20층 대의 정보는 자신이 얻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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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층에 올라온 이상, 아럐 층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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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길드장인 연합장처럼 길드에 최대한의 인재들을 수급해 넣겠다는 의지 같은 게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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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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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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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용병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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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끔한 갑옷을 입은 사내가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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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5위계 기사 울브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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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길드를 통해 그대들을 부른 목적은 이 산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라는 황실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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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브그레이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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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인명록을 미리 받아놓은 상태다. 그래서 혼선이 없도록 내가 미리 조를 구성해뒀으니, 배정된 대로 임무를 수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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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들은 울브그레이의 말에 그를 보던 시선을 옮겨, 플레이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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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눈 앞을 가린 알림창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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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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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창들은 이번 교류회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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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베르딘 산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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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찾아내면 교류회는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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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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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브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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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있나, 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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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들이 탑 층계의 흐름과 함께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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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 때문에 NPC를 본인들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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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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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의 질문에 울브그레이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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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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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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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면 그게 보물인 것을 알 거다. 보물의 개수는 총 3개. 3개가 다 나오면 수색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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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브그레이는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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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피를 보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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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브그레이의 말을 끝으로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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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창에 누군가와 팀이 되었는지, 그 목록이 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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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아닌, 층계 숫자 옆에 있는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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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조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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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1조, 총 10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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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21 옆에 있는 숫자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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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과 같은 3조의 일원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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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눈이 가장 먼저 찾은 3조 일원의 현 층계 위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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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층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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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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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 머리카락의 여성은 한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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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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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감정이 보이지 않는 썩 침착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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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인사를 나누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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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쾌활해 보이는 얼굴의 금발 서양인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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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 층계 위치는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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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길어도 이틀로 끝날 인연 같은데. 이름 같은 거 서로 알려줄 필요 있나. 번호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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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스스로를 검지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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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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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짓으로 한유성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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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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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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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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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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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도 사내의 제의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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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는 눈에 띌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잘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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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찾을수록 좋은 보상을 줄 게 당연하니,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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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층의 사내는 자신의 층계가 제일 높았기 때문인지, 이 조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걸 가지고 있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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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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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편한 마음으로 앞서는 둘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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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으로 보물을 찾으면 점수를 더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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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거구 사내. 1번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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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급할 건 없다고 본다. 이 30명이란 인원을 데리고 시작한 임무에서 보물이 3개 밖에 없다는 건 상당히 찾기 어렵다는 뜻일 테니. 3등도 보상이 낮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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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의 말은 꽤 논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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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이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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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별일 없겠죠? 본인이 반드시 클리어하고 올라가야 하는 층계 같은 것도 아니고. 보물 못 찾아도 죽지도 않는데. 막 얻으려고 다른 플레이어 죽이고 그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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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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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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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 머리카락의 여성은 자신이 중얼거리곤,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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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줄줄이 늘어놓고 나니 본인이 내뱉은 말이 꽤 그럴듯하다는 걸 인지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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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가 있네요. 보물 찾고 얻을 점수가 탐이 나서 서로 죽일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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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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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같은 플레이어를 단 한 번도 죽이지 않은 사람이 매우 희소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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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내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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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럼 전 일단 죽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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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올라갑시다. 1번은 꽤 의욕이 충만한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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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내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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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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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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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어떻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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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사람들 입 모양을 많이 봐서, 어느 정도 구분이 되거든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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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동 번역이 되어 들리지만, 그렇다고 입 모양까지 커버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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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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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나 등반 중인 난이도 같은 걸 굳이 말할 생각이 없는 거지, 국가 정도는 들켜도 상관없었지만. 황당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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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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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출신을 맞췄기 때문일까, 본인이 살던 국가도 바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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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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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그런 게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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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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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은 일단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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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맨 앞에서 전방을 지그시 응시하는 1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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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계속 전방 주시하고 있어. 내가 좌측, 3번이 우측 위주로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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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이 고개를 뒤로 힐끔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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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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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내가 기감을 넓게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이 어느 각도를 보고 있든 대처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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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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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대체 보물을 어떻게 찾으란 거냐? 생긴 게 어떻게 생긴 지는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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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 봐, 딱 보니까 찾을 방법도 이 산에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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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곡괭이를 들고 땅을 내리찍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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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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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어디서 얻어서 들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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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대한 대답이 3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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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관련 퀘스트 한 적 없어요? 10층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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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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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걸 주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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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경험하지 않은 퀘스트 유형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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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감은 이런 드높은 산이라면 일단 중턱까진 올라가고 봐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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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난 온전한 즐기는 자의 마인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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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부터 쭉 시작된 다층적인 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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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사이에 있던 교류회들은 내게 비정상적으로 안도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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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교류회를 그냥 쉬는 구간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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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중턱까지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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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1번이 뒤를 돌아서 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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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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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번의 의문을 듣고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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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높은데 중턱 전에 뭐가 있을까 싶어서. 산 정상에 3개가 모여있어도 그닥 이상할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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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맞는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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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찾는다고 바로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찾으면 충분히 뺏을 수 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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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이번 교류회는 여러모로 악질적인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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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는 30명인데 보물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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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대놓고 극렬한 갈등을 조장하는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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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안 하고. 하나만 반드시 찾는 쪽으로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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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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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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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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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3조 세 명이 속도를 올려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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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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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기준에선 조금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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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교류회의 플레이어들을 기준으론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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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로 산의 땅을 내리치는 플레이어들을 지나치고 중턱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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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숨을 가쁘게 들이마시며 땀을 닦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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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깃발처럼 꽂혀있는 아이템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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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아이템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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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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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작대기는 뽑아내자마자 쓸데없이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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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페리움 마정석 탐지기’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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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페리움 마정석 탐지기’는 조당 하나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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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던 1번이 옆에 빙 둘러져 있는 탐지기 중 하나에 손을 뻗었지만, 무언가에 막힌 듯 손이 뒤로 퉁겨지듯 들어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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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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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뜬 알림창이 1번의 앞에도 뜬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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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이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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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네. 만지는 게 되면 부숴버리는 게 나은데. 못 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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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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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득바득 올라온 20층대 플레이어라 그런지, 성격이 그렇게 원만하진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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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대 플레이어까진 그래도 순진한 맛이 남아있는 플레이어가 꽤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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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름대로 악전고투를 겪고 20층대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들이라 그런지 다들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장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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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짐짝은 될 확률이 없어 보이는 점은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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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페리움 마정석 탐지기’의 사용하는 방법은 마나를 불어넣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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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탐지기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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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지기의 윗부분에 있던 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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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끝 지점에서 퍼져나간 마나의 파장이 이번 층계에서 찾아야 할 보물의 위치를 파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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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이 미간을 와락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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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손쉽게 굴러가는 일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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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지기가 찾아야 할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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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페리움이란 이름의 마정석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까진 탐지기는 제 몫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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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찾는 과정이 너무 시끄러운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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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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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들이 돌을 얻는 순간에 제압을 하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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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충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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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들리는 외침대로, 눈빛에 살기를 띄운 이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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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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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에서 가장 낮은 층계 위치하고 있었으니, 적들의 입장에선 내가 제일 약자로 보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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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놈이 마정석 탐지기까지 손에 들고 있으니 빈틈이 많아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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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좀 허술한 가죽 레더를 입고 있으니, 내가 본의 아니게 낚싯대를 올려놓은 상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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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지금 상황이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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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탐지기가 저기 널려있는데. 왜 저걸 놔두고 굳이 이쪽을 노리는 거야? 싸워야 하는 걸 굳이 감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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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지적은 필견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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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이 뱉은 의문에 대답을 한 건 무기를 빼든 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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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10개씩 있으면 어느 정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3개라서 저러는 것 같은데. 찾자마자 뺏는 게 가장 간단하다는 결론이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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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내 말에 납득을 한 건지 탄성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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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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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발을 산에 지탱한 채 검을 들고 있는 8조의 27층 플레이어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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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그 판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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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날 뻔히 노리고 있는 놈의 입에서 나올 대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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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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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7층과 대화를 좀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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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칼 빼 들고 서 있으면, 안심하고 탐지기가 알려주는 곳으로 가서 파밍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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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 27층은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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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 보물이라는 걸 하나 얻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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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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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봉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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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 탐지기는 3번에게 넘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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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0층대 교류회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어떤지 아직 묻지 못했으나, 굳이 묻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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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을 평상시대로 휘둘러대면 이 플레이어들의 사지가 찢길 거란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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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꺼내든 게 17층 층계를 클리어하고 획득한 무기, [우연을 품은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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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다수한테 위압감을 주는 방법은 뭐가 있겠냐. 죽이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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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짓밟아야 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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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그럴 땐 본보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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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가장 먼저 튀어나온 놈을 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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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험악하게 짓눌러야 하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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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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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중요한 건 기선제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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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조 27층을 향해 봉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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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를 죽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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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찍어 눌러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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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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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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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 27층이 검에 검기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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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일으키면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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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해서 맞을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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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3위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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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로의 궤적이 훤히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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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공격을 걷어내고 직선으로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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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초적인 무기술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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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상체 중앙에 봉이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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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봉을 그대로 들어 올려 오른쪽 어깨를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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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계속 27층의 몸뚱이를 두들겨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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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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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층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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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을 일은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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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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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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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와 별개로, 27층이 21층에게 처맞는 광경은 꽤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인지 근방에 있는 열댓명의 시선이 모두 쏠리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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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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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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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층의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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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7층의 몸뚱이에 최하급 포션을 들이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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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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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말투가 공손하게 바뀐 3번이 내게 매끈한 질감의 마석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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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페리움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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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깽판을 치는 틈에 탐지기를 작동시켜서 이페리움을 찾은 거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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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막대기를 잡자마자 막대기 몸체가 세차게 흔들리는 걸 보고서. 적어도 마석 하나는 근처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 예상이 정답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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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3번. 예상외로 유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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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여성, 3번은 할 말이 남았는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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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 발견자인 저한테만 추가로 공개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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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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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으로 보물 발견하면서 추가 점수 조건은 달성했어요! 나머지 2개가 모두 찾아질 때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점수 그대로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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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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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1등으로 찾아낸 상으로 이번 교류회가 끝날 때까지 적용될 추가 조건을 부여할 수 있대요! 저희가 보물을 무조건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종류의 그런 사기적인 조건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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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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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안에 결정해야 한다는데…! 사십 초 남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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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견을 묻는 이유는 방금 보여준 모습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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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 플레이어 간 살인 불가 조건. 비무 테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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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테마를 비무 테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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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위험만 없어지면 보물은 완벽히 지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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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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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말이 끝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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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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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보물’을 발견한 ‘3조’에 의해 규칙이 개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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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교류회에 새로운 규칙이 정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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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교류회에서는 플레이어 간의 살인이 용인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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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3조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선도 허공으로 향하는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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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 건 모두가 새로운 규칙이 정립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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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정도면 충분히 다른 조원들에게 경고할 만한 판은 만들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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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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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을 부어주었지만,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있는 27층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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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생긴 새로운 규칙을 세운 게 우린 걸 알고 있잖아. 근데 내가 애를 죽이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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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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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죽일 듯이 팼으면서 그게 모순적인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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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죽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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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닥을 질질 끌었던 봉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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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3조는 보물 하나를 얻는 것으로 끝을 낼 거야. 건드리지만 않으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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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포를 놓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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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펼쳐놓은 깽판 때문인지, 따라오는 다른 조의 사람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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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중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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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처마처럼 길게 뻗어있는 그늘의 안쪽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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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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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의 1번은 날 수상하게 바라봤지만, 마석을 1등으로 찾았기 때문인지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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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비공개’ 이놈이 몇 층에 있을지 예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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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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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예측은 하드 난이도 18층임. 아, 근데 설마 뒤지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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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독보) 뒤졌을 리가 있나. 한 19층쯤 오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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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또또 습관성 올려치기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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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알데라민) 나 같으면 1등 찍으면 계속 점수 등록할 텐데 등록 안 하고 오르는 게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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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1등, 늘 짜릿하고 새로워서 계속 등록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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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쌍검은낭만) 또 궁금한 것은 비공개 이놈 현재 위계가 얼마냐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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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음…5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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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날카로운창) 빨리 올라갔어도 18, 19층일 텐데. 21세기 지구인 출신이 그 시점에 5위계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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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날카로운창) 30층 갓 올라온 21세기 지구인 애들 다 빌빌거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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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날카로운창) 위계는 높게 쳐도 4위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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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생분석가) 뭐…4위계가 정론은 맞는데. 이제껏 보여준 점수 포텐을 보면 5위계가 아니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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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또 다른 이슈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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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흑성) 광마 그 정신 나간 인간이 66층을 클리어했다. 본인 친위대인 광혼혈위대 데리고. 광마를 포함한 5인 모두 67층에 진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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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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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삶은고통이기본값이다) 연합장 이 인간이랑 같이 진입했던 공략 연합 길드원 거의 다 뒤지지 않았냐?? 광마 대단하긴 하네. 이 정도면 양강구도(兩强構圖)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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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검은손) 원래 층계 위치 아니고 무력만 따지면 양강구도 취급이었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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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는아직살아있다) 연합장이고~~ 광마고 뭐고~~ 비공개 이 새끼 언제 30층 올라오냐고- 네놈이 불러올 대격변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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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개판이자 대애애애격변이긴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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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1. 이제껏 나왔던 층계 점수들이 오류 같은 게 아니라면 이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2. 날창이는 처맞게 될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게 될 것인가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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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살 같은 조건을 내걸어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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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불만이 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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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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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내 되물음에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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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사용하지 못해서 안 쓴 게 아니지 않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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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의 추론은 정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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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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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잖아. 1등으로 추가 점수 획득하는 건 거의 확실시 된 일이고. 보물이 열댓 개 있는 것도 아니고 3개. 이 정도면 우리 2조가 1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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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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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정론이라는 걸 인정은 하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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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옆에서 나와 1번의 대화를 듣고 있던 3번이 찬물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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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우리가 1등이겠지. 같은 조가 막 두 개씩 획득하고 그러지 않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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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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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우가 일어나면 바로 강탈할 거야.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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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마석을 제일 먼저 찾아낸 점수는 이미 확보를 해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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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를 확보하는 기준이 몇 분 전 이번 교류회의 법칙을 알려준 사람. 5위계 기사 울브그레이에게 보물을 전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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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점수 획득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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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보물을 두 개 찾는 조가 생긴다면 울브그레이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강탈하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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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쉬고 있는 척, 주변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그르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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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5층 플레이어인 3번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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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류회 외적인 걸 물어봐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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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갑자기 히죽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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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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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물어볼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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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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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3번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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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음, 조금 더 재미있는 걸 물어볼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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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을 안 해줄 건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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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은 딱 30. 3위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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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계까지 말해주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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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레벨에 3위계인 게 3번의 입장에선 당연해서 그냥 말해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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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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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음, 글쎄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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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난이도를 맞혀보란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난 노멀이 맞다고 그냥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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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난이도였다면 노멀이라고 물어본 것 자체에 긁혀서 실토를 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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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말해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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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1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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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층을 거주지로 삼고 있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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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는 내 예상대로면 하드 난이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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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난이도고…4위계다. 남들도 그렇듯, 좀 오랜 시간 27층 층계 대기실에서 보내면서 4위계로 올랐지…쉽지 않았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슬슬 죽음 위험이 더 커진다고 하니, 뼈와 살을 깎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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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상대로 하드 난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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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4위계 된 건데, 왜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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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을 하기엔 1번의 얼굴이 너무 진중했다. 정말 피와 살을 깎는 고통을 겪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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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왕) 개척자 저놈도 재능이 넘쳐흐르는 쪽이지. 노베이스 출신인데 38층에서 6위계 찍은 거, 말 안됨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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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초월자 갤러리에서 내가 6위계에 도달하고 난 뒤에 올렸던 글. 그 게시물에서 하드 난이도 38층에서 6위계를 달성했던 개척자 선배가 칭얼거렸던 댓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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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댓글에 달렸던 수왕 선배가 달았던 댓글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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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있는 두 명이 나와 같이 21세기 지구 출신인 것도 성장 속도가 이런 이유에 한몫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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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1세기 지구인치고 비정상적인 속도를 내고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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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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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걱정대로 같은 조가 두 개의 보물을 쓸어 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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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교류회'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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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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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84 → Lv.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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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수치가 5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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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 수치가 6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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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수치가 5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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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수치가 6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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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교류회' 임무 달성 기여 점수를 계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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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포함된 조, 3조가 '1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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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보상으로 2000코인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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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보상으로 아이템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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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1층 층계 대기실로 다시 귀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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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달 하고도 20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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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즉, 이제 내가 이 탑에 소환 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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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층계는 27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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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레벨은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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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간 겪어본 적 없는 벽을 앞에 뒀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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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6위계의 ‘권역’ 앞에서 성취가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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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성장 속도가 한참 비정상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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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심각한 정체 구간이 오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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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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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권역은 왜 내게 손을 흔들어주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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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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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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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름을 정한 내 고유의 심법 ‘파한입도결(破限入道訣)’을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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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심상(心象)을 계속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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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역의 근간이 될 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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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어느 지점에 다다를 때면 계속 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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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구조물이 와르르 무너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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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입도결을 창안하기 전까지도 느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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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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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걸 내가 21세기 지구인이기에 가지고 있는 경험의 부재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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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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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권역이 제대로 구성이 안 된다는 건, 전에도 말했지만 계기의 부족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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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그렇지, 죽을 위험을 좀 더 겪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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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이미 많이 겪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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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더 많이 겪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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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엘프다) 고생 좀 더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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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그래도 덕분에 네가 마법 익힐 시간이 생긴 건 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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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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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난 4달이란 시간 동안 앞선 시간들 보다는 마법 수련에 힘을 좀 더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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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 벽에 막혔다는 감각이 들 때, 마법을 수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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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게 있어 시간 낭비를 줄이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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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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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근본은 결국 무공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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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류의 권역을 창안 해내기에는 마법 숙련도가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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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위안이 된 건 마법을 수련하는 것 말고도 하는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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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갤러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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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갤 선배들은 내 성취가 권역이란 벽에 장기간 막혀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내 위주로 흘러가던 갤러리의 방향을 조금은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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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자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꽤 하게 된 발단이 된 게시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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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봐라, 매화의 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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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시궁창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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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2870391283091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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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롱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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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창 선배의 영롱한 검기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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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는 사진은 릴레이 인증이라도 하듯, 줄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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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 색 인증 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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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썩 파장을 일으켰던 건, 빛의검 선배의 구려도 너무 구린 촬영 각도의 셀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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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를 써버렸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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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정면을 똑바로 바라본다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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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으흐흐, 매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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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야, 이딴 식으로 찍어도 멀쩡해? 아, 멀쩡한 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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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은발 적안은 성공 공식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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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하와와. 역시 예쁜 것은 가끔 보면 눈 정화가 되는 것이와요. 그 등반을 하던 시절이 떠오르는 시선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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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각도를 이상하게 찍어도 반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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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게시물이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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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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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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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꽁꽁…! 제 왕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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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얼음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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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32904230122.png, 409126756318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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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푸르르고 새하얀 곳이 얼음왕국의 중심부인 눈꽃 회랑…! 그리고 여기가 겨울 정원! 꽁꽁! 여기가 은빛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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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야, 미안한데. 다 똑같은 사진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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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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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선배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느 곳이든 별 차이가 없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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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선배들의 글들은 내 어지러운 머릿속을 식혀주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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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를 모두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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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심법을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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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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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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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소환된 지 1년째가 되기 두 달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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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7층 스테이지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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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간 거래의 쿨타임도 마침 끝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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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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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한기가 정면으로 매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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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전신을 떨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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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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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이 허공에 서리 결정들이 맺히듯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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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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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부터 차오르는 냉기는 그간 느꼈던 한기 같은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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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호신강기를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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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후, 알림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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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난이도 27층은 퀘스트 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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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또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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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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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뒤에 자리 잡은 풍경을 보자면, 남극이나 북극이 배경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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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 자리 잡은 건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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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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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양식이 중원 무림 배경에서 봤던 것과 엇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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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일단 인벤토리에서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꺼내 앞에 보이는 누각(樓閣)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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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빙설이 뒤덮은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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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방금 찍은 사진을 첨부한 게시물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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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금방 후두둑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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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음, 어디서 많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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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빙궁이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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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북해빙궁(北海氷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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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조심해라. 빙궁주들은 모두 괴상한 측면이 있는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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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궁주치고 정상인 놈들을 찾을 수가 없는 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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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뇌까지 꽁꽁 얼어버렸다는 게 정론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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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근데 골치가 좀 아프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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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그러게 말이와요. 빙궁의 무인들은 그 배경 속에서 매우 강한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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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순수 무력은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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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강한 편이와요. 우리 기수가 만났던 궁주는 7위계 중위 정도였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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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겁나 강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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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근데 궁주랑 갑자기 싸울 일은 없을 거야…괴상한 측면이 있긴 해도 폭력성이 그렇게 강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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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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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얼어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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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드디어, 드디어 등반쟈가 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도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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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뭔가 심하게 들떠있는 기색을 댓글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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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제 아이템이라면, 이 북해빙궁의 땅에서도 숨을 멀쩡히 쉬면서 걸어다닐 수 있어요!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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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references/novelpia/331224/19.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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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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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 닉네임, 얼음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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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 베르글룬드는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묶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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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호리병처럼 생긴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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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상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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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한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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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슬픈 일일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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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슬픈 일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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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만들어지는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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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지금으로서 슬픈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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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의 유일한 등반자인 한유성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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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감수성이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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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초월자 갤러리를 할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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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같은 일상만을 보내다가, 초월자 갤러리에서만 특이한 일을 겪으니 그럴 법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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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한유성의 부재에 대해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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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그 상상만으로 아주 슬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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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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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에 눈물이 선명히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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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보았다면 조금은 섬뜩했을지도 모를 장면이었지만, 스노아로서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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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려, 호리병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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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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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그 호리병 안쪽에 담긴 한 방울의 눈물 위에 얼음 조각 하나를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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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아이템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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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꺼내, 한유성에게 차원 간 거래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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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간 거래 진행 중에만 활성화되는 채팅창이 단말기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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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독…! 토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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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아는 두 손으로 자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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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 지금 보낼테니까, 받아요!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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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 알겠어. 복용은 어떻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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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 마시면 돼요. 옆구리에 꽂는 건 효력이 없어요.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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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 알겠음, 근데 내용물이 정확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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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 꽁꽁! 그건 받아 보면 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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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얼음여왕의 마지막 채팅이 마음에 걸렸지만, 호신강기를 운용해도 추위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무얼 잴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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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가 뭔지도 조금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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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접적인 전투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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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프라 히아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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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퀘스트를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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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북해빙궁 ‘궁주(宮主) 위무강’이 내뿜는 극빙기류를 피해 북해빙궁의 아이들을 구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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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극빙기류가 뭔지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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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의 몸을 강하게 휘감고 있는 강렬한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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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위는 통상적인 추위와 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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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얼음여왕 선배가 [실프라 히아르타]를 건네며 추가적으로 채팅으로 적어준 점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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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 퀘스트 내용을 보면, 이 북해빙궁의 소속자들마저도 버틸 수 없는 한기가 빙궁의 영역을 완전히 뒤덮고 있어서 그걸 극복해야 할 거예요 …!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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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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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냉기를 풀풀 뿜어대고 있는 중앙 위치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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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흘러나온 한기를 피해 도망친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라는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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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얼음여왕 선배에게 받은 호리병 속에 든 액체를 쭉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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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온몸이 냉기로 가득 찬 것 같은 충만함이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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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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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심장이 빠르게 박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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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의 육신에 깃들어 있던 세 개의 기둥에 서리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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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실프라 히아르타]의 힘에 따라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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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의 기둥을 뒤덮은 빙결의 기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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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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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뿌연 한기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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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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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러야 마땅한 감각이 몸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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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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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 실프라 히아르타의 작동 시간은 딱 10시간! 그 시간 내에는 해결을 보아야 해요!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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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동안은 이 빙궁의 땅에서 저 압도적인 한기의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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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을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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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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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특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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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풍경들을 바라보며 한 구조물을 떠올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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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가옥(水上家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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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저택이 들어 올리고 있는 모양새의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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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중가옥을 받치고 있는 물 대신,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고 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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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얼음이 들어 올린 거대 저택에 다가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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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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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냉기가 풀풀 풍기는 대지 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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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면으로 붙어진 부적이 펄럭펄럭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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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을 펼쳐내자, 건물 내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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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주께서 대체 어떤 일을 겪고 계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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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더 강대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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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목소리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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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벽에 몸을 기대고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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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빙궁 전체가 얼어버릴 거예요! 이, 이미 얼어져 있지만…! 이대로 계속 냉각화가 되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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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한 여성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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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년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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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주께서 아무런 방책이 없으실 리는 없단다…조금만 버티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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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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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이들에게 아무런 방법이 없을 거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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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에 보이는 이들만 해도 20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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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모두 구해내야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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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얼음여왕 선배에게 진심 어린 경외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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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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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프라 히아르타를 복용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 빌어먹을 판데모니엄이 부여한 판의 정식 공략법을 따라야 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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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자력으로 구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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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의 효과 지속 시간이 단 10시간인 것이 변수였으나, 얼음여왕 선배의 말대로 오히려 그렇기에 강력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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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은 거대한 얼음의 문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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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연 연기가 격렬하게 활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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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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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건 수많은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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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지는 않았으나, 옅은 살기들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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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북해빙궁의 사람들이 입는 옷으로 보이는 군청색의 옷도 입고 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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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궁과는 완전히 무관계한 사람으로 보이니, 살기가 쏘아지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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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궁의 이들도 버틸 수 없는 극한기가 북해빙궁을 뒤덮고 있는 현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 적나라한 살기가 들이닥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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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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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양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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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손의 움직임에 따라, 빙궁 내부의 극한이 천천히 침묵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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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체내의 냉기를 느끼며 추위를 조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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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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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에 세워진 세 개의 기둥에 서늘한 빙결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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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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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이 이 장소를 통제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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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단순히 얼음여왕 선배가 준 아이템이 뛰어난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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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武)를 비롯한 전투 감각에 대한 재능은 분명 뛰어나다고 했지만, 그 외적인 분야까지 그 정도 결과물을 낼 수 있을 수는 없다고 했지. 선배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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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마법만 해도, 무공보다는 펼치기가 훨씬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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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자들을 이해시켜서 제대로 끌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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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을 정리한 한유성 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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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보여주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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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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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손이 한 소년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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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빙궁의 사람들도 미처 제대로 살피고 있지 못했던 소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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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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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웅크린 채 냉기에 강하게 잠식된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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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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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도 한유성이 소년 린유의 어깨 위에 올리고 나서야, 린유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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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빙결의 기운을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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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유의 몸에 침식되어 있는 빙결의 한기와 빙결 조각들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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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빙궁의 사람들은 여전히 한유성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은 인지를 했기 때문인지 방해를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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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서리가 증발하며 얼어붙어 있던 빙결이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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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벌 떨리던 소년의 몸체가 진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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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 20여 명 사람 중에 가장 관리책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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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북해빙궁 5위계 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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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내가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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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륜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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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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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사내, 강륜의 말을 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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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개인적 용의로 당신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그러니 의심은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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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더 하게 만드는 말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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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럼에도 어쭙잖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보다는 솔직한 게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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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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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짓으로 린유를 가리키니, 강륜은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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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입을 열어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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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궁주가 뿜어내고 있는 냉기를 피해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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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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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지만…거기까지 가려면 궁주께서 풍기고 있는 냉기를 뚫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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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오른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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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손짓에 따라, 대기에 응어리진 빙결의 기류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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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다시피, 내가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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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륜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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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빙궁의 혈통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만한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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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륜의 의문을 한유성은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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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여왕 선배가 준 아이템에 대해 설명할 지식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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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안내를 해. 일단 얘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상황을 정리하자고. 그러면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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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륜은 한유성의 말의 맞다는 걸, 아직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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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강륜의 길 안내에 따라 움직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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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해빙궁에서 가장 유일하게 추위가 배제된 장소. 연위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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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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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해야 할 빙궁의 아이들이 20명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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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를 찾아 왕복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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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0여 명의 안전이 확보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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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눈앞에 나타난 창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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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북해빙궁 ‘궁주(宮主) 위무강’이 내뿜는 극빙기류를 피해 북해빙궁의 아이들을 구명하라!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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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난 퀘스트 클리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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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대로 28층 층계 대기실로 이동을 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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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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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가 일그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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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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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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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인간이 갑자기 이곳에 튀어나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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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체에 대해 알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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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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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시간이 뚝 멈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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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바라보던 빙궁의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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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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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따라와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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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천마(天魔) 8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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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자신을 뒤덮는 그림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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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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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할 수 없는 힘이 육신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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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빙궁의 풍경 속에서 한유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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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27층 층계의 시나리오가 연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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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퀘스트가 등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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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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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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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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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몸을 앞으로 기울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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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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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이 이마에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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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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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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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점점 둔해지고, 세상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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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여기 있는데, 정신은 어딘가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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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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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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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은 날 위해서 결투를 포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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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돌파 보상으로 2000코인을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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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13층 돌파 보상으로 아이템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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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 한유성' 13층 스테이지의 점수를 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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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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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벗어나기 전에 눈앞에 나타났던 알림창들이 이제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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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13층 랭킹창이 시야 구석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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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연합장 : 95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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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흑성 : 90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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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 검은손 : 87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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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 추적중 : 84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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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 싱클레어 : 81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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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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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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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늘 그렇듯 타인의 랭킹 점수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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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 : 5,78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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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점수창도 그저 쓸모없는 숫자 놀음으로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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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랭킹 점수를 등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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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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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고민도 없이 거절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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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 이후부터는 랭킹 순위에 따른 보상도 없다고 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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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랭킹창에 이름을 닉네임과 점수를 띄울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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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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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2급 관리자 플리셰크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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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은 혼자 클리어하는 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층계라 반 이네르를 그 층계 한 정으로 살려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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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자체가 오류투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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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생환율 0%의 난이도를 가진 탑, 판데모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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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어려웠던 건 이번 13층계만이 아니라, 13개 층계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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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반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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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긴, 그 말씀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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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셰크가 그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친 뒤 덧붙인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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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들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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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들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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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13층 [리뉴얼]의 명령을 내린 것도. 그 오류의 수정을 위해서 필요한 공략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지난 기수의 플레이어인 반 이네르 님을 13층계만을 한정하여 조건부 부활시킨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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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데모니엄 탑]이 직접 내린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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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놀랐죠. 탑이 적극적 의사 표현을 하는 건 지극히 드문 경우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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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같은 일개 관리자가 최상층부도 쩔쩔매는 탑의 자체적인 결정을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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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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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잖은 알림창들을 내뱉고 있는 것도 탑 자체의 시스템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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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보아왔던 알림창의 문장마저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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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위해서 날 이 빌어먹을 탑에 불러낸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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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을 움직일 힘이 분명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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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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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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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며칠 함께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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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위해서 다시 살아갈 기회를 포기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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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시간은 내게도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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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도 버릴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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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은. 사람이라면 본인의 목숨이 중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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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반 이네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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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눈 대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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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눈 건 이틀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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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 같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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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 뿌리, 하나 남았잖아. 같이 올라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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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였던 네 웃음은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건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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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런 종류의 웃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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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그래야지. 같이 올라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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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이렇게 대답을 했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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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뿌리를 성공적으로 격퇴 시켜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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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앞에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붉은 레이어의 알림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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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플레이어 - 한유성' 감정 - '우울감'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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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14층 이후부터 진행되는 플레이어 멘탈 케어 서비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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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치료 관리자가 층계 대기실에 파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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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개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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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창이 사라진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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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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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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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 관리자 - 유에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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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결투장에서 내 앞을 가렸던 방어막과 유사한 방어막에 둘러싸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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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으로 뒤덮인 방어막은 그 내부에 있는 존재의 형체마저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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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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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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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빌어먹을 단어에 반응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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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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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은 오른손 주먹에 방어막이 파편을 흩뿌리며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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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의 빌어먹을 벽과는 달리, 썩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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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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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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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하나의 방어막을 더 부수고 나서야, 부서진 방어막 속에 있던 존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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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를 새하얀 천으로 된 안대 같은 것으로 가리고 있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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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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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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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14층계 이후부터 파견이 가능한 감정 치유 관리자입니다. 주로 플레이어님들의 우울증이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파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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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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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유성 플레이어님에게 권장되는 것은 약물적 치료입니다. 첫 진료는 무료로 이루어집니다. 스마일 콤파운드를 추천해 드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 수치가 모든 감정 수치를 웃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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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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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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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으로 약을 처방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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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유성 플레이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현재 겪고 계신 감정 수치만으로 계산하여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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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라는 관리자는 일정하게 낮은 음정으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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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을 거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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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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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석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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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분이 더 불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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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관리자를 붙잡고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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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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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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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파견이라 플레이어님의 의사 존중 없이 소환된 점, 죄송합니다. 코인 상점의 우측 하단에 14층부터 새로 생긴 감정 치료 요청 버튼을 누르시면, 언제든 저와 면담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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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리자란 작자가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그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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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딴 거 말고. 다른 걸 좀 물어봐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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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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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게 감정 치유 건을 제외한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하지만 한유성 플레이어는 주목 등급 특급의 플레이어이기에 어느 정도의 문답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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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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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VVIP 회원에 속하신다는 겁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답변할 수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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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이 뭐든, 주목도가 높다는 게 딱히 좋게 들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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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관리자를 죽이는 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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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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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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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에서는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층계 대기실에선 불가능합니다. 공격을 직격 당해도 고통을 느끼지도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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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에서는 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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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과 관련된 정보를 참 아무렇지 않게 알려주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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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맞다면, 올라가다 보면 그놈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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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영역을 벗어난 질문입니다만, 등반을 계속하면 알게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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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답변이었지만, 가능하단 소리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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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본래 하려던 질문을 세 번째에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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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플레이어를 부활시킬 방법 같은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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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의 대답은 직전과 같이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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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권한 밖, 지식 밖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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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모호함도 벗어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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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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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보다는 저런 식의 대답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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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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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질문이 없으시면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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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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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 대기실에 계실 때는 언제든 저를 부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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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는 저렇게 말하고서도 아직도 안 사라지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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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이 분노로 급속도로 치환되는 게 수치로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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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고 했으면서 계속 떠들어 댈 용건이 생각 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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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단기간의 우울 극복에는 효과적이지만, 그게 계속되면 자신을 갉아먹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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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리트는 그제야 공간을 찢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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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분노로 치환하고 있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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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적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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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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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에 처박히는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목표를 세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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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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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올라가서, 그 살아있는 탑이란 새끼랑 대화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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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벤토리의 앞쪽에 자리 잡고 있는 물건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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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화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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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가 자신에게 준 화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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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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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살통을 들어 안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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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통 안의 화살들을 하나씩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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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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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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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통의 구석 모퉁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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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잡힌 걸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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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색의 아주 작은 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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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아공간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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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을 풀면 주머니 속 아이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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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물건을 화살통에 넣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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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아공간 주머니 같은 걸 획득한 적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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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화살통. 내가 선물로 줬는데 잘 챙겨야지. 어차피 안 쓸 거라고 너무 막 흘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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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뿌리에 진입하기 전에 이 화살통을 반이 가져다주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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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머니의 매듭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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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주머니가 열리며 안에 있던 아이템들이 쏟아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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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든 가장 눈에 띄는 아이템은 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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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가 사용했던 검술인 피엘뷔르트의 검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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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법서의 첫 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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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장에는 글이 적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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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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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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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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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전부였다.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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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말을 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선명한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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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게 반이 분명할 정도로, 반 이네르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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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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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네가 살아남을 확률이 있었던 결투를 그렇게 쉽게 포기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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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장에 무언가 남겼다면, 끝장에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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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감은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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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기는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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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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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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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13층의 전투를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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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반 이네르라는 존재가 머릿속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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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마다 사고하는 것을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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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속 곱씹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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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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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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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그렇게 개운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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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서 꺼낸 야구공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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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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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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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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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슬슬,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꺼낼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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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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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냐???? 등반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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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 14층? 14층?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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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 일단 제목이랑 내용에 .만 찍어도 되니까 글을 올리렴,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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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나와, 죽은 게 아니라면 나와아아ㅏ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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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에에에에, 호에에에 여기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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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들의 제목은 하나같이 내 생사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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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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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여러모로 두서가 없었지만, 그래도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은 잘 알아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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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섬세한 내 상담가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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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층 시나리오의 연장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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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두통이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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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갱신된 퀘스트는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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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퀘스트 명 다음에 뜬 퀘스트 기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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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해야 하는 퀘스트 진행 시간은 6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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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두 달이란 기간을 막연히 살아남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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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날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작자가 날 사실상 납치한 이런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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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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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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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노력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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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짓눌렀던 압박감이 그제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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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날 죽이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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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식하게 강력했던 거대한 힘이 완전히 사라진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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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몸의 중심을 서서히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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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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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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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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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마]를 향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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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
||||
|
||||
천마는 싱긋 웃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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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납치한 것이지. 이 천마신교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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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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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는 작자는 날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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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더 얌전히 잠자코 있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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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저러나, 천마가 마음을 먹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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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천마는 내 태도 때문에 날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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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6위계에 도달한 이후, 여섯 달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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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가 오르고 있는 탑의 시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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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한 번만으로 이계 배경보다 무림 배경의 시간 흐름이 느리다고 단언을 내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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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시간 흐름은 층계마다 다를 수도 있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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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단 가만히 천마의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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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섯 달이란 시간 동안 전 무림을 뒤졌으나, 네놈을 찾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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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슬슬 천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예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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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무림에서 본좌의 시선 바깥에 있을 수 있는 존재는 몇 없지. 같은 위계라도 마음을 먹으면 알아낼 수 있는데. 6위계인 네가 본좌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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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그걸 해냈으니, 그 점을 아주 수상하게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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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 동안 어디에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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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는 돌발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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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에게 들은 내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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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딱) 탑 속 고위계로 갈수록 ‘탑’의 존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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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딱) 받아들이는바, 그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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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물론 그렇다고 자신들이 사는 세계가 그저 탑 세계에 존재하는 세계라고 생각을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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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우리가 탑을 종결할 때까지 과연 탑 내의 서사 세계는 실존하는 세계인지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사실 진위는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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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그저 탑의 허구 세계일 뿐인지, 아니면 정말 또 다른 세계에 우리가 잠시 소환되었던 건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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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룡왕) 벨투이- 보통 정론이라고 취급받는 건 허구 세계라는 가설이지만 말이예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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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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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모르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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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7층까지 오를 동안 겪은 일을 되돌아보면. 실존하지 않는 세계치곤 너무 겪은 일들이 너무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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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긴 모든 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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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머릿속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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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딱 선배의 말대로라면,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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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되는 소리 같다고 뭐 목을 검으로 쳐버린다던가 심장을 터트려버리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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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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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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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실 수 있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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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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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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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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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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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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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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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질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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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이란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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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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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설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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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층계씩 올라가면서, 그 층계를 해결하면서 성장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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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 1층, 2층 그렇게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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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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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법으로 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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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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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이 천마란 작자가 나를 대략 반년간 못 찾은 걸 이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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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6위계를 달성한 게 15층계…거의 10층 전이라는 뜻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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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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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이 사실이라면, 무식한 성장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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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장세가 지금 좀 막혀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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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서 그런 소리를 하면 돌을 맞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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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본인 고통이 제일 심하게 느껴지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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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내 말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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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그렇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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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징징거림에도 어느 정도 동감을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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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했다만, 여전히 믿어지진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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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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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결국 인벤토리를 열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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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제가 한 말들이 진짜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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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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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들려있던 게 천마의 양손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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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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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건넨 것의 물건의 뚜껑을 연 천마는 그 물건에 코를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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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것도 이상한데 냄새도 이상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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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셔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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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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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에게 준 건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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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층 층계에 진입한 지 10시간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에 아직 형체를 잃지 않고 있는 음식, [크림 베이컨 파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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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미간을 살짝 구긴 채 크림 베이컨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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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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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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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이제 내 말을 얼추 믿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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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본좌도 네게 말해줄 게 하나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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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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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도와주었던 연설아의 남매, 연유신은 본좌의 두 번째 제자로서 신교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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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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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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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그래도 천마답게, 입에서 음미하고 있던 파스타를 삼킨 이후에 말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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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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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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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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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가 정파의 오점 취급을 받는 게 오명이 아니라, 마땅히 받을 만한 취급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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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의 제자와 함께 수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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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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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의 장남을 해하고 도주하던 연유신을 신변의 안전을 확보해준 셈이지. 연유신의 말에 따르면, 치명상에 가까운 피해는 입혔지만 죽이진 않았다고 했었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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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을 한 천마의 눈에는 이채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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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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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술수를 부리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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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본좌의 제자. 그리고 연유신과 대련을 해서 네 실력을 향상 시키면 되겠구나. 연유신이 널 마주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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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연유신이 이곳 천마신교에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한번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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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방금 제가 한 가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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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내가 묻고 있는 게 뭔지 빠르게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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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밟고 서 있는 땅이 허구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거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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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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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개소리라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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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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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네 말에 한 치의 거짓이 없다고 해도. 내게 넌 그저 이방인의 입장일 뿐이다. 내가 살았음 쉬는 세계에 들어온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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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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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썩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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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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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오르는 ‘플레이어’의 입장에 이방인이란 호칭은 꽤 잘 들어맞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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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오르는 동안, 어떤 세계에도 명확히 소속될 수 없는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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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생의 흔적이 있는데 이 세계가 허구일 리는 없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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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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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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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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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검지로 네모난 창밖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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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연유신은 같은 곳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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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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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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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풍광은 광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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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무림계에서 가장 강대한 무력 집단 중 하나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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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전각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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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풍경의 건물들 아래로, 무수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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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들이 네게 호기심이 많은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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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그저 얇은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을 뿐이지만, 내겐 그 말이 적잖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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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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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음에 대답을 한 건, 천마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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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주(五閣主)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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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있던 장소의 문을 열자마자 그 뒤부터 쭉 따라온 흑의를 입은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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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마신교에는 다섯 개의 각(閣)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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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패혼십위(覇魂十衛) 칠위(七衛), 6위계 정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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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혼십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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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교주, 천마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호위대 열 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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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천마에게 호위대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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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은 내게 친절히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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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의 손님이란 명목으로 존댓말을 계속 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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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각, 창각, 권각, 천각, 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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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보고 있는 건 총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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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각주와 천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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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검각주(劍閣主), 7위계 표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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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천각주(天閣主), 7위계 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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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위헌은 강골을 가진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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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연상될 정도로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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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각주는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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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천마의 앞이기에 기세를 꺼트리고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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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마주 했을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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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가만히 있는데 공격을 하고 그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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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은 저희 패혼십위와 달리, 평소 각주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물론, 각주는 교주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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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감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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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인 무력 집단을 가진 최측근…그런 느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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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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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교주님보다 각주를 더 따르는 부하들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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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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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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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들과 교주님의 무력 차이가 그 정도로 좁혀진 적은 신교의 역사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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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생겨도 천마에게 위해가 갈 일은 없으니 내가 염두에 둘 바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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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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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각주 둘을 지나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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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걸음이 드디어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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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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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뒷짐을 진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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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들으면서 느낀 건데, 목소리는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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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 주최의 쟁천무회 우승자다. 쓰러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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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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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목소리로 뭔 개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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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을 내뱉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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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애애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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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지붕 위에서 초신속의 원거리 참격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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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으로 보일 만큼 지근 거리에 다가왔을 때 날아온 참격을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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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의 파편이 자욱하게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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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위로 들어 올리자 전각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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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천마 일제자 6위계 소향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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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를 입은 여성은 검을 든 여성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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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검을 들고 우선 상황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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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라 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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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월이 무식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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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선택지가 다수일 때나 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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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들어 올려 수평으로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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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 참격을 막아냈을 때, 수준 파악은 어느 정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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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많이 빼고 상대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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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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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정도의 힘은 응당 사용할만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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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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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의 마찰에 따라 불빛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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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월의 검로와 내 검로가 대기에서 계속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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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마찰이 생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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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 있던 천마에게서 한 줄기의 옅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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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세 때문인지, 소향월의 움직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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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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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마는 자신의 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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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을 대놓고 드러내고 싶진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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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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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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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오는 길에 마주했던 각주라는 양반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연무장 정도로 보이는 현 장소에서 수련하고 있던 걸로 보이는 무사들의 시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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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하도록 해라. 어차피 시간은 꽤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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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의 기한을 말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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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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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인이 두 달이란 시간을 길게 여기진 않을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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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긴장은 전혀 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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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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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퀘스트 내용이 생존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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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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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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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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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게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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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익숙한지는 머리 위에 있는 이름 창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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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호북연가 장남 6위계 연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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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공께서 제 동생을 구해주신 분이시군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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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6위계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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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당신이 천마신교에 있는 걸 방금 듣고 좀 놀라긴 했죠…연설아가 무결한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좀 결점이 있는 피해자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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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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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유신은 내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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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이지요. 아, 백리세가의 장남을 죽인 건 제가 아닙니다. 대련한 것도 맞고. 치명상에 가까운 피해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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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놀랍게도 연유신의 말을 들을수록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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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천마신교에 있을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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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연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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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고 있는 벽이 곧 무너질 것 같아서. 그것을 우선 해결해 보고 천마신교를 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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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피식 흘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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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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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있는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막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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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마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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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여기서 내보내 줄 생각은 있으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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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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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그 기간을 네가 말했지 않나. 어차피 한 번 이 천마신교에 발을 들인 이상, 이곳의 안이든 밖이든 네 목숨을 노리는 것들은 많을 테니 여기서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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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맞는 말 같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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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란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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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내 물음에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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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지. 네가 늘 하던 걸 여기서 하면 된다. 너도 원하는 바가 그거 아닌가? 권역을 창안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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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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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에 소향월과 연유신의 눈에 이채가 띄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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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연 건 연유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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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은공도 권역 창안의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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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순순히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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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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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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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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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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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그 절반 정도의 고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연유신이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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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겪고 있는 정체기의 수준을 보면, 그게 두 배로 늘어나는 것 정도는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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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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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갑자기 내 오른손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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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내가 그 벽을 어느 정도 허물어줄 방안을 마련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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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대체 어떤 방안일지 예상이 안 되었지만, 여기서 묻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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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시선이 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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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월의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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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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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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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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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나이를 물어보는 저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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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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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슷한 벽에 가로막혀 있는 사람이라 나이를 물어보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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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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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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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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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차이도 없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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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몇 살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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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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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맞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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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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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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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궁으로 귀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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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돌아오면서도 이상한 소리를 해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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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60일이 끝나기 전에 각주 중 한 명이랑 싸우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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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이 이상한 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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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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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 초위 이상이 아닌 각주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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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건 목숨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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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천마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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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목숨을 싸우지. 대련을 할 생각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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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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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권역의 창조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최소 7위계 초위의 무인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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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60일 이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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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27층이 잘못하면 내 묫자리가 되리란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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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각주 한 명과 싸워야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지만, 천마의 태도로 보아 이미 정한 바를 물릴 인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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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이 대체 뭡니까. 제 벽을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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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옥(延時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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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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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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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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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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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말은 매우 쉽게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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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서사 매체 성장물에서 아주 많이 등장하는 클리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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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얌전히 납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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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옥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장소다. 그러니 준비가 될 동안 대련이나 하고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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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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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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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얼마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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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월과 연유신을 대련 상대로 붙여주마. 그리고 연시옥이 완성되면 들어가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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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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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그래도 방은 개인 방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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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널찍한 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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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을 펼쳤으나, 주변에 무언가가 느껴지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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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천마도 이미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내 사생활까지 궁금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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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썩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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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의 천장을 먼저 찍고. 옆면도 한 차례 촬영한 후 초월자 갤러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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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쓸 내용이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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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마에게 납치된 썰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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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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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823091283094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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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다. 북해빙궁 퀘스트 끝내자마자 갑자기 슉 나타나더니 납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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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놈의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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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층계 시나리오가 연장되었다고 뜨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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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북연가 연설아 오라버니 연유신이 여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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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치명상은 입힌 건 맞는데 죽이진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좀 의심되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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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가문이 개판 난 줄 알았더니 용의점이 가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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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날 납치한 이유는 놀랍게도 그냥 나에 대한 호기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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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강해지는 거에 관심이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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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시옥이란 곳에 날 처박으려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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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느리게 흐르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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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느리게 흐를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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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거 끝나자마자 각주 중 한 명이랑 싸워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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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천마가 갑자기 나랑 각주 하나와 싸움을 붙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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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7위계 초위…답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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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그쪽 천마도 정상은 아니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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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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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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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층계 시나리오 연장이 뭔 20층대에 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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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슨 억까란 억까는 다 끌어당기고 앉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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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저 말대로다. 보통 층계 시나리오 연장은 40층계 이후에나 나오는 게 정론인데. 고생을 꽤 많이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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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엘프다) ㄹㅇ 왜 시나리오 연장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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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호북연가는 상황이 여러모로 골 때리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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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각주 하나와 싸우게 만들려는 의도는 단순히 네 가능성의 한계가 궁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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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아직 권역을 창안해내지 못했으니, 벅찬 상대가 될 순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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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검성의 말대로 거나, 각주 중 하나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는 상태인데 널 이용하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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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현자) 둘 다일 확률이 다분해 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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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이겨낼 수 없는 일은 없는 것이에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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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얼어붙은…! 제가 준 아이템은 잘 사용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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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ㅇㅇ 북해빙궁 일은 덕분에 잘 끝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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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한참은 더 튀어나와서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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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죽일 거라면 당장 자비롭게 단숨에 죽여버려야지. 납치라니, 그쪽의 천마는 근본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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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갈!!!!!!!!!!!! 천마야, 동명이인의 죄를 책임지고 반성을 하도록 하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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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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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천마는 어리둥절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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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상상을 뛰어넘는 개소리를 하는데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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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시끄럽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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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탑의 천마는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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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전에 말했듯이 8위계로 뜨고…그냥 직감적으로 붙으면 질 것 같은 느낌은 확 왔지. 말이 질 것 같다는 거지, 한 대 맞으면 즉사 당할 느낌이 확 온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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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그 느낌은! 그저 느낌이 아니라 정답인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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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그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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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범접할 수도 없는 존재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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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연시옥은…! 아마 현실에서는 하루의 시간이 흘렀는데 연시옥 속에서는 한 달이 흐른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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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ㅇㅇ 저 정도 효과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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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더 많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도 있긴 한데, 그건 무림 쪽이 아니라 이계 쪽에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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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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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죽지 마라, 특히 네놈을 지금 납치했다는 그 세계의 천마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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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천마의 이름을 달고 있는 다른 놈에게 네가 죽으면 본좌의 기분이 아주 불편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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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의 갤질은 여기까지 하고 단말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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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온종일 대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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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월와 연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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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과 번갈아서 치른 대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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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일대일로 행한 대련은 전투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앞둔 벽을 허무는 데는 특별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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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예상치 못한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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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주 중 한 명인 천각주 목연이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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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1,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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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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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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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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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의 시선은 흥미가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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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아주 신기한 무언가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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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호기심을 단단히 끌어낸 모양인데.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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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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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분이 어지간한 일에는 다 호기심을 가지는 분인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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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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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그것까진 말을 안 한 모양이구나? 너 찾아내려고 계속 중원 무림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닌 거. 물론, 염탐당한 쪽이 그걸 눈치챈 적도 없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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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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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천마는 널 검각주와 싸우게 하려는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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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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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봤던 그 붉은 머리카락의 아저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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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표위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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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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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싸워야 할 상대라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그 검각주란 자와 싸워야 하는 이유보다는 강함의 수준이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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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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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의 이어진 말들은 내 기분을 싸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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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 중위(中位)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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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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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과장이나 축소가 없이, 아주 명백히 좆됐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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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꺾은 적들도 하나 같이 7위계 이상이었고 말이야. 게다가, 동격인 중위(中位)도 한 명 죽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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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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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이 내 질문에 대답을 잘해주는 김에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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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 중위…정확히 누굴 죽인 건지도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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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세가 전대 가주, 모용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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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세가의 전대 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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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도 높은 사람을 죽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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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劍魔) 표위헌. 모용현강을 죽인 걸로 그 이름을 알렸지. 원래 유명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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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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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각주는 말 그대로 직위고. 검마라는 별호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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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설명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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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검마를 죽이려는 게 귀찮아서 네게 떠넘기려는 걸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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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려는 이유는 있을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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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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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하늘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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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헛소리를 했거든. 사람을 씹어먹으면 저 너머의 경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야. 그리고 실제로 그 식인의 행위를 행했어. 요마(妖魔)와 함께 놀더니, 성질이 좋지 않은 부분까지 닮아간 모양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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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궁금한 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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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인 당신들도 식인…인육을 먹는 것을 명확하게 부정적으로 보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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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두 눈을 초승달처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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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대로 말하자면, 별생각을 안 하는 쪽이겠지. 신경도 안 쓰고 말이야.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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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은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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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검각주가 천마를 거슬리게 지점은 그게 아니야. 그릇된 관념을 고집하는 게 문제지. 감히 그 방식으로 천마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 그게 천마의 옅은 분노를 끌어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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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략적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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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잖은 믿음을 네 손을 빌려 부수고자 할 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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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정을 이해하는 데는 좀 많이 걸릴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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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옥. 그곳에 날 집어놓고 수련을 시킬 것 같은데. 어떤 방식일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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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꽤나 고생을 좀 하겠구나. 방식은 대련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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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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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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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옥에 들어가는 건 저 혼자 아닙니까. 대련을 누구랑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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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 기대나 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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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목연은 아주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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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래 생각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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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완전히 끝이 났다고 여긴 때, 목연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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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다른 세계에서 온 거냐? 그…제육 덮밥인가 무언가를 먹긴 했다만 아직 긴가민가하긴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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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빼앗긴 걸 같이 드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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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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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상점에서 구매해 들고 들어온 [크림 베이컨 파스타]를 천마에게 뜯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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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또 없냐며 달려든 천마에게 [제육 덮밥]도 뜯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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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혼자 먹지 않고 나눠 먹었다니, 덕분에 천마 님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개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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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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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천마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더 안 좋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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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에 대한 본래 인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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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를 납치하고. 가지고 있던 음식들을 다 빼앗은…어, 거마(巨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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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뜸을 들인 걸 보니 거지라고 생각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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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정답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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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놈의 천마가 먹을 것을 왜 이렇게 많이 빼앗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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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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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마가 기거하고 있는 본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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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눈앞에는 기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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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두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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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긴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여성이 한 명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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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천마의 시종 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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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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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 마사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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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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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에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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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두피 마사지가 맞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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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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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날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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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왔나.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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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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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턱짓을 하자, 시종은 고개를 깊숙이 숙인 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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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스트레칭을 하듯 목을 천천히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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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연시옥에 들어갈 차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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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뭘 얼마나 있어야 하는 곳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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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과 정신이 버틸 수 있는 시간 동안이면 상관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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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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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기서 생존해야 하는 기간, 이제 하루 지나서 59일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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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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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기간을 일단 기준으로 잡으면 되겠구나. 연시옥에서의 시간은 하루당 3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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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배의 시간을 더 살 수 있다니, 이거 정말 개이득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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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하기엔 아직 경험해본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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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단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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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거면 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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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경험해보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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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떻게 만든 겁니까?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공간 같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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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짓궂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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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겪으면 어떻게 만든 건지 절로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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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단 순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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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나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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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문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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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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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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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다가온 건, 광활하다는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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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獄)이라기에, 커도 사방이 틀어막힌 층계 대기실만 한 공간일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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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자연의 일부를 떼어놓은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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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공간의 중앙에서 흐릿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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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벽운철 6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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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말을 빌리자면, 눈앞에 있는 존재는 복사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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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검각주와 싸운 이들의 복사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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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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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 표위헌의 손에 죽은 이들의 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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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시옥 속에서는 살아 숨 쉬고 있는 멀쩡한 사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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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복사체인 주제에 빌어먹게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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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만나며 대련했던 소향월과 연유신 또한 6위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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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나처럼 권역을 열지 못한 상황이라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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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지 않는 대련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격의 범주가 그렇게 드넓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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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벽운철은 6위계인데 계속해서 내 숨을 턱 차오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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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운철은 권역을 발현하지 않고도 내가 최선을 다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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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때려눕힐 수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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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운철의 심장을 검으로 관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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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운철의 몸뚱이가 뒤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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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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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뚱이가 곧 진회색의 연기를 흩뿌리며 산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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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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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몸에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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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대자로 뻗은 나는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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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연시옥에 들어앉아 있는다고 본좌가 그걸 계속 관음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 알아서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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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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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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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을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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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갤질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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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자체는 보일 리 없으니, 왜 허공을 보고 있냐고 물어보면 거기에 대해서만 적당히 둘러대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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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옥의 풍경을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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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연시옥 1일 차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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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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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생각보다 감옥 같은 곳은 아니네. 숲에 가깝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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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하고 있던 적은 6위계 검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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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갤러리에 올린 내용대로, 검각주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 확실한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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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제압한 6위계 검사는 검각주가 생전에 죽였던 사람임. 이쪽 천마의 설명에 따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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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상대해야 할 놈이 죽였던 자들을 차례차례 상대하는 느낌으로 진행되나 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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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ㅇㅇ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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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연시옥은 그쪽 무림 세계관 속 천마신교의 전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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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가장 쓸만한 특이점은 연시옥 내에선 죽어도 부활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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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대신, 연시옥에서 이뤄낸 육체적 성장은 유지되지 못할 거다. 내공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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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얻어갈 수 있는 건 전투 그 자체의 경험치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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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하지만 권역은 육체보다는 심상, 그리고 의지와 직결된 부분이라 연시옥 내에서 각성을 해낸다고 해도 바깥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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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그렇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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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육체적 성장까지 유지되면 계속 연시옥에 처박혀 있지 바깥으로 나올 필요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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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쓰러트린 6위계는 권역을 각성해내지 못한 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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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그건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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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권역을 각성해낸 자인데 그걸 써먹지 않고 제압당한 거면, 다시 네 눈앞에 나타나서 전투를 걸 때가 있을 거다. 내가 경험한 바는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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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을 각성했는데 권역을 쓰지 않고 죽은 복사체는 다시 나타나서 권역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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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군주 선배의 그 말이 맞다는 건 곧바로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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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벽운철 6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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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산화시켰던 복사체가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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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 쥔 검에 무언가 험한 것이 휘감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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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당신의 권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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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과과과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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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색의 빛과 함께 찔러 들어오는 궤적들을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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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찌르기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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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를 스쳐 지나갔던 검의 궤적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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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날아왔던 참격과 탄막 게임에서 벽에 맞아 되돌아오는 탄환 같은 참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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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들을 피해내고. 또 부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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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500여 번에 이르는 각양의 섬광을 부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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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에 직격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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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부수는 도중에 머리통이 으깨자는 감각을 몇 번이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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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리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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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판단이 느려졌다면 그대로 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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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골이 송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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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가 요란하게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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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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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광의 파편들이 자욱하게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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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조리 검격들을 깨부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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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벽운철의 심장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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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운철은 다시금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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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땅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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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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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뒤이이질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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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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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철 씨가 슨배들의 예언대로 권역 쥐고 다시 나타났음. 겨우 다시 쓰러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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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렇게 대련하면서 전투 경험치 좀 쌓고. 권역 좀 창안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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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님 사라진지 10초가 안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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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점마 지금 연시옥에 들어가있잖냐. 시간을 존나 효율적으로 써먹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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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초월자 갤러리 되는 것도 신기한데. 등갤은 보는 건 됐어도 글 쓰면 암호화되고 그러지 않았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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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맞아. 그랬지. 다행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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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다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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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팅만 할 수 있었다면 정신이 나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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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스으읍! 탑 속 무림이 아니었다면 이 당하연! 가는 검다-!라고 외치고 당장 찾아갔을 텐데 아쉬운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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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그랬다면 일찍이 다 찾아갔을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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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그랬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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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시간이 남아도는 김에 매화검법도 수련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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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간 거래로 일전에 매화검법을 받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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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ㅇㅇ 다 훑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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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선배의 말대로 매화검법도 보고. 가진 검술들을 다 자세히 뜯으며 수련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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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창안할 권역에 필요한 과정이란 확신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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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얼어붙은…!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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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여유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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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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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좀 고른 뒤, 초월자 갤러리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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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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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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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누군가가 공간을 찢고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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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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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살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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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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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층 층계 대기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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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죽었어.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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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 글을 시작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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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의 [리뉴얼]에 대한 이야기와. 본래 지난 기수였던 반 이네르가 왜 13층 층계에 남아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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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이야기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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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상대방의 촛불을 꺼야 이기는 결투를 치르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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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결투의 시작 전에 반이 자신의 촛불을 끄고.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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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입장에선 관리자 먼저 제압하고 반이랑 생각이라도 나눠보려고 했는데. 방어벽 같은 걸 못 부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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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에 대한 언질은 앞서 짤막하게 들은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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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방어의 목적이 아닌 이상, 무력적인 개입은 할 수 없는 탑의 소모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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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을 가로막은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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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여섯 번째 뿌리의 전투는 비소그라피카로 촬영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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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있었다면, 수십 번이고 보고 또 그만큼 좌절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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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니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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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걸 혐탑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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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니 반 씨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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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하…왜 틀리길 바랐던 건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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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쉽게 둘이 14층계로 올려 보내줄 리가 없다고 예상은 했는데 그딴 식으로 싸움을 붙여버릴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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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잘 가라, 반 이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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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엘프다) 하아, 세계수 앞에서 둘다 무사히 14층으로 올라가길 염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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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으그그극 시발!!!!!!!!!!!!!!!!!!!!! 리뉴얼이고 오류고 뭐고 같이 올려보내 줄 거 아니면 같이 붙이지 말았어야지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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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키아아악 끼에에아악!!!! 내 말이 이 말인 것이다아아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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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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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이렇게 슬플 때는 조금은 울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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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슬픈 것이에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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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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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언젠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싹 다 없애버릴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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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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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근데 말 들어보면 탑 측에선 할 거 다 해준 거 아니냐?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니까 전 기수도 부활 시켜줬고. 그 전 기수가 좀 억울하지도 모를 테니까 한유성 잡고 완전 부활할 기회도 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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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 물론, 결과가 좀 슬프게 된 거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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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맞긴 한데 좀 맞아야겠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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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원래 그놈들 나름대로 '공정'한 거 좋아하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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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 '나름 공정'의 편차가 존나 심해서 문제지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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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탑 대변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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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탑스라이팅 당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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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한유성, 그닥 힘이 될만한 위로 같은 건 할 수 없다. 잘 알겠지만, 결국 네가 이겨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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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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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어떻게든 다 극복하고 판데모니엄을 싹 쓸어버리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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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관리자 자체는 너 기준에선 별로 안 강하지. 무력 쓰는 애들이나 4위계나 5위계 수준이고. 그 나머지 예외 부분 관리하는 애들은 3위계. 총 관리자 정도나 6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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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관리자의 무력 수준은 그닥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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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기준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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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총 관리자는 아직 똑같이 라트베일 그 새끼일 거 같은데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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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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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관리자는 아인(亞人)일 뿐이다. 탑이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낸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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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밀실론자) 탑에서 태어나고. 탑에서 소멸해서 생을 마감하는 족속들인 것. - 이 세상은 거대한 밀실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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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말 그대로 탑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낸 소모품 정도의 역할. 그래서 죽여도 플레이어들한테 어떠한 페널티도 안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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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간혹 뻗대는 놈들 있는데 그놈들은 본인 무력보다는 본인 부모라고 할 수 있는 탑의 시스템이 자신을 지켜주는 거. 그걸 믿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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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탑'이 직접 하달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관리자는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부분들이 그 관리자를 최대한 지키게 되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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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딱의 글을 본 한유성의 머릿속에 자신의 앞을 막았던 결투장의 방어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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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빌어먹을 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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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 방어벽 때문에 플레셰크를 건들지 못한 것이지, 플레셰크 자체의 무력을 본 부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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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관리자 개입 있었지? 이름 밝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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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2급 관리자 플레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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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누더기 면상?? 걔도 원래 3급이었는데 출세했구만. 아, 그 새끼 5위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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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관리자는 탄생할 때부터 위계가 정해져. 더 강해지고 그런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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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플레셰크, 나도 한 번 만났었는데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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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현자) 어차피, 죽였다고 해도 다른 관리자가 같은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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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그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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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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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는 탑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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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개같은 감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탑 자체를 무너트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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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궁극적인 문제점은 탑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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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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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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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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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도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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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근차근 나아가야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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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5위계를 넘어 6위계에 도달하는 걸 당장의 목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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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죽은 사람, 플레이어를 부활시킬 방법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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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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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탑의 존재 이유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그런 감성적인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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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정론은 실시간으로 망하고 있거나, 이미 망했거나, 망할 예정인 세계가 있을 때 그 세계를 구할 힘을 얻게 해주는 역할이라는 게 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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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ㅇㅇ 저게 정론이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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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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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현자) 불가능한 일에 골머리를 쓰면 피곤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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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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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계속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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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부활이 가능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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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네가 탑을 계속 올라간다면,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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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딱이 단 댓글 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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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댓글이 일순간 뚝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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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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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도 눈을 크게 뜨고 주딱의 댓글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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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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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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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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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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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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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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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현자) 그게 정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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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너희들도 100층을 종결했을 때 탑과 대화를 나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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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난 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딴 말만 반복해서 내뱉던데, 그러곤 일방적으로 대화 종결하고 내보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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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소녀와 똑같은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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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난 하드 난이도 탑이랑 대화를 좀 길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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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문답이라고 할 정도의 대화도 나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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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ㄹㅇ 초월갤 초창기에 저 소리 듣고, 뭐지? 싶었는데. 난 안 저랬다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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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밀실론자) 퍼스트 클리어 플레이어는 여러모로 대우를 해주는 것이겠지. - 이 세상은 거대한 밀실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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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 맞다. 저 인간 하드 퍼클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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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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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난이도 퍼스트 클리어(First Clear)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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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왜 주딱이 '주딱'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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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난이도 탑을 제일 처음 클리어 한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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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딱이라는 닉네임의 상징성 때문에 주딱이 주딱인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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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물어봤어. 나도 살릴 수 있다면, 몇 명 정도 살리고 싶은 플레이어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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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하드에는 없고. 판데모니엄에는 있다고 했어. 누군가를 살릴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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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중간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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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50층을 넘겨 봐.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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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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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하드 난이도' 탑의 자아에서 나온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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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 한유성의 입장에선 계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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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나아갈 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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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야, ㄹㅇ 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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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퍼스트 클리어 플레이어한테 탑 자아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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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주딱, 그런데 왜 이 사실을 한유성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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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반 이네르라는 존재가 갑자기 등장한 것일 뿐, 한유성이 홀로 판데모니엄을 오르고 있다는 게 거의 확정적이었어. 이 부분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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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그리고. '반 이네르'라는 존재가 한유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살고 싶다는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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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그런 상황인데 한유성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혹여 반 이네르를 한유성이 죽여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쓸데없는 잡생각이 들 뿐이야. 상황 판단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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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아니야, 오히려 더 마음 편히 죽였겠지. 부활 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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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빛의검, 넌 이 빌어먹을 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14층 등반자인 한유성의 정신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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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아니, 주딱 네가 한유성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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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그건 좀 웃긴 말인데. 너나 나나 타인을 얼마나 믿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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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정신 차려, 빛의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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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어차피 이제 숨길 내용도 없어. 알고 있는 게 특별히 더 있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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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이미 한 번 숨긴 사람 말을 어떻게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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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누가 좀 말려보는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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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단순 무력만 따지면 GOAT인 둘을 어떻게 말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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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싸우지 마세요오. 둘 다 이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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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빛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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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엘프다) 뭔 응원을 하냐? ㅋㅋㅋㅋ 어, 싸우는 게 재밌긴 해. 좀 많이 무섭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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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주딱이 부활에 대해 숨긴 점에 관해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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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딱의 말에 그렇게 틀린 부분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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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이 한 없이 나약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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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을 여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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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앞으로는 그 감정에 휩싸일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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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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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악착같 제련 시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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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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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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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 가능성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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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갤러리를 종료해야겠다겠다고 마음먹은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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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눈길을 이끄는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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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반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 같은 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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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른 건 캐치볼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걸 대뜸 개척자 선배에게 내밀기에는 반과 자신. 둘만이 아는 썩 내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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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결국 반 이네르가 검법서에 적어주었던 글을 개척자 선배의 댓글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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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 후회 안 한다고.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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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개척자) 반 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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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갤러리를 끄고 시간이 흐르는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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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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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인 교류회까지 남은 기간은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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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13층에서 얻은 깨달음을 제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시간으로 쓸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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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슬슬 '비공개'가 랭킹 창 맨 위에 또 오를 때가 됐는데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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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알데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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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 왜 안 올라옴? 설마,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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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12층 부터 랭킹 미등록해도 상관 없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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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는아직살아있다) 11층까지만 있잖야 보상이. 50층 도달 전에는 보상도 없는데 등록 안 하는 게 비정상은 아니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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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알데라민) 아 ㅅㅂ 맞네. 그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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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며칠 뒤면 또 교류회 아님?? 붉은 가면 <<< 이새끼가 비공개인 건 확정이고. 루키 갑자기 또 하나 등장했다고 하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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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ㅇㅇ 비무 테마에서 토끼 인형탈 쓰고 사람들 두들겨 팼다는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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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왠일로 21세기 지구인 중에 연속으로 쓸만한 존재가 나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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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붉은 가면 (비공개) vs 토끼 인형탈 (또 다른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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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흑성) 당연히 둘이 붙으면 비공개가 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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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흑성) 그냥 비무 서바이벌에서 사람 몇 명 팬 토끼 놈이랑 통상적으로 그 층계 레벨대에서 잡을 수 없는 몬스터들 찍어누른 비공개를 비교하고 앉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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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삶은고통이기본값이다) 당연히 비공개가 더 강할텐데 토끼 대가리도 느낌은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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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가면과 토끼 인형탈이 동일인물인 걸 알지 못하는 등반자 갤러리의 플레이어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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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생분석가) 두 놈 혹시 같은 놈 아님? 10층계 중반 코인 상점에 목소리 변조 하는 거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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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리를 한 플레이어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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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독보) 싸우는 방식이 다르잖냐. 멍청아. 10층계에서 방식 범위 넓은 놈 봤음?? 특히 21세기 지구인들은 삶에서 수련 같은 걸 해본 부류들이 몇 없어서 더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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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쌍검은낭만) ㄹㅇ 닉값을 못하네. 인생 분석 덜 끝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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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생분석가) 그래, ㅅㅂ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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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반박에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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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자 갤러리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한유성을 주제로 한 글로 도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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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메르 제국의 바다 앞에는 신화에 가까운 입지적 인물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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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갑자기 나타나 바다를 가득 메웠던 괴수와 마수를 홀로 쓸어버린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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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바다의 무역을 방해하는 해적들도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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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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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녹안의 사내, 베르딘은 바다 저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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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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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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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잊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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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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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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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 난이도 16층, 등반자 - 베르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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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위치, 10층계 단위 교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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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귓가에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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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끼, 이상한 놈이야. 몬스터는 제대로 척척 썰어댔으면서 사람은 상대를 잘 못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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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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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서 강한 고통이 치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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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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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발목이 참혹하게 베여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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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숨통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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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불씨 따윈 진작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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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이미 지옥에 한 발을 담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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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노멀 난이도 등반자, 하이르겐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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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친절하게 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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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친절은 만만한 먹잇감을 찾기 위한 작업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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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형 교류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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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답게, 던전의 난이도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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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고블린. 보스 몬스터로 고블린 로드를 앞두고 있긴 하나, 현재 교류회 인원수인 여덟 명에서 충분히 공략 가능한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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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특수 재질의 구속구로 묶여버린 양팔을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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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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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바깥으로 마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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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력을 내보냈지만, 구속구는 풀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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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르겐은 숏소드를 든 오른손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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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옆에 누워있는 플레이어의 목에 숏소드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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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의 몸이 경련하듯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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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플레이어가 뱉어내는 큐브가 시신 옆에 데구르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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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 이놈은 네가 죽여. 경험치는 공정 분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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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은 뭐 쓸만한 거 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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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놈 고블린 상대할 때 썼던 검만 해도 뭔가 다르긴 했어. 저렇게 형편없이 누워있어도 너랑 같은 하드 난이도 등반자거든, 저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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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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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놈들의 목소리와 피 냄새가 한 데 섞여, 아주 기분이 불쾌해짐과 함께 절망적인 감정이 올려오는 걸 여실히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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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면 뭐하냐, 노멀한테 이렇게 뒤지는데. 가만 보면 난이도 같은 건 부질 없어. 그치? 몸부림치면 골치 아파 질 수도 있으니까 먼저 발목부터 자르고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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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의 말이 끝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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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모두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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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당신 왜 그러고 누워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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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과 하이르겐의 고개가 동시에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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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발 머리카락에 벽안의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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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고블린들 잡을 때 보니까, 저 둘 본다는 당신이 더 싸울 줄 아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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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진심으로 베르딘이 왜 제압된 상태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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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과 하이르겐으로서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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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던 존재가 갑자기 다가와서 누가 더 강하니 마니를 말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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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다가오는 여성의 이름을 떠올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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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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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 진입 초반에 함께 싸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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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 층계는 12층계. 저산의 입으로 밝히기엔 2위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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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계 치고는 움직임이 깔끔하다고 생각했지만, 2위계를 한참 웃도는 무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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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지금 이 상황에서 끼어들 만한 무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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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들이 뒤통수를 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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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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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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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은 베르딘의 어깨를 칼로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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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저년을 먼저 죽이고 너를 처리해야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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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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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르겐이 창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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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이 적당히 미쳤으면 이런 식으로 덤벼들지 않았을 텐데, 아주 제대로 정신줄을 놨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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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천천히 둘과의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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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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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궤적이 카르낙과 하이르겐이 들고 있던 검과 도끼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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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직! 으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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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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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르겐의 입에서 멍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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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르겐의 목 우측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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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의 심장에는 반의 검이 관통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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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몇 명 죽었으니까, 역으로 이렇게 죽는 것도 각오는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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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하이르겐과 카르낙이 생전에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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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겨우 반 이네르의 움직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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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검에 오러조차 두르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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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기를 일으킨 카르낙이 뭘 하기도 전에 즉사를 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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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속으로 하이르겐의 숨통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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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실력의 격차가 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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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자신의 옆에 다가온 반 이네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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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수련해, 죽여야 할 놈은 죽이고. 당신 꽤 가능성이 충만해. 그냥 선원 출신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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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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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는 베르딘의 양손을 묶고 있는 구속구를 검기를 휘감은 검으로 잘라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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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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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건 좀 감사하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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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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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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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적절한 팔의 각도, 고블린의 약점만 본능적으로 치밀하게 공략하는 움직임. 그거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당신, 재능은 있는 거야.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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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한숨을 돌린 뒤, 얼굴에 피가 묻어있는 반 이네르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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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힘을 숨긴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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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보고 덤비고 들어오는 놈 죽이려고. 근데 그런 놈들이 당신한테 먼저 달려든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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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추가, 받아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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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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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값은 갚아야지 싶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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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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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다음 회차 교류회에서 갚아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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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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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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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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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제게 재능이 있어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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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베르딘의 질문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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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안 믿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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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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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천재라는 소리를 많이 들은 인간의 눈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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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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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감사를. 아, 나이 비슷한데 다음에 만나면 반말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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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에게 말을 놓으라는 것이 내키지 않은 베르딘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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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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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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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을 친구 추가한 베르딘은 반이 판데모니엄 난이도의 등반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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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의 난이도는 어떻습니까…? 하드 난이도 위에 또 다른 난이도가 있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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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말에 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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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지게 힘들지. 난이도 그 자체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뭣 같은 건 뭐냐면, 옆에 동료가 없다는 거야. 동료가. 그냥 혼자 쭉 올라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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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반 이네르가 겪는 난이도를 예상도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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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난 살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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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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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죽음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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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 반 이네르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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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교류회가 끝난 며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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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창에 있던 반 이네르의 이름 칸이 회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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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즉 그녀의 죽음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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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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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며 과거에 관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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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왕국과 제국을 동시에 오가며 양쪽에 둘 다 요주의 적으로 점지한 해적 놈들이 해상에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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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 활동명 【개척자】, 베르딘은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6위계의 검사 마구스의 말에 입을 천천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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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위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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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대치하고 있는 부하들의 말에 따르면 7위계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괴상한 짓을 하는 인간 치곤 너무 높은 것 같아 의심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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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부하들이 판단한 걸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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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를 이룩한 놈 중에서 정신 이상자가 많다는 건 탑을 등반하던 시절에 이미 톡톡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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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고위계일수록 정신 나간 놈들이 많다. 갔다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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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스는 베르딘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진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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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이 이렇게 사라진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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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이 다시 나타난 곳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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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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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척의 배가 나란히 전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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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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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쪽, 제일 큰 배의 위에 서 있는 해적, 7위계의 전사 겔포드가 베르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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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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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입을 놀리기엔 새하얀 코트를 펄럭이며 배를 내려다보고 있는 베르딘이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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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지금 억류하고 있는 이들의 신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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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시선은 배의 앞머리에 꽁꽁 묶여있는 남녀들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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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는 뺨에 있는 기다란 흉터가 꿈틀거릴 정도로 짙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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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한 이들을 파는 건 침략자들의 권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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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한 짝씩 없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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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는 베르딘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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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지 않는 자들의 손을 자르는 것도 침략자들의 권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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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감정은 요동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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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계라는 경지에 이르면서 많은 것이 통상적인 인간과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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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라는 감정은 어지간한 일로는 표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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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이런 일에 쓸 분노의 총량은 바닥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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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쪽에 분노를 하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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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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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해의 주인이라는 작자를 찾고 있었다. 9위계의 괴물이라는 헛소리를 들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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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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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단촐한 고백에 겔포드가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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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됐구나, 주인이라면 이 심해에 처박혀도 날 원망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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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가 서 있는 배의 양현에서 물줄기가 하늘을 찢을 기세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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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영역, 레비아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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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가 치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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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없더라도 바다를 창조할 수 있는, 현실 개변형 고유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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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본래부터 공간이 바다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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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영역의 힘은 말 그대로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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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아탄의 능력 중 하나인 해류 조종의 범위는 대략 1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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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류 속에 담기는 것은 겔포드가 쌓아 올린 오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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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형태 가짓수는 가히 무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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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에 떠오르는 작은 물방울부터 휘몰아치는 해류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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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떤 검격보다 더 날카로운 물의 참격이 바다에서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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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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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한 살상력(殺傷力)을 지닌 수백 형태의 해수가 베르딘을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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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에게 쏘아진 공격은 고유영역 레비아탄을 기반으로 한 해수 공격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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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 넷과 5위계 하나가 쏘아낸 원거리 참격도 베르딘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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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하위계 부하들이 쏘아낸 잔잔한 공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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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위력이, 마치 천벌처럼 베르딘을 향해 직격하려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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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의 동공이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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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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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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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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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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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바다가,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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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물방울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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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아탄의 영역 전반을 덮어버린 이질적인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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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 한 줄기, 물 한 방울조차 겔포드의 의지에서 벗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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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이 오른손 검지를 천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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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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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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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영역 레비아탄을 펼친 겔포드가 아니라, 베르딘의 의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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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영역, 유랑(流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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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의 9위계 고유영역이 레비아탄의 영역 위를 완전히 뒤덮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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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겔포드의 영역인 레비아탄의 구조를 간단히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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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르딘이 고유영역 ‘유랑’을 발동시킨 상태에서 타인의 영역을 이해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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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하위 위계의 고유영역. 그 영역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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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아 오른 해류가 일제히 항로를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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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해류가 반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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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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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게 솟구친 거대한 파도가 배를 삼켰고, 겔포드의 선원들은 갈가리 찢겨 붉은 피를 흘리며 바다로 침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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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를 흘린 이들 중, 인질이라 할 만한 자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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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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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에게 잡혀있던 인질 스물네 명이 몸이 한참 전부터 허공 위에 있는 베르딘의 옆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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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피해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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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이 극도로 세심한 마력의 조율로 이들을 들어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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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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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는 허공에서 방향을 잡으려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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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된다. 중심은 내가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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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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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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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며 베르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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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마력을 응집시켜, 비교적 온전한 동쪽의 배 위로 그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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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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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 스물넷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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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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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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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살짝 하강시켜 갑판 위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겔포드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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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숨은 붙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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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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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가 휘둘러진 온갖 형태의 해류에 몸이 꿰뚫린 상태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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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도륙 당해버린 몸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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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멀쩡한 건 머리통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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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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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의 차이를 극대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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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세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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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직 네 눈이 얕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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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포드의 눈은 여전히 의문에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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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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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피를 쏟아낸 겔포드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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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 의문에 잠식된 채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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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들은 몸을 파르르 떨며, 아직 하늘에 땅을 딛고 있는 베르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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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두 번째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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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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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유쾌한 호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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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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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계를 이룩한 '초월자'는 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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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가 아닌, 다른 이들이 보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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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객관적으로 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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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가 지닌 바 힘은 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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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정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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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초월자들은 몰라도, 개척자 본인은 결국 신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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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을 벗어났다고 해서 그게 신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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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정말로 가까운 건 베르딘의 머릿속에 셋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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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준에서 10위계라는 영역에 들어섰다고 짐작되는 건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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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인원들에게 ‘첫 번째 신’이라고 불리는 빛의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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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공개적으로 힘을 드러낸 적은 없으나, 이 땅의 질서에 공헌한 주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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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젠 다른 세상에 있으니 볼 수는 없는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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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솔직히 말하면 그 셋도 신에 필적한 건 맞지만. 완벽한 신이라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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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딘은 다시 반 이네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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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빌어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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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에 목숨을 구원받은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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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뛰어난 동급 난이도의 등반자들이 판단을 착오해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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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용을 부리다 죽는 것을 다 목격하면서, 결국 그들의 시체를 지나 끝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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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 이네르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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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네르보다 훨씬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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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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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에서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준 반 이네르의 무력은 이제 손가락 하나만으로 짓누를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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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너무나도 불공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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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더 재능이 뛰어난 자였는데. 소환된 난이도가 '판데모니엄'이라서 죽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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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이네르가 적어도 하드 난이도에 소환되었다면 분명히 살아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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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데모니엄의 13층에 부활하여, 한 번 더 죽을 일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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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로 탑에서 나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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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저도 무의미한 망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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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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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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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반 이네르가 자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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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미한 죽음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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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무의미한 죽음이라고 느끼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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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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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를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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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내가 1층에서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한 건 대체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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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플리셰크의 입에서 나왔던 최상층부. 그 최상층부에 있는 존재 중 하나인 걸까, 아니면 판데모니엄 탑 그 자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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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외의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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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가치는 있는 주제였지만, 고심한다고 답이 당장 나올 주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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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이놈의 탑은 나를 위로 이끌려는지, 아래로 끌어내리려는지도 구분이 되질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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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위로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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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야 할 이유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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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내의 마나를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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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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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한 갈피를 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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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중심축을 잡고 있는 오러 회로 옆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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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기둥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것이 즉, 6위계에 들어서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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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6위계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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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위계라는 그릇을 먼저 완성해야 한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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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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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여가면서 얻어낸 성취들을 한 데 모아, 오롯한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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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검 선배의 검법서, 용살검에 적힌 문장들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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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마나 운용법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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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너만의 운용법을 만들어야 도달할 수 있어, 6위계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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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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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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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부분이 있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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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시간은 찰나처럼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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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교류회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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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가 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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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의 테마는 디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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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서사나 특이점은 없어 보이는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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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리 착용했던 토끼 인형탈을 벗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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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안 그래도 위계를 올리는 것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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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내 수련이나 하면서 할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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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저거 봐. 저 인간도 토끼 인형 탈 쓰고 있어. 역시 희소성 없는 건 하면 안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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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토끼 인형 탈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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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성벽 앞쪽에서 방패를 들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머리 위에도 토끼 인형 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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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건 붉은 가면처럼 확률적으로 얻기 힘든 아이템 같은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장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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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저번과 같은 인형 탈을 쓰고 있음에도 내게 시선이 쏠릴 확률은 더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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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클리어한 2층계는 랭킹 등록을 하지도 않았으니, 내가 현재 있는 층계 위치를 뜻하는 머리 위에 떠있는 라는 숫자로도 뭘 유추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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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신경 쓰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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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교류회 1등만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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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몬스터들이라고 해봤자, 조금 덩치가 큰 리자드맨이나 오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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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들 또한 덩치가 그간 봐왔던 오크들보다 더 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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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르크라는 이름의 코뿔소를 닮은 탈것을 타고 다녔지만,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까지 상대해온 몬스터나 적들에 비해선 너무나 쉬운 상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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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는 권법과 검법만을 이용해 클리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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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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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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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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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는 망설임 없이 도움-!을 외치자고 시작 전에 토의를 한 결과대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쪽에 가서 손을 거들어 주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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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는 해가 지기 전까지 충분히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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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도와줘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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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노멀 난이도라고 소개한 16층의 플레이어가 아주 간절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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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과하게 쓸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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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힘으로 방어만 잘 해 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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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으로 가볍게 내지른 주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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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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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찢겨 나가는 소리가 귓전에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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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완벽하게 거대 오크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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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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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의도치 않게, 너무 완벽하게 날려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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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말 그대로 소멸을 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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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파공결, 수락낙진(水落落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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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파괴력은 막강하지만 고요하게 적들을 덮치는 초식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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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은 개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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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의 머리가 수락낙진을 버틸 정도로 단단했다면 고요한 진입이 되었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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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의 머리는 가볍게 짓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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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던 두 명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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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진짜 토끼 인형 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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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긴가민가한 얼굴로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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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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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드에 합류가 예정된 이들이 하달받는 정보를 편지로 받는 플레이어들이 있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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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그렇게 받는 정보 중에 내가 교류회에서 착용했던 가면들을 알 수도 있을 거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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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로서의 나는 '붉은 가면'이라고 알려져 있고. 토끼 인형 탈은 또 다른 떠오르는 루키로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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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진짜라니 뭐니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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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도 입을 꾹 다물고 조금 약하게 몬스터들을 패고 있으니, 별다른 말을 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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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는 그렇게 아주 빠른 속도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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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등을 달성하는 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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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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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기에 14층을 진입하는 걸 미룰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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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도 그렇게 어지러운 구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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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명쾌한 던전형 스테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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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간만에 성좌들의 알림창 차단을 풀고 스테이지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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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이름은 골레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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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몬스터로 등장한 적도 골레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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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레트라는 놈은 골렘인데. 몸체 곳곳에 이식된 마력 동체를 이용해, 더 기묘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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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닿을 법하지 않은 거리까지 날아오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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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좀 고전했다만, 거리감을 좁히는 걸 성공한 뒤에는 제압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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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삼킨 거인'이 당신의 순간 돌진력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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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업은 전사'가 골레트라의 육중한 압박을 버티는 당신의 굳건함에 탄성을 터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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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눈을 가진 심판자'가 무언가를 가늠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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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속을 유영하는 감시자'가 누군가를 보며 혀를 찹니다. 과민한 걱정이라며 누군가를 비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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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본인들끼리 뭘 가늠하고 혀를 차고 비웃고 다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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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 대해 가늠을 하는 건지는 예상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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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나와 싸우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를 가늠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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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금도 3할은 숨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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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성좌를 우습게 보고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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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습게 볼만한 수준의 적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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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대다수가 8위계라는 초월갤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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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지금의 성좌는 탑에 굴복한 놈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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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8위계에서 멈춘 것들. 아니면 9위계를 도달하고서도 겁을 집어먹고 등반을 포기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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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후자도 극소수지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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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물론 탑 측에서 꼬드길 때는 놈들의 자존심이 완전히 바닥을 체면을 살려주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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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성좌'가 10위계로 향할 수 있는 길이라고 꼬드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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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하나, 그럴 리가 있겠나. 탑이란 그 공간에 갇혀있어야만 하는 것들이 10위계를 도달할 수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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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군주) 너무 허울만 좋은 말이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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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의 입장에선 그저 패배자이겠지만, 내 입장에선 강적인 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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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가 등록한 성좌 퀘스를 클리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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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내용은 14층 스테이지의 클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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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가 건 아이템은 영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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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의 깃털'이라는 영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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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속성 공격 내성이 급상승하는 효력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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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의 수확은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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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교류회와 달리, 결과적으로 2레벨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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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레벨은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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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층계 대기실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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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정도는 수련에 힘을 쏟았다. 교류회에서 성좌에게 뜯어낸 영약도 섭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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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별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체 없이 15층에 돌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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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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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필요한 게 뭔지 갈피는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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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5위계로서의 완전한 끝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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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우선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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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혼자 애를 쓰는 것보단 실전을 계속 겪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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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스테이지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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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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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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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뒤덮었던 빛이 사그라들고 펼쳐진 풍광은 아주 단색적인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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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발로 밟고 서있는 무언가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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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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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타난 곳이 육지는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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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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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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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빠진 냄새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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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의 문을 열고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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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날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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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내 옷을 위아래로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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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착용 중인 방어구는 [바르넬]이란 이름의 갑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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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에서 성좌 퀘스트 보상으로 뜯어낸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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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꼈던 파에톤의 칠흑 마갑주보다는 갑옷스러움이 매우 줄어든 가죽 갑옷의 형태였으나, 날 보고 있는 이들의 옷 상태를 보니 내 옷에 시선이 갈 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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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천 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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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생김새도 썩 친숙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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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위에 선 건물들은 아주 동양적인 양식의 건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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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든 게 이제까지 소환되었던 곳들과는 다른 배경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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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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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 난이도 15층은 퀘스트 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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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무림 배경의 세계에 소환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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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출신의 선배들이 무림 배경이 조만간 나올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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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도 더 빨리 나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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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탄 사람들은 날 계속 주목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은지, 모두 내게서 시선을 떨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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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월자 단말기를 꺼내, 배의 모습과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건물들을 모습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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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석에 앉아 글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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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림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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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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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182391283901283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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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간 육지에 도착할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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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은 사진들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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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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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키야, 드디어 무림 배경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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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그런 것이와요. 범선인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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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익숙한 풍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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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ㅋㅋㅋㅋㅋㅋㅋㅋ무림 것들 다 튀어나오는 것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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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아, 맞다. 잊고 있었던 애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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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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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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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그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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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끄러운 아해를 말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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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해(兒孩)는 새끼야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이제 오대세가 가주가 된 인간한테 할 말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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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끄럽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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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왜 안 보이나 했더니 활동 정지 먹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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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그렇소. 아마 본인이 신청했던 것 같은데. 일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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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ㅇㅇ 4달째에 풀어달라고 했는데 이틀 전이었네. 지금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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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끼아아악!! 주딱공!!!!!!!! 너무한 거 아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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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이틀 밖에 안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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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이런 혁신적인 유희의 사건이 터지면 시간 채우기 전이라도 풀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너무 하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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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주딱) 사천당가 가주 취임해버려서 현생 살아야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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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히유유, 너무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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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눈팅만 하는 거 너무 고통스러웠슴다. 그래도 무림 배경 들어가기 전에는 활정 풀려서 다행인검다! 헤헤! 한유성 공!!! 반갑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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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ㅇ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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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반응해주기엔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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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림 이게 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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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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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한 명 더 있잖아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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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나와라, 궁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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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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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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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검성 선배 무림계 쪽이었음? 이도류를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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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왜, 무림계도 쌍검류를 쓰긴 한다. 희귀한 편인 건 맞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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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저 선배는 안 쓰는 게 맞소…. 그게 정상적인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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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참검성) 화산에는 매화 이도류라는 절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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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제발 시발, 화산검선이시여…! 체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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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매화가 두 배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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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방주라고 했었지, 거지 선배가. 천마 선배에게 하던 간청을 검성 선배에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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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어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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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어우 형장, 매화 이도류는 무슨 무근본이오. 씹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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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근데 저 인간이 장문인이라 말릴 놈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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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멸문 직전에서 다시 끌어올린 게 누구다? 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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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이도류, 뭔지는 감이 안 잡혀도 어감만 들어도 이상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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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왜 우리 검선 슨배 기를 죽이고 그러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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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이 무림에 정상이 없다 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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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선배 말이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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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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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허름한 객실이 자리 잡은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일부러 낮게 말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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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쟁천무회장(爭天武會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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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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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뒤편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화였지만, 기감을 펼치면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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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대리인(代理人)으로 세우려고 했던 무성락이 죽어버렸으니, 대리인을 다시 구해야만 합니다. 아가씨께서 직접 대결에 나서는 일만은 피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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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화가 끝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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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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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敍事)의 진상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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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퀘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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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호북연가(湖北燕家)의 장녀 연설아의 안전을 확보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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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실패의 기준은 연설아의 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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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퀘스트의 실패시 중원 무림에서 30일간 생존하기' 퀘스트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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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을 더 세밀하게 펼쳤지만, 추적자들로 보이는 자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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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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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범선이 정박하는 위치에 추적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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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의 연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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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를 꺼내 글을 빠르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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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호북연가의 연설아를 보호해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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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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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북연가. 이곳도 선배들이 겪은 무림에 있었음? 여기 장녀가 부하 하나 데리고 도망치는 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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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 사망 시 퀘스트 실패. 이건 실패하면 재도전 기회나 다른 루트 같은 거 없고. 그냥 내가 30일 생존해내야 하는 퀘스트로 전환되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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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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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연가 자제 놈이 도망을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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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놈들이 가문 위세나 덩치로 따지면, 탑 무림 세계관 오대세가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왜 도망을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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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에에에-호오오북 연가의 사람들이 도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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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뭐 이계 쪽이 몇십 년은 흘렀으니 무림계도 그만큼은 흘렀을 거고…그럼, 연가가 망한 것도 말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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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그 말대로다. 멀쩡하던 가문이 망하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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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여기 산증인이 있지 않은가. 화산도 거의 망했었네. 대문파도 꽤나 손쉽게 망할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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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자학 유희 보소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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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화산파 장문인 "대문파도 생각보다 쉽게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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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검성 선배 화산은 어떻게 멸문에 가까워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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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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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등반자 이새끼…인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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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친구야!!!! 그게 무슨 소리니!!! 그런 질문은 개같이 망한 식당의 주인에게 이 식당이 망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 거나 다를 바가 없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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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 의도로 질문한 게 맞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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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어허, 이놈도 생각보다 똑똑하게 잘 맥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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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문파가 망하는데 생각보다 거창한 이유는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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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난세가 도래하고. 굳건하던 가문이 그렇게 파생된 모종의 일로 흔들리는 일은 흔하다. 그리고 한 번 흔들린 가문을 계속 노리고 있던 놈들은 신이 나서 쳐들어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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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탑 무림 세계관상 호북에 멀쩡히 자리를 잡은 가문은 그 지리적 위치만으로 먹음직스러울만 한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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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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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뭐 다른 말들은 없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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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쟁천무회장, 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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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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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무녀) 하와와, 연가 쪽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예상은 되는 것 같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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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그렇군. 나도 예상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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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세계 쪽 선배들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선배들도 호북연가의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 건지 예상이 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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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하드 난이도 탑에서도 '무림'을 다들 경험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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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이 세상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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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약조를 받아내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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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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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쟁천무회(爭天武會)는 정파에서 가장 큰 무투회임다! 1위를 하면 적어도 정파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규율을 하나 내세울 수가 있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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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어떻게 절대적일수 있는가! 무림맹주와 오대세가가 약속에 대한 공증을 서주기 때문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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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아마도 현재 연가에 적당한 무인이 없으니, 대리인을 내세워 우승하고!! 호북연가가 5년간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을 세울 생각인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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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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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계만 생각해도 약속 같은 건 무력에 따라 쉽게 짓눌러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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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근데 약속해 봤자, 그거 깨고 공격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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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그 말이 맞슴다!! 역시 등반자 공! 아주 똑똑하심다!! 제갈가(家)가 감탄할 정도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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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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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역대급 억빠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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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역시 사회생활은 이리저리 달라붙는 박쥐형 생존의 가문 사천당가!!!! 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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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나도 이제 슬슬 탑 친화적 사고를 이룩하기 시작한 부분에선 좀 감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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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ㄹㅇㅋㅋㅋㅋ 탑에 걸맞은 성정이 되어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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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그저 믿음으로 행해지는 일임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 지켜지는 게 게 사실임다. 무림맹과 오대세가가 천명하는 약조는 무게가 아주 무겁기 때문임다!! 최강의 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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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안전 확보가 가능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건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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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근데 퀘스트는 그 쟁천무회인가 뭔가를 1등 먹으라는 건 아니야. 연설아의 안전이 핵심. 그걸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지까지는 제시를 안 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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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겠음? 쟁천무회란 곳에서 1등을 할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그냥 호위 대상인 연설아 데리고 도망치는 게 살릴 확률이 높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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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밀실론자) 조금이라도 연설아의 생존 확률이 높은 건 놀랍게도 쟁천무회에 참여하는 쪽이다. - 이 세상은 거대한 밀실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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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내 생각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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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먼저 내놓은 선배들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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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밀실론자) 쟁천무회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위험부담을 지는 선택이지만, 적어도 그 대회의 진행 중에는 안전을 확보할 수 있지. - 이 세상은 거대한 밀실로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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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빛의검) 맞다. 그리고 일단 기거하고 있는 위치가 확실해지니, 예상치 못한 위협에 대비하기에도 변수가 그나마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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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이목이 쏠리는 만큼, 그 시선이 끌리는 동안은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검다!! 쟁천무회장에서 나가지만 않는다면 말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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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절대군주) 호북연가가 왜 다른 곳에 노려지고 있는가, 그건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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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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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뭐든, 설령 호북연가가 쫓기고 있는 이유가 정당하더라도 내가 호북연가의 측에 서서 연설아를 보호해줘야한다는 사실이 변할 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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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물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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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옷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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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에서 정체를 숨기기 위해 구매했던 검은색 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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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눈에 덜 띄는 옷을 고른 건데, 그래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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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럭저럭 깔끔한 옷을 옆에 두고 있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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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옷 같은 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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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심히 헝클어진 사내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날 위아래로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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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있는 옷이 특이하긴 하구려, 그래서 옷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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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달라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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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벤토리에서 황금 조각을 꺼내 사내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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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싸웠던 골레트라에게서 나온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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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값이 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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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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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큼! 그 옷이라도 달라고 할까 싶었지만, 확실히 그게 더 쓸모가 있겠구려. 옷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것까지 다 주는 건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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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스멀스멀 올라온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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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조각 300개가 인벤토리에 있는데 급할 때는 충분히 화폐 역할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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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장 멀끔한 옷으로 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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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통이 큰 형장이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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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들고 내가 소환되었던 객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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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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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온 한유성은 갑판 위로 올라와 있는 연설아와 형로의 대각선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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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존재감을 완전히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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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와 형로. 둘은 나름대로 얼굴을 애써서 가리고 있었지만, 한유성의 눈에는 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 창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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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호북연가 장녀 4위계 연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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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호북연가 4위계 무사 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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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육지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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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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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에 닻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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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长江)을 건너, 장강 남안의 진강을 지나 이어지는 수로의 끝자락에 도달한 끝에. 목적지인 소주(蘇州)에 도착한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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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저 너머 지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살의를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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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무인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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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위계의 무인이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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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떨거지들이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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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끄트머리까지 나선 사람은 5위계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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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5위계 낭인무사 양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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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히 우릴 따라오시오. 성심을 다해 초빙한 대리자도 이미 죽어버리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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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5위계 낭인무사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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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응해준다면 피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맹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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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압적으로 말하는 무인과 타이르듯 말하는 무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둘 다 가공할만한 살기를 짙게 내뿜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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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배의 몇몇 사람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나머지는 빠르게 하선하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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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배에서 내리게 만드는 건 그 말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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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인 간의 싸움에 휘말려 피를 보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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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에 승객과 선원들이 우르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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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와 형로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건 한유성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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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승객들 뒤따라서 같이 내려버릴까 싶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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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것대로 변수가 발생할 확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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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쇠뇌를 쏘거나, 암기를 던지고. 그게 연설아의 숨통을 끊어버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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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고개를 뒤로 돌려, 우두커니 서 있는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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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안 내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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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쥐가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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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한유성의 태평한 말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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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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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내려, 당신들이 내려야 내가 쓸데없는 일에 안 휘말릴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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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한유성에게서 시선을 떼고 형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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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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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끼가 되어 시간을 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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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허망하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형로랑 나, 무공 고하 차이가 얼마 나지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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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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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잡히면 홀로 분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폐가 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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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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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 장소에 이미 대기인원을 배치하고 있을 거란 예상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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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악을 하겠다고 다짐한 연설아가 오른손에 쥔 검에 검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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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 상황이었지만, 나서지 않으면 더한 상황에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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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정이 결국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연설아를 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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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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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호위는 죽여도 상관이 없다. 목표인 연설아만 제대로 확보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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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한 놈이 더 있습니다만, 모르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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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은 한유성까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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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거나, 아니면 게을러터진 나무늘보겠군. 어느 쪽이든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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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옵니다. 연가의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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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땅을 밟자마자 앞으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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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의 검로는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하나, 양가명의 검에 손쉽게 막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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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와 형로는 4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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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인 양가명과 등정의 무력을 쉽사리 극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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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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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보법으로, 연설아와 양가명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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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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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이 대각선으로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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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파공결과는 상이한 체계의 권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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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파괴적인 권(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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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뒤쪽에 부록처럼 적어놓은 부분은 보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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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앞부분만 빼면 된다. 파공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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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가 짙은 직선의 권로가 양가명의 상체 정중앙에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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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명이 입을 쩍 벌리며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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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명은 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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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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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검기가 휘감긴 검은 허공을 베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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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균형이 무참히 뒤틀려버렸다. 방금 맛은 단 일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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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양손은 다시 섬전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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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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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명의 복부와 어깨에서 무언가 붕괴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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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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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명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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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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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정은 양가명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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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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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숨통이 끊어진 게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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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번의 타격 만에 양가명을 죽인 사람. 한유성을 향해 모든 이의 시선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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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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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끼어들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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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양형이 이렇게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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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말들이 들렸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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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연설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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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려면 힘 조절할 여력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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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가 멍한 얼굴로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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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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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부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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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시신이 된 양가명이 아니라, 추격조 전체를 빗대어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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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에 보이는 추격조를 다 죽여버리는 건 시간을 길게 끌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그럴 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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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게 전부일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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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죽이고 상황을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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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이 침체 될 정도의 피해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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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한유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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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방향은 네가 잡아야지. 난 초행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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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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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등정까진 무력화를 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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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조는 몸을 움찔거리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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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빠져나갈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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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로의 말에 한유성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연설아는 그제야 사고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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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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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 쓰러져있는 건, 총 여덟 명의 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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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둘과 4위계 하나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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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 한 명과 나머지 넷은 어딘가가 부서져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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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범선에서 내리기 전에 초월자 갤러리를 통해 강호 생존 속성 강의를 수강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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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자, 중원 무림에선 어떨 때 살인을 해도 되는가? 강론(講論)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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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화산파 장문인이 직접 말아주는 《강호 살인 강론》 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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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분 정파 맞나요????? 요리보고 저리 봐도 사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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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 죽이면 삶이 고달파진다는 말을 덧붙이며 검성 선배는 댓글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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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우선, 결국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압도적으로 강하면 그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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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하지만 그건 슬프게도 7위계 이상은 되어야 취할 수 있는 기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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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거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살행(殺行)을 하란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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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무인은 죽이면 뒤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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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일을 수행하고 있는 존재가 낭인 출신이고. 그 일이 깨끗하지 않은 일이면 보통 책임을 묻지 않는 검다! 일을 사주한 쪽도 구린 구석이 가득하기 때문인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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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 사천당문은 그런 의도로 고용한 낭인들도 잘 챙겨주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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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무슨 소림까? 당문이 제일 잘하는 게 꼬리 자르김다! 절대 그런 일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검다!! 그것이 암투 제일가!! 장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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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건 뭐 자랑도 아니고 자학도 아니고 뭣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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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들은 지식으로서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한유성의 기준이 되어주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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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는 제압하는 것보다 죽이는 게 간단명료하고 승률이 높았기에 택한 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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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론 옳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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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단번에 죽여버리니, 나머지는 겁을 집어먹고 얼을 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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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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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가 코끝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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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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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입이 다시 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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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면서 설명을 듣도록 하지. 명가 자제면 보법은 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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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연설아. 그리고 형로. 셋은 동시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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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인벤토리에서 무녀 선배가 준 부적, 결성부를 꺼내 '비밀의 장막'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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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셋의 양옆에 있는 풍광을 왜곡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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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할 때는 이만한 아이템이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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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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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가 한유성과 발걸음 속도를 그제야 맞추었다. 그리고 옆으로 다가가서 입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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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절 도와주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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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상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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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답도 미리 생각해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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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가 연가에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고 말씀을 한 적이 있어. 그리고 배에서 속닥속닥하는 걸 들으니 지금 추격당하고 있다는 호북연가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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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유성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에 멀쩡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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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그 세계관의 호북연가에서 몇십 년 전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건 이상할 게 없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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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당하연 선배가 설계해준 신상을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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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당하연 선배의 조언대로 그럭저럭 빠르게 납득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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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네요. 은인께서 겪은 일도 아닌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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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아직 하지 마라. 까딱하다간 당장 죽을 수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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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냉담하게 말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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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으로 향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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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의 위치는 이곳,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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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중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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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골목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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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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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기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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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 사람들의 위치는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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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수준 이상의 무력을 가진 사람이 쫓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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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조를 완전히 끊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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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현재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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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땀을 닦으며 그제야 한유성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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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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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에 내세우려고 했던 대리 출전자는 죽어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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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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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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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상황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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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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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연설아는 형로와 눈빛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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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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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상식선에서 아가씨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호북연가 측에서 내세운 참가자가 쟁천무회의 제일인이 되는 거였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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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상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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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천마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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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선 밖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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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같은 정파 측 가문에게 쫓기고 연가의 장녀가 그쪽 세계의 천마신교에 입단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확실한 안전 확보 방법이겠으나, 그런 선택을 호북연가의 장녀가 할 리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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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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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께서의 무력은 6위계 정도로 보였습니다. 쟁천무회의 최대 기준인 6위계와 동일…저희의 대리 출전자가 되어주신다면, 차후에 막대한 보답을 해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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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형로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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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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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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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가 아니라 5위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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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로는 내 말에 두 눈을 깜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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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도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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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방금 5위계 둘과 4위계. 그리고 나머지를 단번에 쓰러트리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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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니까 그런 거고. 내가 5위계인 것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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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별개가 될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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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말이라는 듯이 계속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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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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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인으로 참여할 경우, 나한테 있는 불이익 같은 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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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한 건 형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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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불이익 같은 건 없습니다만, 쟁천무회의 절대적인 규칙인 불살…그게 대리인에게 행해졌을 때는 가해자가 받는 피해는 상당히 축소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을 쉽게 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인식이 안 좋은 건 매한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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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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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죽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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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의 압력에 의해 죽게 될 겁니다. 뒷배가 든든한 타 가문의 대리인이라면 몰라도, 낭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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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낭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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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성은 사실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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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은 문답은 이미 당하연 선배를 통해 들은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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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쁠 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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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만 생각해보면, 수많은 대련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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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계를 돌파할 수 있는 감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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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선택지는 거의 다 허황된 일일 뿐이고. 이게 가장 확률도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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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설아의 목숨을 구명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쟁천무회의 제일인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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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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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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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와 형로의 눈에 서린 이채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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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지만, 이번에도 왜 도와주시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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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당하연의 솔루션을 이번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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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에서 수련만 몇 년을 해서 말이야. 안 그래도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것 같은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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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산속에서 수련만 하던 사람인 검다…! 신인 운둔…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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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당하연 선배가 잡아준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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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난 말했다. 5위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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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동시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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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괜찮아요…! 제가 준비했던 대리인보다 더 강하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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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입가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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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지 않냐? 그 사람 그대로 진출했으면 바로 지고 끝났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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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내 말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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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그건 그것대로 문제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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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으로 가는 길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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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제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쟁천무회에 참여할 거란 의사표명만 제대로 해두면 방금처럼 대놓고 추격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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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이제 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그나마 차분해진 듯 행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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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묵을 장소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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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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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표명을 한다 쳐도, 해가 뜨고 나서 해야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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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의 앞에 있는 작은 여관이 있는데. 그곳의 주인이 제가 아는 지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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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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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믿고 있는 구석이 하나 정도는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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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의 말대로, 여관 운몽루에는 해가 될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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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시오. 친우의 동생에게 위해를 가할 만큼 못 배운 사람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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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혁운이라고 소개한 사내는 연설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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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이는 아직 행방불명 상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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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가 힘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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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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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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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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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소면 한 그릇과 만두를 먹어치우고 난 뒤에 연설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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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왜 호북연가가 이런 상황인지 말을 해줘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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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한유성의 질문에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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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가문의 장남인 연유신 오라버니가 실종됐어요. 문제는 그전에 오라버니가 했던 일인데…백리세가의 장남인 백리혁과 대련 중에 백리혁을 죽여버리고 실종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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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문의 장남을 죽이고 실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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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이려고 죽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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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연설아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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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 대련의 목격자는 단 한 명인데…그게 백리세가의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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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유신이란 사람이 살아있다면 물어보는 게 확실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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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가 한유성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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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물어보고 싶은데! 정말 그러고 싶은데! 정말 어디에 틀어박혀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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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이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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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것보다는 살아있는 게 낫긴 하지만,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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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의 장남은 죽은 게 확실하고. 그걸 빌미로 백리세가 측에서 호북연가를 집어삼키려는 움직임을 취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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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다른 가문도 아니고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 측에서 백리세가의 편을 들어주어서…오라버니가 백리혁을 죽인 걸 빌미로 주력 무인들이 간밤에 살해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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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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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장 가문의 존폐가 위태로운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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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의 굳은 얼굴은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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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가주인 아버님이 가문을 철저히 지키고 계시지만…점점 더 상황이 힘들어질 게 분명하죠. 6위계 제한이 없었다면 아버님이 직접 참여를 하셨겠지만, 아버지는 7위계이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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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현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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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까지 남아있는 시간은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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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쟁천무회장으로 향하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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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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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할 일은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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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법 창안과 무공 수련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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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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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쟁천무회장의 건너편 끝자락에 있는 낡은 건물 안에서 가부좌 자세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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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내공심법(內功心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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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로 고유한 마나 연공법을 창안해내야만, 6위계에 발을 들일 기틀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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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가 되려면 자신만의 마나 연공법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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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빛의검 선배가 준 용살검 검법서에 적혀져 있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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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최근이 아니라, 5위계에 들어선 직후부터 쭉 시도해온 일이지만, 아직도 심법은 완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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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연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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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나의 기류가 닿지 못한 구간이 있다고 어렴풋이 예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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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넌 지극히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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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6위계를 도달하는 건, 1위계에서 5위계까지의 도달보다 몇 배는 더 험난한 길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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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계에에에에위- 무서운 사실! 이 말 그대로 7위계에 적용할 수 있고. 8위계에 적용할 수 있고! 9위계에 적용할 수 있드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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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히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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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한유성, 네 그릇이 거대하여 늦는 것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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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로서의 그릇이 커서 늦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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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맞다 해도, 어쩌라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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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그릇의 크기고 뭐고. 네놈 정도면 성취가 아주 빠른 거다. 등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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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린 게 아닌 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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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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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 상태에서 탑에 진입한 반 이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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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1층부터 13층까지 얼마나 걸렸냐고? 3년하고 2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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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능이 충분했던 반도 그만한 시간을 소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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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계는 원래 흐릿하게 보였던 때라 금방 올라갔는데. 6위계가 힘들었지. 스테이지 깬다고 오래 걸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대기실에서 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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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역'을 창안 한다고 시간이 한참 더 걸린 것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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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초월자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던 덕에 겁 없이 층계들을 뚫고 올라간 나와 달리, 반은 계속 생존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가늠을 하면서 올라가야 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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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나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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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핑계를 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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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고통스럽다며 고뇌를 하고 징징거릴 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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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심법도 결국 네 심상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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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검) 네가 싸우던 방식, 네가 전투를 이어나가는 흐름을 떠올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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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계속 마나 연공법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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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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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체내를 계속해서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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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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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때로는 폭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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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길을 열기 위해 부단히 마력을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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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닿지 않았던 두 기둥의 끝 지점까지 마력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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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부터 고통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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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르지 말았어야 할 나무에 올랐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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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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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떨리고 뼈가 삐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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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개의 검이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모두 짓누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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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이겠다는 심상을 바깥으로 표출하고.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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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을 시작한 지 3일을 넘어, 며칠이 흘렀는지도 까맣게 잊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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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고유의 마나 연공법을 창안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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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제대로 창안을 해냈으면 조금이나마 육신이 바뀐 지점이 느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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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선배의 댓글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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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더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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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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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들이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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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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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호흡 자체가 육체와 더 친숙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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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가 나의 기(氣)를 거부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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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6위계로 향하는 전제 조건은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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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연공법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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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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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은 아직 안 정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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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어! 그거 이름 정해야 더 원활하게 운용 될 건데! 이름은 곧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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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엌ㅋㅋㅋㅋㅋ 이 고양이 지금 진지한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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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그런 건 없단다. 이름이 있는 게 좋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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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수왕) ???? 읭??? 아부지도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그렇게 말했는데!!!!! 그런 게 없다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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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깔깔깔깔, 몇 대를 걸쳐 공들인 미신 가스라이팅에 제대로 당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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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드디어 5위계의 끝에 온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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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하지만 끝의 끝이 있고 그 끝이 있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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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주 저주를 해라 저주를 ㅋㅋㅋㅋㅋㅋㅋ 다 왔다고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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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래, 우리 이지 노멀 범부들은 멀쩡한 심법을 만들어내지 못하지…이제 우릴 짓밟고 올라가라, 역대급 신인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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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얼음여왕) 꽁꽁! 딱 한 번의 거대한 폭풍이 한 번 터지면 곧바로 6위계로 돌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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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마룡왕) 벨투이- 거대한 폭바아알이 필요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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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이제! 쟁천무회! 출전인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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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내일 아침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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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출격인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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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정치질을 조심하시오. 겉보기엔 머리에 무(武)밖에 들어있지 않게 생긴 놈들이 머릿속에 능구렁이를 키우는 경우는 흔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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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이상한 말 하는 놈들 입을 터트려 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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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그때는 다시 갤에 오는 검다!!! 맞대응 방법을 알려드리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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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매화향을 좀 맡게 하면 조용해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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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주 선배의 도움이 되는 조언은 그렇지 않은 말들에 빠르게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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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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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의 회장 입구는 소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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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깨트린 혈겁의 원흉이 잘도 쟁천무회에 발을 들이미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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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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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백리세가의 둘째 공자, 백리휘의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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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아직도 연유신의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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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그 서슬 퍼런 시선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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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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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빛 돌계단이 산등선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벽 아래, 무림맹의 호위대가 엄정한 자세로 줄을 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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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호북연가의 자제가 참여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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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네도 들었지 않은가, 호북연가가 준비했던 대리인은 양주(揚州)에서 범선이 출발을 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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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나같이 위세가 등등한 가문들의 일원들이 주목을 하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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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건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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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5위계의 무인, 백리휘는 날이 선 살기를 연설아에게 쏘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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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짙은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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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성의껏 준비한 장기 말이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죽었거늘 왜 이곳에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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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냥거리던 백리휘의 시선이 좌측으로 휙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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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살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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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연설아를 향해 쏟아내던 살기가 찢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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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더한 살기가 백리휘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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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살기의 발원지는 연설아의 뒤에 선 한유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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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눈에 띄는 무림맹 호위대장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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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소속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체포하겠다. 살기를 거두고 이름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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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연설아에게 향하는 백리휘의 살기를 보고서도 조처를 하지 않고 방치한 무림맹 호위대에게 흘렸던 살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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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 쟁천무회 대리 출전자,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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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연설아를 보며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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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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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연설아가 회장의 입구에 들어서고 나서야 살기를 모두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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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인들의 시선이 한유성에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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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살기를 받으면 살기를 돌려줘라. 얕보이면 뜯어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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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그런 대회의 경우, 윗선들이 재미있어하는 상활을 만들면 어지간한 짓을 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아주 쾌락이 터져 나오는 상황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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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유명한거지) 아주 좋은 거 가르치시고 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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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초월갤 선배들에게 들었던 조언대로, 저 멀리서 윗선들로 보이는 이들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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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도 쟁천무회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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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쟁천무회장 내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의 집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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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대한 살기가 한유성의 몸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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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 살기를 내뿜는 상대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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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하북팽가 가주 7위계 팽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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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7위계의 살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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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를 만난 것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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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스테이지, 카르민 에버하트를 벤투라 아카데미에 입학시켜야 하는 내용의 퀘스트 형 스테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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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만난 벤투라 아카데미 학장, 만델스가 7위계의 대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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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델스는 자신을 위협하기 위한 살기 같은 건 뿜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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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아도 존재감 자체는 여실히 느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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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의 살기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확실히, 마주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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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고 있는 호북연가의 대리인으로 나온 게 괘씸한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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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어제 고유의 마나 연공법을 어제 체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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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득한 뒤로 한층 더 기민하고 섬세하진 마력의 전개. 그리고 그간 철저히 쌓아 올린 정신력이 7위계의 살기를 두 발로 서서, 그것도 썩 태연한 모습으로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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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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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7위계의 면면을 살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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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좀 그만두라고 말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쟁천무회의 출전 기준을 6위계 이하로만 한정한 것도 나름의 공정한 판을 만들려고 정한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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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7위계 무인들은 끅끅 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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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이름값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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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모용세가 가주 7위계 모용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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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사천당가 가주 7위계 당명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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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남궁세가 가주 7위계 남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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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갤 선배들이 설명해준 오대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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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대세가의 가주인데 7위계가 아닌 가주는 한 명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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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제갈세가 가주 6위계 제갈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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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를 넘는 무인이 어지간하면 없을 거라는 초월갤 선배들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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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곧이어, 살기가 거둬지는 걸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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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는 거두어들였지만, 하북팽가의 가주 팽무일의 얼굴은 여전히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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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직선으로 서 있는 이들의 뒤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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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자들의 통제를 맡고 있는 집행관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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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접수 날이다. 대전은 내일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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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주변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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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갤 선배들의 말대로, 오대세가의 자제는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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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남궁세가 출전자 6위계 남궁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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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하북팽가 출전자 5위계 팽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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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세가의 자제가 모두 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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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한두 명 정도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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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검성) 이미 무림 내에서 갑의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오대세가 측이니, 쟁천무회의 제일인이 된다고 해서 뭘 특별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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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간혹, 자제를 내보내는 오대세가의 의중은 결국 자식 자랑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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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다음 순번으로 주의할만한 필요성이 있다는 자들을 떠올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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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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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소림사 출전자 6위계 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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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무당파 출전자 5위계 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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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곤륜파 출전자 5위계 청허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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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점창파 출전자 5위계 석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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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화산파 출전자 5위계 유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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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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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 세계의 무림과는 상관이 있을 리 없지만, 갤러리 선배들이 속하는 가문들이 한유성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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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는 있었지만, 당가나 개방의 자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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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모두 출석하는 건 그것대로 이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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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출전자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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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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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세가와 구파일방에 속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눈에 띄는 이들은 다섯 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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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인들의 안내에 따라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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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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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천무회장을 둘러보며 차례를 기다리니, 집행관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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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해하는 건 절대 금한다. 팔과 다리가 깔끔한 절단면으로 잘렸을 때는 천의(天醫)께서 치료를 해주실 거다. 하나, 상처가 난잡하게 났을 때는 천의께서도 완벽한 치유를 장담하실 수 없으니 어지간하면 피를 보지 않는 걸 추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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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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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를 내리는 조건은 간단하다. 한쪽이 패배를 선언하면 그 출전자의 패배로 경기가 끝난다. 그리고 무대 위의 심판이 승자와 패배를 가려내면 그걸로 경기가 끝난다. 후자의 경우, 심판은 최대한 그 상황에 맞는 공명정대한 판단을 내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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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의 말에는 묵직한 무게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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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심판이 내린 승패에 대한 반박은 받지 않는다. 그렇게 반박을 한 출전자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든, 심판의 판단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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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의 말이 끝나고. 한유성의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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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작은 단상 위에 서 있는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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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 집행원 5위계 조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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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미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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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이들의 모습을 봐서 왜 손을 내밀라고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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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의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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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위계를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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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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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오른손을 맞잡은 조태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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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확인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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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를 확인하는 집행원은 접촉한 상대의 위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류에 민감한 사람으로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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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 이상의 무인은 내력을 탈바꿈시켜 위계를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쟁천무회장에 펼쳐진 제갈가의 진법으로 그런 사술은 잡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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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의 확인과 함께 접수를 끝낸 한유성은 굳은 얼굴로 앉아있는 연설아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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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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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질문에 연설아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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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으…지금 상황에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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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며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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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친했던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가문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난 후로는 그나마 친했던 사람들과도 거리감이 생겨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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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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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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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드리워진 그림자의 주인을 보고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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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방금 힐긋 바라봤던 사람 중에 있는 사람이란 걸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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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 이야기는 들었어. 화산에 왔었다면 도와줬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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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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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화산파 출전자 유화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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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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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그럴까 고민했는데…너무 폐를 끼치게 될 거 같아서요. 또, 이런 일은 가문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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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윤의 시선은 연설아의 옆에 앉아있는 한유성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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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함이 한유성이라고 하셨죠? 한 소협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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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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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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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윤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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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협은 내일은 고생을 좀 하시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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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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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0명이 넘는 출전자를 32명까지 줄이는 과정을 내일 치르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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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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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 숫자를 듣고서 무슨 말인지 예측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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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 인원을 추리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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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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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윤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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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명이 추려지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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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정도의 자동 본선 진출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싸우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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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윤은 한유성의 질문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대로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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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쟁천무회에 참여하지 않은 가문의 자제나, 대리인들끼리의 싸움을 먼저 이끌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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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좀 여러모로 불공평한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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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이름값을 덜 쌓아놓은 만큼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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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설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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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윤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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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그럼, 우리 설아를 지키기 위해서 고용이 된 것 같은데. 그 목적을 제대로 이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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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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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쟁천무회장 내의 숙소는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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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연가가 아직은 무림맹에 멀쩡하게 속해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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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된 방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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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역할을 하는 천이 있었기에, 한유성과 연설아는 그 천을 기준으로 나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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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몸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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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너머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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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일에 말려들게 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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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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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칭얼거림을 듣기에는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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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아는 이내 풀썩 쓰러지듯 바닥에 쓰러져,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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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천에 검은색 음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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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초월자 갤러리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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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질이나 하다가 잠에 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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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쟁천무회 출전 접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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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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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파 자제는 출전했는데. 나머지는 없네. 당가나 개방은. 오대세가는 남궁이랑 하북팽가. 구파일방은 소림, 무당, 곤륜, 점창 정도 출전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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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은 결국 해봐야 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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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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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그쪽 사천당가도 쓸데없는 데 힘을 쏟지 않는 부류인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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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시궁창검성) 겁이 많은 것에 가깝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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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당하연) 적당히 겁을 먹는 건 안전한 생존을 할 수 있게 해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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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무공에 관련된 창을 공략하는 법을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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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네 입장에서 까다로운 자는 소림일지도 모르겠군. 아직 무투를 극한으로 익힌 상대를 만난 적이 별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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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들은 무수히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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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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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선배가 준 마법서는 대기실에서 계속 연습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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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은 마법을 쓰는 놈들이 없는 세계인만큼, 유사한 부류의 기술과 무공으로 상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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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조언을 꼭꼭 씹어 삼킨 한유성은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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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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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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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회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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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아직 무림에 이름을 전혀 알리지 못한, 무림 초출로 예상되는 이들을 먼저 불러 본선 출전 인원을 추리는 예선을 시작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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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집행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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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되는 이들은 빈 무대 위로 올라가 자신과 전투할 상대를 지목하시오. 앞쪽에 나열한 목록에 한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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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의 무인, 현백세가의 둘째 아들인 현영결은 주변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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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는 쓰러트려봤자 주목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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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자존심이 단단히 구겨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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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도 쟁천무회에 참여했거늘…4위계였을 때, 같은 4위계의 손에 패배해버리는 바람에 두 번째 참가에 5위계임에도 예선에 불려 나가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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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를 달성하고서도,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에 진득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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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삼아 출전한 걸로 보이는 3위계나, 자신보다 낮은 위계인 4위계를 고르면 본선에는 쉽게 올라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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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선 이번에도 같은 취급을 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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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위계와 이름이 적힌 목판의 끝자락을 검지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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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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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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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으로서 소속된 가문인 호북연가는 모종의 이유로 정파의 수치가 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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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배라고 할 수준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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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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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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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인벤토리에 검을 집어넣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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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선까지는 주먹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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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호신강기를 전신에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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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어젯밤, 수련장에서 권법 수련을 하는 한유성의 모습을 목도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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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완전한 권사(拳士)인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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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현영결이 한유성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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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성이 제일 만만한 건 무투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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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기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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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창을 양손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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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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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위계인 이상, 거리 싸움에서 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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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회를 노리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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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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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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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에 푸르스름한 기류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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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과과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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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완벽한 찌르기가 허공을 짓이기며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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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어젯밤 갤러리에서 본 창왕 선배의 조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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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 다수의 무인이 그렇듯, 5위계 쯤 되면 본인이 아주 강해진 줄 착각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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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 그쯤 되면 숨도 못 쉬게 상대를 몰아붙여 본 경험도 있을 테고. 하나, 그 경험이 독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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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 자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공격 범위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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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 내뻗는 팔의 방향. 발의 위치. 그걸로 창로는 계산이 가능하다. 단숨에 턱 밑까지 도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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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天魔) 거리를 좁혀서 패라는 말을 아주 장황하게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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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대마법사)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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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아, 맞네. 같은 소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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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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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왕 선배의 말대로, 창로의 방향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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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한유성의 전투 감각은 그걸 이미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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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을 듣기 한참 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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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미간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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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찌르기. 그 두 번을 찰나의 간격으로 피해낸 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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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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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찌르기를 피해낸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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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으로 휘두른 창로는 반드시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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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에서 현영결이 가장 자신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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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상대방이 예감도 하기 전에 극도의 변초를 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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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의 양팔을 기민하게 움직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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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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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의 안면이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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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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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주먹을 막고자, 본능적으로 들어 올린 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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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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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으스러졌다. 미약하게나마 기류를 흘리고 있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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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대의 파편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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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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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의 오른쪽 어깨가 함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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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초식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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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주먹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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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굴에 주먹을 맞기 전에 그 어떤 전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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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거리를 좁힌 건지 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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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수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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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저 움직였는데. 자신의 흐름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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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결은 왼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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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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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창왕) 창쟁이들 사이에는 쓸데없는 내적 친밀감이 있으니, 한 놈이 너무 쉽게 졌다 싶으면 호전적으로 나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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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왕 선배들의 말대로, 객석이나 비무대 앞에서 옆에 창이 있는 이들에게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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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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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들것에 실려 가는 현영결을 내려다본 뒤, 너머에 있는 명패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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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승리하면 본선에 진출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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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인원 목록에는 6위계가 없으니, 다들 고만고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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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박수를 세 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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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아무나 올라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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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세가의 백리휘가 예선 인원 목록에 있었다면 그자를 직접 지목해서 비무대 위에 세웠겠지만, 아쉽게도 무명(無名)은 아닌 모양인지 목록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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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결투를 치른 상대는 4위계의 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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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입으로 호승심으로 인해 올라왔다고 한 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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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이길래 검을 쓸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예선까지는 권법과 각법만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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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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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번에도 무투만으로 상대의 항복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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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선 진출을 확정시켜서 그런지, 시선의 주목을 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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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장에 들어서니, 그 시선의 숫자가 늘어난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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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군……호북연가에서 내세운 대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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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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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썩 잘 패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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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옆에서 힐긋힐긋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다가오는 이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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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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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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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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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소이다. 멋진 권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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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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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갑자기 내 옆에서 육체단련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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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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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은 들었지만, 굳이 말을 얹을 사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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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운동이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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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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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천무회의 본선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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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천무회장은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과 호승심으로 잔뜩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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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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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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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회장의 단상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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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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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젯밤에 대진표 아래에 적혀 있던 이름을 확인하고서야, 무림맹주가 남궁세가 가주인 남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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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쟁천무회는 이 무림의 미래를 확인하는 숭고한 과정이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도 좋다만, 상대의 목숨을 취하는 일은 삼가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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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남궁원의 목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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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럼 모두 최대의 역량을 발휘해, 후회 없는 결전을 치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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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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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궁창검성) 6위계는 단순히 '권역'을 창안해냈느냐 마느냐로 단계가 나뉘지만, 7위계부터는 세 분류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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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시궁창검성) 초위(初位), 중위(中位), 극위(極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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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天魔) 그래도 맹주 쯤 되는 놈이면 같은 7위계라도, 극위에 해당할 확률이 높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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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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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아직 7위계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당한 적이 없기에 세분화된 수준에 따른 격차를 체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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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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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석에 앉아 있는 무수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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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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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천무회는 그렇게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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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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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에 붙어진 대진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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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은 점창파, 5위계 석이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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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대전이 정해진 건 어젯밤이었기에 점창파의 무공에 대해선 초월갤 들은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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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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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면 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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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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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온 상대는 다름 아닌, 본선 첫 번째 상대인 점창파의 석이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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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당신이 보여줬던 전투는 썩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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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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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의 소림파 출전자와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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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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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계속 생각했던 부분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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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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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이준이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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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 주먹이 아니라 검을 쓰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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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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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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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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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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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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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과 거리를 좁힐 때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네 발걸음은 검을 든 자의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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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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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주무기라는 걸 눈치를 챌 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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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법을 섞어 쓴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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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계속 주먹을 쓸 흥이 좀 식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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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써라. 검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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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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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검은 그렇게 무르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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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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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대 위에 서자,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관객의 주목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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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허리춤에는 예정에 없던 검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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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내가 검을 쓴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검을 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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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선배들의 댓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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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녀) 하와와, 점창의 검법은 매섭다와요. 몸이 꿰뚫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것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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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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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왕) 점창의 검은 무시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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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天魔) 하지만 5위계. 전력으로 상대하면 네가 이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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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검) 뭔가를 얻으려면, 네 쪽에서 어느 정도 힘을 낮추고 들어가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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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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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힘 빼고 싸울 수 있는 경기가 계속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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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모니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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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여왕) 꽁꽁!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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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룡왕) 벨투이- 다 이겨버리는 거예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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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왕) 설마 지겠음? 설마 지겠음? 설마 지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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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연) 다 쓸어버리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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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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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뭐야, 저놈 권법 쓰던 놈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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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이거나 그 이하의 위계를 지닌 이들은 대부분 한유성이 검을 쓴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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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검수였나. 중간중간 나오는 거리 재기가 권사 같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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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계들도 석이준과 같이 눈치가 빠른 이들은 한유성이 권사가 아니라는 건 알아차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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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흑색 나무 작대기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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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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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몸을 아래로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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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몸을 뒤로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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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싸움에서 패하여,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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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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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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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소리와 함께 어깨죽지에서 일어난 균열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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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를 제대로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왼팔이 반쯤 잘려나갔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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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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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입가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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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웃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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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의 첫번째 상대가 입만 산 놈이 이나리라는데서 오는 안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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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가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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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그 말을 자신이 아닌, 석이준이 내보이는 움직임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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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의 검로(劍路)에는 이질적인 기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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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스러운 종류의 이질적임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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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무공으로서 가지고 있는 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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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점창파의 무학은 사납다. 극쾌와 파괴라고 요약을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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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天魔) 이때까지 한 말과는 다르게 들리겠다만, 검의 궤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할 필요는 없다. 끝지점. 끝만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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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 점창을 상대할 때만큼은 거리 조절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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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과 석이준의 검이 무수히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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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용살검 대신, 반 이네르의 검술인 '피엘뷔르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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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완전히 습득해내지 못한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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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석이준의 검과 합을 쌓아나가면서 피엘뷔르트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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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술의 강점은 자유로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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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따리 변형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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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살검이 극강의 공격에 치중되어있고. 절대군주 선배의 검술인 발세나르츠가 균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피엘뷔르트는 자유로움에 중점이 맞쳐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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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조금 더 한계까지 끌어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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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뷔르트가 아닌, 용살검을 사용했다면 진작에 결판이 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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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승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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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피엘뷔르트 검술을 고집한 것은 이 전투에서 얻어갈 수 있는 가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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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턱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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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나? 가문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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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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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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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판은 만들어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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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에 석이준은 잠깐 고민하듯, 오른팔을 천천히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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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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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빙 돌리던 손목을 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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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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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소수들도 느끼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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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한 끗 차이긴 해도, 한유성이 계속 석이준을 조금씩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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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말이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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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 스스로도 승리를 쟁취 하기 위해선 비기를 쓰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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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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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정면으로 세운 석이준의 몸이 앞으로 훅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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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소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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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로가 불명확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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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신경을 쏟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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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허공에 전시되듯 정지된 피사체처럼 명확하게 관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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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검로는 이미 출수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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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건 이미 쏘아진 검격이 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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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검기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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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를 뒤덮은 검로를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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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의 파편이 어꺠죽지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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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강기 덕분에 파편이 박하진 않았으나, 서늘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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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의 팔이 한 번 더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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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도 충분히 극쾌라는 명칭에 걸맞는 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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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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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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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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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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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빛을 쏘아낸 것만 같은 가공할 만한 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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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찌르기가 어떤 형태의 검기가 휩싸이고 뒤덮여 만들어진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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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에서 느껴진 건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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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무공의 절학을 관철 시킨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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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로 벼려진 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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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내지른 찌르기가 육신에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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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수한 반복으로 체화되었을 균형 잡힌 자세는 석이준을 한 자루의 검으로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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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합일의 경지와는 거리가 먼 위계를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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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검법(射日劍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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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예사일(后羿射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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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내지른 사일검법의 초식을 바라본 쟁천무회장의 무인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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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통상적인 5위계의 위력은 넘어 선 고강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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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개입을 하면 막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서기 위해 심판의 뒤에 서있던 무림맹 소속의 무사 곽익은 검의 손잡이에 올린 채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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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려고 했으나, 찰나에 보인 한유성의 얼굴이 너무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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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힘을 조금 내려놓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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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탄할 만한 검로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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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감탄만하고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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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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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즈려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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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대의 바닥이 파편을 흩트리며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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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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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의 주변 풍광이 뒤로 훅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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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이 검을 내리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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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만들어낸 직선의 광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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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양 갈래로 쩌억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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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렇게 초근접 거리에서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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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검이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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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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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이 쥐고 있던 검이 허공을 치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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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준의 몸뚱이가 붕 뜨더니, 순식간에 뒤로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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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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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벽면에 석이준의 몸뚱이가 처박히기 직전, 관객석에서 무언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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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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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석이준의 몸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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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석지광은 의식을 잃은 석이준을 보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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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열기가 흐르는 걸 보면, 이기기 위해서 순식간에 내력을 바닥 끝까지 끌어썼으나 패배를 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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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광은 비무대 위에 서있는 한유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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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그에게 승리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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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광은 동생이 패배를 인정할 거라고 확신했기에 얌전히 석이준을 회복실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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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우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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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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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대전을 보는 것도 많은 깨달음을 주겠으나, 우선은 자신이 방금의 전투에서 얻은 수많은 감각을 지금 모두 갈무리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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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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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비로소 유의미하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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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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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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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경험치 보유 조건이 해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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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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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8 → Lv.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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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승리를! 더 많은 명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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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알림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반길 만한 녀석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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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성은 다시 집중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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