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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음악가 하멜(Hamel) (12) - 어떤 악사의 하루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하멜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해준 것은 나무 천장의 얼룩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과 닮은 그것은 이 여관방에 머문 이들에게서 수많은 악평을 자아낸 악명 높은 녀석이었지만, 하멜에게는 무척이나 친근하고 기꺼운 친구였다.
저 친구 덕분에 이 방값이 다른 곳에 비해 저렴했으니, 그야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하멜에게는 귀신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서웠다.
악기라는 게 원체 비싼 물건이다 보니 공용 숙소에 머물 때마다 슬쩍하고 훔쳐 가려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잦은 시기에는 바깥의 환경 그 자체가 적이나 마찬가지.
그에 비해 소문만 무성하지 정작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 귀신과 동거하는 대가로 1인실을 쓸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가볍게 채비를 갖추고 1층으로 내려가자, 후덕한 인상의 점주가 커다란 나무 상자에 빵을 담고서 여관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빵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점주는, 하멜을 보더니 인사를 건네왔다.
“잠은 잘 잤나? 유령한테 홀린 건 아니지?”
“홀렸다고 하면 보상이라도 나옵니까?”
“입이 잘 돌아가는 거 보니 멀쩡한 모양이군. 대충 구석에 앉아 있게.”
점주는 방금 가져온 빵 중 비를 맞아 상태가 좋지 않은 놈들을 몇 개 고르더니, 칼로 퍽퍽 내려쳐서 찢고 뭉갠 다음 그걸 이미 끓고 있던 스튜 냄비에 집어넣었다.
고소하다고 평하기에는 다소 탄 내가 강한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투박한 나무 그릇에 담긴 스튜와 절반으로 쪼갠 빵 한 덩어리가 테이블 위에 대령 되었다.
스튜의 내용물은 감자와 콩, 그리고 빵 부스러기.
고기는커녕 향신료 역할을 할 마늘이나 양파조차 들어가지 않은 스튜는 빈말로도 훌륭한 맛이라고 평하기 어려웠지만, 하멜은 이 스튜를 제법 좋아하는 편이었다. 적어도 건더기가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도 의심스러운 다른 스튜에 비하면 훨씬 걸쭉해서 배는 든든해졌으니까.
빵을 스펀지 삼아 그릇 바닥까지 비워낸 하멜은, 그대로 피리를 꺼내 들고는 점주를 향해 물었다.
“신청곡은 있으십니까?”
“내가 곡 이름 같은 걸 알겠나? 대충 그 뭐냐, 신나는 걸로 해주게. 빗소리만 계속 들으니 영 처지거든.”
“좋습니다, 그러면 경쾌한 걸로 가죠.”
하멜이 피리에 숨결을 불어 넣으며 손가락을 움직이자, 통통 튀는 듯한 선율이 여관 곳곳을 가득 메웠다.
그 음악이 마음에 드는지 점주는 콧노래로 선율을 따라 했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퍼져 있던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1층으로 기어 나왔다.
“허어, 피리 하나로 이런 소리가 나다니 신기하네.”
“공원에서 처음 들었을 때보다 실력이 늘어난 것 같은데?”
“뭐 이건 이것대로 운치가 있긴 하네. 혹시 다른 노래도 되나?”
사람들은 저마다 흥겨운 얼굴로 하멜의 연주를 평가하거나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고, 아침을 먹고 난 뒤에는 조금 들뜬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한적해진 여관 1층.
“어이, 이거 가져가게.”
마찬가지로 자리를 떠나려 하는 하멜을 향해, 점주가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빵 몇 개를 내밀었다.
“웬 겁니까?”
“관람료? 공연료? 아무튼 뭐 그런 걸세. 계산은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거든.”
“허어, 이렇게 서비스가 좋으신 분인 줄은 몰랐군요. 처음 묵었을 때만 해도 생쥐 나온다고 항의했더니 친구가 많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핀잔을 줬잖습니까?”
“아 거 옛날이야기는 왜 꺼내? 그리고 원래 여관에 생쥐 같은 건 다 있는 법이야. 우리만 이상한 게 아니라고.”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적이던 점주가, 툭하니 중얼거렸다.
“이 도시 놈들은 말이지, 기본적으로 여유라는 게 거의 없어. 항상 뭐에 쫓기듯이 살고, 제 주변 인간들이 죄다 적인 것처럼 굴지. 근데, 네 연주를 듣고 있으면 다들 조금은 편한 얼굴을 하더군. 덕분에 나도 아침부터 짜증 내는 놈들 상대 안 해도 돼서 좋고.”
하멜은 제 손에 들린 검은 빵과 점주의 얼굴을 잠시 번갈아 바라본 후, 이내 질문했다.
“만약 제 손에 들린 게 악기가 아니라 검이나 책이었다면 달랐겠지요?”
“응? 책은 몰라도 검이면 뭐, 용병 같은 거? 아이고, 말도 말게. 그런 깡패 같은 놈들 있어 봐야 괜히 분위기만 험해지지. 사람들이 웃긴 왜 웃겠나?”
“하하하! 그렇군요. 확실히 이 길은 이 길만의 매력이 있는 듯합니다.”
유쾌한 듯이 웃어넘긴 하멜은, 이내 점주를 향해 감사를 표한 후 가게를 나섰다.
하늘은 변함없이 먹구름으로 우중충했지만, 다행히 비는 훨씬 옅어져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골목길로 향하자, 그곳에서 저들끼리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하멜의 모습을 보고 반색했다.
“악사 형 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또 이상한데 끌려간 줄 알고 걱정했잖아!”
“하핫, 선물을 준비하느라고 늦었지요. 자, 받아 가시죠.”
“오! 빵이다!”
딱딱하고 맛이라고는 없는 검은 빵이었지만, 한 끼를 배불리 먹기도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일단 먹고 탈이 나지 않는 먹거리라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들은 머릿수에 맞춰 빵을 이리저리 쪼개 나눠 가졌고, 관객들의 손과 뺨이 풍족해진 걸 확인한 하멜은 즐거운 얼굴로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그가 자아내는 박자 하나, 음정 하나에 표정을 바꾸고 눈을 바꾸는 어린 관객들을 보며, 하멜은 문득 ‘안개 낀 술잔’의 오너가 건넨 제안을 떠올렸다.
「괜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애먼 짓하지 말고, 그냥 우리 쪽에만 계속 고정으로 나오는 게 어떻겠나? 그편이 벌이도 훨씬 좋고, 위험도 덜할 걸세.」
그것이 오너 본인의 의지였는지, 아니면 그 뒤에 있을 누군가의 압박으로 인한 결과였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악의가 담긴 제안은 아니었다.
실제로 하멜이 부와 명예를 원한 거였더라면, 망설임 없이 오너의 제안을 받아들였겠지.
변변한 관람료 한 푼 받기 어려운 길거리 공연 같은 것보다, 부유한 이들 앞에서 솜씨를 뽐내는 게 여러모로 효율이 좋고 안전도 확보되었을 테니.
하지만 하멜은 알고 있었다.
만약 효율만을 따졌더라면, 그는 애초에 이곳에 존재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황태자 알론드가 음악에 손을 댄 계기는 어린 시절 교양 수업의 일종이었지.
비록 시작은 주변의 권유였다고 한들, 황태자는 나름대로 악기 연주를 즐기는 편이었다.
허나 어느 정도 경지. 그러니까 함께했던 음악 스승들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합격 선언을 외친 이후로는 더 이상 음악을 파고들지 않았다.
우선순위가 낮았으니까.
제국의 황태자가 습득해야 할 수많은 기능 중에서, 음악이란 잘하면 좋고 못해도 크게 상관없는 여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황태자 본인이 하려고만 한다면 90점을 91점으로, 92점으로 계속해서 올리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그에 소모될 노력과 시간이면 필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실력이 오른다고 해도,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건 본인의 자기만족 정도일 테니까.
그렇게 황태자는 음악의 길을 접었다.
하고 싶은 걸 전부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어른다운 타협과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하멜이 생각하기에, 자신이란 존재는 미련이었다.
제국의 황태자. 완벽한 차기 군주에게는 불필요한 여분이자, 그가 통치하는 기계 따위가 아닌 사람으로 있기 위한 인간성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신들이 그러할 터.
“자, 그러면 다음 곡의 제목은 ‘엔터테이너’!”
“와아아아!”
적어도 지금 아이들 앞에서 하는 연주가, 하멜은 즐거웠다.
필요니 효율이니 책무니 하는 단어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즐겁기에 하는 일.
그건 무척이나 멋지고, 실로 유쾌한 일 아니겠는가.
골목길에서의 연주회가 끝나자, 아이들은 휘파람으로 하멜의 연주를 흉내 내며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유쾌한 듯이 바라본 후, 하멜이 재차 다음 목적지로 향하려 한 그때였다.
[참 태평하기도 하네.]
문득 하멜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멜이 소리의 근원으로 시선을 향하자, 그곳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니, 그것을 단순한 그림자라고 해도 좋을까.
마치 검디검은 호수의 표면처럼 변해버린 그림자 너머에는, 짙은 흑발과 붉은 눈을 지닌 미녀의 모습이 있었다.
피막을 지닌 날개와 기묘한 광택의 검은 꼬리가, 그녀가 악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하멜은 입을 열지 않은 채, 생각만으로 악마에게 대답했다.
‘오, 아리따운 대악마시여.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칭찬이 칭찬으로 안 들리는데. 혹시 비꼬는 거야?]
악마 루시드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눈을 흘겼지만, 하멜은 굳이 맞대응하지 않고 미소로 답했다.
결국 먼저 손을 든 것은 루시드라 쪽이었다.
[너, 지금 미행당하고 있어. 본체 쪽에 알려주고 싶어도, 그쪽은 지금 궁정 회의에 참가한 상태라서 곁에 있을 수가 없단 말이야.]
하멜은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라는 말로 루시드라의 속을 뒤집어 놓는 대신 담담히 수긍했다.
‘뭐,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저번 사건 이후로 묘한 기척이 느껴졌거든요.
[진짜? 허접한 애들이긴 하지만, 지금 네 실력으로 알아챌 정도로 허접한 것 같진 않은데?]
‘이래 보여도 저는 인기인이라서 말이죠. 제가 직접 눈치채지 못해도, 알게 모르게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이 많지요.
[아하.]
루시드라는 나지막이 감탄한 뒤,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쩔래? 네가 원한다면 없애주는 것도, 아니면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뒤를 파내는 것도 가능한데. 해줄까?]
‘그건 악마의 계약입니까?
[아니? 서비스야.]
그렇게 말하는 루시드라의 얼굴은 한없이 친절하고, 무구하고, 순수해 보였다.
그래서 하멜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흐응. 혹시 그 히스티아라는 여자를 믿고 있는 거야?]
루시드라의 입꼬리에 조소가 어렸다.
[그만두는 게 좋을걸. 네 앞에서는 한껏 내숭을 떨고 있지만, 그 여자는 그리 깨끗한 인간이 아니야.]
[죄가 싫다고 말하면서 죄를 저지르는 것 이외의 삶을 모르지. 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주제에 악인 자신을 받아들이지도 못해.]
[온전한 피해자로 남았더라면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었겠지. 차라리 정색했더라면 악의 미학이나 긍지라도 품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어느 쪽도 아니야. 무엇도 되지 못했지. 그 어중간함이야말로 최악의 죄인데.]
[엮이는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가는 타입이라니까? 너 그러다 진짜 후회한다?]
하멜은 루시드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쪽에서 계속해서 말이 걸려왔다.
[뭐야, 내 말이 안 믿겨?]
‘아뇨, 믿습니다. 아무래도 따로 조사 같은 것도 하신 듯하니, 저보다야 당신 쪽이 더 정확하겠지요.
[그런데 왜?]
루시드라의 물음은 비아냥이 아닌 순수한 의문을 담고 있었다.
그로, 하멜 역시 순수한 본심으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생각이 아닌, 말로서.
“죄인이어도, 악인이어도, 어중간해도, 그래도 그녀는 제 연주를 듣고 싶어 하니까요. 그거면 악사가 움직일 동기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악마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새 평범하게 돌아온 그림자가, 악마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하멜이 쓴 웃음을 지은 그때, 다급한 외침과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주변에서 울려 퍼졌다.
“어이! 거기 악사! 도망쳐라!!”
“제길, 이놈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 줄 알아!?”
하멜은 두 남자의 목소리가, 여관에서 그의 연주를 칭찬했던 남자들의 목소리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지금 누군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그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도.
“─조용히 따라와라.”
마지막으로, 도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도.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을 보며, 하멜의 눈에 어떤 망설임이 스쳤다.
그리고 어떤 결심까지도.
“좋습니다. 제 곡을 찾는 분이 계신다면야, 한번 가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