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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신입 모험가 베른(Bern) (30) -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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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해진 의식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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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멍하니 방금 일어났던 일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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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게 뒤집히는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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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앞의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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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병마, 맹독. 세상의 온갖 악하고 더러운 것들에게서 쥐어 짜낸 기름에 불이 붙은 듯한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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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폭발로부터 그녀를 감싸 안았던 누군가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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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떠올린 순간, 블랑카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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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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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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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블랑카는 다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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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이 폭락하며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와 허공을 떠도는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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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서 익숙한 붉은 머리를 보고 뛰쳐나간 블랑카는, 이내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덜덜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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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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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의 상태는 참혹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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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다리는 커다란 돌덩어리에 깔려 짓뭉개져 있었고 피부 곳곳이 중독된 것처럼 검게 물든 데다가,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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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 침식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하고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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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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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은 블랑카는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베른에게 다가가, 치유의 주문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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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가 입은 상처가 나을 때까지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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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는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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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흩뿌린 하얀빛은 베른의 몸을 침식한 검은 마력을 밀어내지 못했고,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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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블랑카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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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 나으란 말이야. 이럴 때 쓸 수 없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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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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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했던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는 희생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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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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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와 같은 꿈을 꾸었던 사내가, 또다시 그녀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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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에 블랑카의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려 하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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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썩,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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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을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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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셔도 됩니다, 블랑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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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정신을 차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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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의 모험가가 블랑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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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죽어가는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하고 평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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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고칠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니, 괜히 마력 낭비하지 말고 아끼십시오. 아니, 그보다 일단 블랑카 씨의 상처부터 치료하는 게 낫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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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운 말투에, 블랑카는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몰래 울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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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런 말이나 할 때예요!? 왜, 대체 왜 나를 감싼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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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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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의 쥐어 짜내는 것 같은 절규에, 베른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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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블랑카 씨의 목숨 쪽이 훨씬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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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삼키는 듯한 소리를 낸 것은, 대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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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잃어버린 블랑카를 앞두고, 베른은 어딘지 모르게 멋쩍은 듯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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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하면 비밀로 할 생각이었지만, 이대로라면 당신이 괜한 마음의 짐을 짊어질 테니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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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은 아이에게 마술의 비밀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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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베른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이 몸도, 신분도, 마법으로 만들어 낸 가짜에 불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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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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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걱정하실 필요도, 괜히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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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속여서 미안합니다. 블랑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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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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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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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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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렇게나 한심하고 부족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당신은 그런 거짓말까지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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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듯이 목이 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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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누굴 바보로 아는 거냐고 그에게 따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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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정작 블랑카는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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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면서도 그녀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으려는 남자의 마지막 헌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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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독히도 서툴고, 처절할 만큼 상냥한 배려를, 대체 어떻게 외면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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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블랑카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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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말로, 너무하네요, 베른. 이렇게 뻔뻔한 남자인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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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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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너무 서툰 나머지, 그가 눈치채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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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불안에 떠는 그녀였지만, 다행히 베른은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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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길게 사죄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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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의 시선이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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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떨어져 내린 천장에 생긴 구멍 쪽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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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공격에는 아마 놈 자신도 휘말렸겠지만, 머지않아 곧 부활을 끝낼 겁니다. 리치에게는 ‘심장’, 일종의 예비 목숨을 만들어 두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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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인다고요? 뭘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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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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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리치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베른이 이렇게 된 시점에서, 어차피 승부는 끝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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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더 이상 싸울 필요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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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가 사라질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서 함께 하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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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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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블랑카의 어리광을 잘라버리듯, 베른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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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패배한 게 아닙니다. 위에는 렌야를 비롯한 다른 모험가들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블랑카 씨가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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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고개를 저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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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당신이 없는데 나 따위가 리치를 상대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부정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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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옆에서 봐온 제가 단언해 드리겠습니다. 블랑카 씨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블랑카 씨가 이긴다면, 그건 저의, 아니 ‘우리’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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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베른은 그녀에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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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라면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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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블랑카는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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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답례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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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이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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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블랑카도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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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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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손에 쥐고, 떨어진 잔해를 계단 삼아 위로,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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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동료에게, 승리를 바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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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지막 모험을,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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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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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있던 계층에 발을 들여놓자, 어느새인가 한곳에 다시 뭉친 모험가들과 그런 모험가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리치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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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가 상급 주문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보라색 안개를 회수했다고 한들, 이미 안개에 접촉하며 모험가들이 입은 피해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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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실린 온갖 부정적인 주문의 효과와 피로로, 모험가 대부분이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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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리치는 주력이었던 사령 기사를 전부 베른에게 잃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마력과 수하들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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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주를 시도했다가 처참하게 박살 난 전적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싸우고 있을 뿐, 모험가들의 얼굴에 전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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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제 발로 죽으러 기어 나온 것이냐. 정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으면, 조금쯤은 삶을 연명할 수 있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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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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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의 말투에는 어느새인가 다시 여유가 돌아온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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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거짓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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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것 따위를, 악몽까지 꿔가며 두려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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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자 따위에게, 소중한 이를 두 번이나 잃어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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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하고 블랑카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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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정을, 블랑카는 애써 억누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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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에게 배웠던 검술과 몸놀림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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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에게 선물받은 반지가 존재감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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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가 자기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준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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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성질이란, 삶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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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행했고, 어디를 바라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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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짊어져 왔던 수많은 조각이,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탑을 이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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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실성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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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거슬렸는지, 아니면 또다시 블랑카에게 접근을 허용하면 귀찮으리라 여겼는지, 리치의 손에서 저주와 독기를 품은 검은 구체가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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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한다면 중장비로 무장한 기사조차 중상을 입을 수준의, 상급 공격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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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바위를 태우는 마법』으로 이를 요격했지만, 상급 주문과 중급 주문으로는 제대로 된 승부가 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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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위력이 줄어든 게 전부인 검은 구체는 그대로 블랑카를 향해 달려들었고, 블랑카는 그 구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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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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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폭발과 함께, 블랑카의 몸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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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과 저주에 의한 침식으로 죽어가는 블랑카를 보며, 리치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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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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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가 지면에 검을 꽂고, 그에 의지하며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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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쓰는구나. 포기하면 편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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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버둥을 유쾌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리치가 또다시 주문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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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요격을 시도한 블랑카였지만, 역시 힘 승부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녀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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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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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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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놀 듯이 블랑카를 공격하던 리치였으나, 이내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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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가 아무리 살벌한 공격을 퍼붓고, 그녀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해도, 블랑카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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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하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검과 주문을 활용해 어떻게든 치명상을 회피하고, 강화와 치유를 통해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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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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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라면 근성과 집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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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세 번, 네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반복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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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년,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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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와 함께, 살의를 품은 주문이 블랑카에게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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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이번에도 불꽃을 쏘아 맞대응했고, 두 주문이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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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전과 똑같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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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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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리치의 주문을 완전히 상쇄해 버린 불꽃이, 그 결과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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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3위계일 터인 마법사가 쏘아낸 중급 주문이, 5위계의 마법사가 쏘아낸 상급 주문과 호각을 이룬 기막힌 상황에, 리치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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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리치는, 블랑카의 몸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마력의 흐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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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금 강해지는 마법』과 『가벼운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에 들어간 블랑카의 마력이,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마력과 접촉하는 순간 빛을 내더니, 이내 주문의 효과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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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특성,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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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 자신의 마력과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다른 마력을 반응시켜, 효력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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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마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응은 더욱 격렬해지고 주문들은 본래 정해진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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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주변에 마력을 퍼트릴 수밖에 없는 마법사에게는, 그중에서도 특히, ‘마력 그 자체를 안개로 바꿔 주변에 흩뿌린다’라는 리치 모르티우스에게는 천적에 가까운 고유 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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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험성을 깨달은 모르티우스는 어떻게든 재빨리 블랑카를 끝장내려 했지만, 강화가 시작되기 전에도 불가능했던 일이, 이제 와서 가능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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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히려 모르티우스가 블랑카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그 마력을 받아먹고 블랑카의 스펙이 더욱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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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티우스 역시 그 악순환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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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인 그가 주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체 뭘 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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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마력을 체내에 붙들어 둔 채 활용하는 전사 계열이 나서는 것인데, 그의 수하 중 쓸만한 전사들은 이미 베른의 손에 의해 박살 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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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블랑카의 중급 주문은커녕 하급 주문조차 막아내기 급급한 상황이 되자, 모르티우스는 안개 속에 몸을 감춘 채 도주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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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블랑카가 그걸 그냥 두고만 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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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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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린아이의 몸집만 했던 화염 덩어리가, 모르티우스의 안개와 반응하더니 마차 급으로 거대해져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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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티우스는 어떻게든 방벽을 소환해 공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거대한 화염은 그 방벽과 함께 그를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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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맣게 타버린 그의 몸이, 어디에선가 날아온 심장 형태의 오브제 중심으로 다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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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말없이 재차 불을 쏘아냈고, 모르티우스는 부활한 직후 또다시 숯덩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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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부활한 모르티우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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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당장 멈춰!! 지금 이 심장은 네 어머니의 것이다! 그 여자의 생명과 영혼이 심장에 들어가 있단 말이다! 그걸 네 손으로 부술 생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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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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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의 동작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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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기회라 여긴 모르티우스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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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내 제자, 아니 협력자가 되어라! 그렇다면 네 어머니에게 그럴듯한 몸을 만들어 부활시켜 주겠다! 6위계에만 오른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허나, 여기서 내가 쓰러진다면 네 어머니와 재회할 방법은 영영 사라진다! 정말 그걸로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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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소속의 제자 여럿을 데리고 있던 모르티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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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유명인인 블랑카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녀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모험가가 되었다는 것 역시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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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계집이, 어머니와의 재회라는 미끼를 물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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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달콤한 말로 싸움을 멈추게 하고, 그 뒤에는 정면 승부 이외의 방법으로 처리하면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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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말로 최선의 계책이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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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부터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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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를 ‘해방’하기 위해 싸운 거예요. 그딴 감언이설에 흔들리는 모습을, 내가 두 명에게 보여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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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하는 ‘두 명’이 누구인지, 모르티우스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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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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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인가 그의 가슴을 꿰뚫은 검이, 그에게서 심장을 도려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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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에게 있어서, 심장이란 현세에 남아 있기 위한 ‘쐐기’와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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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이승에 붙들어 둔 마지막 심장이 강제로 분리당하자, 모르티우스의 영혼이 지상을 떠나 저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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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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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짓 수고하셨습니다! 삼류라기엔 능력이 좋고, 일류라기엔 그릇이 작으니, 딱 이류급 무대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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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하면서도 경쾌한, 성숙한 여인 같으면서도 풋풋한 소녀 같은, 그런 모순을 품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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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초월한 마법사조차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누군가가, 모르티우스의 영혼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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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아가씨의 몫은 육체에 있는 생명과 정기. 내 몫은 영혼 그 자체. 잘난 황태자님의 잔소리 때문에 죄 없는 인간의 혼은 못 먹는 게 흠이긴 한데,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겠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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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티우스는 비명을 내지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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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영혼만이 남은 그에게 그런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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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들의 영혼과 생명을 농락해 왔던 사악한 리치는, 마지막 순간 무력한 영혼이 되어서야 그 죄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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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홍옥처럼 빛나는 입술. 그 안쪽으로 펼쳐지는 무저갱 같은 어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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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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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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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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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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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카는 베른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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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의 사악한 주문에 당한 붉은 머리의 모험가는, 그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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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어머니의 것이었던 심장을 안고, 사랑했던 남자의 흔적을 쫓으며, 소녀는 미뤄두었던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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