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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가람의 시련을 돌파하기가 어느새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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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사이를 걷는 것이, 훨씬 평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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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혼자였을 때는 감당 못할 열기도 지금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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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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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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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의 단어로도 서로가 원하는 바를 완벽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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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봐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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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을 쓰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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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다면 진짜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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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불길이 갈라지고 거대한 문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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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탁하고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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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되지 않은 불길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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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완벽한 불길만이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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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바닥, 거대한 용광로가 부글부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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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깊은 대장간의 입구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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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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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망치를 들고 불길을 뚫고 나온 불가람이 크게 한 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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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재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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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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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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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옆의 윤채하는 격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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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는 좋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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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울리는 불가람의 목소리가 대장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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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 얘가 왜 제 아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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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잠깐 망설이더니, 슬쩍 내 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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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묘한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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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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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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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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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안 한 총각한테 아이는 무슨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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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신경 쓰는구나. 네가 정성들여 키우면 그게 네 아이지. 내 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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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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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반박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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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어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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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은 대장간으로 안으로 들어서며 크게 한 번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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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두 명 다 제대로 연대의 의미는 깨달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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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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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로 타오르는 용암 기둥이 붉은 하늘을 뚫고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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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라. 나의 공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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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망치가 바닥을 쿵, 쿵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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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동이 바닥을 넘어, 뼛속까지 깊숙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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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서 커다란 쇳물이 쏟아질 듯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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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전체가 거대한 화산처럼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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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사방에서 분출해 땅과 하늘을 만들고, 공간을 가득 채운 열기와 신성력이 피부를 찌르며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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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두 눈으로는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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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더 이상 인간의 공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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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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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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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불의 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위대한 장인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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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서서히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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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不伽藍)의 공방(工房)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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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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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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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윤채하는 광활한 내부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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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신화와 전설이 아티팩트가 되어 벽마다, 선반마다 눈부시게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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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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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신의 영역에 도달한 대장장이, 불가람의 공방, 즉, 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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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가 교단 내에 안배해둔 성지조차 여기 앞에서는 장난감처럼 느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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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한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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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의 목소리가 대장간 전체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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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밖에 고를 수 없다니 아쉬울 법도 하겠으나,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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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미 죽은 자의 공간이며, 저 무구들은 신적인 존재가 직접 만든 아티팩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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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 이상을 감당하기에는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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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력이 이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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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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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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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이 크게 한 번 웃으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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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무엇이든, 단 하나씩 고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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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윤채하는 조심스럽게 진열장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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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아티팩트가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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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은 태양처럼 타오르고, 어떤 것은 달처럼 은은한 빛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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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래스의 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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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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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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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전설적인 아티팩트들이 내 시야를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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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뭐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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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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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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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채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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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게 될지 아예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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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윤채하의 건은, 같이 고심하며 고르면 편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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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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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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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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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장을 하나씩 살피며 걷다가, 나는 문득 머릿속으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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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윤채하는 허기의 탐구자로 아티팩트의 본질을 흡수하는 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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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기 있는 아티팩트들의 알맹이만 쏙 빼먹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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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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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쩍 불가람의 눈치를 살피며 윤채하를 공방의 사각지대 쪽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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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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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 불가능을 묻는다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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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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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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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들킨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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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주인인 그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진짜로 불가능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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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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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아티팩트 사이를 거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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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진열대 여기저기를 돌며 한 손엔 이상한 아티팩트를 들고 와선 내게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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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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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의 속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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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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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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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는 사냥의 신, 활을 잘 쏜다. 따라서 시온이 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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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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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내 시야에 유독 강렬한 아티팩트 하나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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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스의 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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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가까이에서도 결코 녹지 않을 헬리오스의 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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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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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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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집어삼킬 파멸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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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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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윤채하가 허기의 탐구자 대신 각성했어야 할 세 번째 권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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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윤채하가 추가적인 각성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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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화관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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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만 해도 인페르노를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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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반드시 장착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윤채하는 이를 흡수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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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앞에 멈춰선 윤채하는 마음에 들었는지 말없이 한참을 그 붉은 왕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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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살아 움직이듯 화관 위에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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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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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먹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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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좀 이상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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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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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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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은 그제야 선택이 끝났다는 듯, 화관을 진열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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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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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한마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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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상당히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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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화관을 받아들고, 손끝에 닿은 불꽃에 살짝 화들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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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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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에 넣기에는 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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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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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화관의 테두리부터 작은 햄스터처럼 야금야금 베어 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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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작,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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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불길이 입 안에서 사라지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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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스가 보면 기절할만한 장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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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제법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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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분간 씹어먹더니, 손에 들린 화관은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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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배가 부른 듯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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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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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하게 한마디 남기고는, 그대로 푹,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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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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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받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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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채하는 깊이 잠에 빠진 듯, 곱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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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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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의 굵은 목소리가 공방 안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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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보구, 그중에서도 불꽃이라는 근원에 닿은 힘이다. 네 아이가 그것을 흡수했다면, 그만큼 큰 변화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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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심스레 윤채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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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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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몸에 무리가 온 것은 아닌지, 불가람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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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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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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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릇이 부족했다면, 이미 이 자리에서 모두 불타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저러고 있는 건, 이미 자격은 충분히 갖췄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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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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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가지고 잠시 기다려라. 곧, 눈을 뜰 테니. 뭐… 대화가 잘 된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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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으로 굳었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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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안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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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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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러질 거였으면 권하지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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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니라더니, 걱정은 되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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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이 묘하게 흥이 실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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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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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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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탈 없이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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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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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고급스럽고,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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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조명이 벽을 따라 흘러내리고, 바닥엔 빛나는 대리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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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놓인 골동품과 묵직한 고서, 숨 막히도록 무거운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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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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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층,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바로 그 접대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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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마탑 입성 후보로서, 마탑주가 직접 그녀를 초대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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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빛나는 대리석 테이블 건너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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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마탑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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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아니 오렌지에 가까운 머리칼이 살짝 어깨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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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 있고 부드럽게 빛나는 눈동자, 지루하다는 듯, 그러나 어딘가 짙은 애정을 담은 시선이 윤채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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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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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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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 피부도, 눈빛도, 모든 것이 조금 더 성숙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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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틀림없이, 자신이 아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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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빛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가슴 한쪽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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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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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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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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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은 그녀, 아니 윤채하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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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기에 앉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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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그러니까 작은 윤채하는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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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 이내 큰 윤채하가 손을 내밀어 작은 윤채하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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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게 따스한 손길. 이상하게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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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살짝 위로받는 느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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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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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고 싶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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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윤채하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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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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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역시 나 닮아서 똑똑하네. 음…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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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윤채하가 작은 윤채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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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바짝 붙이며 속삭이듯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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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귀 씨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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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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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한쪽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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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로, 큰 윤채하의 눈동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진한 붉은 빛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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