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This commit is contained in:
856
content/references/novelpia/327879/120.md
Normal file
856
content/references/novelpia/327879/120.md
Normal file
@@ -0,0 +1,856 @@
|
||||
|
||||
|
||||
|
||||
나와 윤채하는 어두운 공동에 서 있었다.
|
||||
|
||||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서서히 시야가 돌아온다.
|
||||
|
||||
|
||||
|
||||
내가 공방에 처음으로 입장했던 장소, 거기 맞다.
|
||||
|
||||
|
||||
|
||||
“협회장님! 입구가 열렸…?”
|
||||
|
||||
|
||||
|
||||
입구를 지키던 협회 직원이 반사적으로 무전기를 들더니, 그 자세로 굳어버렸다.
|
||||
|
||||
|
||||
|
||||
그의 눈동자가 데굴, 하며 내 옆의 여성을 향해 옮겨갔다.
|
||||
|
||||
그야, 입장할 때는 나 한명이었으니까.
|
||||
|
||||
|
||||
|
||||
윤채하.
|
||||
|
||||
|
||||
|
||||
낯선 공간임에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옆에 서 있었다.
|
||||
|
||||
그때, 눈앞의 직원이 윤채하를 보며 중얼거렸다.
|
||||
|
||||
|
||||
|
||||
“… 불가람님?”
|
||||
|
||||
|
||||
|
||||
“아니구요.”
|
||||
|
||||
|
||||
|
||||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아서 일단 틀어막았다.
|
||||
|
||||
|
||||
|
||||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
||||
|
||||
|
||||
|
||||
나는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정신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
||||
|
||||
|
||||
|
||||
윤채하와 나는 협회의 최고 등급 조사실로 이동했다.
|
||||
|
||||
물론, 말이 이동이지 상당히 귀중한 대접이다.
|
||||
|
||||
푹신한 가죽 의자와 고급스러운 조명, VIP 응접실이라 봐도 무방한 장소다.
|
||||
|
||||
|
||||
|
||||
의자가 너무 푹신해서 긴장을 놓으면 바로 자버릴 것 같다. 워낙, 몸도 피로한 상태라.
|
||||
|
||||
|
||||
|
||||
지금 시각은 오후 8시.
|
||||
|
||||
덕분에 직원들은 야근하게 생겼다.
|
||||
|
||||
앉아서 대기하던 그때.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
||||
|
||||
|
||||
|
||||
“먼저… 정해인 영웅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
||||
|
||||
|
||||
|
||||
도착한 협회 담당자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
||||
|
||||
피로가 깊이 깃든 얼굴이었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비친다.
|
||||
|
||||
|
||||
|
||||
“협회장님이 빠르게 오고 계십니다. 자택에서 곧 도착하실 겁니다.”
|
||||
|
||||
|
||||
|
||||
“네.”
|
||||
|
||||
|
||||
|
||||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
||||
|
||||
담당자는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
||||
|
||||
|
||||
|
||||
“현재 시각, 오후 여덟 시. 공방 시련 종료가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직 저희 시스템에는 별도의 메세지가 표기되지 않고 있습니다.”
|
||||
|
||||
|
||||
|
||||
말끝을 흐리며,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
||||
|
||||
실패한 전례가 너무 많았고, 나도 예외는 아닐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
||||
|
||||
|
||||
|
||||
“혹시… 성공 여부에 대해 여쭤봐도 괜찮으실지….”
|
||||
|
||||
|
||||
|
||||
그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
||||
|
||||
|
||||
|
||||
아직 성공을 알리는 메세지는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지, 묻는 행위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
||||
|
||||
|
||||
|
||||
나는 담담히 답했다.
|
||||
|
||||
|
||||
|
||||
“성공했습니다.”
|
||||
|
||||
|
||||
|
||||
“네?”
|
||||
|
||||
|
||||
|
||||
“아, 맞다. 얘도요.”
|
||||
|
||||
|
||||
|
||||
- 꼬집.
|
||||
|
||||
|
||||
|
||||
나는 말끝에 손을 들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윤채하의 볼을 꼬집었다.
|
||||
|
||||
|
||||
|
||||
“으에ㅡㅡ.”
|
||||
|
||||
|
||||
|
||||
그녀는 잠에서 깼는지 웅얼거렸다.
|
||||
|
||||
|
||||
|
||||
소파에 등을 기대고 그새 잠에 들려 하는 것 같길래 바로 깨웠다.
|
||||
|
||||
|
||||
|
||||
“일어나.”
|
||||
|
||||
|
||||
|
||||
아까부터 담당자가 그녀를 슬쩍슬쩍 힐끔거리던 게 보여서, 내가 그냥 미리 설명해줬다.
|
||||
|
||||
정체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으니까.
|
||||
|
||||
|
||||
|
||||
“예? 옆에 계신 분도… 말입니까?”
|
||||
|
||||
|
||||
|
||||
“네. 얘도 불가람 님이 직접 지목해서 불렀어요.”
|
||||
|
||||
|
||||
|
||||
담당자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
||||
|
||||
아직까지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
||||
|
||||
|
||||
|
||||
이해한다.
|
||||
|
||||
전례 자체가 없는 일이었으니.
|
||||
|
||||
불가람 공방의 시련은 지금껏 늘 단독 수행.
|
||||
|
||||
|
||||
|
||||
그런데 입장할 때는 한 명, 나올 때는 두 명이다?
|
||||
|
||||
|
||||
|
||||
직원은 연신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
||||
|
||||
그런데 표정은 공허하다. 당연히 메뉴얼에는 없을 것이다.
|
||||
|
||||
|
||||
|
||||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
||||
|
||||
|
||||
|
||||
담당자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
||||
|
||||
하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문 쪽으로 빠르게 몸을 돌렸다.
|
||||
|
||||
|
||||
|
||||
문이 찰칵하고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
||||
|
||||
|
||||
|
||||
“…….”
|
||||
|
||||
윤채하는 눈을 비비며 다시 나에게 기대왔다.
|
||||
|
||||
|
||||
|
||||
그리고 이번에는 즉시 문이 다시 열렸다.
|
||||
|
||||
협회장이었다.
|
||||
|
||||
|
||||
|
||||
“… 해인 군은 정말 나를 많이 놀라게 하는군.”
|
||||
|
||||
|
||||
|
||||
그는 손을 내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
||||
|
||||
|
||||
|
||||
“우선, 정해인 영웅, 그리고 윤채하 영웅. 모두 축하하네. 역사에 남을 기록을 새겼어.”
|
||||
|
||||
|
||||
|
||||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
||||
|
||||
하지만 협회장의 시선은 여전히 내 옆, 윤채하에게 머물러 있었다.
|
||||
|
||||
그 눈빛에는 당혹감과 의문이 섞여 있었다.
|
||||
|
||||
|
||||
|
||||
“친구입니다.”
|
||||
|
||||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
||||
|
||||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얘도 초대를 받았네요.”
|
||||
|
||||
|
||||
|
||||
뭔가 더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
||||
|
||||
애초에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
그냥 이게 끝이다. 갑자기 불가람이 윤채하의 방으로 텔레포트를 시켰으니까.
|
||||
|
||||
|
||||
|
||||
“… 허, 뭐 그분이야 워낙 예측 불가능한 불같은 분이시니.”
|
||||
|
||||
|
||||
|
||||
협회장이 납득한 듯 조용히 웃었다.
|
||||
|
||||
|
||||
|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
협회장은 한동안 턱을 쓰다듬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
||||
|
||||
|
||||
|
||||
“그렇다면… 시련을 통해 얻은 것은 혹시 무엇인가?”
|
||||
|
||||
|
||||
|
||||
이번에도 나는 담담히 답했다.
|
||||
|
||||
|
||||
|
||||
“무형의 유산입니다.”
|
||||
|
||||
|
||||
|
||||
“무형…이라….”
|
||||
|
||||
|
||||
|
||||
그가 되묻는 사이, 나는 창을 대뜸 꺼내 보였다.
|
||||
|
||||
|
||||
|
||||
검은 천에 감싸 두었던 그것.
|
||||
|
||||
금색 음각으로 새겨진 창신이 방 안의 조명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
||||
|
||||
|
||||
|
||||
협회장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
||||
|
||||
|
||||
|
||||
“… 아름답군.”
|
||||
|
||||
|
||||
|
||||
나는 창을 다시 덮었다.
|
||||
|
||||
|
||||
|
||||
“저는 제 무구에 불가람 님의 손길을 받았고, 윤채하는 무형의 유산을 얻었습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가….”
|
||||
|
||||
|
||||
|
||||
“이해하네.”
|
||||
|
||||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이걸로도 이미 충분해.”
|
||||
|
||||
|
||||
|
||||
협회장은 미소 지으며 우리 둘을 바라봤다.
|
||||
|
||||
|
||||
|
||||
“많이 피로하겠군.”
|
||||
|
||||
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
||||
|
||||
“오늘은 푹 쉬게나. 조만간 기자회견을 잡….”
|
||||
|
||||
|
||||
|
||||
그때였다.
|
||||
|
||||
|
||||
|
||||
- 띠링.
|
||||
|
||||
[불가람(不伽藍)의 공방이 마침내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한다.]
|
||||
|
||||
[계승의 불씨. 연대의 증표를 가진 자들에게 찬사를.]
|
||||
|
||||
|
||||
|
||||
|
||||
|
||||
금빛 문장이 공중에 겹겹이 떠올랐다.
|
||||
|
||||
조용했던 방 안에,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
|
||||
|
||||
|
||||
- 와아아아아!!
|
||||
|
||||
|
||||
|
||||
응접실 바깥에서 협회 직원들이 내는 함성이 새어 들어왔다.
|
||||
|
||||
|
||||
|
||||
나를 비롯한 모두의 눈앞에 시스템 메세지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
||||
|
||||
|
||||
|
||||
“허허….”
|
||||
|
||||
|
||||
|
||||
협회장이 멈춰 선 채 머쓱하게 웃었다.
|
||||
|
||||
|
||||
|
||||
“아무래도 바로 준비해야겠구먼.”
|
||||
|
||||
|
||||
|
||||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워치를 꺼내 들었다.
|
||||
|
||||
|
||||
|
||||
“정해인 군.”
|
||||
|
||||
그가 다시 말했다.
|
||||
|
||||
|
||||
|
||||
“아무래도, 쉬지는 못할 것 같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결국 우리는 한숨도 쉬지 못하게 됐다.
|
||||
|
||||
|
||||
|
||||
빈말로도, 나와 윤채하의 상태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
||||
|
||||
|
||||
|
||||
바깥에서는 고작 하루 남짓이지만, 안에서는 거의 몇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까.
|
||||
|
||||
몰골이 거지 같을 수밖에 없었지만….
|
||||
|
||||
|
||||
|
||||
협회장은 그런 몰골을 보고선, 오히려 좋아했다.
|
||||
|
||||
|
||||
|
||||
‘오히려 그편이 낫겠어.’
|
||||
|
||||
|
||||
|
||||
결국 그는 이해 못 할 소리를 남기고는 먼저 내려갔다.
|
||||
|
||||
|
||||
|
||||
어쨌든 나와 윤채하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협회의 로비에 도착했다.
|
||||
|
||||
오늘 기자회견은 이곳에서 진행된다.
|
||||
|
||||
힘들다는 핑계를 삼아, 약식으로.
|
||||
|
||||
|
||||
|
||||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
||||
|
||||
|
||||
|
||||
'무슨 카메라가….'
|
||||
|
||||
|
||||
|
||||
수십 개의 렌즈가 일제히 이쪽을 향해 돌아간다.
|
||||
|
||||
없던 울렁증도 생길 정도다. 이렇게 많을 이유가 있나.
|
||||
|
||||
|
||||
|
||||
이미 기자들은 협회의 보도자료를 받아든 상태였다.
|
||||
|
||||
|
||||
|
||||
우리는 무대 위에 올랐다.
|
||||
|
||||
정확히는 협회장이 먼저 자리를 잡고, 우리를 가볍게 안내했다.
|
||||
|
||||
|
||||
|
||||
어차피 옆에는 협회장이 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
||||
|
||||
|
||||
|
||||
천천히, 질문은 시작됐다.
|
||||
|
||||
질문과 답변은 기본적으로 협회장이 진행한다.
|
||||
|
||||
|
||||
|
||||
답할 수 없는 것과 잘 모르는 것 정도만 내가.
|
||||
|
||||
"시작하죠."
|
||||
|
||||
협회장의 선언과 함께, 잠깐의 정적.
|
||||
|
||||
그리고 이내 질문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
|
||||
|
||||
“정해인 군! 대한민국 두 번째 불가람의 시련 통과자입니다! 실질적인 첫 번째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혹시, 이번에 얻은 보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
||||
|
||||
|
||||
|
||||
협회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
||||
|
||||
|
||||
|
||||
“불가람님의 의지에 따라 전해진 무형의 자산입니다.”
|
||||
|
||||
|
||||
|
||||
기자 중 하나가 다시 묻는다.
|
||||
|
||||
|
||||
|
||||
“자세한 설명은 어려울까요?”
|
||||
|
||||
|
||||
|
||||
“어렵습니다.”
|
||||
|
||||
|
||||
|
||||
협회장은 단칼에 쳐냈다.
|
||||
|
||||
|
||||
|
||||
당연히 안되지.
|
||||
|
||||
이 방송은 아마, 마인도 보고 있을 것이다.
|
||||
|
||||
|
||||
|
||||
다음 질문은 빠르게 이어졌다.
|
||||
|
||||
|
||||
|
||||
“시스템 메시지에 따르면 공방이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혹시 뒤에 계신 여성분이… ?”
|
||||
|
||||
|
||||
|
||||
협회장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
||||
“그렇습니다. 윤채하 영웅은 불가람님의 직접적인 지목에 따라, 공방에 입장했고, 계승의 증표를 받았습니다.”
|
||||
|
||||
|
||||
|
||||
플래시가 번쩍였다.
|
||||
|
||||
순간, 기자 몇 명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결국 노골적인 질문이 튀어나왔다.
|
||||
|
||||
|
||||
|
||||
“두 분은 어떤 사이입니까?”
|
||||
|
||||
|
||||
|
||||
이번엔 내가 직접 답했다.
|
||||
|
||||
|
||||
|
||||
“친구 사이입니다.”
|
||||
|
||||
|
||||
|
||||
그 한마디로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
|
||||
정확히는, 사진기자들이 다시 셔터를 갈기기 시작했다.
|
||||
|
||||
이유가 뭔가 했더니, 윤채하가 갑자기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
||||
|
||||
|
||||
|
||||
‘뭐야?’
|
||||
|
||||
|
||||
|
||||
얘 왜 이래.
|
||||
|
||||
|
||||
|
||||
그러더니, 내 손에서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
|
||||
|
||||
윤채하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
||||
|
||||
|
||||
|
||||
“친구 아닙니다.”
|
||||
|
||||
|
||||
|
||||
그리고 다시 마이크를 내 손에 쥐여줬다.
|
||||
|
||||
말없이, 아주 평온한 얼굴로
|
||||
|
||||
|
||||
|
||||
잠깐 정적이 흘렀다.
|
||||
|
||||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
|
||||
얘가 지금 뭔 짓을 한 건지는 알까?
|
||||
|
||||
|
||||
|
||||
“잠깐만요, 그러니까….”
|
||||
|
||||
|
||||
|
||||
그러나 기자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
||||
|
||||
대응 다운 대응을 하기도 전에 질문은 계속됐다.
|
||||
|
||||
향후 진로 계획, 훈련 재개 시점, 차기 행보에 대한 기대감.
|
||||
|
||||
|
||||
|
||||
결국 해명하는 건 포기했다.
|
||||
|
||||
|
||||
|
||||
사실, 이 회견의 목적은 하나였다.
|
||||
|
||||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
|
||||
|
||||
|
||||
|
||||
내 영웅적인 입지를 올려두는 것.
|
||||
|
||||
|
||||
|
||||
그런데, 슬슬 피로감이 몰려온다.
|
||||
|
||||
공방에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쌓였던 것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
|
||||
|
||||
윤채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
|
||||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인터뷰를 마치고자 했다.
|
||||
|
||||
|
||||
|
||||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질문이 들어왔다.
|
||||
|
||||
|
||||
|
||||
“해외 길드와 단체들이 벌써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질 텐데, 혹시 어떤 대응을….”
|
||||
|
||||
|
||||
|
||||
나는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조금 갸웃하며 말했다.
|
||||
|
||||
|
||||
|
||||
“예? 오지 말라 하세요.”
|
||||
|
||||
|
||||
|
||||
기자단이 술렁였다.
|
||||
|
||||
|
||||
|
||||
“어차피 안 갈 거니까요.”
|
||||
|
||||
|
||||
|
||||
나는 마무리하듯 덧붙였다.
|
||||
|
||||
그 말에 기자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
||||
|
||||
|
||||
|
||||
나는 잠깐 시선을 들었다.
|
||||
|
||||
|
||||
|
||||
조명이 눈을 찌른다.
|
||||
|
||||
얼른, 이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
||||
|
||||
|
||||
|
||||
“이걸로 마무리하죠.”
|
||||
|
||||
|
||||
|
||||
협회장의 마무리 멘트가 떨어졌고, 회견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
|
||||
|
||||
기자회견이 끝나자, 우리는 정리된 경호 라인을 따라 리무진에 탑승했다.
|
||||
|
||||
|
||||
|
||||
협회장이 직접 리무진 문을 열어주며 말한다.
|
||||
|
||||
|
||||
|
||||
“수고 많았네.”
|
||||
|
||||
|
||||
|
||||
윤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
차에 타자마자 내 무릎에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숨을 쉬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
||||
|
||||
|
||||
|
||||
그 모습을 본 협회장은 리무진 문을 닫기 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
|
||||
|
||||
|
||||
“해인 군, 혹시 애인 있나?”
|
||||
|
||||
|
||||
|
||||
뜻밖의 질문이었다.
|
||||
|
||||
|
||||
|
||||
“없습니다.”
|
||||
|
||||
|
||||
|
||||
협회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
||||
“다행이군. 오늘 정말 고생했네. 그리고 축하하네.”
|
||||
|
||||
|
||||
|
||||
그는 문을 닫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
||||
|
||||
'다행이군?'
|
||||
|
||||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
||||
|
||||
너무 피로했다.
|
||||
|
||||
|
||||
|
||||
차가 조용히 도로를 달린다.
|
||||
|
||||
윤채하는 여전히 고요하다.
|
||||
|
||||
내 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 숨만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
|
||||
|
||||
|
||||
|
||||
나는 조심스럽게 손목의 워치를 켰다.
|
||||
|
||||
|
||||
|
||||
‘지금쯤이면….’
|
||||
|
||||
|
||||
|
||||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
|
||||
벌써 관련 기사들이 메인에 줄지어, 나와 윤채하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
||||
|
||||
|
||||
|
||||
“…?”
|
||||
|
||||
|
||||
|
||||
그런데 문제는, 그게 시사나 이슈 탭이 아니라는 거다.
|
||||
|
||||
연예 탭이었다.
|
||||
|
||||
|
||||
|
||||
기사의 첫 제목부터 가관이다.
|
||||
|
||||
|
||||
|
||||
[불가람 공방의 계승자들, 연인 사이?]
|
||||
|
||||
[“친구입니다.” 그리고 “친구 아닙니다.” 상반된 입장?]
|
||||
|
||||
[들어 갈 때는 혼자, 나올 때는 둘? 묘한 기류… 내부에서 로맨스 있었나]
|
||||
|
||||
|
||||
|
||||
나는 화면을 내리다 말고, 워치를 꺼버렸다.
|
||||
|
||||
|
||||
|
||||
“아.”
|
||||
|
||||
|
||||
|
||||
그제야 협회장이 내게 차 타기 전에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
||||
|
||||
너무 피곤해서, 그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
||||
|
||||
|
||||
|
||||
인제 와서 돌이켜보니….
|
||||
|
||||
“하….”
|
||||
|
||||
- 꽈아아악.
|
||||
|
||||
|
||||
|
||||
나는 그대로 잠든 윤채하의 양 볼을 잡아당겼다.
|
||||
|
||||
도망도 못 가게 양손으로 양쪽을 동시에, 정성껏.
|
||||
|
||||
|
||||
|
||||
말랑 쫄깃한 감촉이 손에 가득 차오른다.
|
||||
|
||||
기분은 좋은데, 스트레스가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
||||
|
||||
|
||||
|
||||
“에….”
|
||||
|
||||
|
||||
|
||||
눈도 못 뜬 채로 뭘 중얼거린다.
|
||||
|
||||
|
||||
|
||||
“이 금쪽아….”
|
||||
|
||||
|
||||
|
||||
윤채하의 볼에 남은 손자국이 붉게 올라왔다.
|
||||
|
||||
|
||||
|
||||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
||||
|
||||
|
||||
Reference in New Issue
Block a u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