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This commit is contained in:
534
content/references/novelpia/275975/89.md
Normal file
534
content/references/novelpia/275975/89.md
Normal file
@@ -0,0 +1,534 @@
|
||||
|
||||
씬 넘버 17은 이혁수가의 안주인이자,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길수진'과, 이유주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다.
|
||||
|
||||
그동안 서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이때를 기점으로 둘의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되어간다.
|
||||
|
||||
아들의 성공적인 학업 성취.
|
||||
|
||||
성공한 인생을 걷게 만들고 싶은 어머니 길수진.
|
||||
|
||||
그리고, 그 해답지를 들고 있는 이유주.
|
||||
|
||||
어찌 보면 추격전과 다를 게 없었다.
|
||||
|
||||
노리는 자와, 쫓기는 자.
|
||||
|
||||
단지, 일반적인 추격전과 다른 점은.
|
||||
|
||||
'쫓기는 자가, 우위라는 것.'
|
||||
|
||||
서연과 길수진 역의 이미란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
||||
|
||||
길수진은 이유주가 가진 입시 플랜, 그 포트폴리오.
|
||||
|
||||
정확히는 이유주의 오빠 이석찬이 백연대 수석을 달성하게 해준 그 완벽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
||||
|
||||
그것을 완벽히 암기하고, 가지고 있는 이유주를 누구보다 먼저 차지하고 싶은 게 길수진.
|
||||
|
||||
바로 그녀의 목적.
|
||||
|
||||
'첫 시작부터 너무 빡센 걸로 잡은 게 아닌가 싶은데.'
|
||||
|
||||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중년의 배우들은 그리 생각했다.
|
||||
|
||||
특별히 액션이 있거나, 강한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은 아니었다.
|
||||
|
||||
그렇기에, 더욱 연기하기 어려웠다.
|
||||
|
||||
차라리 과장된 감정이 있다면, 그에 몰입하여 대사를 쏟아내면 그만.
|
||||
|
||||
하지만, 이 장면은 고요하고.
|
||||
|
||||
한없이 적막하지만 서늘하며, 어찌 보면 가열찬 감정이 드러나야만 했다.
|
||||
|
||||
굉장히 복합적인 장면.
|
||||
|
||||
또한 이 작품의 주제와 모든 것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했다.
|
||||
|
||||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
||||
|
||||
둘의 대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본 리딩의 스타트를 끊기엔 적절했으나.
|
||||
|
||||
'어려워.'
|
||||
|
||||
'어렵군.'
|
||||
|
||||
이 자리에서 를 안 본 배우는 없었다.
|
||||
|
||||
단순히 질투로 본 젊은 배우들부터, 최근 떠오르는 신성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본 배우들까지.
|
||||
|
||||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둘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
||||
|
||||
그리고.
|
||||
|
||||
서연을 마주한 이미란은 속으로 슬며시 웃었다.
|
||||
|
||||
'기세 좋네.'
|
||||
|
||||
서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
||||
|
||||
그걸 소름 끼치게 알 수밖에 없었다.
|
||||
|
||||
아마 다른 이들은, 기존의 서연과 지금 서연의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
||||
|
||||
이유주와 서연은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
||||
|
||||
무감한 표정이나, 차분한 어조.
|
||||
|
||||
전체적으로 동작이 크지 않다는 부분들이 닮았다.
|
||||
|
||||
그러나, 다른 점도 분명히 있었다.
|
||||
|
||||
'이유주는 지극히 염세적인 인물.'
|
||||
|
||||
어렸을 적부터 부모에게 학대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다.
|
||||
|
||||
오빠인 이석찬과 함께.
|
||||
|
||||
이유주의 한 살 어린 남동생이, 그 교육을 쫓아오지 못하여 받는 차별을 본 순간.
|
||||
|
||||
무조건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
||||
|
||||
그렇게 몇 년.
|
||||
|
||||
고등학생이 된 시점에서, 이유주에게 학업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어떤 성과에 불과했다.
|
||||
|
||||
미래의 목표.
|
||||
|
||||
하고 싶은 것.
|
||||
|
||||
그런 건 없다.
|
||||
|
||||
그녀는 그저 부모의 말이며, 아버지의 '입시 코디네이터'로서의 영광을 되찾아줄 존재였다.
|
||||
|
||||
그러니, 그녀를 탐내는 어른들.
|
||||
|
||||
기계적으로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혐오하는, 그런 여학생.
|
||||
|
||||
'그 혐오감.'
|
||||
|
||||
이유주의 얼굴은 지극히 무감했으나, 그 눈에는 지독한 혐오가 드러났다.
|
||||
|
||||
고요한 눈동자 안에 담긴 지독한 혐오감이 진하게 느껴졌다.
|
||||
|
||||
단지 느낌적인 게 아니었다.
|
||||
|
||||
미세한 얼굴 근육의 변화로, 자연스레 그런 인상을 주었다.
|
||||
|
||||
미세하게 찌푸려진 미간.
|
||||
|
||||
약간 가늘게 변한 눈매.
|
||||
|
||||
살며시 틀어진 입술.
|
||||
|
||||
그것들이 마치, 비웃는 인상처럼 보이게 만든다.
|
||||
|
||||
아니, 어찌 보면 자조하는 느낌도 있었다.
|
||||
|
||||
이유주가 품은 혐오감은 상대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
||||
|
||||
그러니.
|
||||
|
||||
「이유주 양. 만나서 반가워요.」
|
||||
|
||||
이미란은 기대를 품으며, 길수진으로서 그녀를 반겼다.
|
||||
|
||||
「우리 민서와 친하게 지내요.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면, 평생을 볼 사이잖아요.」
|
||||
|
||||
씬 넘버 17.
|
||||
|
||||
태양 고등학교에 입학함으로써, 태양 고등학교의 기숙사에 온 이유주는 길수진의 딸 이민서와 짝을 이루게 된다.
|
||||
|
||||
같은 성씨였기에, 옆자리에 앉게 되었기 때문.
|
||||
|
||||
그것을 길수진은 행운이라 생각했다.
|
||||
|
||||
원하던 목표가 바로 자신의 딸의 옆에 앉게 된 격이니.
|
||||
|
||||
그러니 딸에게 부탁하여, 이유주를 집에 초대한다.
|
||||
|
||||
이유주의 환심을 사고, 그녀의 본심을 떠보고.
|
||||
|
||||
어떻게든 그녀가 가진 이유주의 오빠, 이석찬의 포트폴리오를 받아내기 위해서.
|
||||
|
||||
「글쎄요.」
|
||||
|
||||
그런 길수진의 말에, 이유주는 생긋 웃었다.
|
||||
|
||||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미소였다.
|
||||
|
||||
인간의 표정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낸 미소.
|
||||
|
||||
「평생, 은 모르겠네요.」
|
||||
|
||||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민서가 유주 양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줬어요.」
|
||||
|
||||
「그런가요. 저는 민서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요.」
|
||||
|
||||
「많이 대화하지 않았다면, 좋죠.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 일이니.」
|
||||
|
||||
「옳은 말씀이네요.」
|
||||
|
||||
차분한 대화.
|
||||
|
||||
양쪽 다 웃는 얼굴로 나누는 대화.
|
||||
|
||||
「그러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요. 친구의 엄마이니 손이 닿는 한 도울 테니.」
|
||||
|
||||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
||||
|
||||
「아뇨, 필요한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많잖아요. 원하는 게 있죠? 내가 그거 이뤄줄 수 있어요.」
|
||||
|
||||
거기까지 말한, 길수진은 당당하게 이유주를 바라보았다.
|
||||
|
||||
유명한 입시 코디였으나, 실패한 아버지.
|
||||
|
||||
그녀의 아버지가 이유주를 태양 고등학교에 입학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뭔가.
|
||||
|
||||
홍보다.
|
||||
|
||||
그녀의 딸로, 그가 가진 완벽한 입시 플랜, 커리큘럼.
|
||||
|
||||
그것들을 나타내고,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
||||
|
||||
그러니 길수진은 당당했다.
|
||||
|
||||
파는 상품에 손을 뻗었을 뿐이니까.
|
||||
|
||||
아니, 이쪽은 오히려 상대를 돕는 것이다.
|
||||
|
||||
태양 고등학교.
|
||||
|
||||
이 에 들어오기엔 한참 못난 이들에게 관대하게 손을 내민 거니까.
|
||||
|
||||
「감사한 말씀이네요.」
|
||||
|
||||
이유주는 그런 길수진의 압박에도 그저 웃으며 답했다.
|
||||
|
||||
마치, 전혀 관심 없다는 듯.
|
||||
|
||||
묘한 긴장감이 둘의 사이에서 느껴졌다.
|
||||
|
||||
'눈.'
|
||||
|
||||
에 참여한 젊은 배우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눈에 주목했다.
|
||||
|
||||
아직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대본 리딩이라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연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
|
||||
'눈이 양쪽 다 웃지 않고 있어.'
|
||||
|
||||
길수진의 눈은 이유주의 속내를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
||||
|
||||
반대로 이유주는 그저 혐오감이 깃든 눈으로 그녀를 무시하고 있었다.
|
||||
|
||||
창과 방패.
|
||||
|
||||
그리 보이는 공방이 둘 사이에 있었다.
|
||||
|
||||
「아, 그렇지.」
|
||||
|
||||
그 고요한 시선 교환 속에서, 말을 돌린 건 길수진 쪽이었다.
|
||||
|
||||
「오빠가 백연대 수석이라 들었어요. 그것도 의대.」
|
||||
|
||||
「네.」
|
||||
|
||||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
||||
|
||||
싱긋, 웃는 길수진의 말에, 처음으로 이유주의 눈에 감정이 담긴다.
|
||||
|
||||
단순한 혐오를 넘어선 '불쾌감.'
|
||||
|
||||
그것이 선명히 드러난다.
|
||||
|
||||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
||||
「대단하죠.」
|
||||
|
||||
이유주는 마주 웃으며 답했다.
|
||||
|
||||
「정말로.」
|
||||
|
||||
그 목소리에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
||||
|
||||
묘한 분노가 선명히 담겨 있었다.
|
||||
|
||||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런 이유주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
||||
|
||||
그것은 마치,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긴장감을 주었다.
|
||||
|
||||
마치 당장 이유주가 길수진을 향해 무언가를 저지를 것 같다는 긴장감.
|
||||
|
||||
일촉즉발.
|
||||
|
||||
그것이 무엇보다 어울리는 장면.
|
||||
|
||||
「민서.」
|
||||
|
||||
이유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길수진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웠다.
|
||||
|
||||
「친하게 지낼게요.」
|
||||
|
||||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
||||
|
||||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분명히 있었다.
|
||||
|
||||
하지만 그것을 마주했음에도, 길수진은 그저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
「네, 잘 부탁해요. 이유주 양.」
|
||||
|
||||
그렇게 둘의 대화가 멎었다.
|
||||
|
||||
"……."
|
||||
|
||||
대본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
||||
|
||||
묘한 정적이 흘렀다.
|
||||
|
||||
"와우."
|
||||
|
||||
뒤늦게 감탄사를 내뱉은 건 감독인 김일수였다.
|
||||
|
||||
그는 무척 흥분된 얼굴로 방금 열연을 펼친 두 여배우를 보았다.
|
||||
|
||||
"좋네요, 이거. 와, 솔직히 좀 연기 톤이나 새롭게 잡아볼 감정이 있나 했는데…… 없네."
|
||||
|
||||
그런 그의 말에 모두가 속으로 긍정했다.
|
||||
|
||||
그 말대로였다.
|
||||
|
||||
방금 장면에서 흠은 없었다.
|
||||
|
||||
마치 편집된 드라마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깔끔함이 있었다.
|
||||
|
||||
심지어 서연의 복장은 교복이었기에, 장면적으로 너무나 잘 어울렸다.
|
||||
|
||||
마치, 이곳이 촬영장이라는 느낌.
|
||||
|
||||
"감사합니다."
|
||||
|
||||
그런 극찬에 꾸벅, 하고 서연은 고개를 숙였다.
|
||||
|
||||
하지만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
||||
|
||||
감정을 추스르는 것처럼, 그저 눈가를 손가락으로 매만질 뿐이었다.
|
||||
|
||||
그 모습을.
|
||||
|
||||
"어때."
|
||||
|
||||
한성진이, 옆에 앉은 친구 김현석을 보며 말했다.
|
||||
|
||||
"장난 아니지?"
|
||||
|
||||
"……."
|
||||
|
||||
그 말에, 김현석은 날카로운 눈으로 한성진을 보았다.
|
||||
|
||||
장난 아니냐고?
|
||||
|
||||
'썩을.'
|
||||
|
||||
심한 욕을 내뱉을 것 같았다.
|
||||
|
||||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
김현석이 맡은 역할은 서연의 짝이 된 이민서의 쌍둥이 오빠.
|
||||
|
||||
상당히 부족한 민서와 달리, 여러모로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여러모로 이유주와 얽히는 장면이 많았다.
|
||||
|
||||
"너, 같이 나올 때 먹히지 않을 수 있겠어?"
|
||||
|
||||
먹힌다.
|
||||
|
||||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
||||
|
||||
그는 언제나 스스로 연기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
||||
|
||||
주변의 배우도, 소속사도 그렇게 추켜세워 줬으니까.
|
||||
|
||||
하지만, 방금 그 연기를 보니 그 말들이 모두 입에 발린 말처럼 느껴졌다.
|
||||
|
||||
아마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자신만이 아니겠지.
|
||||
|
||||
이번에 오디션을 뚫고 드라마에 참여한 젊은 배우들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
||||
|
||||
이전에는 서연을 바라보는 시선에 질투.
|
||||
|
||||
혹은 의심과 멸시가 섞인 자들이 있었다.
|
||||
|
||||
스크린이나, TV 화면으로만 봤을 때는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
||||
|
||||
이것을 직접 마주하면 그 압박감부터 전혀 다른 것이다.
|
||||
|
||||
애초에, 방금 길수진 역을 맡은 배우, 이미란은 진심으로 연기했다.
|
||||
|
||||
마치 방심하면 그대로 상대의 존재감을 뼛속까지 씹어먹을 듯이.
|
||||
|
||||
하지만, 서연은 그 강렬함을 너무나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
||||
|
||||
당연하다는 듯.
|
||||
|
||||
그 차이가, 젊은 배우들에게 패배감을 느끼게 했다.
|
||||
|
||||
'심지어. 이쪽은 안중에도 없구나.'
|
||||
|
||||
다른 배우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하등 상관없다는 것처럼.
|
||||
|
||||
서연은 그저 대본만 느긋하게 살필 뿐이었다.
|
||||
|
||||
직접 겨룬 것도 아님에도, 느껴지는 지독한 패배감에 김현석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
|
||||
그러다.
|
||||
|
||||
"?"
|
||||
|
||||
그 시선을 느낀 서연이 김현석을 향해 눈을 움직였다.
|
||||
|
||||
그 눈을 마주친 김현석은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
||||
|
||||
"왜 그래? 쟤가 너 보는데?"
|
||||
|
||||
"……아니."
|
||||
|
||||
아무튼 질투 나고, 분하고.
|
||||
|
||||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전처럼 막연한 적대를 드러내기는 어려웠다.
|
||||
|
||||
'……그때 동전.'
|
||||
|
||||
여전히 그 동전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었다.
|
||||
|
||||
그 때문인지, 차마 전처럼 서연에게 적대감 어린 시선을 보내기 어려웠다.
|
||||
|
||||
그 동전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
||||
|
||||
김현석의 본능이 자연스레 몸을 이끌었으니까.
|
||||
|
||||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고.
|
||||
|
||||
묘한 그의 반응에 한성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
||||
|
||||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
||||
아, 주서연과 함께 연기를 펼칠 생각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구나. 하고.
|
||||
|
||||
"벌써 촬영이 걱정되지?"
|
||||
|
||||
"……."
|
||||
|
||||
그런 한성진의 말에 김현석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
|
||||
물론, 그 의미는 전혀 달랐지만.
|
||||
|
||||
***
|
||||
|
||||
'확실히, 어렵네.'
|
||||
|
||||
오늘 대본 리딩을 끝내고 돌아온 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
다른 이들은 어땠을지는 모르겠으나, 서연에게는 굉장히 힘든 대본 리딩이었다.
|
||||
|
||||
마땅히 연기를 지적받지도 않았고, 대본의 수정점도 딱히 없었다.
|
||||
|
||||
외적으로 보자면, 서연은 오늘 가장 편안히 연기를 펼친 셈이다.
|
||||
|
||||
하지만.
|
||||
|
||||
'속이 울렁거려.'
|
||||
|
||||
타인을 혐오하는 연기는 어렵다.
|
||||
|
||||
전생에서는 애초에 모르는 감정이었고, '주서연'의 삶에 혐오란 끼어들 여지가 그리 없었으니까.
|
||||
|
||||
좋은 부모.
|
||||
|
||||
좋은 친구.
|
||||
|
||||
아마 자신에게 주어진 무엇보다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하는 것들.
|
||||
|
||||
그러니, 더욱 혐오라는 감정에 힘든 부분이 있다.
|
||||
|
||||
만약.
|
||||
|
||||
조서희를 쫓아가, 상류층의 파티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
||||
|
||||
그리고 그곳에서 '로우'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저 막연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
||||
|
||||
그때 서연이 느낀 감정은 지금보다 훨씬 진했고.
|
||||
|
||||
단순한 분노보다 훨씬 격렬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
||||
|
||||
용납할 수 없는 무언가.
|
||||
|
||||
자신과 근본적인 다른 존재를 볼 때의 느낌.
|
||||
|
||||
그것을 연기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
||||
|
||||
다들 극찬했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불만족.
|
||||
|
||||
더 잘할 수 있었는데.
|
||||
|
||||
대략 그런 기분.
|
||||
|
||||
"후우우우."
|
||||
|
||||
한숨을 내쉬며, 서연은 컴퓨터를 켰다.
|
||||
|
||||
최근 새롭게 구매한 그래픽 카드가 번쩍이며 작동하는 게 보였다.
|
||||
|
||||
'본래 바꿀 생각 없었는데.'
|
||||
|
||||
아버지인 영빈이 요즘 그래픽 카드가 싸다며, 조른 탓에 함께 사게 되었다.
|
||||
|
||||
사실, 이건 꽤 드문 일이었기에 순순히 선물로 드렸다.
|
||||
|
||||
서연의 부모는 그녀가 버는 돈으로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
||||
|
||||
서연이 번 건 전부 서연의 것.
|
||||
|
||||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면 늘 지원을 해주었고.
|
||||
|
||||
힘든 일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
||||
|
||||
……물론 아빠는 여러모로 때려주고 싶을 때가 많지만.
|
||||
|
||||
대략 그런 느낌.
|
||||
|
||||
그러니 이유주라는 배역에 더욱 몰입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
||||
|
||||
이입하면, 너무 힘들었으니까.
|
||||
|
||||
자신의 전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살인마 차서아보다도 더.
|
||||
|
||||
'아마, 묘하게 현실감이 느껴져서 그런지도.'
|
||||
|
||||
살인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상상으로 이입이 끝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
||||
|
||||
"좋아."
|
||||
|
||||
서연은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
||||
|
||||
이 꿀꿀한 마음은 라미엘의 방송이나 보면서 치유하자.
|
||||
|
||||
그런 생각을 하며, 채널에 들어갔을 때였다.
|
||||
|
||||
「곧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짜잔~!」
|
||||
|
||||
"?"
|
||||
|
||||
그런데, 갑자기 라미엘의 채널에 검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
||||
|
||||
개인세인 라미엘의 채널에서 새롭게 데뷔하는 버튜버를 소개한다고???
|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
|
||||
너는 또 누군데.
|
||||
|
||||
「빨리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제 새로운 친구를!」
|
||||
|
||||
상냥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라미엘의 모습에.
|
||||
|
||||
서연은 조금 전까지 가슴 속을 어지럽혔던 끔찍한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불타는 게 느껴졌다.
|
||||
|
||||
아주 그냥 활활.
|
||||
Reference in New Issue
Block a user