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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의 막이 오른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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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여덟 번째 웨이브가 종료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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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중심부, 최상층의 VIP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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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 라인을 담당하는 길드와 단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이 공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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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그리 많은 이가 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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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단체전보다는 개인전에서 기량을 더 볼 수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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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을 염두에 둔 유망주가 있거나, 특별히 눈여겨보는 인물이 있는 경우 정도가 아닌 이상, 단체전을 볼 이유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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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수련이 끝나자마자 곧장 따님 참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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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대의 호위무사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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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단정한 도포 차림의 중년 남성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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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家)의 가주, 유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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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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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전광판 화면에 띄워진 전장을 주시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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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 유하나가 속한 조가 치열한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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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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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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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마음을 훔쳐 간, 그 도둑놈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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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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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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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뱉은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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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딸이라는 호칭조차 잊고 황급히 되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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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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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눈빛, 흔들림 없는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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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결심을 마친 자의 편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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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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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딸, 유하나는 어릴 적부터 한 번 정한 길은 절대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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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닮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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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이 세고, 결정은 빠르며, 물러서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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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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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쓸 틈도 없이 유무진의 금지옥엽의 마음을 앗아간 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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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놈이길래 아비가 없는 틈을 타 딸아이의 마음에 자리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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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정해인이라는 녀석을 샅샅이 분석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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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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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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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무(武)를 갈고닦는 것의 연속이었던 그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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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유무진은 정해인이라는 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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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제 역할을 완벽히 이해하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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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이란 건, 공대란 건, 한명이 뛰어나다 해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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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 과제처럼 팀 단위의 유기적인 화합을 요구하는 전황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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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특출난 하나가 억지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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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곳에서 치르는 시험은 그런 것을 테스트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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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정해인은, 놀라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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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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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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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정교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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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이 활동하기 좋게끔, 팀원들이 더 편하게 움직이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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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적절한 포지셔닝으로 흐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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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움직임은 자칫 과하면 독이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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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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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어린 나이에 무(武)의 묘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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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봐도, 제 역량의 3할도 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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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독단적인 저 주황 머리 마법사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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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신을 내며 중심을 흐트러뜨릴 때면 곁에서 부드럽게 보조하며 그녀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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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챈 마법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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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기세를 올려 더 화려하게, 더 과감하게 마법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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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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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앞에 나서지 않지만, 그가 중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5명의 인원은 전방의 두 여성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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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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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그의 딸, 유하나와의 궁합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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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마법사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면, 그의 딸은 눈치를 보다 슬쩍 시야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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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일부러, 발을 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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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놈은 또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정확한 타이밍에 보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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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유하나는 고맙다는 듯이 검무로 교태를 부리며 신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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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진은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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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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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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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를 던지는 쪽이 놈이 아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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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놈은 지나치게 성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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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팀을 완벽히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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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제가 있다면 두 여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함정에 제 발로 순순히 걸려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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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의심도 없이. 순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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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진의 시선으로 보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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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전장은, 두 여성의 정해인의 시선을 끌기 위한 무대처럼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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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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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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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처치를 알리는 비프음과 함께 인원들이 일제히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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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는 거칠고 온몸엔 땀이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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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만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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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에서 윤상혁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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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유하나는 벌써 9번째 웨이브까지 우수하게 처리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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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 떠 있는 등수는…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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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은 예상대로 주서준과 요한이 속한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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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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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는 전선에 나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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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션은 솔직히 말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이미 공적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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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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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아니다, 이런 마물이 답도 없이 튀어나오는 경험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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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녀들에게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 그걸 목표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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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9번의 웨이브 동안 내가 내린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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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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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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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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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정석적인 움직임에, 가끔가다 위험한 포지션을 자처하긴 하지만, 그건 그녀 특유의 감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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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면 팀 내에서 필요한 역할이기에 따로 손 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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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로 윤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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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관심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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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도 뛰어나다. 마법의 구사력도 뛰어나다. 포지션 감각도 천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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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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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스케일이 큰 마법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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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규모 적을 상대로 마법사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은 맞기에 보통 대현이 같은 방패병이 커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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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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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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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기와 파이어볼만 주구장창 날리다가, 꼭 내가 옆에 있을 때만 화염창을 전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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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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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내 혼잣말을 들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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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주저앉은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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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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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대답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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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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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땀이 맺힌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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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더 잘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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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익 웃으며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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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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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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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유하나가 땀을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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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다소 거칠고,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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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땀 좀 닦아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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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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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에서 마물들과 가장 많이 맞붙은 건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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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자락이며 머리카락이며,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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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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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좀 남았다. 각 웨이브가 끝나고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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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웨이브까지는 약간의 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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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아주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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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면 되니까, 도와줘. 내가. 손이 안 닿는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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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 소매를 슬쩍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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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날, 유적지 외곽 숲 쪽으로 조심스레 이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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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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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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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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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조용한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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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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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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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꽃이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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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꽃은 공기 중의 열기와 마나를 일으켜 유하나 쪽으로 부드럽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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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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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윤채하의 기운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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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의지에 따라 정제된 열풍이 유하나의 몸을 조용히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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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고 따뜻한 열기로 만든 바람이 유하나의 전신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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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던 땀은 이내 증발하고, 헝클어졌던 머리카락도, 드라이기라도 쓴 것처럼 정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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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마저 산뜻하게 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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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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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게 무섭게, 윤채하는 팀 내 다른 인원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열풍을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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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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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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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감사 인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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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달려왔기에, 오랜만의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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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깨끗하게 말라버린 자기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매만지며 가늘게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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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은 조용히 윤채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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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힐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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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윤채하는 자연스레 품에서 손수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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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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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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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땀이 별로 안 나서… 열풍은 좀 그렇잖아. 내가 닦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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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함께, 그녀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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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라벤더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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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조용히 입술을 다문 채, 이마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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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그녀의 이마에는 조금 전 열풍을 만드느라 흐른 땀이 맺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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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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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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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매 끝으로, 그녀의 이마를 살짝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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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는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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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윤채하의 이마를, 윤채하는 나의 이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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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팔을 교차한 채, 서로의 땀을 닦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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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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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마를 닦던 윤채하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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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답지 않게, 입술 끝이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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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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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손수건이 내 눈, 코, 입까지 마구 닦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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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읍…. 보고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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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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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땀을 다 닦아준 후,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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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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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가 옆에서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며 명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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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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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 웨이브 돌입까지 남은 시간 : 0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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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웨이브가, 곧 시작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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