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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대답을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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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귀 씨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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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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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확신할 수 있다. 그를 사랑한다. 고민할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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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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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만큼은,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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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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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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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궁금했고, 왠지 더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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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라 가온까지 왔지만… 흥미는 점차 뒤편으로 사라져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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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마주하는 날들이 쌓일수록, 윤채하는 자신이 천천히, 그러나 깊숙이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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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윤채하에게 끊임없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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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그가 내미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몰랐던 몸에 낯설고도 설레는 자극이 온몸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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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는 그가 윤채하의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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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도 흥미지만, 이제 정해인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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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전의 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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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른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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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표현 못할 감정이 가슴을 죄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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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답답하고, 한동안은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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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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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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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즉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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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내용은 많았지만 실제로 지난 시간은 1초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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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미소를 지으며, 미니 채하의 답변을 조용히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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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든다는 듯,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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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테이블을 살짝 두드리던 그녀가, 갑자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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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섹스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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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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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는 놀란 토끼처럼 몸을 움찔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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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순간적으로 확 붉어지고, 커다란 눈이 크게 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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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바라본 큰 채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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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직이고… 하긴, 워낙 철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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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뭔가를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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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해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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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이어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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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갑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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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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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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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진 사람이 자신임에도, 이건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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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어쩐지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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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자면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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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채하는 한 번 더 웃으며, 장난스럽게 시선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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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르게 물어볼게, 상상한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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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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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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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실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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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생명과 연료는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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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마법사인 윤채하의 상상력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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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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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열기가 차올랐고, 시선은 저도 모르게 바닥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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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잘했어. 마법사니까 자연스러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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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미소를 머금고, 미니 채하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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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는 눈을 감고, 그 감촉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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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침묵 끝에 큰 채하가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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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는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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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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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너랑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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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가 가볍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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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절대, 이렇게 마주칠 수 없어. 네가 아는 세계에서도, 내가 아는 세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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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테이블 위의 빛이 미묘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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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기 밖에 계신 성격 급한 신이 어떻게든 우리를 만나게 하고 싶으셨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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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잇다가, 어느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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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얘기는 할 수 없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꼭 전해줘야 할 말. 몇 개만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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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 번 더 미니 채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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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도 긴장감에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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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꼭 들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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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숨을 걸고 묵귀… 그러니까 해인씨 옆에 붙어있어. 한시도 떨어지지 마.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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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담담했지만, 그 말끝에는 알 수 없는 절박함이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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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 당부하지 않아도, 미니 채하는 이미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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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가 너무 바쁘고, 주변의 여성이 너무 많기에 눈치가 보여 그러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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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그런 마음을 꿰뚫은 듯 살짝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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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지 않아도 돼. 넌 이레귤러야. 그리고 해인 씨한테 당당히 선택받은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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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한 마디를 더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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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 사람의 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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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아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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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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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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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는 힘을 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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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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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끊임없이 연구해. 마인을 죽일 수 있을 때까지. 인페르노로는 택도 없어, 많이 모자랄거야. 어떻게든 해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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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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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윤채하에게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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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큰 채하의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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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번째. 그를 존중하고 신뢰해. 해인 씨는… 절대 틀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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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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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큰 채하는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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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건 이미 너무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나보다도 네가.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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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소에는 어딘가 모를 씁쓸함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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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당부는 짧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미니 채하의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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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눈앞의 큰 채하가 느끼는 슬픔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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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말해버렸네. 음… 궁금한 거 있니? 지금이라면, 되는 선에서 답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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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미니 채하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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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궁금했던 것.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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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당신은, 미래의 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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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큰 채하는 정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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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절대 아니야. 그래서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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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이 어딘가 슬프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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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난, 선택받지 못했거든. 어렸고… 또 오만했어. 참 안타까운 일이야.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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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로 비치는 감정은 언제나 말보다 더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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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명함을 미니 채하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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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너는 절대 내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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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슴 깊은 곳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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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정의 무게가, 슬픔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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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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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너무 놀라진 마. 나랑 접촉하면… 반드시 흔적이 남을거야. 곧 다른 애들도 알게 될 거고. 그러니까… 읏, 이건 아직 못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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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말끝을 흐리는 그 순간, 마탑이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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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이 뒤틀리고, 천장에서 실금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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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큰 채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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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한 움직임으로 손을 뻗더니, 미니 채하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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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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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랑 달라. 시작도, 그리고 끝도 다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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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채하는 가만히, 숨조차 삼키지 못한 채 그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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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의 미소에는 담담한 체념과 아릿한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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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음에 또 만난다면, 그때는 더 많은 걸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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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금이 더욱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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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과 어둠이 섞인 균열이 방 전체를 가르고, 마탑의 내부가 무너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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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채하는 마지막으로 미니 채하를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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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온기, 오래도록 기억될 감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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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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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 그리고… 절대, 후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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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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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꼭 해봐. 알았지? 조르든, 유혹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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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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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엄…청 잘할 걸? 나도 안 해봐서 모르겠다. 아마 아무도 모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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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모든 빛이 휘몰아치며 미니 채하의 의식이 급속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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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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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사라지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세상도 하얗게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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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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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가람에게 황당한 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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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윤채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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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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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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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감긴 눈을 뜨지 못한 채 미동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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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다. 눈가부터 턱선까지, 목덜미를 타고 흘러드는 물기가 옷깃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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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손끝이 닿으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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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얕고 불규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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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시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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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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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초월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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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지금. 자신의 미래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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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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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속눈썹 위에도, 미세하게 땀이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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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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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체온이 느껴진다. 이대로 두면 탈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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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은 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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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불가람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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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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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양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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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문제없을 거라 하더니, 이제 말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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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되기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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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녀의 옷깃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레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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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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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열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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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미래의 그녀에게 뭘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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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좋은 것들을 알려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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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라던가, 이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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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 몇 분을 기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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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눈이, 갑자기 번쩍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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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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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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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직 정신이 다 돌아오지 않은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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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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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괜찮은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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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윤채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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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그러나 망설임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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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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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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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와 이마가, 가볍게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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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그녀의 이마를 내 이마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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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숨결이 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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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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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아주 낮고, 깊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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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던 아이··· 얼마나… 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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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끝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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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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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무언가가 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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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지각의 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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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시스템이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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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를 습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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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가 권능: 허기의 탐구자와 강렬히 감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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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존재하는 모든 빛과, 태양, 불, 그리고 심지어 마(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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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貪)이 지금 깨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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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inferno)가 이클립스(Eclipse) : 개기일식(皆旣日蝕) 으로 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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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눈동자 속에서, 작고 조용한 폭발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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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과 광휘, 잿빛과 금빛이 뒤섞인, 마(魔) 따위는 가뿐히 씹어 삼킬 격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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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격동이, 단 한 사람의 눈동자 속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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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 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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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볼을 붉히며 윤채하가 당당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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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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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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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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